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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관계의 양보다 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나. 동네는 왜 점점 더 중요한 생활공간이자 경제공간이 되어가나. 왜 직장인들은 리더의 역할을 이전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나. 그리고 왜 ‘소통의 리더십’이 중요해졌나. 재택근무는 왜 코로나19의 변수가 아니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상수인가. 재택근무와 업무 ‘투명성’은 어떤 관계가 있나. 소셜미디어가 가속화하는 ‘필터 버블’이 초래하는 건 무엇인가.

[2021 트렌드 모니터]에 담긴 질문의 일부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질문, 가장 중요한 화두는 뭘까. 윤덕환 박사는 이렇게 답한다.

“‘(타인으로부터의) 자유와 나 자신(정체성)”

자유? 정체성? 트렌드 책의 저자에게 나온 답변치곤 너무 추상적이고, 철학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정독한 사람이라면 그 답변의 의미, 그 ‘맥락'(항상 그 맥락이 중요하다)이 어떤 건지 이해할 수 있으리라. 물론 그 맥락 속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당연히 코로나19다.

트렌드를 쓰고, 그 책을 읽는다는 건 단순히 ‘힙’하고, ‘핫’한 세상의 유행을 나열하고 그것을 기계적으로 학습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세계의 ‘현상’을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을 넘어 현상의 요소로서 정보를 재구성하고, 그 흐름과 맥락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 세계의 운동 원리를 적극적으로 ‘해석’해 내는 일이다. 그래야 과거를 통해 현재를 좀 더 현명하게 살 수 있고, 두려움 없이 열린 마음으로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2021 트렌드 모니터]의 저자 윤덕환 박사에게 코로나19가 바꾼 세계, 그리고  어쩌면 코로나19 이후에도 바뀌지 않을 세계에 관해 이것저것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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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환 인터뷰 

  1. ‘1인 체제’ 개인화된 사회성의 출현 (2018)
  2. 2019, 변화를 위한 세 가지 조건 (2019)
  3. 2020 키워드는 외로움과 따뜻함 (2020)
  4. 코로나19와 필터 버블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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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환 (심리학 박사, '2021 트렌드 모니터' 저자)
윤덕환 (심리학 박사, ‘2021 트렌드 모니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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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이: 윤덕환 (심리학 박사, ‘2021 트렌드 모니터’ 저자)
  • 인터뷰어: 민노씨
  • 일시/장소: 2020년 12월 28일 서교동, 2021년 2월 전화 통화와 이메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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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소개.  

[2021 트렌드 모니터]를 쓴 윤덕환이라고 한다. 심리학을 전공했고, 트렌드 책을 13번째 쓰고 있다.

= 2021 트렌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뭔가. 

타인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것.

=좀 더 풀면.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타인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나는 누구인가. 즉, 정체성에 관한 것.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차차 이야기해보자.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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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터 버블’
갈등과 극단의 시대

 

= 갈등과 극단의 시대다. 책의 마지막 장에 ‘필터 버블’과 확증편향, 과잉 신념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확증편향(자신의 가치관, 취향에 부합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나머지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고 세계적인 현상이다. 특히 소셜미디어, 예를 들면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의 컨텐츠 소개 알고리즘은 이런 현상을 더 가속화하고, 구조화하는 조건이다. 상품 영역에서는 구글의 광고 알고리즘도 이런 경향을 가속하는 조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셜미디어는 '필터 버블' 현상을 구조화하고, 일상화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좀 더 많은 체류시간가 광고 효과, 즉 상업적 효용을 취할 수 있으니까.
소셜미디어는 ‘필터 버블’ 현상을 구조화하고, 일상화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사용자들이 좀 더 긴 시간을 체류하고, 좀 더 큰 광고 효과를 취할 수 있으니까. 간단히 말해서, 그렇게 하면(해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니까.

= 특히 경제적 양극화뿐만 아니라 정치적 대립, 성적 대결 구도가 점점 더 심해진다.

디지털 큐레이션의 시대다. 엘리 프레이저의 [생각 조종자들] (2011)의 원제목은 잘 알려진 것처럼 ‘필터 버블’이다. 이 버블링으로 소비 취향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인 견해나 인식에도 확증편향이 강화된다. 특히 2000년대 후반, 2010년대 초반부터 이런 현상이 생겨난 것 같다.

