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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교보문고에 방문할 일이 있었습니다. 연초에 퇴근시간까지 겹쳐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더군요. 물건을 사고 포장대로 이동해서 포장을 맡긴 뒤 포장비를 계산하러 카운터 앞의 줄에 섰습니다. 계산하려는 사람은 많은데 직원은 한 명밖에 없어서 줄이 무척 길었어요.

속으로는 ‘카운터에 사람 한 명 더 두지’라고 생각했죠. 사람이 조금씩 빠지고 이윽고 제가 두 번째 차례가 되었습니다. 제 앞의 할아버지가 직원에게 “아니 줄이 이렇게 긴데 카운터에 사람 한 명 더 두지! 참!” 하면서 투덜거리시더라고요. 고압적이라거나 시끄럽게 외치신 건 아니고 그냥 불만을 투덜거리는 정도로요.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속으로 ‘그래, 할아버지 말이 맞지, 시원하네.’라고 생각했습니다.

앵그리 화

그런데 직원의 태도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큰 목소리로 “25,000원입니다!”라고 답하더라고요. 당황한 할아버지가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하자, “포인트는 없으세요 고객님?”이라고 강하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산 뒤 자리를 뜨셨어요.

조금 전과는 상반되지만 저는 직원의 태도에서도 마찬가지의 시원함을 느꼈습니다. ‘고객은 왕’이라는 논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서비스 종사자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사람을 응대한다는 건 참 피곤한 감정노동이잖아요. 직원분은 아주 능숙하게 일종의 갑질을 처리하셨죠. 내가 행복해야 고객도 행복하다랄까, 사실 요즘 시대의 트렌드에도 무척 잘 들어맞는 대응이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불편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연장자인 할아버지가, 고객의 입장에서, 불편 사항을 얘기한 것일 수도 있을 텐데 그걸 너무 매몰차게 대한 건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으니까요. 그렇다고 자기 잘못도 아닌데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일 필요는 없으니… 거기에 할아버지에게 현재 상황을 설명하다 보면 뒤에 기다리시는 분들은 더 오래 기다리셔야 되는 불편도 있을 테고요.

선물을 포장하고 교보문고를 빠져나오면서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되는 것일까’라는 시답지 않은 고민에 빠져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무인시스템 강화가 일종의 해법이 될 수도 있을 테고, 사회도 점점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테지만, 기업의 효율이나 고객관리 차원에서 고민을 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상생하고, 존중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을까’ 하는 그런 고민을 했죠. 사소해 보이는 작은 갈등들이지만, 앞으로는 사회 곳곳에서 더 자주 터져 나올 것 같습니다. 권리에 대한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해석이 달라지고 있는 현재. 장유유서라던가 고객은 왕과 같은 과거의 전통도 여전히 함께 공존하고 있으니까요.

가난했지만 이슬람을 통해 서로 깊은 연대감을 공유했던 터키인들.

그래서 두 개의 가치가 충돌했을 때 어떤 걸 가치를 더 중시할 것이냐는 결국 명확한 답이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대에 따라 더 중시되는 가치는 달라지겠지만, 어떤 가치를 더 중시하든 간에 누군가에는 상처와 피해로 돌아갈 수밖에 없겠죠. 그러니 그 문제를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관계로만 상황을 볼 순 없죠. 다시 문제는 사람이 서로 존중하고, 함께 더불어 사는 방법, ‘공동체의 지혜’에 관한 문제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더 열심히 풀어야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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