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출신이 8명, 그 중에서도 고법부장이나 법원장급의 경력자가 6명이나 자리하고 있는 헌법재판소가 마찬가지로 그 경력 사다리를 따라가고 있는 엘리트 법관을 파면시킬 수 있을까?
법원은 유달리 선례와 관행에 집착한다. 법원의 현재는 법원의 과거이자 동시에 법원의 미래다. 고법부장 승진을 목전에 둔 수석부장판사가 ‘휘하의’ 법관이 작성한 판결문에 ‘빨간펜’ 첨삭지도를 하였다면 그것은 선배 수석부장판사로부터 배운 것이자 후임의 수석부장판사가 따라 하게 되는 일이다.
과연 헌재 8명의 재판관, 혹은 6명의 고위 법관 출신 재판관은 이런 재판 개입의 폐습으로부터 자유롭거나 혹은 그에 대한 통렬한 반성을 하고 있을까? 과연 그들은 법관 탄핵이라는 초유의 결정을 내림으로써 사법의 정의, 헌법의 가치를 제대로 세워낼 수 있을까?
임성근 탄핵심판사건 ‘각하’
서울중앙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였던 임성근에 대한 탄핵심판사건(헌재 2021. 10. 28. 2021헌나1 사건)은 이런 관행이 한다. 청와대와 재판거래를 일삼았던 사법농단사태로 이어졌던 사건을 다룬다.
- 가토 다쓰야 산케이 신문 서울지국장 재판 개입 혐의: 임성근은,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 박근혜의 소위 ‘세월호 7시간’을 비방하는 칼럼을 쓴 행위는 무죄라고 한 판결문의 말미에 굳이 ‘이 기사는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점을 기재하도록 두 번이나 (빨간펜이 아니라 “푸른 색으로”) 판결문 초안을 교정해 주었다.
-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 재판 관여: 임성근은, 프로야구선수가 도박죄로 약식명령이 청구되자 이를 정식재판에 회부한 판사를 자기 방으로 불러 ‘다른 판사들의 의견을 더 들어보는 것이 좋겠다’고 지적하여 결국 담당 판사가 그 결정을 취소하고 약식명령으로 처리하게끔 하였다.
- 쌍용차 민변 체포치상 사건 판결문 수정 개입: 민변 변호사가 쌍용차 부당해고 관련 집회를 방해하는 경찰과 충돌한 사건에서 담당 재판부가 판결을 선고하고 판결문을 법원에 등록까지 하였음에도, 임성근은 판결문과 설명자료의 배포를 보류시키고 경찰에 불리한 표현을 ‘톤 다운하는 것이 어떨지 검토해 보라’고 말함으로써 결국 판결문 자체를 수정하도록 하였다.
국회는 임성근의 이러한 행위가 헌법(국민주권주의, 직업공무원제도, 적법절차원칙, 법원의 권한, 법관의 독립)과 형사소송법(재판의 불가변경력)을 위배한 것이라 보고 2021. 2. 4. 의원 179명의 찬성으로 임성근을 탄핵소추하기로 결정하였다. 법관에 대한 최초의 탄핵소추였던 것이다.
물론 이런 의결을 하게 된 배후에는 시민사회의 열화와 같은 다그침이 있었다. 사법농단사태라는, 법관들이 떼거리를 지어 헌법과 정의를 농락하고 재판거래의 불법을 저지른 사태가 발생하였음에도 국회는 넋 놓고 방관만 하고 있는 것을 시민사회가 어렵사리 제자리에 돌려 놓은 것이다.
이 사건의 핵심은 사법의 독립—더 정확히는 재판과 법관의 독립—이라는 헌법과 민주사회의 근간을 훼손한 일을 헌법의 이름으로 바로 잡는데 있다. 그러나 헌재의 팔은 역시 안으로 굽었다. 헌재는 이 탄핵심판이 진행되는 중인 2021. 2. 28. 임성근이 임기 10년을 마치고 퇴임하였기 때문에 파면 결정을 할 실익이 없어졌다고 하면서 청구를 각하하였다. 참고로, 탄핵 결정으로 피청구인을 파면시키려면 인용의견이 6인 이상이어야 한다.
- 이 결정은 애당초 심판절차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각하의견이 5인
- 심판절차 도중에 퇴임한 것이니 절차를 중단하자는 심판절차종료의견 1인
- 국회 탄핵소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인용의견이 3인으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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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의 법정의견(다수의견인 각하의견)과 심판절차종료의견은 임성근의 행위가 헌법적으로 혹은 법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아예 판단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가 2. 28. 자로 퇴임하였다는 사실만 쳐다본다. 마음에 없는 일은 항시 눈 밖에 나는 것일까?
