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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에서의 한국군의 민간인학살 문제가 드러난 지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국가(대한민국)는 학살이 발생했었다는 사실을 지우고 책임을 숨기기 급급한 모습만을 보이고 있습니다. 국정원이 가지고 있는 베트남전에서의 한국군 민간인학살 관련 정보를 공개하라는 대법원의 판결을 이끌어내기까지 4년여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허무합니다. 국정원이 공개한 정보는 고작 ‘열다섯 글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말이 베트남전쟁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일까요? 한베평화재단 석미화 사무처장이 해당 판결을 비평하며 국가가 학살 책임을 인정조차 하지 않는 현실을 비판했습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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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보부가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의 민간인학살 사건을 조사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1969년 11월, 월남전에 참전한 해병 1대대 1중대 소속 소대장 3인은 줄줄이 호출을 받고 남산으로 갔다. 이들을 포함해 같은 부대 장교와 하사관 10여명이 조사를 받았다.

“월남에서의 작전을 기억하십니까?”

수사관이 물었다. 조사받은 때로부터 1년 9개월 전인 1968년 2월 12일, 베트남 퐁니퐁넛마을에서 일어난 민간인 집단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사건에 연루된 세 명의 소대장은 2000년 5월 ‘한겨레21’과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 한국 정부가 이 사건을 조사했음을 증언했다.

그후 미국 기밀문서를 통해 퐁니퐁넛마을 사건의 실체가 공개되면서 한겨레는 중앙정보부 수사와 미국무부 보고서 사이의 연관성을 추론하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더는 확인하지 못한 채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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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니·퐁넛 마을 학살 사건 (1968)

퐁니·퐁넛 학살 사건(Phong Nhi and Phong Nhat massacre)은 1968년 2월 12일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현 퐁니, 퐁넛 마을 주민들이 대한민국 해병대 청룡 부대에 의해 70여 명(69 ~ 79명 추정)이 학살당했다는 의혹이 있는 사건이다. (출처: 위키백과 ‘퐁니·퐁넛 마을 학살 사건’)

퐁니·퐁넛 마을 학살 사건 (1968)의 희생자들. 오른쪽 아래 사진은 시신을 수습하는 미군의 모습.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https://en.wikipedia.org/wiki/Phong_Nh%E1%BB%8B_and_Phong_Nh%E1%BA%A5t_massacre
퐁니·퐁넛 마을 학살 사건 (1968)의 희생자들. 오른쪽 아래 사진은 시신을 수습하는 미군의 모습. 당시 미군은 한국군 철수 이후 민간인 부상자 치료를 위해 마을로 들어갔다.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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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역사의 문을 두드리다 

궁금했다. 한겨레 인터뷰를 단서로 당시 한국 정부가 이 사건에 대해 어떤 조사를 했는지 이제라도 ‘실체’를 확인해보기로 했다. 무언가 자료가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이자 새로운 시작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가졌다.

2017년 8월, 국가정보원을 상대로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공개법’)에 의거해 1969년 11월경 최영언, 이상우, 김기동 세 명의 소대장에 대한 조사 목록과 퐁니사건과 관련하여 작성한 보고서등 문서들의 목록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산하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TF’(이하 ‘민변베트남TF’)와 한베평화재단 이사로 활동하는 임재성 변호사가 청구인이 되었다.

처음부터 국정원이 순순히 정보의 존재를 확인해주거나 공개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비공개처분에 대한 취소 소송이 4년여의 지난한 노정을 예고하고 있으리란 것도, 법원의 판결에 따라 국정원이 마지못해 공개한 정보가 소대장 이름 석 자만을 담은 ‘깡통 공개’가 될 거라는 것도 물론 예상치 못했다.

적어도 정보공개법을 통해 국민의 알권리 보장과 투명한 국정운영이라는 민주적 절차가 작동할 것이라는 기대만은 가졌다. 그러나 그것은 국정원의 ‘징하디 징한’ 버티기 앞에서 무너졌다. 국정원은 정보공개청구 건에 대해 비공개 사유를 바꿔가며 정말 최선을 다해 대응에 나섰다.

국정원

1심 재판부, ‘관련 정보 공개하라’  

국정원이 비공개 사유로 든 첫 번째 이유는 외교관계에 관한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우리(청구인, 원고)는 국가정보원장을 피고로 하여 서울행정법원에 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우리 손을 들어줬다.

  • 공개를 요구하는 정보가 관련자들의 진술 기록이 아닌 목록에 불과하다는 점
  • 이 사건과 관련하여 해당 소대장들이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받은 사실은 이미 공개돼 있어 비밀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 한국과 베트남 정부 사이에 이 사건이 외교 이슈로 부각되어 있지 않고 베트남 정부의 의사 표명 등이 없어 외교적 협상력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기 어려운 점
  • 이미 50년이 경과한 사료이고 이를 요구한 원고 측이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보이는 점
  • 마지막으로 시민단체의 어떠한 행위가 외교문제로 직접 비화된다고 보기 어렵고, 원고의 알권리 및 표현의 자유 등 구체적 이익을 희생시켜서라도 정보를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확보하려는 국가의 중대한 이익이 분명치 않은 점

즉 ‘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한 것이다. 다만, 퐁니퐁넛 사건 조사 보고서 등 문서에 대한 정보공개 요구에 대해서는 실제 작성되었거나 존재한다는 점을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각하하였다.

1심 재판부는 외교상
1심 재판부는 ‘관련 정보’를 공개된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정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국정원, 1심 재판부 무시하고 ‘비공개 재처분’ 

국정원은 즉각 항소했다. 항소심 역시 기각되고 국정원은 상고하지 않았다. 1심 판결이 확정됨에 따라 국정원은 정보를 공개해야했다. 하지만 2018년 12월 21일, 국정원은 비공개 재처분을 통지하며 그 사유로 ‘개인정보 보호와 사생활 침해’를 들었다.

