힝고 님(김현성)이 쓴 [저출산의 이유]에 관한 제 견해입니다.
분명 주택이나 소득에서 출발해 결국은 불평등의 문제일겁니다.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너무 빡세서’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일과 일상의 강도와 속도를 조금 누그러뜨려야 합니다. 많이들 여기에 동의합니다. 그럼 단기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사회가 되죠. 이 부분은 동의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상한 대책만 쏟아집니다.
집값이나 불안한 고용같은 문제들은 지금 1.3명 정도의 심각한 저출산을 겪고 있는 일본 등 다른 선진국들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0.7명입니다. 격하게 성장한 대한민국은 격하게 소멸하기로 작정한 것 같습니다. 뭔가 숨겨진 이유가 있을 겁니다.
이렇게 빡센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사진 한 장 올립니다. “낮엔 업무 밤엔 투석”, “바쁜 직장인들을 위한 슬기로운 야간 투석”이라는 한 내과의원의 지하철 광고입니다. 투석을 해야하는 사람이 낮에도 바쁜 나라. 낮에 투석할 시간도 없는 나라.
이 한 장의 사진에 고 김기원 교수의 ‘한국인은 고단하고 불안하고 억울하다’는 말이 모두 담겨있습니다. 고단하고 불안하고 억울하면 번식을 하지 않는 것이 동물의 본능입니다.
중학생들이 밤 11시에 독서실에서 귀가하는 나라입니다. 유치원부터 시작한 경쟁이 끝나고 쉴 무렵, 치킨집 차려서 다시 경쟁을 시작합니다. 그거 다 끝나면 또 노년의 노동이 또 기다립니다. 긴장 끈 풀지 마세요. 졸면 죽습니다. 여기는 대한민국입니다.
코로나 초기, 확진자의 동선을 따라가 봤더니 콜센터에서 일하다 확진 판정을 받은 아주머니는 아침에는 녹즙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콜센터에서 일하던 또 다른 청년은 택시를 몰고 있었고, 또 다른 30대 여성은 초등학교 돌봄교사였습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진짜 ‘빡센’ 나라입니다.
그런 아버지 어머니의 일상을 보고 자란 이들에게 결혼은 ‘꿀이 뚝뚝 떨어지는 행복한’ 제도가 절대 아니고, 무슨 스님의 고행길 같은 겁니다. 그러니 언니가 동생에게 조언합니다.“너라도 시집가지 말고 편하게 살아…”
노동을 줄이지 못하면 당장이라도 좀 즐겁게 살았으면!
태국 사람들은 툭하면 파티를 열고 즐깁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의 직원들은 연말에 입주자 주차장 한 층을 막아놓고 하루종일 음악 틀어놓고 춤추고 놀더군요. 사실 동남아뿐 아니라 다들 잘 놀고 늘 즐기며 삽니다. 유독 일본과 한국 사람들만 죽어라 일하고 근심하고 경쟁하다가 병들어 죽죠.
예전 그리스가 국가부도 위기였을 때 한 신문기자가 현지 르포기사를 썼습니다. 대충 ‘정규직 일자리가 없는 청년들이 오후 3시면 퇴근해 해변에서 맥주를 마시며 하릴 없이 시간을 보낸다’는 내용으로 기억하는데, 댓글 중 하나가 “그게 우리가 원하는 세상 아닌가요?”였습니다(‘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출장을 갔다면…)
나는 내 자리로 들어가 누워 책을 펼쳐 들었다. 붓다 생각이 여전히 내 머리에 남아 있었다. 나는 몇 년 동안 내 마음에 평화와 안식을 가져다주던 [붓다와 목자의 대화]를 읽었다.
목자: 내 식사는 준비되었고 암양의 젓도 짜 두었습니다. 내 집 대문은 잠기어 있고, 불도 피웠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마음대로 비를 내려도 좋습니다.
붓다: 내게는 더 이상 음식이나 젖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바람이 내 처소이며 불 또한 꺼졌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마음대로 비를 내려도 좋습니다.
목자: 내게는 황소가 있습니다. 내겐 암소가 있습니다. 내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목초지도 있고 내 암소를 모두 거느릴 종자소도 있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마음대로 비를 내려도 좋습니다.
붓다: 내게는 황소도 암소도, 목초지도 없습니다. 내겐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마음대로 비를 내려도 좋습니다.
목자: 내게는 말 잘 듣고 부지런한 양치기 여자가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이 여자는 내 아내였습니다. 밤에 아내를 희롱하는 나는 행복합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마음대로 비를 내려도 좋습니다.
붓다: 내게는 자유롭고 착한 영혼이 있습니다. 나는 오래전부터 내 영혼을 길들여 왔고, 나와 희롱하는 것도 가르쳐 놓았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마음대로 비를 내려도 좋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1946.,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2009.
부모가 사는 게 즐거워야 합니다. 그래야 그걸 보고 자란 아이들이 결혼을 원합니다. 그러니 정부가 보통 사람들이 저녁에 주말에 돈 들이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계속 늘리면 좋겠습니다. 예를들어 을왕리 해수욕장 곳곳에 무료 샤워시설과 조리대를 설치하는 것입니다. 시드니 해변을 가보세요. 조리대에 가스가 연결돼 있어서 바로 고기 구워먹습니다.
미국에선 국립공원 예약 안되면 주립공원, 안되면 시립이나 카운티 공원 캠핑장까지 누구든 주말에 자연을 즐길 수 있습니다. 어떤 주립공원은 산 정상 호수주변에 모래를 퍼다가 작은 인공 해변을 만들어놨더군요.
