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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는 제 관심사라서 그동안 추적해왔습니다. 당시의 기억과 이후의 기록적 작업에서 알아낸 상황을 개략적으로 서술해봅니다.[footnote]2010년 작 [안티조선 운동사], 곧 나올 개작판 [미디어 시민의 탄생]에 좀 더 상세한 내용이 있습니다. 제가 나름의 근거로 하는 얘기고, 만약 누군가가 ‘거짓말’을 했다고 단정 짓고 자료 검증을 해보겠다면 거기까지 참조해보시라는 취지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너무 다들 띄엄띄엄 얘기하고, 지식인과 언론인도 일부는 이에 부화뇌동하고 있다고 봅니다.[/footnote]

개인적으로는 언론 및 언론 종사자가 방어적·수세적 입장에서 차분히 설명하는 것을 반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권력·자본권력에 대한 탄압과 대중·독자와의 불화는 차원이 다릅니다. 진보언론 종사자들은 투쟁의 관성으로 모든 논쟁에서 ‘우리가 권력자와도 싸웠는데 너희에게 굴복할쏘냐’란 태도로 일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비단 문재인 지지자와 진보언론 불화에서만이 아니라, 과거 시사in에 대한 젊은 남성들의 집단 구독 거부 사태에 관한 대응까지 포괄해서 하는 말입니다.

그리하면 ‘진보 기득권 엘리트 기레기’라는 상대편의 환상을 강화시키기만 할 뿐 설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실 기자가 활동가나 투사는 아니잖아요. 실제론 싸움을 감내하지 못하고, 소심한 분들이 많습니다. 서로 간에 이해하고 조심스럽게 얘기했으면 합니다. 아래는 이를 향한 저의 조그마한 노력입니다.

'09년 5월 2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을 모시는 당시 문재인 전 비서실장과 이병완 전 비서실장. (출처: 사람사는세상) http://archives.knowhow.or.kr/memorial/all/view/2052604
’09년 5월 2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을 모시는 당시 문재인 전 비서실장과 이병완 전 비서실장. (출처: 사람사는세상)

1. 처음부터 친화적이었습니다 

진보언론과 뉴미디어는 처음부터 민주정부에 친화적이었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기 형성된 뉴미디어로 오마이뉴스 계열과 딴지일보 계열을 말할 수 있습니다. 전자는 인터넷 대안언론 계열, 후자는 대항미디어 계열이었다고 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나눈 함의가 뭐냐면, 요즘으로 치면 웹진 형식은 전자에, 팟캐스트 계열은 후자에 속한다는 겁니다. 전자에 대해 공정성 여부를 따지기가 더 쉽다는 말이기도 하고요. 가령 나꼼수나 권갑장을 한겨레·경향을 분석하듯이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처음부터 누구 편인지 분명하게 하고 시작하니까요.

딴지일보는 DJ정부에 ‘딴지’를 거는 조선일보가 싫어서 애초 ‘디지틀 조선일보’ 패러디로 시작했습니다. 오마이뉴스도 기존 언론에 비해선 훨씬 정파성이 강한 편이었습니다. 시민기자 글을 다 통제할 수 없기도 했고, 메인 편집조차도 상당히 그러했습니다.

2. 한겨레와 오마이뉴스는 정말 억울할 겁니다 

2002년 대선에서 한겨레와 오마이뉴스는 거의 노무현을 위해 전심전력을 기울였습니다. 언론 운동과 미디어 윤리를 고민하는 제 입장에서는 비판할 부분이 많았을 정도였지요. 그런데 굳이 옹호해본다면 변화된 매체환경이 당시 그렇게 몰고 간 면이 있습니다. 그들은 수세에 몰렸고, 더욱 결속해야만 했습니다.

1997년 대선 때만 해도 동아일보가 김대중의 적이 아니었거든요. 소위 ‘조중동’이란 연합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부터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 국면에서 형성되었는데, 이렇게 되자 ‘기존 보수언론’ vs. ‘진보언론+대안언론’의 노골적인 세력 대결 양상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적어도 2002년 대선에선 노무현에게 칼을 꽂기는커녕 노무현-민주당 선거운동의 노골적인 우군이었습니다. 경향신문이 다소 예외였는데, 당시 사원주주제를 통해서 정체성이 바뀌게 된 경향신문은 초창기엔 진보언론이라기보단 신생(이름은 오래됐지만, 지배구조가 바뀐 지 얼마 안 된) 중도언론의 이미지였습니다.

