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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동지가’

‘혁명동지가’라는 민중가요가 있다. 최근 유명세를 탔다. 1991년 만든 이 노래를 2012년 통합진보당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제창하였다는 이유로 2020년 대법원에서 노래의 제창자들을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의 북한의 활동을 찬양 · 선전 · 동조한 것으로 유죄를 확정한 판결을 선고하였기 때문이다.

노래는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 들을 수 있다. 유튜브에서 아무리 많이 들어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할 수 없으니 안심들 하시라. 다만, 절대 뭔가 다가오는 것이 있어 듣기에 좋다고 하더라도 저장하거나 유튜브 링크 주소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지는 말기 바란다.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 이적표현물의 취득, 소지, 반포로 처벌될 수 있다. 노래가 마음에 든다고 ‘좋아요’를 함부로 누르지 말기 바란다.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 이적동조로 처벌될 수 있다.

국가보안법은 대충 옭아매기 쉬운 법이니 늘 조심해야 한다. 굳이 저장하고자 한다면 동영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싫어요’를 꼭 누르고 저장하거나 이 노래를 비난하는 글과 함께 주변에 링크 주소를 전해야 나중에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될 위험이 없다.

국가보안법에 걸리지 않으려면 그 입 다물라.
국가보안법에 걸리지 않으려면 그 입 다물라. 1980년 대한민국? 아니, 2020년 대한민국.

2020년 대한민국, 국가보안법은 장수만세!  

나는 이 글을 쓰며 유튜브에서 ‘혁명동지가’를 들어보았다. 듣고 나니 저절로 좋아요를 꾹 누르게 되었다. 학생운동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줘 참 마음에 들었다. 좋아요 누른 것만으로는 곰곰이 따져 아무리 해석해 보아도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 이.적.동.조가 될 리는 만무하다는 나름 확신도 들었기 때문이다.

소위 국가보안법 전문 변호사로 자처하는 입장에서 솔직히 많이 부끄럽다. ‘혁명동지가’의 이적성을 인정한 유죄 확정 판결에 항의하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저항의 의미에서 ‘좋아요’를 당당하게 눌렀다라고 말할 수 없는 자신이 초라해서 말이다.

이 노래 가사가 마음에 든다. 매우 위험한 생각.

동만주를 내달리며 시린 장백을 넘어
진격하는 전사들의 붉은 발자욱 잊지못해

돌아보면 부끄러운 내 생을 그들에 비기랴마는
뜨거웁게 부둥킨 동지 혁명의 별은 찬란해

몰아치는 미제에 맞서 분노의 심장을 달궈
변치말자 다진 맹세 너는 조국 나는 청년

대체 이 노래 가사에 뭐가 문제가 되느냐고 항변하고 싶다. 일제에 맞서 만주에서 싸운 독립군 전사들과 광주항쟁 시민군의 최후가 떠올라 비장함과 숙연함이 생겨 좋기만 한데. 일제에 이어 점령군으로 들어와 이 땅에서 주인처럼 군림하는 어느 나라의 횡포에 비굴하지 않게 당당하게 정면으로 맞설 용기를 북돋는 노래가 무슨 죄가 있냐고.

법원의 판단 vs. 작사가의 항변 

그러나 ‘혁명동지가’의 제창행위를 국가보안법위반 유죄로 확정한 판결의 이유는 무시무시하다.

노래의 가사 중 첫머리 부분인 “동만주를 내달리며 시린 장백을 넘어 진격하던 전사들의 붉은 발자국 잊지 못해”는 북한 지도자의 항일무장투쟁을 선전하고 미화하는 내용이고,가사 중 후렴 부분인 “몰아치는 미제에 맞서 분노의 심장을 달궈 변치말자 다진 맹세 너는 조국 나는 청년”은 대한민국을 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보고 반미혁명투쟁을 선동하는 내용이므로, 혁명동지가는 그 내용이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것으로서, 이적성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또한, ‘혁명동지가’는 그 표현이 과격하고 선동적이어서 통상적으로는 이를 따라 부르는 데 상당한 거부감을 느낄 만한 것이므로, 이처럼 이적성이 인정되는 이적성이 인정되는 ‘혁명동지가’를 제창하거나 이에 호응한 행위는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반국가단체 내지 그 구성원의 활동을 찬양 또는 이에 동조한 것으로서 국가의 존립 ·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혁명동지가
북한의 연락사무소 파괴만큼 반역사적이고 시대착오적인 판결

노래의 작사, 작곡가는 “동만주를 내달리며 시린 장백을 넘어 진격하는 전사들”이란, 일제 치하 무장 독립군들을 의미하며, “붉은 발자국 잊지 못해”란, 일제 치하의 독립군들의 피와 땀을 기억해야 한다는 내용이고, “혁명의 별”이란 민중가요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이며, 북한 지도자를 의미한다는 국정원 주장은 논리적 비약이 심한 상상에 불과하다고 항변하였다.