생각 조종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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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터 버블’이란?

구글 등의 검색 엔진 알고리즘이 검색자가 선호하는 결과(“개인화된 검색 결과”)를 선별(‘필터’)해서 보여줌으로써 결국 검색자가 보고 싶어 하는 검색 결과를 ‘추측’하며, 그 결과 검색자가 보고 싶지 않은 정보를 배제함으로써 그 검색자 개인의 문화적, 이념적 ‘거품’(‘버블’)에 그 검색자를 가둘 수 있게 한다는 것으로 엘리 프레이저가 제안한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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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초반? 

조너선 화이트의 [바른 마음] (2012)이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는데, [바른 마음]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통계에 의하면 2009년부터 10대 자살률이 급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살률 급증은 소셜미디어의 성장과 궤를 함께한다(참고 기사: MBC, 미 10대 자살률 증가 ‘SNS 영향’).

바른 마음
= 소셜미디어의 성장과 자살률의 급증?

소셜미디어를 통해 타인과 자신을, 친구와 자신을 더 비교하게 되고, 자살률이 급증한 것으로 추정한다.

= 소셜미디어가 자살을 촉발한다?

하이트는 10대에게 소셜미디어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한다. 한 연구에 의하면[footnote]미국 자살예방재단 연구팀, 2009년부터 2015년 사이에 청소년 50만 명을 상대로 진행한 연구[/footnote] 장시간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집단은 하루 1시간 정도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집단에 비해 자살을 생각하거나 행동으로 옮길 확률이 70%가량 높았다(참고 기사: MBC, 미 10대 자살률 증가 ‘SNS 영향’).

= 하이트의 주장에 대해선.

일리가 있다.

= 굳이 정도를 말하면. 공감인가 동의인가. 

강하게 찬성한다.

= 코로나19의 영향은 어떻게 보나.

코로나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이 2배 이상 늘어났다. 반대 의견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줄었고, 그 시간도 줄거나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개인의 생각이 맞고 틀리고와 상관 없이 타인과의 관계에 관한 균형감각이 사라지고, 자기 생각을 돌아볼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 즉, ‘에코 챔버’(반향실 효과: 유사한 가치관의 사람들이 서로 모여 교류하면서 그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강화되는 현상) 현상이 생길 수 있는 아주 좋은 환경이다.

= 이런 극단적 편향을 중재할 매개가 필요해 보이는데. 

균형 감각은 직접 눈을 보고 소통하는 오프라인의 관계에서 생기는 거다. 하지만 코로나19 시대에는 직접 만나서 느끼는 인간의 감정을 체험할 기회를 가지기 힘들다. 이건 ‘줌’(화상채팅)으로도 해결이 안 되는 문제다.

=‘확증편향’의 문제가 어떻게 정체성의 위기(?)와 연결되는지?  

정체성은 상호 작용을 통해 형성한다. 그냥 저절로 생겨나는 게 아니다. 요즘 MBTI가 유행이다. 자기 자신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다. 자기 자신을 확인받지 못하면 불안하니까. 코로나19 상황에서 그런 불안은 더 증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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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 신념, 과잉 소통
‘내가 보는 것이 세상의 전부’

 

= 자기 확인?

내 선택이 ‘알고리즘’에 의해 강하게 존중받는다고 착각하게 되는 시대다. 그런 환경 속에서 내가 나 자신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욕구는 강해진다.

= 자기 확인 욕구? 

내가 누구인지 확인하려는 욕구는 ‘과잉 신념’을 초래한다. 좀 더 극단적인 주장을 펼침으로써 자기 자신을 확인하려고 하는 현상이 생긴다. 전투적 페미니즘, 그 짝패로서의 마초이즘, 군대 문화, 극좌나 안티 등 극단적인 팬덤 문화는 물론이고, 정치적 편향마저 강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로버트 J. 실러
로버트 J. 실러

2013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실러(Rober J. Shiller, 1946년생, 왼쪽)는 이런 ‘자신감의 과잉’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의 하나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낙관적 편향은 기본적으로 어떤 식의 정보든 편향적으로 해석하는데, 가령 투자를 결심한 사람들은 하락하는 시장을 보더라도 ‘몇 년 안에 회복할 것’이라고 믿고, 성장하는 시장을 보면서는 ‘쉽게 하락하지 않을 것으로 것’이라도 믿는다는 거다.

