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인의 검은 옷 입은 자들이 그 깊은 어둠에서 스스로 나오려 하지 않는다.
장면 1. 텅 빈 기자회견
박상기 법무부장관은 검찰 과거사위원회 활동 종료를 설명하는 과천청사 기자회견장 자리에서 질문을 받지 않았다. 기자들은 이에 항의하기 위해 기자회견 자체를 거부했다. 기자가 없는 텅 빈 기자회견장에서 박상기 장관은 과거사위의 텅 빈 성과를 이야기했다(참조: 장자연 리스트 사건: 두 가지 요약 버전). 지난 12일에 있었던 일이다.
이 텅 빈 기자회견은 마치 불길한 전조와도 같았다.
장면 2. 사법농단 법관 정보 비공개 결정
어제 13일에는 법원의 결정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검찰은 사법농단 수사를 통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전현직 14명을 기소했고, 지난 3월 5일 사법농단 관련 법관 66명의 비위 사실을 대법원에 통보했다. 이후에 대법원이 취한 조치는 아래와 같다.
- 비위 통보 66명 법관 중 10명만 징계위원회에 회부(=징계 청구)
이게 끝이다. 그것도 검찰로부터 비위 사실 통보받은 지 65일이 지난 5월 9일에야 이런 조치를 취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지 않은 법관들 중 상당수는 사법농단과 무관하거나 의혹에서 자유롭기 때문이 아니라 ‘징계시효’가 도과했기 때문에 빠져나갔다. 이것이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농단으로 인한 “국민의 충격과 분노 그리고 실망감”에 공감한다면서 약속한 “근본적 제도개선책 마련”의 일환이라면, 더는 김명수에게 기대할 게 없다.
이에 참여연대는 사법농단 관여 법관의 징계 관련 검찰 수사 자료에 관해 정보공개청구했다. 1심은 해당 정보를 공개하라고 결정했다. 마땅히 국민이 알아야 할 정보로 판단했다. 하지만 2심은 1심 판결을 뒤집고 정보공개청구를 불허했다. 참여연대 논평 속 삽화의 문구(“한통속, 대충 덮고 갑시다”)는 현재 상황을 함축적으로 잘 드러낸다.
한통속? 아니 당사자! 본인! 나야 나!
1심을 뒤집은 2심 판사는 서울고등법원 행정3부 문용선 부장판사(오른쪽 사진)다. 본인이 사법농단에 연루된 66인 법관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 정말 말 문이 막힌다.
문용선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리 만무하다. 혹 스스로 재판관의 양심에 비추어 제대로 된 판단을 했다하더라도 그 결정을 공정한 것으로 봐달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봐줄 수 있을까. 언감생심이다. 스스로 해당 심판을 ‘회피’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footnote]재판에는 ‘제척’, ‘기피’, ‘회피’ 제도가 있다. 법관 및 법원 사무관 등이 특정 사건에 대하여 법률에서 정한 특수한 관계가 있을 때 법률상 그 사건에서 배제하는 것이 제척이고, 법률상 정해진 제척사유만으로는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에 그 법관의 직무 집행을 상대편 소송 당사자가 거부하는 것을 기피라 하며, 재판관이 재판의 공정성을 위해 스스로 그 사건을 다루지 않는 걸 회피라 한다.[/footnote]
심판자
법원이 검찰로부터 통보받은 정보(정보공개청구 대상 정보)는 다음과 같다.
- 사법농단에 관련된 현직 법관 66명의 명단
- 그 법관 66명의 비위 내용
- 대법원장이 징계 청구한 법관 10명의 명단
- 그 10명의 비위 내용
-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 현황
유일한 질문은 그거다.
이들 정보는 양승태 대법원 체제가 자행한 사법농단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는 당신, 그러니까 우리, 국민이 알아야 할 정보인가 아닌가.
현 법원의 내부 규칙상 법원에서 징계가 불가능하거나 어렵다는 것은 그야말로 부차적이다. 궁극의 심판정은 법원에 있지 않고, 민의에 있다. 가장 크게 상처받고 분노한 국민이 그 사법농단을 자행한 법관을 심판하기 위해선 그 법관의 면면과 그 법관이 자행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 어둠을 거둬야 한다. 그래야 그 타락한 법관들을 법정에서 쫓아낼 수 있다. 그래야 여론을 환기하고, 토론과 숙의를 거쳐 타락한 법관을 법정에서 축출하는 특별법을 만들어 사법 개혁을 완수할 수 있다.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방해하는 자, 그가 바로 ‘적폐’다.
여전히 66명의 검은 옷 입은 자들이 어둠 속에 숨어 있다. 대법원은 그 어둠을 옹호한다. 하지만 그 어둠은 반드시 깨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