당시의 경향은 지금의 한국일보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한국일보는 비록 사원주주제는 아니지만, 과거 사주를 벗어나 새로운 투자자를 찾으면서 정체성이 다소 바뀌었던 부분이 있는 듯 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전후 맥락을 따져볼 때 친노 성향 네티즌이 경향신문을 미워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겨레와 오마이뉴스는 정말로 억울할 겁니다.

최근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패러디 '짤방'. 2002년까지 거슬러올라가면 적어도 한겨레와 오마이는 정말 억울할 겁니다.
최근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한경오’ 풍자 이미지. 하지만 2002년 대선 국면까지 거슬러올라가면 적어도 한겨레와 오마이뉴스는 정말 억울할 겁니다.

3. 경향신문과 참여정부의 (상대적) 불화 원인 

경향신문을 예로 들면서 ‘잘못된 서사’를 하나 더 지적합니다. 경향신문이 당시 한겨레·오마이와 달랐던 이유는 간부급이 ‘86세대 학생운동권’ 인맥에서 다소 자유로웠기 때문으로 이해됩니다.

최근에는 ‘86세대 학생운동권’을 ‘진보판 학벌 엘리트 기득권’으로 지칭하고 참여정부를 그에 대한 피해자로 보는 서사가 있는데, 만일 한국 사회에 ‘86세대 학생운동권’의 정부가 하나 존재했다면 그게 바로 참여정부였습니다.

물론 노무현 등에 대해 ‘우리 후배인 86세대 학생운동권들에게 배운 사람 아니냐’라는 식으로 얘기한 70년대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없었던 게 아니고, 그들의 발언이 몇몇 일화가 되어 ‘상고 출신 노무현을 무시했던 학벌 엘리트 운동권들’의 서사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애초 86세대 운동권들은 자기네 선배들인 70년대 학번들을 아주 우습게 봅니다.

2009년 5월 29일 고 노무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 노제에 나타난 386세대. (출처 미상)
2009년 5월 29일 고 노무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 노제에 나타난 386세대. (출처 미상)

참여정부를 ‘운동권 비주류’라고 말하려면 김근태나 이부영, 손학규 등 70년대 학번 운동권들이 ‘주류’였다는 얘기인데… 그렇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참여정부가 ‘86세대 학생운동권’의 정부였기 때문에 있었던 폐해도 있어요. 그런데 시민사회 입장에선 좀 편하기는 했습니다. 청와대-정권 사람들과 선후배로 얽혀 있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저는 2002년 대선이 ‘86세대의 때 이른 승리’였다 판단한다고 SNS상에서 몇 번 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 그때는 그들이 사회적으로 실권을 잡을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지 않았어요. 15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매우 다릅니다. 그때와 비슷한 연배들이 대두해도 원숙함이 있고(입각한 사람 중 그때 그 사람들도 몇 보입니다), 그들이 후배를 쓰기도 합니다. 이번에 기대가 더 큰 이유입니다.

여하간 다시 정리하자면, 경향신문이 한겨레·오마이뉴스와 달리 참여정부 시절 정권과 더 불화했던 건 맞습니다만, 그랬던 이유는 경향신문이 ‘운동권 주류’였기는커녕 한겨레·오마이와는 다르게 ‘운동권’ 정서가 별로 없어서 참여정부와 큰 접점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4. 결국 사람들은 ‘우리편 기레기’ 원하는 건 아닌가   

참여정부 시기에 ‘진보언론들조차 노무현을 거세게 비판했다’라고 말하는 것도 매우 복잡한 심경이 들게 합니다. 저는 진보언론의 노선과 담론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담론적으로 편협한 부분이 있고, 방법적·기술적으로 실수를 범할 때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당시 진보언론의 노선과 담론에선 참여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게 너무 자연스러웠습니다. 문제는 참여정부가 딱히 진보담론의 조언을 수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조중동이 그들에게 철저하게 친북좌파·자주 외교정책으로 인한 국제적 고립·포퓰리즘의 딱지를 붙이려고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꼭두각시 인형