‘비상적 상황’이라는 허구
헌재는 탄핵이란 비상적 상황에 가동되는 예외적이고 보충적인 제도라고 규정하면서 탄핵심판의 결정은 되도록 소극적이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한다. 탄핵심판은 “중대한 위헌·위법행위를 한 공직자로부터 해당 공직을 박탈”함으로써 “손상된 헌법질서의 회복에 기여한다”고 하면서도, 이를 “법치주의 수호를 위한 통상적 장치로 이해할 수는 없”다고 단정한다. 탄핵심판은 법관에 대한 통상의 사법절차 내지 조직 내부의 징계권행사로 그의 위헌·위법행위를 제어하기 어려울 때 그 절차를 “보충”하는 하나의 “비상수단”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런가? 무릇 비상수단이 있으면 그 대칭점에 평상의 수단이 있어야 한다. 탄핵이 비상수단이라면, 그와 함께 평상의 절차에 의하여 고위공직자나 법관을 그 직에서 축출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법률규정만 잘 정비하면 언제든지 파면시킬 수 있는 여타의 고위공직자와는 달리, 법관에게는 그런 평상의 축출 절차가 없다. 아예 헌법에서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않고서는 파면되지 아니”(헌법 제106조 제1항)한다고 못 박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법관의 위헌·위법 행위가 형사범죄를 구성하면 “통상의 사법절차”를 거쳐 파면하면 되겠지만(이 경우도 사법농단사태에 대한 재판진행과정에서 보듯 기대난망이다), 임성근의 경우처럼 형사범죄가 되기 어려운 방식으로 재판과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책임을 물을 방법이 전혀 없다. 오로지 헌재의 탄핵결정만이 그를 법관의 직에서 축출해내고 다시는 그런 위헌·위법행위가 반복되지 못하도록 방비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법관에 관한 한 탄핵심판은 “비상수단”이 아니라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통상”적이고 항시적인 수단일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비리·비행을 저지른 법관에 대해 거침없이 탄핵절차로 나아가며, 일본에서 아예 법관을 대상으로 하는 재판관탄핵재판소까지 두어 탄핵절차를 상례화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사법의 독립을 실현시키기 위해 법관의 신분은 최대한 보장하면서 동시에 그 법관의 위헌·위법행위를 유효하게 제재하기 위한 수단으로 탄핵제도를 마련한 것이다. 요컨대, 법관에 대한 탄핵제도는 비상수단이라기보다는 사법의 독립을 도모하는 통상적인 징벌수단일 따름이다.
법관도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다?
헌재는 법관과 대통령을 거의 같은 급으로 대우한다. 헌재는 두 번에 걸친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 “탄핵심판절차의 헌법수호기능”을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구현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하고자 하였다. 법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국민의 선택을 받은(그래서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 대통령을 그 임기 중에 쫓아내는 제도가 탄핵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헌재는 이런 대통령직에나 어울릴 만한 이야기를 느닷없이 법관에게 갖다 붙인다. 그 임명에 국회가 관여하는 대법원장과 대법관뿐 아니라, 일반 법관조차도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10년이라는 법관 임기제가 “일종 청신한 민주주의의 공기를 불어넣어 보려고 한 것”이라는 제헌의회 당시의 전문위원의 말을 인용하면서, 헌재는 법관을 임기내에 탄핵하여 파면함으로써 “민주적 정당성이 부여되는 주기의 변형”이 발생하게 된다는 단언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물론 이런 무리한 판단은 “비상적 상황”에서 신중하게 소극적으로 탄핵 판단을 하여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70년전 제헌의회가 사용했던 민주주의라는 말이 자유주의와 결착되었던 역사는 제켜두더라도, 법관의 임기제가 민주적 정당성과 결합된다는 주장은 어떻게 논증되는지도 제대로 거론하지 않은 채 말이다. 실제 이런 논리라면 임기 2년이 보장되는 검찰총장이나 경찰청장은 임기보장이 전혀 없는 법무부장관이나 행안부장관에 비하여 월등한 민주적 정당성을 가지게 된다.(그러면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장관의 지휘감독권은 대체 뭐란 말인가?)
