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시 보이스]는 [라이어스 포커], [빅숏] 그리고 [머니볼]의 작가인 마이클 루이스가 2014년에 낸 책이다. 이 책 역시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초단타매매”는 영어로는 HFT(high frequency trading), 아주 빠른 속도로 아주 많은 주식 혹은 파생상품 거래를 하는 걸 말한다.[footnote]초단타매매와 극초단파매매를 구분해서 쓰기도 하지만 ‘초’라는 말에 ‘extreme’이란 뜻이 이미 들어있기 때문에 이 글에선 HFT를 초단타매매라고 하겠다[/footnote] HFT 트레이더들은 하루에 수십만 건의 거래를 할 수도 있다. 당연히 사람의 힘으로는 못 한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놓고, 미리 설정해놓은 조건에 맞을 때마다 자동으로 실행되게 해놓는 것이다.[footnote]예전에 쓴 글을 참고하면 된다.[/footnote] 미국과 영국에서는 주식과 파생상품 거래의 절반 이상이 이런 초단타매매다.
한발짝만 앞서면 이득을 볼 수 있다
금융 거래에선 속도가 중요하다. 서울 한복판에서 대형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고 하자. 그 순간 전 세계 모든 주식과 채권 트레이더들이 한국 주식과 채권을 팔아치울 것이다. 하지만 이때도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팔면 이득을 볼 수 있다. 왜냐? 남들보다 한발 앞서 공매도해버리고, 잠시 후 남들이 우르르 따라오면서 값이 내렸을 때 그만큼을 매수해서 포지션을 정리하면 된다. 남들보다 딱 한발짝만 앞서가도 된다.
마찬가지로 어떤 주식이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거래되고 그 주식에 바탕을 둔 파생상품은 시카고 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된다고 하자. 뉴욕에서 주식의 가격이 확 올랐을 때 남들보다 한발 앞서서 시카고의 파생상품을 사면 돈을 벌 수 있다. 그래서 옛날부터 증권과 채권 거래를 하는 사람들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정보를 입수하고 주문을 넣기 위해 파발마를 보내고, 비둘기를 날리고, 증기선을 띄우고, 해저 케이블을 깔았다. 거래 체결에 필요한 절대적인 시간의 길이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조금이라도 경쟁자보다만 빠르면 이기는 게임이다.
인터넷과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이젠 트레이더들 간의 시간 경쟁이 분자 수준으로 치열해졌다. 초 단위가 아니라 마이크로초(0.000001초) 수준으로 경쟁한다. 이 책 [플래시 보이스]에 등장하는 초단타매매 전용선 회사들은 시카고부터 뉴욕까지 조금이라도 빨리 인터넷 신호를 보내기 위해서 새로운 전용 광통신 회선을 깐다.
마이크로초 경쟁시대
기존 통신회사들이 운영하는 통신선로는 도로나 철도 옆에 매설되고 중간중간 대도시들을 거쳐 간다. 그러다 보니 통신 신호 전송에 있어 악간의 시간 손실이 생긴다. 초단타매매 전용선 회사들은 자기들이 수천억 원을 들여서 수천 킬로미터의 거리에 직선에 가깝게 새로운 케이블을 깐다. 공사 중에 이 회선의 용도는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 경쟁자들이 알면 안 되니까.
이건 와이어드에 나온 시카고-뉴욕 간 주식거래용 케이블망 지도다. 우선 아래쪽에 구불구불한 붉은 선은 일반 인터넷용 광케이블이다. 시카고에서 클리블랜드를 지나 아래쪽에 있는 피츠버그를 들르고 필라델피아 인근까지 내려가느라 상당히 우회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다음, 초록색 선은 월스트리트의 한 업체가 수천억 원을 들여서 2010년 비밀리에 부설한 전용 광케이블이다. 붉은 선에 비해 거리를 상당히 단축했다. 그래 봐야 시간으로 따지면 몇천 분의 1초지만, 어쨌든 이 경로를 이용해 경쟁자들보다 빨리 주문을 넣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되는 거다.
주황색과 파란색 선은 2012년 완성된 전자파 통신채널이다. 땅에 광케이블을 묻는 게 아니라, 중간중간 거대한 철탑들을 세우고 이를 이용해 공중에서 직선으로 강력한 전자파를 쏘는 거다. 뉴욕에서 시카고까지 20여 개의 철탑으로 이어진다. 어차피 금융거래는 야동이나 영화를 본다거나 할 때처럼 전송량이 많지 않다. 광케이블을 깔지 않아도 중간중간에 철탑 기지국만 세워두면 충분히 정보 전달이 가능하다.
전용선 회사들의 경쟁
이런 황당한 상황은 미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초단타매매 트레이딩 회사들이 거래소 서버에 가장 빨리 접속할 수 있는 회선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그런 초고속 전용 회선을 증권사들이 따로 초단타매매꾼들에게 팔기도 했다.[footnote]거래소 이사장은 이 사건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았다.[/footnote]
영국에서도 사회 문제가 됐다. 유럽의 금융 중심지인 런던과 프랑크푸르트 사이를 빠르게 통신할 수 있는 공중파 망을 만들기 위해 전용선 회사들이 경쟁 중이다. 파이낸셜타임스 기사를 보면 영국 남서부 해안 켄트 군에 있는 풍광이 좋은 마을에 최근 들어 두 개의 초단타 통신망 회사가 첨탑을 세우려 하고 있다. 바다를 건너야 하므로 무려 100층 빌딩 높이다.
