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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이른바 박근혜 하야 정국.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에게 약속한 “성실한 검찰 수사”마저 사실상 스스로 거부하고 있습니다. 국민은 사퇴를 외치지만, 청와대의 입장은 ‘사퇴 불가’. 야당은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김기창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는 ‘결선 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금 당장도 중요하지만,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거죠.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이 글의 소재와 주제에 대한 다양한 반론과 보론, 비판 기고를 환영합니다. (편집자) [/box]

70%를 넘는 응답자가 대통령의 퇴진 또는 탄핵을 원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연일 발표되고 있지만, 대통령은 “퇴진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현 정국에서 야당의 역할은 무엇일까? 야 3당 또는 여야가 합의하여 총리 후보자를 천거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총리 천거가 시급하다는 주장의 논거는 대략 두 가지다.

첫째는 대통령의 비리와 범법행위가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드러난 결과 대통령은 국정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한시바삐 총리라도 제대로 임명해 국정 중단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자발적 퇴진을 거부하는 대통령에 대하여 국회가 탄핵 소추를 가결할 경우 대통령의 모든 권한은 총리가 대행하게 되는데, 그런 상황에 지금 미리 대비해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희망의 새시대를 만들겠다"던 박근혜는 '순실이의 봉건시대'로 회귀했다. 오늘(10월 4일) 대국민담화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68802.html 를 발표하면서, "머리 숙여 사죄"한다고 했지만, 지금 대통령의 진정한 사죄는 '하야'밖에는 없습니다.
“희망의 새시대를 만들겠다”던 박근혜는 ‘순실이의 봉건시대’로 회귀했다. 국민은 ‘대통령 즉각 퇴진’을 외치지만, 청와대 입장은 ‘퇴진 불가’다.

총리 후보자 선정이 우선? 

하지만 면밀히 살펴보면 이 두 가지 이유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첫째, 총리가 천거된다 하더라도 대통령이 과연 순순히 그를 임명할지부터 불분명하다. 물론 대통령은 국회가 총리를 천거하면 그에게 “내각을 통할”하도록 하겠다고 말한 바 있지만, 대통령은 자신이 한 말을 며칠 뒤에 뒤집는 행태를 이미 보여주었다. 검찰이나 특검의 수사에 성실히 협조하겠다고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검찰의 대면 조사를 거부하는 대통령이다.

박근혜는 두 번째 대국민담화에서 "검찰 수사에 성실히 응하겠다"고 말했지만, 결국 오늘(18일)까지로 예정됐던 검찰 소환을 사실상 거부했다.
박근혜는 두 번째 대국민담화에서 “검찰 수사에 성실히 응하겠다”고 말했지만, 결국 오늘(18일)까지로 예정됐던 검찰 소환을 사실상 거부했다.

둘째, 총리를 설사 임명하더라도 그 총리는 헌법에 규정된 대로 “대통령의 명을 받아” 국정을 통할해야 한다는 것이 대통령의 입장이다. 지금까지 비리로 얼룩진 정책 결정의 결과를 총리가 주도적으로 교정하고 수습할 권한은 결코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책임’ 총리라는 것의 의미와 한계에 대한 입장 표명을 집요하게 거부하며 오로지 ‘헌법 규정’만을 방패막이로 삼고 있는 대통령전략을 제대로 간파한다면, 현 상황에서 임명되는 ‘복명(服命)’ 총리가 망가진 국정을 제대로 수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환상에 불과하다.

셋째, 야 3당이 총리 후보를 합의하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 인선 과정에서 야 3당은 당연히 입장 차이가 있고 그것이 정상이다. 따라서 총리 인선을 둘러싸고 야 3당은 서로 간의 견해차와 갈등을 노출하면서 이른바 ‘자중지란’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불을 보듯 뻔하다. 대통령이 기대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더민주 국민의당 정의당

넷째, 총리후보자에 대한 야 3당의 합의가 어렵사리 이루어지고 대통령이 그에 따라 총리를 임명할 경우, 일단은 국정이 회복, 수습되는 듯한 ‘환상’이 생기기 때문에 대통령의 지지율이 다소나마 반등할 것이다. 진정으로 국정이 수습된다면야,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라간다는 이유만으로 국정 수습을 방해하고 거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명을 거역할 아무런 권한도 없고, 오로지 책임만을 지는 총리를 ‘책임 총리’라고 대통령이 인식하고 있음이 분명한 상황에서 그런 의미의 ‘책임 총리’를 통한 국정 수습은 헛된 꿈일 뿐이다. 야당과 국민의 환상에 기대어 자신의 지지율 회복만을 꾀하는 대통령의 얕은 정치공학적 계산은 경계해야 하고, 비판받아야 한다.

끝으로, 탄핵 소추가 가결될 경우를 대비하여 총리를 미리 천거해 두어야 한다는 주장은 더욱 근거가 없다. 총리를 천거하는 행위가 바로 대통령의 지지율이 (기만적일망정) 회복되는데 일조하는 결과를 낳게 되며, 대통령의 지지율이 조금이라도 회복된다면 퇴임이건 탄핵이건 성사될 가능성은 그만큼 더 줄어든다. 탄핵을 대비하여 총리를 미리 지명해두겠다는 발상은 ‘책임 총리’의 의미를 둘러싼 크나큰 입장 차이를 무시한 아전인수격 해석에 터 잡아 김칫국부터 먼저 마시는 ‘코믹한’ 처사에 불과하다.

