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박근혜의 대학 성적증명서(이하 ‘성적표’)다.
‘성적표’는 진짜일까?
성적표는 진짜일까? 누군가 조작해서 올린 건 아닐까? 우선 결론을 말하면, 성적표는 진본이 맞다. 서강대학교에 문의했고, 서강대는 “진본이 맞다”고 확인했다.
성적표를 보면 출력한 연월일이 2007년 5월 30일이다. 당시는 박근혜가 이명박 후보와 당내 대선후보를 두고 경쟁하던 시기다. 성적표를 보면 “인터넷 공개용”이라고 크게 써진 직사각형 워터마크 왼쪽 아래에 세로로 “박근혜 후보 선대위”라는 희미한 글씨가 보인다. 당시 박근혜 후보 선대위에서 박근혜 본인이 출력한 성적표를 ‘(인터넷) 공개용’으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서강대에 따르면, 성적증명서는 제3자가 출력할 수 없고, 본인만 출력할 수 있다고 한다.
2007년 당시 박근혜 후보 선대위에서는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대표할 수 있는 대선 후보로서의 자질을 당 내외에 검증하려는 목적으로 성적표를 공개한 것으로 보인다. 성적표는 누가 봐도 아주 우수하다. 성적표 개요에 표시된 것처럼 학점 평균이 4.0 만점에 3.82고, 이를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95.5점이다.
성적표는 진짜가 맞는데, 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성적도 진짜일까?
‘성적’도 진짜일까?
박근혜 성적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전체: 49A + 7B + 1C = 3.82 / 4.0 (100점 만점에 95.5점)
- 유신(1972년 10월) 이전: 28A + 7B + 1C
- 유신 이후: 21A
풍문으로 잘 알려진 것처럼, 서강대는 ‘학점 짜기로’ 유명한 대학이다. 정말 학점이 짤까? 서강대 컴퓨터공학과 졸업생(98학번, 박사과정 수료)의 말을 들어보자.
“저 다닐 때는 공대에서 올 A를 받는 사람은 일단 존재할 수 없었고요. 있어도 어쩌다가 한 한기 받는 거지, 3학기에 걸쳐 올 A(박근혜 경우엔 72년 10월 유신 이후 21개 과목 올 A)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해요. 그런데 제가 다닐 때만 해도 교수들이나 선배들은 요즘은 학점 인플레라고 타령을 했었죠. 전체 성적도 미쳤지만, 유신 이후는 신급인데, C 학점을 준 교수의 패기도 신급이군요.”
박근혜의 대학 성적표는 진짜지만, 성적마저 진짜인지 나는 의심스럽다. 다만, 누군가 나에게 그 성적이 가짜라고 증명하라고 하면 반박할 명확한 증거는 없다. 더불어 대학 성적이 어떤 사람을 평가할만한 중요한 근거라는 생각, 나에겐 없다. 대학 성적의 의미가 폄하되어야 할 이유도 없지만, 그렇다고 대학 성적이 한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대학 성적(표)은 그저 여러 평가 기준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다만, 나는 저 박근혜의 대학 성적표를 보면서 여러 얼굴이 떠오른다. “돈도 실력이야.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몰 원망해”라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자랑스럽게 부모 자랑했던 철딱서니 없는 소녀의 모습도 떠오르고,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늘 알바하느라 얼굴 보기도 힘들었던 선후배의 모습도 떠오른다. 그리고 극악한 취업난에 고생하는, 학점 하나 이력서 한 줄에 고민하는 요즘 대학생의 모습도, 그 절실한 심정을 내가 어찌 다 알겠느냐만, 떠오른다.
우리가 뽑은 박근혜라는 치욕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헬조선’이라고 불리는 대한민국의 모순과 부조리를 가장 천박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가장 영예롭고, 가장 고귀하며, 가장 경건해야 하는 대통령이라는 상징은 가장 불명예스럽고, 가장 천박하며, 허접하기 짝이 없는 어떤 것으로 전락했다. 대한민국이 공화국이고, 우리가 공화주의자라면, 박근혜가 주권자인 국민의 명령, ‘즉각 퇴진하라’는 그 명령을 거부하며 청와대에 눌러 앉아 버티는 이 시간, 이 하루하루, 이 일분일초는 치욕이다. 그 치욕의 시간을 견디지 못해 나는 이런 ‘박근혜 신상털이’를 하는지도 모르겠다.[footnote]물론 박근혜 대학 성적표는 ‘개인정보’지만, 박근혜 스스로 공개한 성적표이고, 스스로 공개하지 않은 성적표라고 하더라도, 그 공적 성질상 보호되는 개인정보의 성격에서는 벗어나며, 충분히 공적 취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이에 대해 자문을 구한 정보인권 전문가인 진보네트워크의 오병일 활동가도 박근혜 성적표는 충분히 공적 취재 대상이 된다고 의견을 표했다. [/footnote]
약 4년 반 전, 슬로우뉴스는 ‘대선 토론회 팩트체크’를 기사화했다. 근 일주일 동안 편집팀원들이 잠을 줄여가며 대선 후보자의 발언 하나하나를 검증했다. 다른 대형 언론사가 미처 하지 않는, 당시로써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고, 그 작업에는 지금도 소박한 자부심이 있다. 대선후보 토론회 팩트체크를 마치고, 기사를 발행하면서, 나는 최소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기대했다. 박근혜의 한마디 한마디를 검증하면서 왜 박근혜가 대선 선거운동 기간 그토록 토론회를 기피했는지를 충분히 알게 됐으니까. 그 지적 능력과 판단력, 진실성은 그야말로 최악이었고, 선거법에 규정된 TV 토론회를 통해서나마 유권자인 국민이 각 후보의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을 판단할 것으로 믿었다. 아니, 기대했다. 