텐트 들고 낚싯대 챙겨서 월마트에서 160달러 주고 카누 사서 가면됩니다. 아이들은 저녁에 야간조명이 켜지는 동네 야구장에서 야구를 합니다. 맨날 총으로 쏴 죽이는 나라같지만, 그래서 이 나라가 버티는 겁니다.
조금이라도 더 하루가 즐거워져야 합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매달 한 번씩 날을 정해서 시청 앞 광장에서 우리 K팝 공연을 해야 한다고 말해왔습니다. 다음달 두 번째 토요일에 ’2NE1‘이 공연을 한다면 어떨까. 수십만 젊은이들이 아침부터 돗자리를 들고 기다릴 거예요. 그 이야기를 여러 정치인에게 전했고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서울시 문화 분야 책임자들과 몇 차례 통화를 했습니다. 대뜸 “그러다 사고 나면 누가 책임지나요? ㅠㅠ”라고 하더군요.
기본적으로 우리 위정자들은 산업성장시대에 자랐습니다. 재정을 생산이 아닌 소비에 지출하는 것이 어색합니다. ‘사람들이 노는데 정부가 왜 돈을 써야하는가’. 그렇다면 생각해 보세요 “그럼 도대체 여의도에서 불꽃놀이를 하는데 천안과 평택에서까지 젊은이들이 올라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출산 육아보다 성공 승진이 우선… (+ 안돌봄사회)
해변의 추억과 불꽃놀이의 기억, 시청 앞 축제를 잔뜩 경험한 아이들은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둘째 낳으면 2백만 원 드립니다’ 정책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현실은 이번 주말도 갈 곳이 없습니다. 그러니 부자들은 죄다 골프장, 서민들은 관악산과 잠실 야구장만 찾아갑니다. 한민족이 언제부터 산과 야구만 좋아했는가? 5만 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밥 먹고 즐길 수 있는 곳이 한국에는 거기밖에 없어요.
‘나의 해방일지'(드라마)를 봐도 그렇고 우리의 삶은 하루하루가 전투죠. 사람들은 ‘갯마을 차차차'(드라마) 같은 삶을 원하는데 현실은 ‘오징어 게임'(드라마)입니다. 이탈하면 낙오자가 되죠. 의사인 차정숙 선생(드라마 속 인물로 경력단절 여성)에게 ‘비싼 공부 해놓고 집에서 애나 보고 있어!’라는 사회적 시선. 우리는 저출산을 걱정하면서 다들 ‘출산보다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고 삽니다. 우리 딸이 의대를 다니다 말고 출산을 한다고 하면 나는 뭐라고 할까(우리 딸은 그래서 의대를 안 갔구나…).
다들 인생에서 결혼과 출산, 육아를 성공과 승진, 저축보다 후순위에 놓고 살면서, ‘저출산이 우리 사회 최대 과제’라고 말하는 사회. 그 덕분에 (중국의 특별행정구인 홍콩을 제외하면) 세계 최고 수준의 저출산 국가. 그리고 OECD 1위, 2위를 다투는 세계 최고 수준 자살율 국가. 남미(멕시코, 코스타리카, 칠레) 국가를 제외하면 OECD 노동시간 최장 국가. 그런데 정치인들이 ‘더 일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회. 그렇게 지난해 또 142명의 아이를 해외에 입양 보낸 이상한 저출산 국가.
어느 중소기업 사장이 술자리에서 “여직원들은 뽑아놓고 보면 출산휴가니 육아휴직이니 …일은 언제하나”라고 타박을 하더니, 삼성전자에 다니는 자신의 딸이 눈치가 보여 육아휴직을 못하겠다고 하니 “그 회사 ceo는 엄마 뱃속에서 안나왔다더냐…”라고 탄식을 했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결혼과 출산의 기회비용이 아깝습니다. 그러니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 그 기회비용을 줄여야 합니다. 그렇게 결혼하고 더 쉬고, 애 낳고 더 천천히 살면 단기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집니다. 기업이나 대형 식당 같은 생산의 플랫폼을 소유한 사람들에게는 손해죠. 그래서 연애나 출산 육아에 관심 없이 일만 잘하는 사람을 위한 지금의 시스템을 허물기가 싫습니다.
정부 저출산대책에는 ‘함께 돌보는 돌봄 사회’를 만들자는 문구가 나옵니다. 우리 사회는 열심히 하는 사람만 또는 열심히 할 수 있는 사람만 보상하고 보호해주는 ‘안돌봄사회’라는 뜻입니다.
코뿔소가 설마 나에게 오겠어?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고3학생은 90여만 명이였습니다. 올해(2023) 고3학생은 모두 39만 명입니다. 만 1세 아동은 약 25만 명입니다. 앞으로 17년 동안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지금 책걸상의 절반을 버려야합니다. 이미 영유아 교육시장까지 찾아온 저출산의 여파는 조만간 모든 소비시장에 그리고 10여 년 후에는 주택시장에도 들이 닥칠 겁니다.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 경제는 붕괴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러니 더 널널한 사회를 만들어야합니다. 그런데 생산성 지상주의, 효율성 만능주의 사회에서 이게 잘 안됩니다. 그러니 당장 즐거운 공간이라도 정부가 더 많이 만들어야합니다.
여기 나밖에 없는데 저기 어디서 코뿔소가 나를 향해 달려옵니다. 설마 나에게 오겠어? 라고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냐면요…대개 죽습니다.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니 우리도 그럴 것 같습니다. 더 드리고 싶은 말이 많은데 오늘 너무 바빠서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