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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 감시의무 금지 원칙’이란 게 있다. 오늘날 국제적으로 확립된 원칙이다. 불법정보의 유통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보매개자에 이용자가 공유하는 모든 정보를 일반적·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불법성을 판단하여 삭제·차단할 적극적 의무를 지워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이러한 의무를 부과하는 외국의 입법례는 찾아볼 수가 없으며, 심지어 아동성착취물 범죄를 매우 강력하게 처벌하는 미국의 형법조차도 정보매개자에 감시의무를 부과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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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매개자’란?

  • 예: 네이버, 카카오, 구글, 카카오톡, 텔레그램,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아프리카 TV 등

사전조치의무를 지는 SNS·커뮤니티·대화방, 인터넷 개인방송, 검색, 웹하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가통신 사업자들은 정보나 콘텐츠를 직접 제작·제공하는 자가 아닌 정보의 공유·유통을 매개하는 자로서 정보매개 서비스 제공자 또는 “정보매개자(intermediary)”라고 부른다. 현재 인터넷상의 각종 포털(네이버, 다음 등), 검색엔진(구글 등), 대화방 서비스(카카오톡, 텔레그램 등), SNS서비스(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인터넷 개인방송(아프리카TV 등) 모두 정보매개자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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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촬영물 등 불법정보의 유통에 대하여 정보가 유통되는 장을 마련했다는 이유만으로 정보매개자에게 광범위하고 과도한 법적 책임을 지운다면 정보매개자는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서비스를 중단하거나 모든 게시글의 내용을 실시간으로 검토하고 불법성을 판단하여 신속히 차단·삭제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기술적으로 불가능하며, 설사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정보매개자가 과도한 사적 검열을 행하여 합법적인 정보의 유통도 차단하거나 정보매개자의 사전 검열을 거친 정보만 공유할 수 있는 일종의 사전허가제로 운영할 수도 있다.

그 결과 인터넷 이용자들의 표현의 자유 침해와 위축효과를 불러올 뿐만 아니라 통신의 자유, 프라이버시, 정보접근권 등 다른 기본권 침해로까지 이어지게 될 것이 자명하다. 나아가 인터넷을 통해 가능해진 사회 혁신과 기술 발전에도 제동이 걸리게 되어, 결국 인터넷의 생명을 말살하고, 인터넷의 본래적 의미를 지워버린다.

'정보매개자'의 사전검열과 감시를 강요하는 법?
‘정보매개자’의 사전검열과 감시를 강요하는 법?

N번방 방지법과 일반적 감시의무 금지 원칙 

2020년 20대 국회 막바지에 ‘N번방 방지법’이라는 명목으로 입법된 전기통신사업법[footnote]제22조의5 제2항[/footnote]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부가통신사업자들에게 불법촬영물등의 유통 방지를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사전조치의무’), 이러한 조치를 하지 않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footnote]제92조의2 제1호의3[/footnote].

그리고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footnote]제30조의6 제1항과 제2항[/footnote]은 의무를 부담하는 사업자의 범위와 기술적·관리적 조치의 내용을 규정하는데, 이에 따르면 사전조치의무를 지는 사업자는 웹하드 사업자와 연매출 10억 원 이상 또는 하루 평균 이용자 수 10만명 이상의 SNS·커뮤니티·대화방, 인터넷 개인방송, 검색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가통신사업자이며, 이들에게 신고접수조치, 검색제한조치, 필터링조치, 경고조치의 네 가지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런데 인터넷검열감시법에 따라 사업자가 취하게 되어 있는 검색제한조치와 필터링조치는 이러한 일반적 감시의무 금지 원칙에 정면으로 반한다. 둘 다 기술적으로 키워드 또는 해시값·DNA값 데이터베이스에 기반한 필터링 조치로서 사업자가 필터링을 적용하여 특정 정보가 불법촬영물에 해당하는지 확정하기 위해서는 이용자가 공유하거나(검색제한조치의 경우) 공유하려는(필터링조치의 경우) 정보를 다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n번방 사건과 같은 극악무도한 성착취 사건을 방지해야 할 사회적 책임은 명확하다. 하지만 그 방법에 관한 고민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
n번방 사건과 같은 극악무도한 성착취 사건을 방지해야 할 사회적 책임은 명확하다. 하지만 그 방법에 관한 고민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

입법 취지대로 이러한 의무를 n번방의 온상이었던 텔레그램에 부과한다면 헌법 제18조가 보호하는 통신비밀에 대한 침해이자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의 대화의 녹음 또는 청취를 금지하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며, 공개된 서비스에만 적용하더라도 정보매개자의 사적 검열을 강화해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침해한다.

“불법촬영물 등의 유포, 확산의 방지”라는 입법 목적은 정당하지만, 일반적 감시의무 부과라는 수단은 사업자에 의한 ‘사적 감시와 검열’을 강제하는 것으로서 기본권에 대한 침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적합한 수단이 아니다. 또한, 사업자가 불법촬영물등의 유통에 가담했다면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등이용촬영죄나 청소년성보호법상 아동성착취물유포죄뿐만 아니라 형법상 음화반포죄,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유포죄로 처벌하면 되며, 유포된 불법촬영물은 신설된 전기통신사업법 제22조의5 제1항 사후조치제도에 따라 삭제·차단할 수 있다.

그럼에도 사업자에게 기술적·관리적 조치의무를 지우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경우에는 불법촬영물을 유포한 자보다 더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은 책임과 형벌 사이의 비례성을 상실한 것이다. 그리고 국내 사업자와 해외 사업자 사이의 역차별 내지 자의적 법집행의 문제, 국내 사업자에 대한 과도한 부담, 실효성 없는 수단 등에 의해 당초의 입법 목적과 같은 공익을 실질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반면, 이에 따른 이용자의 기본권 침해는 매우 중대하므로 법익 균형성도 인정될 수 없다.

헌법소원을 청구하다 

오픈넷은 3월 9일 인터넷 이용자인 청구인들을 대리하여 불법촬영물의 유통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정보매개자에게 일반적 감시의무를 지워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전기통신사업법 제22조의5 제2항에 대해 헌법소원(2021헌마290)을 청구했다.

앞서 본 것처럼 이 조항은 일반적 감시의무 부과를 금지하는 국제인권기준에 반해 네이버, 카카오톡, 구글, 페이스북 등 정보매개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이 이용자의 모든 통신 내용과 공유하는 정보를 사전에 일반적이고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하게 하여 이용자의 통신의 비밀, 표현의 자유, 알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 조항은 죄형법정주의와 포괄위임금지원칙에 위반되며, 정보매개자에게 사전적으로 모든 정보를 모니터링할 의무를 지워 사적 검열을 강화해 인터넷 이용자의 통신의 비밀, 표현의 자유, 알 권리를 침해해 위헌이다. 모쪼록 헌법재판소는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기를 기대한다.

‘n번방 방지법’이 ‘인터넷 검열 감시법’이 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헌재 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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