민변 베트남TF는 국정원의 비공개 재처분에 대해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국정원이 법률적으로 부당한 행태를 취하고 있으며, 최초 비공개처분 시점에는 ’외교관계‘만을 이유로 비공개했던 정보를 법원에서 ’외교관계에 대한 국익침해‘가 이유 없다고 판단하자 곧바로 최초 처분에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제3자 개인정보 보호‘를 사유로 들어 비공개처분한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또,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는 재처분이 인정된다면 정보공개청구권 자체가 무력화될 것이고 행정청이 정보공개소송에서 패소를 하여도 그 즉시 또 다른 사유를 들어 계속 비공개처분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므로 위법, 부당하다는 주장이었다.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정보 공개를 거부한 국정원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정보 공개를 거부한 국정원

법원과 ‘국민 알권리’ 완전히 무시한 국정원  

사유를 바꾼 국정원의 비공개 재처분에 대해 또다시 소송이 진행되었다. ‘제3자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비공개 처분을 한 국정원에 대해 1심 재판부는 해당 소대장의 생년월일 등 개인 정보를 제외하고 공개할 것을 주문했다. 법원은 일관되게 국민의 알권리에 손을 들어 주었고, 국정원은 항소, 상고를 통해 관련자들의 정보 공개 동의를 구해 판단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펼치며 시간 끌기에 나섰다.

결국, 2021년 3월 11일 대법원은 국정원의 정보공개청구거부처분을 취소하는 원심을 확정하였고, 이 판결에 따라 국정원은 2021년 4월 5일 청구인 앞으로 관련 정보를 공개하였다. 총 4년여의 시간, 다섯 개의 판결문을 거쳐 얻어낸 소중한 결과였다.

그 소중한 결과를 함께 열어보던 장면을 나는 잊지 못한다. 공문을 빼고 단 한 장에 불과한 공개 정보에 소대장 세 명의 이름 석 자 뿐이었던,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주거지인 부산, 강원, 서울을 포함해 총 열 다섯 자였던  자료를 보며 ‘망연자실’ 모두가 할 말을 잊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은 단 몇 초의 시간 동안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갔을 것이다.

국정원이 공개한 정보. 총 15자 (여기서 OO으로 표시된 부분은 지명). 하지만 1969년 가을 중앙정보부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소대장의 명단은 이미 공개된 바 있다. 1소대장 최영언(해병간부후보 35기), 2소대장 이상우(해병간부후보 36기), 3소대장 김기동(해병간부후보 37기).
국정원이 공개한 정보는 총 15자 (여기서 OO으로 표시된 부분은 지명). 하지만 1969년 가을 중앙정보부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소대장의 명단은 이미 한겨레21에 의해 공개된 바 있다. 1소대장 최영언(해병간부후보 35기), 2소대장 이상우(해병간부후보 36기), 3소대장 김기동(해병간부후보 37기).

지난한 재판 과정을 통해 승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이 내놓은 자료는 사법부와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하는 처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지원 국정원장은 부실공개에 대한 비판 여론에 유감을 표하며, 대법원 판결에 따라 공개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공개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늘 ‘한결 같은’ 국정원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국정원의 이와 같은 대응은 상습적이고 불온하다. 비단 이번 건 외에도 몇 해 전 문제가 되었던 국정원 민간인사찰 피해자들의 정보공개청구 건에 대해서도 문건 대부분을 사생활 또는 영업상 비밀 보호를 이유로 비공개 또는 부분 공개 결정 처리하는 등 폐쇄적으로 대응한다. 또, 청구 대상 정보를 구체적으로 특정하라고 요구하는 등 원천적으로 정보공개청구 제도를 무력화하려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국정원이 왜 사찰했는지 모르는 피해자들이 사찰 문건을 보기 위해 정확한 문서 제목을 알아야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퐁니퐁넛마을 피해자 응우옌티탄은 2020년 4월 한국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한국군에 의해 학살당한 가족과 자신의 피해를 한국정부가 배상하라는 청구이다. 이 사건 재판부는 지난 4월 12일 2차 변론기일에서 피해자 대리인단의 사실조회 신청을 받아들여 국정원과 국방부에 관련 기록 일체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관련 기록 목록은 이미 소송 판결을 통해 당사자에게 제공했으며, 추가 사항은 법에 정해진 절차 등에 따라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회신했다. 또 ‘추가적 사항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절차 등에 따라 처리함이 타당하다고 사료돼 송부해드릴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덧붙였다. 필요하면 정보공개청구를 하라는 것이다.

이번 정보공개청구와 소송 과정을 통해 한국 정부의 입장을 명확히 알게 되었고, 실제로 해당 사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자료가 존재함을 확인하는 등 소기의 성과도 있었다. 또 앞으로는 공개된 목록의 행간을 해석해 또 다시 정보공개청구에 나서야 하는 과제도 남았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국정원은 여전히 조직의 이익을 국익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라도 국정원은 정보공개 내용이 정의를 위한 일일 때 그게 가장 국익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국정원이 정보공개법을 어떻게 이용하든 알고자 하는 이들의 열망을 언제까지 피해갈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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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관련 기사

 

국정원 상대 정보공개청구거부처분 취소소송

  • 서울고등법원 제7행정부 2018누60221 김우진 재판장
  • 서울행정법원 제1부 2017구합83614 김용철 재판장
  • 대법원 제3부 2020두54647 김재형 재판장
  • 서울고등법원 제4-1행정부 2020누35563 김재호 재판장
  • 서울행정법원 제11부 2019구합59356 박형순 재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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