물론 그 기대는 깨졌고, 박근혜는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민주주의 공화국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출 시스템이 과연 지금 상태로 유지되어도 좋은지를 질문한다.[footnote]김기창 교수는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개헌 논의와는 별개로, 우선적으로 공선법을 개정하는 것만으로도 현재의 시스템상 흠결을 보완할 수 있는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김기창 교수의 의견에 공감하고, 동의한다.[/footnote]결국, 우리는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대통령이 되어선 안 되는 자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일분일초도 대통령으로 허락되어선 안 되는 자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나는 문재인 뽑았는데? 나는 기권했는데? 우리는, 운명공동체로서, 유일한 대한민국 권력의 뿌리로서 우리, 국민은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았고, 지금 이런 비극을, 이런 치욕을 그 대가로 치르고 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박근혜 탄핵을 주장하는 김무성은 이번 사태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비극이라고 말하면서 개헌을 통해 ‘의원내각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주장의 진실성은 별론으로, 더불어 김무성의 정치적 포지션이 당내에서 자신은 ‘비주류’라는 부르는 ‘비박’의 좌장이라는 점도 별론으로, 새누리당의 누구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박근혜 탄핵을 주장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만 하지만, 개헌을 입에 담을 자격은 없다. 그 정당성에 대한 판단과 해석은 다양할 수 있지만, 통합진보당 해산을 주도한 당이 새누리당이고, 그 논리를 자신에 그대로 적용해야 마땅하다면, 새누리당은 벌써 해산되어야 마땅하다.
새누리당은 개혁 주체가 아닌 개혁 대상이다.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김진태)거나 박근혜 탄핵 요구에 대해 “예수 팔아먹는 유다가 되란 말인가”(이정현)라고 대꾸하는 자가 아직도, 박근혜의 버티기를 본받아, 대표로 버티고 있는 당이다. 박근혜 뽑지 않은 국민도 ‘운명공동체’의 일원으로 고통받고, 치욕의 나날을 보낸다. 새누리당과 그 일원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른바 ‘비박’이 탈당하고 분당해서 새누리당의 옷을 벗고, 새 옷으로 바꿔 입는다고 해도 그 ‘원죄’를 죽을 때까지 씻을 방법 없다. 이런 거지발싸개 같은 당, 그 당의 일원으로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참여한 자들, 나는 내 생전에 용서할 생각 없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박근혜 대학 성적표는 그야말로 빛난다. ‘학점 짜기로’ 유명한 서강대에서는 좀 처럼 만날 수 없는 성적표다. 이 성적표에 관해 나는 말을 더할 생각은 없다. 다만, 김용옥이 말한 것처럼, “하느님이 보우하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세상에 폭로됐고, 우리는 상처 나고, 헐벗은 대한민국을 다시 치유하고, 정상화해야 할 역사적 명령 앞에 섰다. 이 역사적인 명령은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물론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 공론화했을 때, 2년 전 정윤회 문건이 유출되었을 때도 우리에겐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 기회는 살아 있는 권력의 그늘 속에서 사그라들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지 않았다면, 그냥 “돈도 능력”이고, “부모님 잘 만난 것도 능력”인 세상을 우리는 그저 우리의 못난 부모 탓하는 것으로, 자신의 부족한 학벌을 탓하는 것으로 저들이 만든 세상의 규칙에 순종하며, 아니 저들의 규칙을 흉내 내고, 패배주의를 내면화하면서 그냥 지나쳐 갔을 거다. 여전히 세상은, 이화여대의 교육부 감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정유라를 광장의 마녀로 화형에 처하면서도 이화여대의 특혜성 국가사업 ‘몰아주기’의 대가성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지 않았다면, 나는 박근혜 성적표를 찾아볼 생각도, 또 그 성적표를 의심할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다. 그저 박근혜가 대학 때는 열심히 공부했나? 혹은 박근혜가 부모 잘 만나서 성적표를 A로 깔았구먼, 하고 지나쳤을 거다. 진정한 개혁, 새로운 대한민국을 원한다면 우리는 자신에게도 또 공인이라고 불리는 자들에게도 엄격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주권자인 우리 자신, 국민에게 나온다. 그 권력을 ‘빌려줄’ 사람을 선택함에, 이 참담한 실패를 교훈삼아, 우리 자신에게 또 그 권력을 빌려줄 사람에게 더더욱 엄격해야 한다. 그래야 돈 있고, ‘빽’ 있고, 권력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 돈 없고, 빽 없고, 권력이 없어도 희망을 꿈꿀 수 있는, 박근혜가 자기 등 뒤에 써 놓은, ‘희망의 새 시대’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