= 소셜미디어가 그런 ‘자신감의 과잉’, ‘야성적 충동’을 부추긴다고 보나. 

그렇게 보는 편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소셜미디어의 영향은 더 높아졌지만, ‘내가 보는 것이 세상의 전부’인 그 세계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 내가 보는 것이 세상의 전부인 세계? 

대니얼 카너먼
대니얼 카너먼

노벨상(경제학)을 받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1934년생, 오른쪽)은 “당신에게 보이는 것이 세상의 전부”라는 법칙으로 자신들이 보고싶어하는 세계만을 믿는 경향성을 설명한다. 이 법칙의 핵심은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유용한 증거에만 기초해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는 거다. 객관적 정보를 균형 있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속해 있는 세상’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 그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집단 극단화’ 이론에 따르면 비슷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이 모여서 소통이 쌓이면 기존의 신념은 ‘극단화’한다. 가령, 본래 페미니즘에 호의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그들끼리 모여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더 전투적이 되고, 부동산에 투자하는 게 최고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끼리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부동산 투자 의사가 더 강해진다.

= 한국 사회의 갈등도 더 심화하는 것 같다. 

그렇다. 우리 조사에 따르면,  조사자 중 77%가 한국 사회의 갈등 수준이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예전보다 사회적인 갈등이 커졌다고 응답한 비율도 70%(2019년)에서 78%(2020년)로 늘었다.

= 그 심화하는 갈등의 원인은 뭘까. 

응답자들은 ‘자기 입장(만) 주장’하는 경향(81%)과 ‘상대방 의견을 듣지 않는 경향'(77%)이 갈등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필터 버블의 알고리즘을 고려하면, 이는 단순히 ‘소통 부재’로만 의미를 한정할 수는 없고, ‘과잉 소통’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소통 부재'만 문제가 아니라 '과잉 소통'도 문제일 수 있다. (Rick&Brenda Beerhorst, “you are not listening”, CC BY https://flic.kr/p/axXBSs, Brian Smithson, "The Whisper", CC BY https://flic.kr/p/6G4U6i)
‘소통 부재’만 문제가 아니라 ‘과잉 소통’도 문제일 수 있다. (출처:왼쪽 Rick&Brenda Beerhorst, “you are not listening”, CC BY, 오른쪽 Brian Smithson, “The Whisper”, CC BY)

= 과잉 소통? 

갈등의 장본인들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 페이스북을 보라! 내 편은 충분하고, 내 생각은 충분히 지지받고 있다. 내 의견이 당연히 옳다. 내 의견을 지지하는 내 친구들이 이렇게 많지 않나?’

페이스북을 통해 바라본 세계는 온통 '내 편'이다. 나는 옳다. 왜냐하면 내 편을 들어주는 친구들이 이렇게나 많으니까!
페이스북을 통해 바라본 세계는 온통 ‘내 편’이다. 나는 옳다. 왜냐하면 내 편을 들어주는 친구들이 이렇게나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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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디스토피아
‘스스로 선택해야 할 때’

 

= 다시 필터 버블와 정체성 문제를 이야기해보자. 

필터 버블 이슈는 사람들로 하여금 역설적이게도 ‘차별화’ 욕구를 불러 일으킨다. 그리고 이 경향은 극단화를 더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즉, 이 과정을 통해 문화 예술뿐만 아니라 정치와 사회,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극단적인 팬덤’을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 ‘극단적인 팬덤’? 그러면 정체성의 문제는 어떻게 어떤 영역에서 계기로 촉발된다고 보나. 

필터 버블은 기본적으로 ‘나와 비슷한 성향과 취향’을 추천한다. 하지만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확인해야 하는 존재다.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들과 함께 하면 안전을 느끼지만, 한편으로 그 속에서도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고민한다. 이 정체성에 대한 자각은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 그래서? 