백보를 양보하여 임기제가 그 직을 담당할 공무원을 주기적으로 갱신할 수 있게 하여 공직사회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에서 “민주적 정당성”을 말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법관의 연임제를 없애거나 법관 재임용 심사과정을 보다 까다롭게 하여 국민의 법감정을 얼마나 받아들이고 있는지 시험이라도 쳐야 한다. 혹은 미국이나 일본의 사례처럼 임기가 만료된 법관에 대해서는 선거를 통해 재임용 여부를 결정하게 하든지. 하지만 법관이 재임용심사에 탈락하는 것은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우리의 경우 이런 논의조차도 금기시되다시피 하고 있다. 자칫 그리되었다가는 사법의 독립이 현저하게 침해될 것이라는 반론 때문이다.
어찌되었거나 헌재는 이런 궤변적 담론을 통해, 탄핵심판은 되도록 안 하는 것이 국민의 뜻에 부합하는(즉, 민주적 정당성을 유지하는) 것이라 정리한다. 아울러 임성근은 이미 퇴임하였기에 민주적 정당성을 상실하였고 국가는 해당 공직에 새로운 공직자를 취임시킴으로써 다시 그 민주적 정당성을 복원하게 되므로, 굳이 그를 탄핵하여 파면시킬 이유가 없다고 본다.
퇴직자는 말이 없다
굴묘편시(掘墓鞭屍)
중국 춘추시대의 오자서는 철천지원수인 초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그 시신에 300차례나 채찍질하였다. 헌재는 임성근을 탄핵하여 파면하라는 시민사회의 거친 요구들을 이런 일모도원(日暮途遠)의 허사(虛事)에 불과하다고 본다. 이미 퇴직한 공직자를 탄핵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으랴는 식이다.
헌재에 의하면 공직자의 권한을 박탈하는 것이야말로 탄핵의 핵심이다. 그 외에는 생각도 하지 말고 꿈도 꾸어서는 안된다. 위에서 말한 이상한 논리와 담론들은 이를 말하기 위한 징검다리였다. 탄핵제도는 ‘비상적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임기 중에 공직을 박탈함으로써 이 비상적 상황을 ‘정상화’하는 것이 그의 기능이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피청구인인 임성근은 2021. 2. 28.자로 퇴임하였으니 그것으로 공직이 박탈되었고 또 새로운 사람이 후임으로 임명될 것이니 우리의 법질서는 흔들림 없이 제갈길을 갈 것인 만큼, 더 이상 왈가왈부하는 것은 헌재의 도리가 아니라고 한다.
견강부회(牽强附會)
그렇다. 임성근이라는 판사 한 명을 탄핵하고 안 하고 하는 것이 세계 10대 강국인 대한민국의 명운을 좌지우지할 리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사법농단사태의 책임을 져야 할 판사가 임기만료를 기다려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퇴임하여 변호사개업을 하고 전관예우를 누리는 것 정도는 헌재가 눈 감아도 될 일일까?
헌법재판소법 제34조 제2항은 탄핵받아 파면된 사람은 5년 이내에는 공직에 취임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임성근이 탄핵되면 적어도 5년 동안은 공무원은 물론 변호사 개업도 할 수 없다. 시민사회는 이 점 또한 의미 있게 보았다. 잘못한 만큼 이런 불이익은 당연히 그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헌재는 이 또한 비리한 수순으로 피해간다.
헌재에 의하면, 이런 불이익조치는 헌법이 아니라 헌법재판소법이라는 법률에 의해 규정된 것으로 탄핵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부수적인 사항일 뿐이다. 그래놓고 헌재는 우회로를 찾아낸다. 그 불이익조치가 법률사항인 만큼 그것을 헌법상의 다른 가치나 이념 혹은 제도를 통해 변용할 수 있는 여지를 모색하는 것이다.
- 탄핵결정으로 향후 5년간 공직취임을 못하게 하는 것은 “형법상 ‘자격정지’에 준하는 의미”를 가진, 일종의 형벌적 성격을 띠는 것이다.
-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이런 ‘형사적 제재’는 유추해석금지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 현행 헌법재판소법에는 “탄핵결정에 의하여 파면된 사람”이라는 규정은 있지만, “임기만료로 퇴직하여 해당 공직에 있지 않은 사람에게 탄핵사유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는 경우”라는 문구는 없다.
- 그럼에도 후자에까지 공직취임제한조항을 적용하는 것은 “유추해석”이고 “공무담임권의 자의적 배제 또는 부당한 박탈에 해당”되며 “의심스러울 때에는 국민의 기본권을 우선해야 한다는 입헌주의 원칙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다.
한마디로 임성근은 임기만료로 퇴임한 자이며 따라서 헌법재판소법 소정의 공직취임제한규정이 적용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탄핵결정이 내려져도 임성근이 공직취임하거나 변호사개업을 하는 것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게 된다, 그러니 굳이 탄핵심판을 계속할 필요가 뭐 있겠나, 그냥 끝내자라는 것이 법정의견의 요지다.
