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 칼럼] ‘좁은 회랑’이 괜히 좁은 게 아니다… 한국이라서 가능한 담대한 도약.(⏳4분)

추운 겨울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쨍하게 얼어가는 겨울날, 세상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듯이.

새삼 뿌리를 움직일 수 없다는 것 기억한다. 쿠데타로 일어선 자는 결코 쿠데타를 부정할 수 없다. 실존적 한계다. 뿌리를 뽑는 방법 말고는 없다. 그럴려면, 얼어가며 굳어가는 땅을 파야 한다. 땀이 나고 피가 나는 일이다. 고된 일은 왜 가뜩이나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몫인가.

모든 나라가 한국을 부러워했다.

이번 비상계엄과 내란에 대해 바깥에 사는 사람으로서 소감을 적어봤다.

외국 생활이 30년 가까이 되어 간다. 계산은 해 보질 않았으나, 100개국 이상 다녔다. 정치인, 정책가, 활동가, 학자들을 만나왔다. 그런 만남과 소통을 통해서 나는 한국이 세계적으로 어떻게 부상했는지를 봐왔다.

30년 전에는 남한과 북한을 헷갈려 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남한이라고 했는데 김일성 얘기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 이후로 눈빛과 목소리의 톤이 바뀌어갔다. 무지에서 관심으로 놀람으로, 그리고 부러움으로.

낯뜨거운 얘기지만, 처음에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을 꺼려 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의 사례를 들면서 내가 생각하는 바를, 때로는 뻔뻔하리만큼 알린다. 요즘 처음 보는 사람들과의 인사법은 이렇다. “You must be a Korean, right?(한국인이죠? 맞나요?)”이라고 물으면 나는 답한다. “Of course, I am.(당연하죠.)”

한국이 잘 먹고 잘 살아서 그런 것이고 K-문화 덕분이라고 할 것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한국은 전후 세계질서에서 유일무이하다. 경제를 남부럽게 키워오면서도 민주주의도 같이 키웠다. 이 둘을 다 이룬 나라는 거의 없다. 안에서야 치고박고 싸우지만, 바깥에 볼 때는 ‘저렇게 안정적으로 싸우는구나’ 하는 부러움 대상이었다. 이런 세계적 부러움을 자양 삼아서 K-문화가 자라난 것이다. K-팝이 권위적이고 집단적 ‘훈육’에 기생한다는 비아냥도 바깥에서는 큰 의미가 없었던 것도 이런 기저에 깔린, 말하자면 우호적 믿음 덕분이었다.

세계의 시선이 바뀌면서 언론의 태도도 바뀌었다. 내가 처음에 외국에 왔을 때는, 외국 언론을 통해 한국 소식을 들을 때는 딱 두가지 경우였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거나, 사람들이 사고를 많이 죽었을 때. 지금은 한국의 세세한 일들이 신문이 매일 나온다. 한국 기업, 한국 정치, 한국 사회, 한국 문화, 이 모든 것을 요즘은 외국 언론만 읽고도 대충 파악할 수 있다. 나도 처음 듣는 소식을 외국 동료들이 전해준다.

한때 한국의 대통령은 K-팝처럼 인기가 좋았다. 너나없이 큰 국제 모임에 부르고, 뽀대나는 얘기를 해야 하는 자리에서 연설을 시켰다. 경제와 민주주의를 같이 성장시킨 나라이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를 하다가 나라살림을 망치고, 경제를 살린다고 민주주의를 말아먹은 나라들이 넘치고도 넘친다. 그런 사이에서 한국은 빛났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런 아제모을루가 말한 ‘좁은 회랑’은 괜히 좁은 것이 아니다. 실제로 매우 드물다.

박근혜 탄핵이 한국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박근혜 탄핵 때다. 그때 탄핵으로 ‘국민들이 겪은 상흔’이 커서 아직 남아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이 현재 탄핵의 거부 이유로 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바깥의 시각은 다르다. 처음 반응은 대부분 ‘설마 한국이?’였다. 그런데, ‘역시 한국으로’로 금세 바뀌었다.

그때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서 탄핵을 주장하고 국회가 양당의 지지를 받아 질서 있게 탄핵 절차에 돌입하는 것을 보고, 외국 언론과 내가 만났던 외국 사람들은 한국은 여전히 민주주의와 경제, 문화를 모두 성숙시켜가는 ‘좁은 회랑’에 있음을 증명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래서 ‘탄핵이 남긴 상흔’이라는 논리로 민주주의를 유보하는 주장을 당최 이해하질 못하겠다.

한국은 지금 민주주의와 경제라는 두 날개 가운데 하나를 잃을 위험에 처해 있다. 예전에는 경제 안정을 위해 민주주의를 유보한다는 논리가 통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민주주의가 날갯짓을 멈추는 순간, 경제라는 다른 날개도 같이 멈춘다. 한국은 더이상 1970~1980년대 논리의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깥 사람들은 한국 민주주의의 쇠퇴를 곧 경제 불안정성으로 본다. 군대가 국회에 진입하는 순간, 한국은 이미 그 예전의 죽자고 일하는, 아시아의 불쌍한 개발도상국의 문턱으로 돌아간 것이다. 민주주의가 쪼그라드는 만큼 경제도 쪼그라든다. 이른바 K가 몰락한다.

K-팝이 이끄는 민주주의, 윤석열은 이길 수 없다.

지금은 사사로운 개별 정치 이익를 다투는 시간이 아니다. 같이 몰락할 것인지, 갈이 부활할 것인지의 문제다. 나는 부활을 믿는다. 지난 50년 동안 K-민주주의를 지켜온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꿈이 있기 때문이다. 어제 탄핵의 구호가 넘쳤던 여의도는 K-팝을 부르는 젊은이들의 거리였다. K-민주주의를 자양분 삼아 자라난 젊은이들이 K-민주주의를 지키러 나왔다.

외국 친구와 동료들에게서 쏟아지는 메일에 나는 이렇게 답하고 있다. 어느 외국 친구가 문자를 보내왔다. 탄핵 시위를 생중계하는 방송이 너무 좋더란다. 왜냐고 했더니, 자기가 아는 노래가 나와서 잠시 같이 따라 불렀다고. 그래서 한국 민주주의는 참 재미있다고 하더라.

이런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그날 밤 국회 앞, 사람들이 서둘러 나섰다. 일흔은 넘어보이는 여성이 밀치며 앞으로 나섰다. 그는 내가 막겠다고 다들 뒤로 물러나라고 했다. 나는 살만큼 살았으니 젊은이들은 얼른 뒤로 가라고 나서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저 짧은 말 한 마디가 온전하게 아파서, 나는 어떤 말을 보탤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말할 수 있다. 이 싸움에서 반드시 우리가 이길 거라고. 우리가 다시 마주한 이 ‘좁은 회랑’의 끝에 더욱 단단한 K-민주주의와 새로운 도약이 있을 거라고. 노래 부르면서 격려하면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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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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