발달심리학자인 에릭 에릭슨(Erik Erikson, 1920-1994)은 ‘정체성의 위기’라는 개념을 창안한 사람이다. 에릭슨은 인간이 정체성을 찾는 과정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지속된다고 봤다. ‘타인과 구분되는 나’를 확인할 수 있어야 비로소 자신의 존재에 대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근거로 하면, 나의 성향은 필터 버블 현상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극단적인 형태’를 띨 가능성이 크다.

에릭 에리슨 (1902 – 1994, 퍼블릭 도메인)
에릭 에리슨 (1902 – 1994, 퍼블릭 도메인)

= 필터 버블이 강해질수록 극단적? 왜? 

왜냐하면, 어차피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 속에서 나를 드러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더 세게, 더 과격하게’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자기 정체성 확인의 욕구는 ‘비대면 상황’에서 더 비현실적이고, 극단적인 형태를 띨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런 극단화는 ‘끼리끼리’를 더욱 강화하고, 이런 조건들 속에서 극단적 팬덤이 탄생한다.

 = 이런 문제를 극복할 해법이나 대안이 있을까. 

이런 환경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아주 제한적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당신이 어떤 이슈에 관해 최소한의 ‘균형 감각’을 가지고 싶다면, ‘내 의견에 반대되는 정보’를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찾아보는 것밖에는 없다.

= 다소 암울해 보이는데…. 

(….)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 선택? 

필터 버블이 가진 사회적 극단화 문제를 직접 다룬 다큐멘터리가 있다. [소셜 딜레마] (2020)는 다음과 같이 끝맺는다.

“우리의 관심은 채굴될 수 있어요. 우리가 값진 인생을 사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화면을 보는 데 쓰고, 광고를 본다면, 기업에 더 이익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 결과를 지금 보고 있죠. (중략) 기술이 작동하는 법은 물리법칙이 아니에요. 딱 정해진 게 없어요. 저 같은 인간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그 기술을 바꿀 수 있어요. (중략) 문제는 우리가 인정을 하든 안 하든 우리 일의 나쁜 결과가 직접적으로 나타난다는 겁니다. 우리가 만들었으니 우리가 바꿀 책임이 있습니다. 관심을 끄는 모델은 우리가 원하는 인간을 대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이런 썩은 사업 모델을 없애는 것에 건강한 사회구조가 달려 있습니다. 우린 인간적으로 상품들을 디자인하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채취’ 가능한 자원으로 취급하지 말 것을 말이죠. 세상을 어떻게 더 좋게 만들까’가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소셜 딜레마] 중에서

소셜 딜레마 (2020, 제프 올로우스키)
소셜 딜레마 (2020, 제프 올로우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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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 거리’와 ‘마음의 거리’
코로나19와 외로움의 함수 관계 

 

=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자. ‘타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타인으로부터의 자유가 내포한 문제는 ‘외로움’이다. 특히 작년(2020년)에는 ‘외로움’의 문제가 화두였다고 생각한다. 작년(2019년)에는 10명 중에서 6명이 외로움을 느꼈다고 답했다. 올해(2020년)는 문항이 좀 다르긴 하지만, 10명 중 2~3명만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한다.

= 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줄었을까. 

크리스마스에 외로운 이유는 남들이 행복해 보이기 때문이다. 외로움은 사회적 소외감에서 온다. 남들하고 나하고 큰 차이가 없으면 외로움을 느낄 이유도 없다.

= 코로나19 때문에? 

그렇다. 코로나 때문에 외로움을 덜 느끼는 것 같다.

= 함께 행복해진 게 아니라, 같이 불행해진 건데.

그렇지. 하지만 흥미로운 통계가 있다. 2020년 상반기 자살 사망자는 6,278명으로 전년보다 7.4% 감소했다고 보건복지부가 발표했다(참조 기사: 한겨레, 상반기 ‘극단 선택’ 사망자, 전년보다 7.4% 줄어…‘코로나 블루’ 여전히 경계, 2020. 9. 22.)

