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선거가 90일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후보별 정책을 집중 조명하고 평가하는 보도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대신 후보들이 유권자 표심을 잡기 위해 전국 각지를 방문해 내놓는 발언을 보도의 주된 내용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선거철만 다가오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보도가 있습니다. 바로 후보 연고와 지연을 강조하는 보도입니다.
‘지연 강조’ 보도가 늘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대통령선거 D-100인 11월 29일부터 12월 13일까지 지상파3사·종편4사 저녁종합뉴스와 6개 종합일간지·2개 경제일간지 지면보도를 살펴봤습니다. 각 당 대선후보들이 특정 지역에 방문해 해당 지역과 후보 자신 혹은 소속 정당과의 인연을 강조하는 발언을 비판 없이 그대로 전한 보도는 해당 기간 신문 42건, 방송 27.5건에 달했습니다.
신문의 경우, 경향신문과 동아일보가 7건으로 가장 많았고, 중앙일보 6건에 이어 조선일보·한겨레·한국일보가 각 5건으로 뒤를 이었습니다. 방송은 TV조선과 MBN이 5건으로 가장 많았고, 채널A 4.5건, KBS·MBC·SBS는 각 4건이었습니다. 후보별로 살펴보니,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 대한 ‘지연 강조’ 보도 건 수가 신문 27건(64.3%), 방송 18.5건(67.3%)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비해 월등히 많았습니다. 윤석열 후보 지연을 강조한 보도 건 수는 신문의 경우 이재명 후보보다 2.25배가 많았고, 방송의 경우 약 2.6배 더 많았습니다.
대선 후보 ‘지연 강조’ 발언, 비판 없이 옮기는 언론
대선후보가 지역 유세마다 구태의연한 지연강조 발언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를 비판 없이 그대로 옮기는 언론보도 역시 큰 문제입니다. 방문 지역과 인연을 강조하는 후보 발언을 비판 없이 전하는 신문기사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은 [중원 상륙 윤석열 “난 충청의 아들”…원자력연 찾아 정권 비판] (11월 29일)에서 “저는 충청의 아들이고 충청은 제 고향이나 다름없다”는 윤석열 후보 지연강조 발언을 비판 없이 그대로 전했습니다. 오히려 “윤 후보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부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의 고향이 충남 공주라는 점을 들어 충청을 ‘정치적 고향’으로 삼겠다는 것”이라며 윤 후보 선거전략 분석을 덧붙였습니다.
중앙일보는 [“충청은 제 뿌리, 호남 마음의 고향” 윤석열 향우회 찾아 균형발전 강조] (12월 9일)에서 “충청은 선대부터 500년간 살아온 제 뿌리”, “제게 호남은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라는 윤 후보 발언을 전한 뒤, “윤 후보의 행보는 대선을 90여 일 앞두고 호남·중도·2030공략이 승부처라는 판단에 의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분석했습니다.
동아일보는 [TK 방문 이재명 “전두환도 공과 병존… 경제 성장은 성과”] (12월 13일)에서 “조금 전 아버님 어머님 산소에 들르고 왔다. 저도 결국 그 옆에 묻힐 것”, “제가 태어났고 자랐고 언젠가 묻힐 고향인 경북”이라는 이재명 후보 지연강조 발언을 전한 뒤, “경북 안동이 고향인 이 후보는 ‘대구경북(TK)의 아들’이란 점도 부각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윤석열 외가 방문 “강릉의 외손” 강조
방송도 신문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12월 10일 강원도 강릉 일정은 윤석열 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출범 후 첫 지역 방문이라 신문과 방송 모두 주목했는데요. 여기서도 언론은 윤 후보 지연강조 발언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특히 강릉중앙시장에서 “강릉의 외손이 여러분을 뵈러 강릉에 왔습니다. 강릉의 외손이 무도하고 무능한 정권을 반드시 교체해내겠습니다”라고 지연을 강조한 윤 후보 발언은 MBC, SBS, TV조선, 채널A 저녁종합뉴스에 그대로 등장했는데요. 방송사별 윤 후보를 담아내는 화면 차이는 거의 없었고, 지연 강조 발언에 대한 문제의식도 없었습니다.
지역에 따른 ‘지지, 반대’ 조장도 지역주의
언론이 후보 정책보다 동정에 더 중점을 두기 때문에 ‘지연강조’ 발언에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비슷한 보도를 반복하는 것일 텐데요. 그러나 선거 때마다 발표된 각종 선거보도준칙은 언론 인식수준에 경종을 울립니다.
먼저 선거방송 심의에 관한 특별규정 제15조(계층, 종교, 지역에 따른 보도)는 “방송은 선거와 관련하여 계층, 종교, 지역에 따른 지지 또는 반대를 조장하는 내용을 방송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국PD연합회, 한국기자협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영상기자협회 등 7개 언론현업단체들이 참여한 ‘2020 총선미디어감시연대’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2020 총선보도준칙’(2020년 2월 17일)을 발표했는데요. “지역감정 또는 지역 정서를 부추기는 각 정당의 발표나 후보의 발언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가해야 한다”며 ‘지역주의 조장 보도 금지’ 원칙을 밝히고 있습니다. 지역 간 갈등을 부추기는 보도 외에 지역에 따른 지지 또는 반대를 조장하는 내용도 보도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몇몇 언론인은 대선후보들의 지연강조 발언 선거유세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경향신문 [여적/팔도 고향론] (12월 10일 이기수 논설위원)에서는 “사는 곳과 관계없이 사람들의 동질감은 성·세대·직역·계층으로 빠르게 분화하고 있다”며 “지역 갈라치기보다 비전과 해법을 다투는 정치가 시대 흐름에 더 맞다”고 지적했습니다.
JTBC도 11월 30일과 12월 11일 저녁종합뉴스에서 각각 “선거 때만 되면 구시대적인 지역주의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그대로 어디의 아들, 딸, 어디의 사위, 며느리 등 찾는 건 정치인들의 단골 레퍼토리”, “세월이 흘러도 항상 반복되는 후보들의 뿌리 찾기…언제까지 통할까요”라고 꼬집었는데요. 후보들의 ‘구시대적인 지역주의’ 선거유세를 비판하기에 앞서 언론부터 ‘지연 강조 보도’에서 벗어나 ‘정책 검증 보도’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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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 대상:
- 2021년 11월 29일~2021년 12월 12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 TV조선 [뉴스9], 채널A [뉴스A], MBN [종합뉴스]
- 2021년 11월 29일~12월 13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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