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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는 7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외 피고인 4명의 뇌물공여 등 혐의의 첫 공판을 진행했다. 박영수 특별검사는 오전 일정에는 직접 공소유지에 참여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2016년 12월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해 질의응답 중 생각에 잠긴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1097381.html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2016년 12월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해 질의응답 중 생각에 잠긴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피고인 

피고인의 면면은 다음과 같다. (이하 피고인 및 증인 호칭 생략)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건희 회장이 장기간 와병 중인 상황에서 사실상의 삼성 총수를 맡고 있다. 특검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에게 433억 원의 뇌물을 약속해 실제 298억 원을 준 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시 국민연금의 찬성 의결’을 대가로 얻었다고 보고 있다.
  •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 삼성의 핵심 미래전략실을 이끌던 수뇌부 중 1인이다. 특검은, 최지성이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과의 뇌물 거래 의혹을 성사시킨 의사 결정에 가담했다고 보고 있다.
  •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 미래전략실의 2인자였다. 최지성과 마찬가지로 뇌물 거래 의혹을 성사시킨 의사 결정에 가담했다고 보고 있다.
  •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 겸 전 대한승마협회 회장: 특검은 박상진이 코레스포츠 명의로 삼성이 지급한 ‘정유라 승마 지원’ 관련 79억 원의 지원 실무를 지휘했다고 보고 있다.
  •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 겸 대한승마협회 부회장: 특검은 황성수가 최순실 측과 협상과 지원 실무를 실제 담당하는 등 뇌물공여 관련 범죄에 가담했다고 보고 있다.

두 얼굴의 삼성

삼성의 금전 지원 내역 

다음은 특검이 공소사실에 밝힌, “삼성이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에 제공했다”고 공소장에 적시된 금전 지원 내역이다.

  • 미르재단 출연금 124억 원
  • K스포츠재단 출연금 79억 원 (도합 203억 원)
  • 최순실·장시호 주도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 16억 2,800만 원
  • 코레스포츠 명의로 보낸 ‘정유라 승마 지원’ 213억 지원을 약속해 실제 78억 원 지급

뇌물공여가 인정되면, 업무상 횡령·재산국외도피·범죄수익은닉·위증 등 혐의는 자동으로 유죄로 따라올 가능성이 높다. ‘따라올 혐의’들의 형이 더욱 높기 때문에, 뇌물공여는 특검과 삼성 측은 뇌물공여에서 치열하게 충돌할 가능성이 컸다.

뇌물죄로 처벌할 수 있다면 특별법을 적용해 최대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다.

특검과 삼성 측의 공판은 ‘정유라 승마 지원’에 초점이 맞춰질 가능성이 컸다. 양 재단에 대한 출연은 최순실·안종범의 공판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고, 영재센터 후원은 최순실·장시호·김종의 공판의 중심소재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방청한 오후 공판에서는 박상진의 검찰·특검 진술을 놓고 특검의 집중적 공격이 이어졌다. 왜 박상진이 핵심이었을까?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가 ‘정유라 승마 지원’ 실무를 총지휘했기 때문이다.

출처: SBS
출처: SBS

7가지 사실과 정황 

1.  최순실이 “승마협회 임원 교체” 메일 받은 뒤, 박 전 대통령이 삼성에 교체 요구

2015년 7월 26일, ‘최순실 측근’으로 알려진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는 최순실에게 ‘삼성그룹 대한승마협회 지원사 현황’이라는 메일을 보낸다.

메일에는 삼성의 승마 지원에 대한 박원오의 의견이 담겨 있었고, 당시 승마협회 일을 보던 이영국 제일기획 상무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특검은 이를 토대로 “박원오가 ‘이영국 등이 올림픽에 관심이 없으니 호흡이 맞는 사람을 파견해 달라’는 취지로 메일을 보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은 실제로 삼성에 “승마협회 관계자를 황성수로 교체하라”며, 대기업 전무의 이름을 직접 거론해 지시를 내렸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정규직 과호보' 발언이 있었던 2014년 11월 25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박근혜 대통령 (출처: 청와대) http://www1.president.go.kr/activity/photo.php?srh%5Bpage%5D=2&srh%5Bview_mode%5D=detail&srh%5Bseq%5D=8569&srh%5Bdetail_no%5D=1004
박근혜의 ‘희망의 새시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출처: 청와대)

2. 박원오 → 황성수 “235억 원 달라”

2015년 8월 3일, 박원오는 황성수에게 ‘승마 해외 전지훈련 계획안’을 보냈다. 그러면서 말 12마리 등을 명시하며, 총 235억 원을 요구했다. 훗날, 삼성이 코레스포츠에 약속한 지원금은 233억 원이었다.