코로나19로 '덜' 외로움을 느낀다. 왜냐하면 모두 다 외로우니까.
코로나19로 ‘덜’ 외로움을 느낀다. 왜냐하면 모두 다 외로우니까.

= 심리학자로서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어떻게 갈린다고 생각하나.

얼마나 소외를 느끼느냐에 따라 갈린다. 결국, 사회적 욕구의 문제로 본다. 내가 저 사람처럼 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할 때 인간은 불행하다고 느낀다.

= 자살률 감소는 코로나19의 영향이라고 생각하나.

코로나 블루가 난리라고 하지만, 오히려 자살률 감소처럼, 타인의 기대로부터 멀어지는 법을 학습하고 있다고 보인다. 영국은 코로나19 영향으로 하루 같이 머무는 시간이 15시간까지 길어져서 이혼율이 급증했다. 하지만 한국은 오히려 가족 관계가 좋아졌다. 대형 TV 판매가 오히려 증가했다.

= 코로나19로 가족 관계가 오히려 좋아졌다? 

한국은 영국처럼 가족 관계가 나빠지지 않았다.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10명 중 8명 꼴로 코로나19 장기화로 일상의 불안이 높아지면서 가족이 정말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고  답했다. 또 10명 중 6명꼴로 가족에 대한 안부를 챙기는 일이 이전보다 많아진 편이라고 답했다. 코로나19로 가족 간의 ‘물리적 거리’는 멀어지고, 개인화 경향도 더 뚜렷해지고 있지만, 오히려 그런 상황이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마음의 거리’는 더 가까워졌다.

가족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중력' 그 무거움... 하지만 코로나19로 '물리적 거리'가 멀어진만큼 오히려 '마음의 거리'는 가까워졌다.
가족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중력’ 그 무거움… 하지만 코로나19로 ‘물리적 거리’가 멀어진만큼 오히려 ‘마음의 거리’는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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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의 재구성
‘관계 리셋’ 버튼이 된 코로나19

 

잭 브렘
잭 브렘

= 코로나19가 초래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뭐라고 생각하나. 

인간관계의 변화다. ‘자발적인 동기’가 중요해졌다. 예를 들면,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 인간관계는 멀어질 수밖에 없는데, 인간관계를 끊으라고 정부에서 ‘푸시’가 들어오면, 잭 브렘(Jack Brehm, 1928-2009, 오른쪽)이 심리적 저항 이론(psychological reactance theory, 1966)에서 지적한 것처럼 그 반발은 심해진다.

= 심리적 저항이론?

잭 브렘이 전제는 다음과 같다. 선택 가능한 대상을 억압하면 자유로운 대상에 관한 가치를 높게 본다는 거다. 예를 들면,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로미오와 줄리엣은 가문의 원수이기 때문에 서로 만날 수 없도록 강요(‘억압’)되는데, 그래서 서로의 가치가 높아지는 거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집회도 하지 말고 혼자 있어라. 그런 외부 압력으로 그런 선택을 하지 못하면, 그 반발이 심해진다.

= 다시 ‘자발적 동기’가 중요하다는 지적으로 돌아가서 설명하면?

우리가 수행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저녁에 모임을 못해서 불편한 사람은 10명 중 3명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더 편하다는 사람이 10명 중 6명이다. 오히려 저녁에 시간이 생겨서 좋다는 사람들이 많은 거다. 종교 생활이 불편하다는 사람들보다 의무적인 종교 생활을 하지 않아서 좋다는 사람이 3배 더 많다.

= 다소 의외의 조사결과다.

술자리나 종교와 같은 사회적인 만남이 의외로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었다는 점을 방증하는 통계다. ‘모여라’ 할 때 안 모일 수 있는 이유나 핑계가 필요했는데, 코로나19 방역 지침 ‘2.5단계’는 그런 핑계도 필요 없다.

= 그래서?

모임이 재구성될 것으로 보인다. 정말 자발적인 동기가 아닌 모임, 의미나 재미가 있는 모임이 아니면, 그 모임은 지속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상은 2021년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 정말 '자발적 동기'가 아니라면 모임은 지속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제 정말 ‘자발적 동기’가 아니라면 모임은 지속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코로나가 잦아든 이후에는 어떨까.