박근혜 하야 촛불집회 2016년 11월 12일 13일 새벽 촬영
이미 청와대는 국민에게 ‘사망 선고’를 받았다. (박근혜 하야 촛불집회, 2016년 11월 12일)

대통령이 “퇴진 거부”를 내세우며 버티기 모드로 돌입하여 자신의 지지율이 반등하기 만을 기다리는 현 정국에서 야당은 누구도 정확한 의미를 모르는 미궁과 같은 ‘책임 총리’에 대한 미련과 환상을 버려야 한다. 대통령이 던진 ‘책임 총리’라는 의제에 야 3당이 끌려다니는 모습은 야당의 존재감을 깎아내리기만 한다.

대통령이 국정 수행과 관련된 자신의 범죄행위로 검찰의 수사를 받아야 할 지경까지 이른 초유의 헌정 중단 사태를 타개할 해법이 수일 내에 당장 찾아질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앞으로 일정 기간 지속될 교착 상태에서 야당은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하고 지지율을 높이는 데 필요한 행위들을 차근차근 다져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야당의 지지율을 올리는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방법은 중요한 정책적 가치가 있는 의제를 선도적으로 제시하고 정국을 주도해 나가는 것이다.

야 3당은 ‘결선투표제’ 도입하라 

이런 맥락에서 야3당이 주도하여 대통령 선거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퇴진하건, 탄핵으로 파면되건,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건 다음 대통령은 선출되어야 하는데, 현행 대통령 선출 방법은 개선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현 대통령의 부정과 비리를 국정조사나 청문회 등을 통하여 제대로 드러내는 일과 동시에 다음 대통령의 선출에 관한 긍정적 희망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대통령 선거 방법에 관하여 공직선거법은 “유효투표의 다수를 얻은 자”가 당선인이 되도록 정해두고 있다(187조 1항). 이처럼 단순 다수 득표자가 당선자로 되는 제도하에서 그동안 야권은 매번 ‘후보 단일화’라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갔다. 당내 경선 과정과는 달리, 하나의 후보를 선정할 어떠한 규칙이나 합의된 절차도 없이 이루어져야 하는 이 과정은 한마디로 자학과 자해로 점철된 것이었다.

지난 18대 대선 토론회에서의 문재인 후보와 박근혜 후보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0577130.html
지난 18대 대선 토론회에서의 문재인 후보와 박근혜 후보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야권 후보들은 서로에게 흠집을 내고, 제대로 된 정책 경쟁은 실종될 뿐 아니라, 야당 지지자들 서로 간에 갈등과 반목이 고조되고 정치에 환멸을 느끼게 되는 참담한 상황이 선거 때마다 반복됐다. 한편, 단일화가 되지 않고, 여러 후보자가 팽팽히 경쟁할 경우에는 심지어 유효투표의 20~30%밖에 득표하지 못한 자가 ‘다수 득표자’라는 이유만으로 대통령 당선인이 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이런 당선자가 과연 민주적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대통령 선거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면 이런 고질적 문제들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대통령 선거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면 그자를 당선자로 하면 되고, 과반수 득표자가 없을 경우, 상위 득표자 2인에 대하여 결선 투표를 통하여 당선자를 정하는 것이다. 대통령제를 채택하는 프랑스가 이렇게 대통령을 선출한다. 결선투표제 도입은 개헌이 필요한 사안도 아니다. 일반 법률인 공직선거법의 한 문장(187조1항의 첫 문장)을 개정하면 당장 시행할 수 있다.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로서 총선이 국민에게 나쁜 일일까? 아니면 권력에게만 귀찮은 일인 건 아닐까?

물론 새누리당은 결사반대하겠지만, 지금 온 국민의 지탄을 받는 새누리당이 이 법률 개정을 저지할 여력은 없고 저지를 시도할 경우 새누리당은 더더욱 국민의 지탄을 받을 것이다. 국회 의석 다수를 점하는 야 3당이 단결하여 결선투표제 도입을 성사시키고 그 존재감이 부각되면 야당에 대한 지지율이 높아지고,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떨어질 것이다. 결선투표제 도입으로 장차 새누리당이 집권당이 될 가능성이 줄어들면, 그것이 지금의 지지율을 더욱 낮추는 효과를 가질 수도 있다.

다음 대통령은 제대로 뽑아야지 않겠나? 

대통령 선출 방식이 바뀌어 여권 후보 당선 가능성이 줄어들면 새누리당은 더욱 조급해지게 되고, 박근혜 호위 모드를 계속하기 어렵게 된다. 자신들이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씨와의 연결이 자신들에게 이득보다는 손해가 크다는 점이 분명해지면 새누리당 다수 의원이 박근혜 씨의 탈당을 요구하고 그를 ‘버리는’ 시점이 올 수밖에 없다. 탄핵은 그때 실행하면 된다.

지금은 ‘총리’를 거론할 때가 아니다. 아무도 대통령이 말하는 ‘책임 총리’가 누구에게 무슨 ‘책임’을 진다는 뜻인지도 모르지 않는가? 지금은 국민의 뜻을 잘 받들고, 대통령과 그를 옹호하는 새누리당의 비리를 고발 비판하고, 야 3당이 단합된 모습으로 정국의 주도권을 행사하며 대통령 선거 제도를 개선함으로써 다음 대통령 선거에 대한 희망을 국민에게 심어주는 데 모든 노력을 집중할 때다.

권한대행 총리를 제시하는 일은 2/3가 훨씬 넘는 국회의원이 탄핵에 찬성할 것이 분명해진 시점에 가서 하면 된다. 대통령은 어차피 물러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하야건 탄핵이건 새누리당이 돌아서는 시점이 오면 대통령은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된다.

다음 대통령은 제대로 뽑아야 하지 않겠는가?

박근혜 하야 (사진 제공: 옥토)
2016년 11월 12일 광화문. (사진 제공: 옥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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