탄핵은 공직자를 파면하는 것이므로 공무담임권이 문제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굳이 탄핵제도를 헌법에서 규정한 것은 고위공직자나 신분보장을 받는 법관이 위헌·위법한 행위를 한 때에는 탄핵소추와 탄핵심판이라는 특정한 절차를 통해 그를 그 직에서 축출하도록 특례를 정한 것이다.
따라서 탄핵의 논리는 일반적인 기본권제한의 논리와는 다른 맥락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헌재는 이미 두 번의 대통령탄핵사건을 통해 탄핵심사에 필요한 고려사항-탄핵요건-을 정해 두었다:
- 고위공직자 또는 법관 등이어야 하며
- 직무와 관련한 행위여야 하며
- 위헌·위법한 것이어야 하며
- 그 위법성이 중대한 것(중대한 법위반 또는 국민의 신임에 대한 배반)이어야 한다.
실제 엄밀히 따져 보자면 헌재가 아주 교묘하게 논리조작한 부분은 헌법재판소법 제53조제2항의 해석과 관련하여서가 아니라 위의 1.부분에서 논의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임기만료로 퇴직한 공직자도 1.에서 말하는 고위공직자나 법관 등에 해당되는가의 문제로 판단되어야 하는 사항이다. 만일 그렇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면 임성근은 “탄핵결정에 의하여 파면된 사람”이 되며 따라서 5년의 공직취임제한을 받게 된다. 전직 공무원은 고위공직자 등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나오면 임성근은 탄핵될 수 없으며 따라서 “탄핵결정에 의하여 파면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변호사 개업도 맘대로 할 수 있게 된다.
미국 상원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탄핵절차를 밟으면서 그가 임기만료로 퇴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탄핵절차를 계속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직 대통령도 그의 재직중에 범한 위헌·위법한 직무행위에 대하여 탄핵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즉, 1.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헌재는 몸통에 해당하는 문제를 꼬리에다 붙여버림으로써 개의 꼬리가 몸통을 흔들어버리는 본말전도의 결정을 하고 있다.
내 알 바 아니니…
시민사회가 임성근의 탄핵을 요구하면서 최소한의 마지노선으로 제시한 것이 있었다: ‘최소한 임성근의 행위가 재판과 법관의 독립을 침해한, 위헌적·반헌법적인 것이라는 확인이라도 해 달라.’ 하지만 헌재는 이런 애절한 목소리를 정면에서 거부해버린다.
우선 헌재는 탄핵결정에서 사용하는 주문(主文)의 형식을 핑계거리로 삼는다. 여태까지 헌재는 주문을 “이 사건 심판청구를 기각한다.”(노무현 대통령 탄핵사건) 또는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등의 형식으로 만들었지, 누구의 어떤 행위가 위헌이니 위법하니 하는 것은 주문에 표기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탄핵사건의 경우 주문은 딱 세 가지-“각하한다”, “기각한다”, 혹은 “파면한다.”-뿐이며, 그 외의 것은 할 수도 없고 또 해서도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또 설령 그렇게 위헌·위법 여부를 가려내어 결정문에 담아내더라도 현행법상 다른 국가기관을 구속하지도 못하는, 그냥 췌사(贅辭; 쓸데없는 군더더기 말)에 멈출 뿐이라는 것이 두 번째의 핑계거리다. 헌재가 그동안 각하해야 하는 사건이라도 향후 헌법질서를 보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경우에 굳이 위헌 판단을 한 것은 그 판단이 국가기관을 구속하기 때문이었는데, 탄핵사건은 그런 규정 자체가 없어 어렵사리 위헌·위법성을 가려내더라도 그냥 헛수고에 불과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문의 형식은 그동안 헌재가 변형결정 등의 형태로 비교적 자유롭게 정해 왔다. 겨우 두 번밖에 없는 선례에 굳이 스스로를 옭아매며 세 가지의 주문형식 외에는 어떤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판단할 필요는 없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임성근 사건을 비롯한 일련의 사법농단사태에 대한 위헌·위법성을 판별하여 달라는 시민사회의 요구는 굳이 주문의 형식으로 선고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었다. 주문이든 결정의 이유든, 어디서건 임성근에 대한 제1심법원의 판결처럼 그 행위가 위헌·위법함을 제대로 규명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미연에 방비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 점에서 두 번째의 이유 또한 무의미하다. 헌재가 임성근의 행위가 위헌적 혹은 반헌법적인 것이라고 판단하게 되면 그것이 가지는 선언적 의미는 결코 적지 않다. 그동안 법원장이 사건을 헤집고 다니며(신영철 전 서울지법원장이 그러했다), 수석부장판사가 판결문에 빨간펜 첨삭지도하고, 동료의 의견제시라는 형식으로 현관예우가 이루어지는 그 참담한 사법왜곡의 행태들이 헌법의 이름으로 부정되며 법의 이름으로 단죄될 수 있게 된다.