당연히 모임을 하거나 연결을 추구하려는 욕구가 증대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 기회(‘코로나19’)에 인관관계를 ‘리셋’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도 늘었다.

= 인관관계 ‘리셋’ 그 이후엔?

코로나19 시대에는 모두의 라이프 스타일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외로움 역시 ‘평준화’랄까 착시 현상이 생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잦아들면, 그리고 어느 정도 종식 수순을 밟게 되면 케이(K)자와 같은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 K자 양극화?

비대면 시스템의 발전이 오히려 자기 시간을 관리할 수 있는 학생들을 생겨나게 하는 것처럼. 가령 아주 잘 적응해서 효율성이 좋아지는 학생이 생기는가 하면, 극단적으로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이 생기는 것처럼. 조직에서 보호하지 못하는 자영업자, 프리랜서는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극단적으로 몰릴 가능성이 크다.

= 코로나19가 종식되면 더 큰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한 외로움 감소 현상이 ‘백신’이 들어오고, 점점 더 코로나에 대한 통제권이 생기면, 그러면 조금씩 해외여행도 가고, ‘있는 사람’들은 투자해서 더 돈 벌고…. 그런 양극화 진행가 진행되면 소외된 사람들은 더 외로움을 크게 느낄 가능성이 크다.

= 그러면 자살률이 크게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 자원을 배분할 때, ‘외로움’을 크게 느끼는 사람들에게 우선해서 배분해야 한다.

외로움에 관한 정책 입안을 주도하다가 2016년 극우 성향 남성에게 살해당한 조 콕스 당시 노동당 위원(Helen Joanne Cox, 1974. 6. 22~2016. 6. 16, 향년 41세, 출처, jocox.org.uk) 출처, jocox.org.uk http://www.jocox.org.uk/2015/11/25/pressure-forces-chancellor-u-turn-on-police-cuts/)
외로움에 관한 정책 입안을 주도하다가 2016년 극우 성향 남성에게 살해당한 조 콕스 당시 영국 노동당 위원(Helen Joanne Cox, 1974. 6. 22~2016. 6. 16, 향년 41세, 출처, jocox.org.uk)

= 공적 자원의 방법은.

현금 지원.

= 100만 원 200만 원이 얼마나 위로가 될 수 있다고 보나. 

꽤 위로가 된다. 체험적으로 괜찮더라. 주변에 물어보니까. 물건도 사고, 숨통이 트인다고 하더라.

= 관용적인 태도가 줄고, 각박해지고, 편협해졌다. 어떻게 바꿔야 하나.

만나야 한다.

= 만나는 게 돈인데? 시간이 돈인 사람들은 어떡하나.

그래도 공유하는 공간, 공공에서 만남의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나지 못하고 공격만 하니까 해결이 안 되는 것 같다. 대면 소통에 대한 결핍이 크다. 텍스트 위주로만 소통한다. 그걸로는 부족하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대부분 비언적 소통(눈짓 손짓 등)을 통해 서로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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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전성시대’
OTT와 구독경제 

 

= 넷플릭스, 왓챠 등 OTT가 급성장하는데.

앞으로도 안정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필터’가 가장 잘 구현된 상품 서비스가 OTT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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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서비스? 

OTT는 “Over-the-top (media service)”의 약자다. 여기서 ‘top’은 셋톱박스를 의미한다. 즉, OTT는 ‘셋탑박스'(= 기존의 미디어 소비 방식을 의미)을 넘어서는 새로운 방식을 의미한다. 따라서 OTT는 인터넷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PC를 통해서든, 모바일 단말기를 통해서든 미디어 컨텐츠를 시청할 수 있는 사용자 중심 서비스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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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TT의 성장으로 미래에 영화관이 사라질까? 가령 CGV는 3년 내에 상영관 35~40곳(직영점의 약 30%)을 폐점할 것이라고 밝혔는데(2020. 10. 20.).

극장은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극장에 가지 못해 괴로울 정도다. 극장이 주는 몰입감과 집단적 체험은 대체가 불가능하다. 특히 함께 영화를 보는 ‘관객’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없다. 그 체험은 극장에서만 가능하다.