조중동은 참여정부의 노선을 지나치게 왼쪽의 것으로 가정하고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진보언론은 일정 부분 자기 노선대로 평했습니다. 그래서 마치 참여정부가 포위당하는 듯한 느낌이 든 것인데, 이런 경우 진보언론이 조중동의 위선적 태도를 꼬집는 것을 넘어서 자신들의 평소 입장을 뒤집어서라도 정권을 보위해야 했는지는 심히 의문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사람들이 비판하는 ‘기레기’의 길일 텐데, 가만히 보면 사람들은 ‘우리 편 기레기’를 원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팟캐스트의 가치를 인정하지만, 모든 기성 언론이 정파적 성향을 분명하게 띠는 팟캐스트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5. 갈림길, 한미 FTA 

참여정부 통치 시기에도 정책 문제에 가장 크게 각을 세운 것은 경향신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겨레와 오마이뉴스는 정권 중반까지 온정적이다가, 한미 FTA에서 결정적으로 비판의 길로 돌아서게 됩니다. 한미 FTA에 반대하는 진보언론의 견해에 비판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 한겨레와 오마이뉴스가 본인의 소신을 꺾었어야 했던 걸까요?

한미 FTA 협정이 타결된 다음날엔 그렇게 물고 뜯던 조중동이 딱 하루 정도 대통령을 칭찬하는 사설을 썼습니다. 그전에는 대통령이 협상하는 척하다가 진보파의 땡깡에 밀리는 척하고 협상 물릴 것처럼 얘기했으니까요.

한미 FTA 타결 직후 동아일보 사설 (2007년 4월 3일 자)
한미 FTA 타결 직후 동아일보 사설 (2007년 4월 3일 자)

한겨레와 오마이뉴스, 그리고 운동세력이 ‘반미정서에 찌든 운동권’이라서 한미 FTA에만 특별히 반대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일정 부분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FTA는 큰 반대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정 부분 사실입니다. 그런데 ‘보통의 진보진영’은 다른 FTA에도 반대했습니다(그들의 이런 견해에 저는 별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또한, NL 이념과 상관없는 경제학자(평론가)들도 미국과의 FTA는 매우 특수하기 때문에 별도로 취급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제 경우는 이런 견해는 상당히 타당하다고 봤습니다. 한미 FTA 문제에 운동세력이 결집한 데에 당연히 ‘반미정서에 찌든 운동권’ 요인이 있겠지만, 그들만으로 일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라면 참여정부 인사들 과거를 늘어놓고 그들이 ‘반미정서에 찌든 운동권’이라서 전시작전권 환수를 추진했다는 조중동의 논리에도 상당한 타당성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6. 노무현 대통령 서거 국면 

가장 큰 부분은 역시 서거 국면일 것입니다. 전 대통령의 서거라는 비극적 결말로 끝난 사건에 대한 감정적 복받침은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진보언론에 대한 반감도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뭘 잘못했는지를 따져 묻는다면 의외로 얘기가 쉽지 않습니다.

되도록 간명하게 가기 위해 쪼개보자면, 1) 피의사실 공표의 문제 2) 박연차 게이트의 해석 문제가 됩니다. 어쨌든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서거 이후 자사 보도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1) 피의사실 공표 문제 

하지만 피의사실 공표의 문제를 따진다면 그 후 한국 언론, 진보 언론의 관행이 개선된 것은 거의 없습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피의사실 공표가 지켜졌다면 여러분들이 환호한 기사 중 상당수는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임의로 설정한 ‘우리 편’에게만 적용하는 ‘피의사실 공표 금지’라면 그것을 원칙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당시 사과했습니다만, 저는 그들이 무엇을 사과했는지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정확히는 대중의 반감에 대해서 사과한 것인데, ‘재발방지 대책’을 명확하게 말할 수 없는 사과란 것이 무엇인지는 말하기가 매우 모호한 것이죠.