3. ‘천하의 삼성’도 두렵지 않은 최순실

박상진의 조서 곳곳에는 최순실에 대한 박상진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다음은 박상진의 조서 속 명시된 최순실에 대한 평가다.

  • 말의 소유권을 삼성으로 등록했다. 이를 알게 된 최순실은 박원오에게 막무가내 식으로 화를 내고 난리쳤다고 한다.
  • 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최순실은, 2015년 12월 삼성에 “박상진 더러 이번 주 안에 만나자고 전하라”고 통보한다. 이를 박상진에게 전달한 황성수는 “박원오도 횡설수설하고, 두 사람 사이에 튜닝이 안 되고 있는 것 같다”고 보고한다.
  • 최순실은 “내가 삼성에 뭔가 도와드릴 것이 있으면 말씀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세리·박태환처럼 삼성에서 대놓고 정유라에게 개인 후원을 해 달라”고 요구했다. 정유라가 그 정도급 선수가 아니고, 실력 있는 것도 아니어서 거절했다. 장충기는 “우리도 라인이 있는데 굳이 그쪽에 도와달라고 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했다.
  • 2015년 9~12월, 최순실은 삼성으로부터 152만 유로를 받았다. “선수 선발은 2016년 4월 총선 이후로 미루자”고 말하면서도, 계속 돈 요구를 했다.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불거지던 2016년 10월, 삼성 측과 최순실은 말의 소유권을 놓고 입씨름을 했다. 최순실은 우리 측의 요구를 무시했다. 최순실은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면이 많은 사람이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인물 최순실이 2017년 1월 25일 오전 서울 대치동 박근혜 정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특별검사 사무실에 소환되던 중 소리를 치며 특검 수사를 규탄하는 모습.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1117378.html
안하무인 최순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인물 최순실이 2017년 1월 25일 오전 서울 대치동 박근혜 정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특별검사 사무실에 소환되던 중 소리를 치며 특검 수사를 규탄하는 모습. (제공: 민중의소리)

4. 박상진의 깨달음 “이것 때문에 대통령이 직접 지원 요청했구나”

2015년 7월 27일, 25일 박 전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정유라 지원 부족’을 이유로 치도곤을 당한 이재용은 미래전략실에서 회의를 열었다. 대통령의 지시대로 승마협회 임원을 교체했고, 이재용은 “대통령이 계속 화내면 회사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잘 해 달라”고 당부했다.

박상진은, 박원오로부터 “대통령이 ‘정유라 지원 요청’을 한 이유”를 깨닫는다. 박원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최순실은 최태민의 딸이고, 박 대통령이 야인 시절 어렵고 힘들었을 때 최순실이 계속 옆에 있으면서 친자매처럼 돌봐줬다.

대통령이 된 후 청와대를 수시로 드나들었다. 옷과 귀걸이 등 여성용품의 개인수발을 들며 각 부서의 국장과 과장 이름 까지 언급하며 인사 조치했다. (중략)

정유라는 정신상태가 불안해서 엄마(최순실)가 이기기 어렵다. 정유라가 독일에 간 뒤, 내가 밥을 해 먹이는 등 수발을 하고 있다. 마음잡고 정상인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승마 밖에 없으니 훈련을 지원해 달라. 최순실의 생명과 같은 정유라가 독일에 있으니 삼성이 도와 달라.”

참고로, 7월 27일 회의에서 이재용은 박 전 대통령에게 ‘갈굼’을 당한 소회를 수뇌부에 털어놨다.

“30분 동안 만남에서, 대통령은 15분 동안 승마 이야기만 했다.대통령의 눈빛이 레이저빔 같을 때가 있다’는 기사를 봤는데, (겪어 보니)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

이재용의 말이 공개된 순간, 일부 방청객도 웃었다.

인기 드라마 [M](1994)에서 '눈 레이저'로 화재를 모은 심은하 ⓒMBC
인기 드라마 [M](1994)에서 ‘눈 레이저’로 화재를 모은 심은하 ⓒMBC

5. 최순실 “대통령과 악수 잘 하셨냐”

2016년 5월, 박상진은 박 전 대통령의 에티오피아 순방에 동행했다. 안종범은 박상진에게 “내가 지정한 자리에 서 있으라”고 요구했고, 무슨 말인지 몰라서 따랐다.

행사 시작 후 대통령이 들어왔고, 대통령은 동선이 흐트러져 박상진이 있는 자리가 아닌 다른 곳을 통해 헤드 테이블로 갔다. 안종범은 박상진을 데리고 헤드 테이블로 갔다.

