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제일교회발 코로나 2차 대유행의 조짐이 심상치 않다.
일부에선 이 사달이 난 게 정부가 교회 소모임을 풀어줘서 그렇다고 한다. 교회 소모임을 왜 풀어줬느냐는 마음이 생기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식당, 카페, 술집에서 지인을 만나는 것을 포함해 모든 종류의 소모임을 다 막을 것도 아닌데, 유독 ‘교회’ 소모임만을 막았다면 명확성과 비례성 측면에서 문제의 소지가 컸을 것이다. 사람으로 미어터지는 식당과 술집, 카페들보다 목사 심방이 더 감염병 관리에 있어 위험하단 말인가.
악당은 어디에나 있다
사랑제일교회 측은 코로나 검사를 받지 말라며, “회초리 맞기 전에 모든 걸 참고 인내”하라고 신도들에게 말했다. 그것도 다 정부 책임인가? 이런 주장이야말로 무책임하다. 개신교회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떠나 어디에나 ‘악당’은 있다. 악당이 악당짓하는 걸 못 막았다고 정부 탓을 시작하면 결국 진짜로 감시사회 만들고 시민의 행동을 사전통제하자는 얘기밖에 안 된다.
특히 개신교회에 ‘악당’이 많으니까 교회 전부 규제하자는 식의 논리는 얼마나 위험한가. 그 논리가 교회에만 적용될 수 있는 논리라고 생각하는가. 그 논리가 다른 모든 집단에 적용되기 시작하면 어떻게 할 건가. 사랑제일교회가 악당짓을 ‘실제로’ 하기 전에 ‘미리’ 규제하겠다는 발상은 이런 이유에서 위험할 뿐더러 가능하지도 않다.
언론은 비판이 본령이고 그 비판은 항상 새겨 들을 가치가 있지만, 그 비판을 진짜로 가감없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위험할 수 있다. 늘 위험하다고 아우성이고, 몰락의 기우제를 지내며 책임 없는 자들의 책임 없는 말들을 읊는다. 그러다 훗날 정말로 일이 어그러지면 자신이 카산드라라도 되는 양 내 예언을 듣지 않아 일이 망했다며 선지자 놀이를 한다. 정말이지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다.
2단계냐 3단계냐
사태가 커지니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로 가자는 목소리도 높다. 2단계 사회적 거리두기만 한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먼저 내 개인적인 입장을 말하면, 나는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에 찬성한다. 대규모 유행으로 번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가능성이 반반이라면, 아니, 대규모 유행으로 번질 가능성이 한 20%만이라도 된다면 그 위험부담을 최대한 제거해야 한다.
게다가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만 돼도, 일부 자영업자, 일부 계층의 희생은 불가피하다. 망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단계다. 우리는 지금 그들 일부에게 희생을 묵인하고 ‘일상’이란 걸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난 이게 그리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높여 공동체의 희생을 최대한 단기간, 최대한 다수가 분담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건 방구석에서 하는 이론적인 얘기일 뿐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단계가 높아질수록 경제에 미치는 충격파는 어마어마하다. 그 충격은 어떤 사람들을 정말로 파멸시킨다. 그 파멸의 강도가 어느 수준일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나는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에 찬성하고 실제로 실행된다 해도 지지하겠지만, 사실 그건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가 실행된다 해도 내가 내 삶을 버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미 한계에 몰려 아무리 짧은 단기간 사회적 거리두기도 버틸 수 없다 여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 앞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를 그리 ‘쉽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3단계’의 결단을 쉽게 내리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지지한다.
방역과 경제가 충돌하면 당연히 방역을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경제도 목숨이 걸린 문제다. 이건 딱 두 개의 변수를 놓고 무게를 저울질하는 천칭이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변수가 동시에 상호작용하는 고차방정식이다. 3단계 격상을 주장하는거야 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3단계로 가지 않았다고 해서 오답이라고 ‘쉽게’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혐오인가
전광훈과 사랑제일교회에 코로나 확산의 책임을 돌리는 게 ‘전광훈과 사랑제일교회 혐오’라는 목소리도 있다.
혐오라는 단어를 너무 뭉뚱그려 쓰지 말았으면 좋겠다. 신천지의 사이비적인 전도 행태와 그로 인한 감염병 확산을 비판하면 종교 혐오고, 감염병 대유행 와중에 클러버들의 무분별한 클럽 이용을 비판하면 그건 게이 혐오고, 방역을 파탄내려는 사랑제일교회의 행태를 비판하면 그건 교회 혐오인가. 오히려 혐오라는 단어로 모든 비판을 무효화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나.
아니, 그런 식으로 따지면 사실 오히려 사랑제일교회 등 일부 교회의 행태를 이유로 모든 교회를 뭉뚱그려 하나로 묶어서는 죄다 사회와 ‘거리두기’해버려야 했다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교회 혐오’ 아닌가? 전광훈과 사랑제일교회 신도 혐오에 거침없이 나선다며 남들을 비판하면서, 교회를 선제적으로 전부 ‘사회적으로 격리’했어야 주장하는 건 모순이다. 그리고 그런 태도야말로 오히려 ‘혐오’의 사회학적 정의에 부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