지금 한·경·오를 혼내주자는 분들은 그 ‘재발 방지 대책’이란 것을 ‘앞으로 민주정부 정치인은 까지 마라’라는 서약에 그들이 굴복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가능한 일, 혹은 바람직한 일일까요?

인터뷰 기자 마이크 취재 현장 저널리즘

(2) 박연차 게이트 문제 

박연차 게이트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일단은 이것을 최대한 참여정부에 우호적으로 해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연차는 단순한 기업인이 아니라 친노 정치인의 정치적 동지인양 처신했습니다. 그렇기에 그가 여기저기 돈을 흩뿌릴 때 받는 이들은 그가 ‘뇌물’을 준 게 아니라 순수한 동지의 입장에서 ‘후원’을 한 것이라고 강변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기업인과 권력자의 관계라는 것이 그토록 단순할 수 있을까요. 보통의 재벌기업의 정치인·법조인 길들이기도 동문이나 친한 친구를 활용한 무리하지 않은 선물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당장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계속 받다 보면 뭔가 해주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지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출처 미상)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출처 미상)

저는 박연차와 돈 받은 사람들의 관계를 ‘재벌그룹 홍보팀과 법조인 관계’에 100% 치환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고 보지만, 그렇다고 박연차의 돈은 순수한 정치적 자금지원이었느냐를 물으면 머뭇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필부로선 더 이상 추적할 방법이 없지요. 어쨌든 부인이 돈을 받은 것은 확인되었고, 그게 사적인 목적으로 쓰였다는 것도 확인되었고, 검찰은 거기서 대통령도 받았는지 대가성은 무엇이었는지를 입증하려 들었습니다.

저는 그 검찰 수사가 무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때 언론 기관에서 했야 했던 일이 뭐였는지 묻는다면… 어느 방향으로든 단정적으로 말하기가 조심스러워집니다. 당시 변호인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고뇌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털어놨습니다.

한겨레, [단독] "노 전 대통령, 돈문제 대신 인정하려 했다" ('09. 6. 2.)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58136.html
한겨레, [단독] “노 전 대통령, 돈문제 대신 인정하려 했다” (’09. 6. 2.)

“법적인  책임 부분에 대해서는 (노) 대통령이나 우리는 자신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수사 초기와 달리 돈의 쓰임새 등을 점차 알게 되면서 매우 괴로워하셨다.”

노 전 대통령이 도덕적 책임을 통렬하게 느끼면서 법적 책임을 놓고 다퉈야 할 상황을 참으로 구차하게 여겼고, ‘차라리 내가 다 받았다고 인정하는 게 낫지 않냐’는 생각을 여러 번 말했다.”  (’09년 당시 문재인 변호사)

‘법리적 문제는 모르겠지만, 도덕적 잘못은 맞다’라… 이게 여러분들이 크게 분개한 몇몇 진보언론에 실린 칼럼들의 포지션이기도 했겠지요. 좀더 신중하고 자중하는 게 좋았을 거란 생각은 듭니다만, 그렇게 특수한 상황이 평소의 상황에 매번 포개질 수 있는 걸까요? 진보언론이 처음부터 노무현과 참여정부를 폄하하고 홀대해서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일까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읊어대는 사례들이 구성하는 서사들은(그중 일부가 사실일지라도 전체적인 맥락에선) 제가 알던 것과 너무 달라서, 2009년 서거 이후 눈물 흘리며 노 전 대통령에게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참여정부 시절부터 진보언론을 싫어하게 된 분들이 무리하게 약을 판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7. 2008년 이후 경향신문 ‘주류 진보언론’ 

참고로 지금의 한국일보 정도의 중도지 포지션이었다고 제가 서술한 경향신문은 2008년 촛불시위의 경험과 대중의 성원 이후 ‘촛불뽕’을 거하게 맞고 한겨레나 오마이뉴스와 크게 다르지 않은 성향의 ‘한국 주류 진보언론’이 됐다고 판단합니다.

이때부터는 경향신문의 특수성이랄 것을 말하는 게 큰 의미가 없을 정도로요. 2008년쯤 되면 사원주주제 실시 이후 들어온 기자들이 상당히 짬이 쌓였을 테고, 지금은 간부급이겠지요. 그래서 지금은 다들 경향신문을 중도지라기보다는 진보언론으로 이해합니다.