박 전 대통령은 박상진에게 악수를 청했다. 박 전 대통령은 박상진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싶었다고 한다.

박상진은 박 전 대통령의 행동에 대해 영문을 몰라 “감사하다”고만 답했다. 그 자리는 원래 기업인이 앉는 자리가 아닌데, 그날은 박상진이 그 자리에 앉았다.

박상진은 나중에 최순실을 만날 일이 있었다. 최순실은 박상진에게 “(대통령과) 악수를 잘 하셨냐”고 물었다.

악수

6. 김종과 삼성의 진실 게임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은 자신의 재판에서, “영재센터 후원은 대통령과 삼성 간 거래였을 뿐, 나는 무관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다.

특검이 공개한 기록에 따르면, 김종과 박상진은 검찰과 특검에서 사소한 것 하나까지 치열하게 진실게임을 벌였다.

  •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시기: 김종은 “2015년 1월, 삼성이 승마협회 회장사를 맡은 후”라고 주장했지만, 박상진은 “2015년 3월, 내가 승마협회 회장에 취임한 후”라고 주장했다.
  • 삼성이 승마협회 회장사 맡은 이유: 김종은 “최 씨 모녀 때문이고,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주장했지만, 박상진은 이를 부인했다.
  •  2015년 3월 만난 이유: 김종은 “박상진이 아시아승마협회장 선거에 출마하겠다면서, 박원오를 삼성에서 챙겨줘야 하니 여러 방법을 생각해보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상진은 “김종이 출마를 권유했고, 박원오 관련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한다.
  • 박상진이 “최순실 오해 풀어 달라”고 부탁?: 김종은 “최순실이 내게 ‘삼성이 너무 예산 지원을 안 한다’며 마구 불평을 했고, 박상진이 이를 알고 ‘오해를 풀어 달라’고 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박상진은 이를 부인한다.

7. 최순실, 게이트 불거지자 ‘투자이민’ 검토

2016년 10월, 최순실의 이름이 대한민국을 달구자, 삼성은 “이번엔 OK지만, 대선 전 정권 교체 시 검찰 수사의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할 것이라는 생각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자 삼성은 일단 2018년 예정된 정유라에 대한 승마 지원을 중단하기로 결정한다. 이에 대한 최순실의 답변은 이랬다.

“동의한다. 하지만 당장 지출이 필요하다. 2017년 1분기까지 영주권이나 투자이민을 검토하는 등 자체적으로 해결하겠다.”

'우주의 기운'을 모아 회춘하겠다는 일념으로 '해외원정 줄기세포시술'을 받기위해 비행기에 오르는 사람들.
‘우주의 기운’을 모아 회춘하겠다는 일념으로 ‘해외원정 줄기세포시술’을 받기위해 비행기에 올랐던 최순실은 게이트가 불거지자 투자이민을 검토한다.

삼성 측, “대통령이 화내서 어쩔 수 없었고, 최순실 몰랐다”

특검의 설명 핵심을 요약하면 ▲삼성은 일찍부터 최순실의 존재를 알고 능동적으로 대처했고, ▲말과 관련된 각종 거래를 놓고 수시로 최순실과 협상을 했으며 ▲ ‘정유라 승마 지원’을 명목으로 최순실에게 돈을 줬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반면 삼성 측은 “박 전 대통령이 이재용에게 직접 화를 내면서 ‘정유라 승마 지원’을 요구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최순실이 겁박하면서 요청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재용이 박 전 대통령과 독대를 하며 ‘정유라 승마 지원’을 요구받았던 2015년 7월에는 최순실을 몰랐다”고 강조했다.

'안티 에이징'이라는 본능적인 욕구는 돈과 권력이라는 연결고리로 '줄기세포시술'이라는 무지로 표출됐다.
나는 몰랐단 말입니다!

특검이 첫 공판기일에서 집중적으로 증거조사를 한 것이 ‘정유라 승마 지원’ 정황에 대한 박상진의 진술이었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양 재단·영재센터에 대한 출연 및 후원은 다른 공판에서 이미 충분히 심리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제한된 시간에서 새로운 쟁점을 놓고 공격하는 효율성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박상진의 진술을 통해 이재용 등 삼성 수뇌부조차도 박 전 대통령의 ‘정유라 집착’과 최순실의 안하무인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조심성 없는 안하무인 때문이었을까? 최순실은 결국, 그동안 한국인이 쉽게 상상하지 못했던 ‘구속 피고인이 된 삼성 총수’라는 현실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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