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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전에 KTX에서 어떤 외국인 남자랑 싸웠다.

전모는 이렇다. 열차를 탔는데, 탄 지 얼마 안 되어 어디선가 자꾸만 큰 소리가 나는 것이다. 참다못해 “누구야! 누가 공공장소에서 자꾸 큰 소리를 내는 거야!” 하면서 쳐다봤는데 내 자리 맞은편 쪽에 앉은 백인 남성이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뭐 거기까진 그러려니. 문제는 남자가 마스크까지 벗고 그러고 있었다는 것이다.

"누구야!" 누구인가, 누가 KTX의 평화를 깨는 것인가. (사진: 퍼블릭 도메인)
“누구야!” 누구인가, 누가 ‘마스크’까지 벗고 KTX의 평온을 깨는 것인가…?

너무나 황당하고 어이가 없던 나머지 남자를 째려봤다.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던 남자는 이내 마스크를 올리는 듯했고, 그 모습을 본 나는 안심했다. 문제는 남자가 이후로도 주기적으로 마스크를 벗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전화 통화까지 하고. 내가 째려보면 쓰고, 또 책 읽느라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면 벗고. 내 마음도 덩달아 부글부글. 결국, 나는 남자에게 다가가 영어로 말을 걸기에 이르렀다.

“죄송한데, 마스크 좀 써주세요.”

남자는 알았다면서 다시 마스크를 썼고, 그걸로 해피엔딩…..이면 좋았겠으나. 당연히 그럴 리 없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또 와드득 와드득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알고 봤더니 남자가 마스크를 벗고 과자를 먹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것도 본격적으로. 깜짝 놀라 나는 다시 남자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기, 마스크 써주세요.”

그러자 남자는 답했다.

“지금 이거 먹고 있는데요.”

“네?? 기차에서 뭐 먹으면 안 되거든요?”

“전 백신 맞았는데요?”

“당신은 백신 맞았어도 남에게 전염시킬 수 있거든요? 그리고 백신을 맞았든 안 맞았든 열차 안에서는 다 같이 마스크를 써야 합니다. 그리고 뭐 먹으면 안 된다고요.”

“캐나다에 있는 내 친구들이 한국에서는 먹어도 된다고 했는데요?”

“네?!!! 캐나다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어떻게 알아요!”

“아니 캐나다에 있는 내 친구들이 그랬다고요!”

“그니까 캐나다에 있는 친구들이 그렇게 말한 게 무슨 상관이냐고요. 여긴 한국이니까 한국 규칙을 따라야죠. 한국에서는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써야 한다고요. 그리고 기차에서 음식 먹으면 안 된다고요.”

“아까 기차역에서 표 살 때 승무원이 먹어도 된다고 했다고요.”

“그 승무원이 잘못 말했겠죠.”

“아니? 그 사람 영어 완벽했는데?”

“그럼 당신이 못 알아들었겠지.”

“아니 거든?”

“아무튼 기차에서 뭐 먹으면 안 된다고. 방송으로도 나온다고.”

“이 기차가 니꺼니?”

아, 정말 짜증 폭발...!
아, 정말 짜증 폭발…!

여기에서 그만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결국, 비상호출 버튼으로 승무원을 불렀고, 키도 크고 건장한 남자 승무원이 나타나 나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 전모를 이야기해주었다. 그런데 승무원에게 남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제가 잘못했을지도 모르죠. 그래서 지금 마스크 썼잖아요. 근데 저 여자가 저한테 엄청 공격적이었다고요. 아무리 제가 마스크를 안 썼다고 해도 저렇게 공격적이면 안 되죠.”

나는 당연히 또 한 번 폭발.

“어머, 저 사람 말하는 거 봐. 아니 저 사람이, 제가 처음에 마스크 써달라 고 하는데도 무시하고 계속 벗는 거예요. 그러더니 계속 썼다 벗었다 하고 그러다가 과자까지 먹는 거예요. 그러면서 캐나다에 있는 자기 친구들이 먹어도 된다고 그랬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캐나다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어떻게 아냐고 그랬더니 이 기차가 니꺼냐는 거예요!”

마치 초딩처럼 고자질하는 나를 승무원은 부드럽게 달랬다.

“아, 네, 알겠습니다. 이제부터는 하차할 때까지 제가 저 뒤에 앉아서 마스크 잘 쓰나 안 쓰나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진정하세요.”

승무원의 영향인지 외국인은 이후로 정차할 때까지 마스크를 내리지 않았다. 여전히 나의 기분은 꿀꿀했지만….남자보다 빨리 기차에서 내리는 것으로 복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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