또한, “몰아치는 미제에 맞서”란 미국의 패권,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치 양식에 대하여 비판하는 내용으로서 당시 미군 범죄가 회자되었던 점, 미국의 걸프전이나 패권주의 등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고자 가사로 쓴 것이며 북한의 주장을 무조건 따라 담은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창작의 자유, 예술의 자유 내에서 충분히 가사 내용으로 담을 수 있다고 항변하였다.

작사, 작곡가의 항변을 무시하고 ‘혁명동지가’의 이적성을 인정한 유죄 확정 판결이 섬뜩하다. 현대판 궁예의 관심법이 환생하였다고나 할까. 작사, 작곡가가 내면에 품은 생각을 어떻게 알 수가 있단 말인지.

금기, 허위… 그리고 자기검열  

한국사회에서 북한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추어지거나 미국에 반대하는 그 어떠한 내용도 맹목적인 금기의 대상임을 여실히 보여준 판결이다. 한국사회의 금기를 깨기 위한 어떠한 사소한 시도도 용납하지 않는 무자비한 판결이다.

몇 구절의 노래가사가 대한민국의 안보를 붕괴시킬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고 확신하는 허위로 가득찬 도그마가 지배하는 한국사회 현실이다. 중세 암흑시대의 마녀사냥, 마녀재판이 시퍼렇게 살아 날뛰는 집단광기와 야만의 세상이다. ‘혁명동지가’는 국가보안법에 의해 그 속내까지 남김없이 발가벗겨져 세상 앞에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되어 화형식장의 죽음으로 내몰린 꼴이다. 문명사회가 보장하는 정치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예술의 자유를 송두리째 짓밟은 현대판 분서갱유에 다름 아니다.

역사의 법정에서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야만적 판결을 비평하는 나는 이 순간조차도 국가보안법에 걸릴 수도 있겠다는 공포에 시달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이렇게 조심하며 글을 쓰는 현실이 바로 국가보안법이 지배하는 체제에 갇힌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국가보안법이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추고, 거기에 갇혀 살아야 한다고? 이게 지금 2020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일 맞아?
국가보안법이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추고, 스스로를 검열하며, 결국 자신을 그 마음의 감옥에 보낸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중인 2004년, “국가보안법을 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2020년 대한민국, 아직 국가보안법은 멀쩡하게 살아있다.

국가보안법의 족쇄에 묶여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는 우리들은 처지는 자유를 잃어버린 노예와 같은 처지에 있다. 국가보안법을 휘두르는 극우 망나니들의 종북몰이 표적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며 안전하게 살아남기 위해 길들여지고 세뇌되어 복종을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금기를 깨고 자유를 위해 싸우지 않고서야 자유를 되찾을 길이 없다.

‘혁명동지가’의 이적성을 인정한 국가보안법 유죄판결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이 사문화되었다고 해서야 되겠는가? 우리 사회의 근본문제인 국가보안법 문제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당장이라도 국가보안법이 폐지할 수 있을 것 마냥 문제를 쉽게 다뤄서야 되겠는가?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어떠한 결기도, 희생도, 실천적 노력도 없이 그 옛날에 국가보안법이 하마터면 폐지될 수도 있었다는 말도 안 되는 추억을 되새겨서야 되겠는가?

국가보안법을 '역사의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고 말했며 폐지를 시도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2004년 모습)
국가보안법을 ‘역사의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고 말했며 폐지를 시도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2004년 모습)

‘혁명동지가’의 이적 판결에 저항하여 더욱 ‘혁명동지가’에 애착을 갖고 그 이적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실천적 노력이 필요한 때다. 하지만 그래도 이 글을 읽고서 혹시 누가 유튜브에서 ‘혁명동지가’를 듣게 되더라도 일신의 안위와 안전을 위해서는 하여간 ‘좋아요’ 함부로 누르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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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판결비평의 필자는 민변 장경욱 변호사입니다. 대상 판결의 개요는 아래와 같습니다.

혁명동지가 사건 (대법원 확정) 

  • 통합진보당 행사에서 혁명동지가 제창으로 인한 반국가단체 등 활동 찬양 · 선전 · 동조 부분을 유죄로 확정한 판결
  • 수원지법 2015고합293, 재판장 판사 김정민, 판사 추진석, 판사 박상권
  • 서울고법 2017노3695, 재판장 판사 박형준, 판사 임영우, 판사 신용호
  • 대법 2020도2596, 재판장 대법관 김상환, 대법관 박상옥, 주심 대법관 안철상, 대법관 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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