8. 한겨레가 반문? 안 지지자 입장에선 열성 친문으로 보일 것  

한겨레는 보수정부 10년 동안에도 친노 성향 독자를 배격하기는커녕 가장 신경 쓰는 행보를 보여 왔습니다. 사실 독자층 중 가장 넷화력이 강한 집단이기도 하니까요. 이명박 정부 시절 서해성 소설가가 한겨레21 대담(‘직설’)에서 ‘놈현 관장사’란 표현을, 그가 생각하기론 노무현을 매우 긍정하는 맥락에서, 한 적이 있었죠. 이에 대해 유시민 작가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항의가 일어났고, 한겨레가 1면에서 편집국장(당시 성한용) 명의로 사과했지요.

한겨레신문,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2010. 6. 14) 참고료 현재 온라인판 제목은 '직설' 기사 부적절한 표현 사과 드립니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425585.html
한겨레신문,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2010년 6월 15일 자, 1면) 참고로 현재 온라인 버전 사과문 제목은 “‘직설’ 기사 부적절한 표현 사과 드립니다”

2012년 대선 국면에서 한겨레 정치부 성한용 기자는 ‘안철수 대통령은 없다’라는 제목으로 매우 확고한 견해를 피력하는 칼럼을 써서 안철수 지지자의 원성을 삽니다. 이때 한겨레 정치부 기자들이 안철수에 대해 낸 책도 있었는데, 굳이 구별하자면 부정적 견해 위주였습니다.

한겨레, [성한용 칼럼] 안철수 대통령은 없다 (2012. 5. 28)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34935.html
한겨레, [성한용 칼럼] 안철수 대통령은 없다 (2012. 5. 28)
2016년 총선에선 이번에 대변인 내정 해프닝이 있었던 김의겸 선임기자가 국민의당의 호남 돌풍을 참지 못해서 ‘‘호남 자민련’이라니요? DJ가 하늘에서 통곡합니다’란 칼럼을 썼습니다.

한겨레, 호남 자민련이라고요? DJ가 하늘에서 통곡합니다! (2016. 1. 10)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25479.html
한겨레, 호남 자민련이라고요? DJ가 하늘에서 통곡합니다! (2016. 1. 10)

안철수 지지자 입장에선 한겨레 정치부는 반문이기는커녕 철저한 친문 집단으로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이 안 지지자들 생각처럼 ‘반안 친문’이라서 그랬던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겨레 정치부의 정치적 상상력에선 야권은 통합되어야 하고, 그 대표는 민주당이어야 하는 게 당연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진보정당 지지자들은 한겨레가 매번 그런 식으로 처신하기에 진보정당에 손해를 끼쳤다고 억울해 하기도 합니다.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노동당 일각에선 ‘안티 한겨레’라는 얘기까지 나왔었습니다. 당시 민주노동당이 한겨레에 항의할만한 맥락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안티조선에 대응하는 안티한겨레 운동을 벌일 일은 아니었고, 그냥 그렇게 해프닝으로 끝났습니다. 민주노동당 당원 정도 규모의 항의로는 한겨레가 타격을 받지 않는다는 현실적 측면도 물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한겨레 정치부를 반문이라 상상하는 것은… 정말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진보 학벌 엘리트 논란 뭐시기에 대해선 위에 이미 썼기에 재론하지 않습니다. 안철수 지지자 입장에선 한겨레와 친문이 함께 ’86 운동권 집단’으로 묶일 것이고 안철수는 그 서사 구도에서 피해자 위치에 있을 겁니다.

9.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의 안철수 띄우기? 

지난 대선 정국, 안철수 지지율이 솟구치던 국면에서 문화일보와 서울대 폴랩이 리얼미터에 맡긴 대선후보 호감도 조사결과를 놓고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이 함께 안철수를 띄웠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는 이들을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는 민주당·국민의당 양당 경선이 끝나고 안철수가 실제로 사람들의 기대를 많이 받고 상승하여 양강구도를 형성할 즈음이었습니다.