현재 진행 중인 사법농단사태의 재판에도 그에 상응하는 기준을 마련할 수 있게 한다. 영문도 모른 채 자기 사건이 뒤로 밀리거나, 이상한 문구가 판결문에 들어가 무엇이 법인지 알 수 없게 되거나, 대충 대충 재판이 진행되면서 예상치 못한 판결문을 받아 들여야 하거나, 아무리 읽어도 판결문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게 되는, 그 무력한 소송당사자들이 그나마 힘을 얻게 되기도 한다.
이미선 재판관이 보충의견에서 탄핵심판의 목적이 “국민의 대표자인 의회의 탄핵소추와 헌재의 심판을 통해 행정부와 사법부가 법치주의원리 하에서 운영될 수 있도록 견제하고 공직자에 대한 헌법적 책임을 추궁함으로써 헌법의 규범력을 확보하는 데 있다”고 강조한 것은 이 때문이다. 법관이 독점하며 국민 위에 군림하던 사법의 영역을, 국민주권을 선언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이 제대로 작동하는 체제로 이끌어야 할 책무가 헌재에 있는 것이다.
법관의 헌법적 책임
87년 헌법체제가 민주화시대를 열었다고 한다면, 헌재의 기여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말에 어울리는 (자유주의적) 입헌주의가 현실에 실천될 수 있는 규범적 공간을 만들어낸 주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헌재의 기여로 인하여 우리 시민사회가 헌재를 바라보며 그에 기대하는 부분도 적지 않다. 헌재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로 기능하는 동시에 민주공화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이 정상국가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 역할도 기대되고 있는 것이다.
유남석·이석태·김기영 등 3인의 재판관이 반대의견에서 “헌법재판소가 우리 헌법질서 내에서 재판 독립의 의의나 법관의 헌법적 책임 등을 규명하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법관의 재판상 독립침해 문제를 사전에 경고해 이를 미리 예방할 수 있다”라고 한 점은 바로 이런 기대를 드러내었다. 헌법재판을 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헌법적 가치를 바로 세우고 국가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지켜야 할 규범적 준칙을 제시하는 헌재의 역할을 거론한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 헌재의 결정은 사법농단이라고 하는 노골적인 헌법침해에 너무도 무력하다. 임성근이라는 일개 수석부장판사가 재판에 개입하면서 사법권을 거래와 흥정의 대상으로 삼는 일이 “중대한 헌법 위반에 해당함을 확인”하는 것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면죄부만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이 결정의 파장은 임성근 한 사람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 우리 법제상, 법위반을 일삼는 법관을 내칠 수 있는 장치는 헌재의 탄핵결정이 유일하다. 그런데 헌재가 법관탄핵을 이렇듯 ‘비상적’인 것, 예외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그 탄핵심판조차도 저렇게 좁게, 한정적으로 처리하는 상황이 되어 버리면, 가뜩이나 통제장치를 확보하지 못한 채 거의 방치상태에 있는 우리의 사법권이 문자 그대로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나아갈 길을 열어주는 셈이 되어 버린다.
반대의견은 이에 관해 이렇게 지적한다:
“법관의 강력한 신분보장을 이유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탄핵심판에서까지 면죄부를 주게 된다면,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여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추락시킨 행위에 대해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을 그대로 용인하게 된다.”
이 사건 헌재의 결정은 그래서 실망스럽다. “과연?”이라는 기대가 “그러면 그렇지”라는 낙담으로 이어져서 실망스런 것이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어렵사리 확보한 민주사회의 꿈을 정면에서 거스르는 퇴행적인 결정이기 때문에 실망스럽다. 어찌 입법자라도 제 정신이어서 법정의견의 보충의견에서 제시된 것과 같은 입법개선이라도 해내지 않는 한 이제 우리 사회는 법관이 지배하는, 법관을 위한, 법관의 법체계에 여지없이 예속되어 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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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기획한 ‘광장에 나온 판결’ 판례평석입니다. 이 글의 필자는 한상희 건국대 법전원 교수 겸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입니다. 슬로우뉴스 원칙에 맞게 편집하고 발행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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