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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정치인인 울산 택시기사 김창현 님은 하루하루 겪은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연재합니다. 이 택시 일기를 필자와의 협의를 거쳐 슬로우뉴스에도 연재합니다. 택시라는 작은 공간 속에서 만난 우리 이웃의 이야기들은 때론 유쾌하게, 때론 담담하게, 또 때론 깊은 감동으로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그 이야기들을 거울삼아 우리는 삶을 돌아봅니다. 그 삶의 풍경을 매주 조금씩 공들여 담아볼까 싶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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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현의 택시일기

삼산이다. 온 얼굴에 수염으로 가득 찬 그 아저씨는 차에 오르자마자 큰 소리로 말했다.

“나 오늘 술 한 잔 했심 더. 뭐 할 수도 있는 거 아입니꺼? 남자들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인 교?”

내가 뭐라고 말도 하기 전 자신의 붉은 얼굴과 술 냄새에 대해 해명을 한다.

“하하. 뭐 그럴 수도 있지요. 어디로 가실까요?”
“음… 일단 강변 쪽으로 나가 입시더.”

이때 정확한 목적지를 물어보았어야 하는데 술도 깰 겸 좀 돌다가 가자는 말로 이해를 했다. 이게 실수라면 실수였다. 현대백화점을 끼고 돌아 죽 강변 쪽으로 가는데 갑자기 엉뚱한 말을 한다.

“기사 아저씨. 팔등로 아는교?”
“예. 팔등로 갑니까?”
“아입니더. 유꼬리 모릅니꺼?”

점점 이해가 안 되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저씨. 정확히 가는 곳이 어딥니까?”
“유꼬리 모르는교?”
“유꼬리요? 근처 뭐가 있지요?”
“일단 강변으로 가입시더.”

강변에 접어드니 이 아저씨, 갑자기 유턴하자고 조른다. 당연히 불법 유턴은 안 되고 결국 태화 로터리를 돌아 공업탑 로터리 쪽으로 가게 되었다.

“아저씨. 초본교? 팔등로 모르는교?”
“아니 아저씨께서 강변으로 가자고 하셨지 않습니까?”
“씨팔, 말귀를 못 알아듣네. 팔등로 가입시더. 빨리.”

나는 어안이 벙벙하면서 기분이 많이 상했지만, 그냥 팔등로로 갔다. 결국 차는 많이 돌았다. 팔등로로 가니 이제는 야음시장 쪽으로 가자고 한다. 내가 다시 한 번 물었다.

“도대체 목적지가 어딥니까?”
“유꼬리 모르는교?”

이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아까부터 똑같은 대화를 몇 번째 하고 있다.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한 번 정중하게 물어보았다.

“근처 다른 건물은 없나요?”
“항운노조가 있지.”
“항운노조 가십니까?”
“처음부터 거기 간다고 안 했는교?”

언제 그런 말을 했는가? 강변 가자고 했지. 항운노조로 방향을 잡자 이제는 이 아저씨 담배를 물고 유리창을 내린다.

“아저씨. 담배는 안 됩니다. 다음 손님이 싫어합니다.”

막무가내로 담배에 불을 붙인다. 결국 신호대기 중 꺼달라고 목소리 깔고 말했다. 몇 모금 더 빨더니 담배를 유리창 밖으로 집어던지고 이제는 노골적으로 시비를 건다.

“항운노조 가는데 이렇게 돌아오는 기사가 어딨어? 팔등로도 모르는 게 기사야?”

막말을 한다. 사실 처음부터 항운노조를 가자고 했으면 이렇게 돌아갈 이유도 없었다. 팔등로도 갈 필요 없었다. 그냥 간단히 갈 길을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셈이다. 차비는 9,700원. 돈을 못 주겠다고 한다.

억이 막혀 가만히 있으니까 이번에는 10,000원을 내놓으며 말한다.

“아저씨가 많이 돌았으니까 양심껏 깎아 주쇼. 얼마나 깎는지 볼 테니까.”

나는 그냥이라도 빨리 내리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얼른 4,000원을 내밀자 혼자 잠시 생각하더니 받고 내린다. 다행이다. 이마저 못 내겠다고 하면 지구대를 가야 할지 고민스러워진다.

술에 취한 이들과 대화를 할 때 시시비비를 따지면 싸움이 난다. 조금 손해를 보고 빨리 보내 주는 것이 좋다. 삶의 지혜다.

다만, 자주 자존심을 긁어 놓고 막말하고 심지어 욕설을 퍼부을 땐 참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택시기사들이 매일 밤 겪는 일이다.

2013년 3월 29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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