데일리한국, 대선후보 호감도도 양강? 안철수 44.9 vs 문재인 41.2 ... 홍준표 꼴찌 (2017. 4. 4.) http://daily.hankooki.com/lpage/politics/201704/dh20170404154419137430.htm
데일리한국, 대선후보 호감도도 양강? 안철수 44.9 vs 문재인 41.2 … 홍준표 꼴찌 (2017. 4. 4.) 여담으로 특이한 점은 대선후보 호감도 조사의 주체인 문화일보에선 정작 이 내용의 기사가 제대로 검색되지 않는다(구글 기사 검색 기준). 이것이 의도적인 것인지 문화일보 온라인 플랫폼의 설계 결함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편집자)

이 시기 안철수의 상승을 여론조사 기관과 언론 기사 탓이라고 보는 견해는 정당한 것일까요? 특정 시기에 안철수에 대한 긍정적 언급이 더 많았다는 결과를 가지고 와서 언론들이 그에게 줄을 섰다고 해석하는 것은 합당한 것일까요? 그런 식으로 따지면 TV토론에서 한계를 드러낸 이후엔 안철수에 대한 부정적 언급이 압도적으로 많았을 텐데 그럼 이 기간 모든 언론은 안철수에 대해 반칙을 한 것일까요?

혹은 이렇게 언론의 태도가 바뀐 건 문재인 지지자들이 진보언론에 ‘앙념’을 뿌려서 제대로 길들인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렇게 며칠 가지도 못할 소신을 시시때때로 바꿔 가면서 왜곡보도를 하는 것일까요?

여기에서 ‘진보언론이 노무현을 죽인대로 문재인도 잡아먹으려고 할 것이다. 우리가 지켜주지 않으면 같은 결말이 난다’는 식으로 서사를 쓰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10. 의미없는 논란 속 논란 확장… 소통의 지혜 필요 

게다가 최근의 상황에선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가 성공적이고, 진보언론이 그에게 각을 세우고 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습니다. 표지 사진 논란, 대통령 부인 ‘여사’, ‘씨’ 호칭 논란 등뿐입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할 수 있겠으나, 솥뚜껑을 보고 자라인 줄 알고 쥐어 패면, 물론 솥뚜껑은 무생물입니다만, 이건 비유이니까, 솥뚜껑 입장에선 부당한 대우가 누적되고 화가 나기 마련입니다.

이에 대해 언론종사자들이 분통을 터트리면 다시 지지자들이 이에 대해 분개하는, ‘의미가 없는 논란에서 논란이 확장되는’ 패턴이 관찰되고 있습니다. 저는 언론계 종사자들이 SNS에서 자중하고, 회사 가이드라인의 통제를 받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논란에 대해선 대응팀이 따로 있어 내부 협의 후 사려 깊은 대응을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체제가 현실적으로 없는데, 몇몇 언론인들의 반응을 통해 ‘의미가 없었던 대립을 확장해가는’ 패턴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서 매체가 독자와 소통하는 방법에 관한 지혜를 마련하는 게 필요합니다. 매체에만 무한 책임을 물을 게 아니라, 독자들 쪽에서도요.

의미 없는 논란에서 출발한 의미 없는 논란 확대를 멈출 소통의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의미 없는 논란에서 출발한 의미 없는 논란 확대를 멈출 ‘소통의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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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를 자처하는 분)들께서 소셜미디어 전반에서 보여주는 언행은 어느새 공론장의 핫이슈로 떠올랐습니다. 누군가는 공감하며 응원하지만, 누군가는 너무 과하다고 비판합니다. 또 누군가는 눈살을 찌푸리며 조용히 자리를 떠나고, 또 누군가는 그 뜨거운 곳으로 뛰어듭니다.

다양한 입장, 다양한 목소리가 있습니다. 슬로우뉴스는 차가운 비판의 목소리도, 따뜻한 공감의 목소리도 함께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세 개의 목소리를 준비했습니다. 홍명교, 김정철, 한윤형의 글이 그 세 개의 서로 다른 목소리입니다. 함께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물론 이 글 소재에 관한 더 많은 의견과 비판, 기고는 늘 그렇듯 적극적으로 환영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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