=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 서비스와 같은 ‘구독경제’ 모델이 승승장구한다. 쿠팡프레시나 마켓컬리 같은 새벽 배송은 어떨까. 

구독 경제의 차원에서 디지털 큐레이션은 잘 될 것 같은데, 배송이나 시간을 아껴주는 서비스는 옥석이 갈릴 것 같다. 쿠팡프레시나 마켓컬리의 새벽 배송은 ‘시간을 아껴주는 서비스’다. 그런 시간을 아끼면 동네 한 바퀴를 더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2km 이내로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슬세권’(슬리퍼 차림의 편한 차림으로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주거권역)이나 당근 마켓 열풍도 이런 경향을 반영하는 것 같다.

= 당근마켓 열풍에 관해 좀 더 설명하면.

2020년 기준으로 이용자 수는 1,200만 명(월 평균 기준)을 넘었고, 이용자 한 명당 월 평균 24회 이상 방문하는 서비스로 성장했다.

당근이 이전 중고거래와 차별화되는 건 ‘위치 정보’ 인증하고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 동네 사람들’에게 최소한으로 신뢰를 담보할 수 있다. 돈을 떼어먹고 도망갈 수 없는 ‘우리 동네 사람’이라는 최소한의 신뢰. 동네에서 관여도를 높여가는 것도 이런 ‘신뢰 메커니즘’과 관련이 있다. 가령, 재난 지원금도 동네에서 써야 하니까.

당근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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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조건
‘재택근무’가 소통을 투명하게 하리라 

 

= 책에서 리더의 역할을 강조했는데(제17절 “리더십 혁명”).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전례 없는 위기의 시대에 ‘리더’의 역할은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향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리더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 리더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은 뭘까. 

응답자들(중복응답)이 뽑은 가장 중요한 리더의 자질은 ‘소통 능력'(51%)이었다. 그리고 책임감(42%)리스크 관리 능력(41%)이 그 뒤를 이었다.  실무 능력(39%)신뢰도(38%)는 후순위였다.

= ‘재택근무’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었다”고 책에 썼는데. 

일단 재택근무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84%),  장점과 필요성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따라서 재택근무가 가능한 업종에서는 선제적으로 재택근무의 효율과 장단점을 분석해 미리 준비하는 게 좋을 것으로 보인다.

= 재택근무와 회사(직장) 근무의 가장 큰 차이는 뭘까.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함께 일하면, ‘이런 방향으로 해’, ‘눈치껏 해’ 등등으로 (오히려) 추상적인 업무지시가 가능하다. 하지만 재택근무는 공간이 분리돼서 텍스트로 지시를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문자나 이메일로 업무의 내용과 범위, 기간을 명확하게 특정해야 한다.

회사라는 구체적인 공간은 생각보다 비효율적인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공간이다. 재택근무에서는 이런 회사에서 관행적으로 생겨나는 비효율성이 줄어든다.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니 커뮤니케이션의 투명성이 제고된다.

이런 재택근무의 특성으로 인해 앞서 언급한 리더의 ‘소통 능력’이 더 중요하게 부각될 수밖에 없다.

수평적인 '소통의 리더십'이 더 중요해졌다.
수평적인 ‘소통의 리더십’이 더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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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 끝으로 독자에게.

2015년 12월 23일,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메르스 종식 선언이 있었다. 메르스가 끝나는지 모르고 그냥 그렇게 끝났다. 사람들은 다시 일상생활에 적응해갔고, 메르스의 반동으로 ‘욜로’라는 큰 흐름이 태어났다.

코로나19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가 ‘새로운 일상’이 되면서 백신 등으로 그 위험성을 조금씩 낮출 텐데, 코로나19 그다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포스트 코로나의 시대 정신을 능동적으로 읽어내는 사람에 기회를 잡는 건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선 타인을 좀 더 이해해야 하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이해해야 한다. (끝) 

2021 트렌드 모니터 대중을 읽고 기획하는 힘 ㅣ 최인수, 윤덕환, 채선애, 송으뜸, 마크로밀 엠브레인 저 | 시크릿하우스 | 2020년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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