엔엘엔(NLN)과 비절런트(Vigilant)라는 두 경쟁사가 각자 따로 탑을 세우려 한다. 주민들은 화가 났다. ‘휴대폰 기지국은 사회적 가치라도 있지만, 초단타트레이딩이 지역사회에 무슨 도움이 되냐’고 반발한다. 이것과는 별개로 이미 금융회사들은 영국해협을 넘나드는 라디오 주파수 600개 이상을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켄트 군 주민들의 말처럼, 초단타매매는 사회에 딱히 도움이 안 된다. 하지만 ‘초단타매매가 늘고 주식거래량이 많아지면 유동성이 늘어나서 증시와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꽤 많다. 특히 금융산업에 그런 믿음이 강하다.
아니다. 초단타매매는 대부분 유동성을 만들지 않는다. 남들이 만드는 유동성의 껍질을 조금씩 까먹는다. 그래서 이들을 스캘퍼(scalper)라고도 말한다. 이런 악성 스캘퍼들은 남들이 내는 주문에 반응할 뿐이다. 주가를 올려주지도 않는다.[footnote]스캘핑에 관한 여러 정의가 있지만, 이 글에서는 악성 스캘핑에 주목한다.[/footnote]
물론 트레이더가 남들보다 앞서가려는 욕심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인간의 욕심은 자본주의의 원동력 중 하나다. 문제는 그런 욕심과 금융시장 시스템의 허점이 만날 때 생긴다. [플래시 보이스]에서 마이클 루이스는 현대 금융시스템이 복잡해지면서 이런 초단타트레이더들에게 돌아가는 가치의 몫이 너무 커졌음을 지적한다.
루이스는 특히 다음의 두 가지 규제의 변화로 인해서 초단타매매가 횡행하게 됐다고 말한다.
- 2000년대 중반부터 미국의 증권거래소 수가 2개(전통의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나스닥)에서 10여 개로 늘어났다. 금융당국이 그렇게 유도했다. 거래소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 수수료가 내려갈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수료는 상당히 내려갔다.
- 고객의 주식 거래를 대행해주는 브로커들에 관한 규정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브로커들이 적당히 알아서 조건이 좋은 거래소를 골라서 주식을 매매하도록 했는데, 새로 바뀐 법에서는 반드시 ‘가장 좋은 가격으로 거래할 수 있는 거래소’에다 먼저 거래를 넣어야 한다고 강제했다. 브로커들이 부당한 리베이트를 받고 나쁜 조건에 고객의 주문을 처리할까 봐 만들어진 룰이다.
이 두 가지 규제 변경의 취지는 좋았다. 하지만 이 때문에 시스템이 다소 복잡해지면서 예상치 못했던 허점들이 생겼다. 초단타매매꾼들이 그 허점을 파고들었다. 어떻게? 예를 들어보자.
예: 떡밥을 풀고 새치기해 수익을 노리는 방법
대한민국 국민연금이 주식시장에서 애플 주식을 100만 주 사려 한다고 해보자. 펀드 운용담당자가 블룸버그 터미널로 가격을 확인해보니 현재 500달러 정도에 거래되고 있다. 국민연금이 주식을 직접 살 수는 없으므로 평소 거래하는 골드만삭스 브로커에게 전화를 걸어 애플 100만 주를 대신 사달라고 말한다. 가격은 현재 시장가격으로 해달라고 한다. 그럼 이 골드만 브로커가 미국 거래소에 주문을 넣을 것이다.
‘어느 거래소를 택할 것이냐’부터 정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뉴욕 인근에는 증권거래소가 10여 개 있다. 마침 A거래소에 애플 100만 주가 500달러에 매물로 나와 있다고 치자. 어딜 찾아봐도 이보다 더 좋은 가격이 없다면 주문을 넣을 것이다. 500 x 1,000만 = 총 5억 달러에 거래가 완료된다. 깔끔하다.
근데 만약에, B라는 거래소에 애플 주식이 약간 싸게, 499.99달러에 딱 100주만 올라와 있다고 해보자. 100주는 너무 작은 양이라서 예전 같았으면 그냥 무시했을 것이다. 그런데 법이 바뀌었기 때문에 주문은 가격이 가장 좋은 B거래소로 먼저 들어가야 한다. 아무리 나와 있는 물량이 적더라도.
이제 문제가 시작된다. 사실 이 B거래소에 올라와 있는 100주는 초단타매매회사가 여기저기 뿌려놓은 떡밥이다. 여기서 100주가 체결되는 순간 자동 알고리즘이 작동한다. “오, 누군가가 지금 애플 주식을 사려고 하는구먼!”이라는 신호를 받은 것이다.
초단타회사의 자동 프로그램은 초초고속 인터넷망을 이용해서 골드만 직원보다 빨리 A거래소에 주문을 넣는다. 거기 올라와 있는 100만 주를 500달러에 모조리 사버린다. 그리고 동시에 값을 아주 약간 올려서, 예를 들어 500.01달러로 100만 주를 판다고 내놓는다. 이렇게 되면, 골드만 브로커는 원래 500달러에 살 수 있었던 주식을 500.01 달러에 사야 한다. 주당 0.01달러를 초단타회사에게 뜯기는 것이다.
주당 0.01달러는 아주 적은 금액이지만, 100만 주를 곱하면 1만 달러나 된다. 이 가상의 사례에서 국민연금의 돈 1만 달러를 초단타매매꾼이 가로챘다. 이 과정에서 초단타매매꾼이 사회에 주는 가치는 없다. 제로다. 하루에도 이런 자동화된 거래를 수천수만 건씩 하다 보면 초단타매매 회사들은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 위험도 낮다.
실제로 [플래시 보이스]에 나오는 어떤 초단타회사는 인재들을 스카우트할 때 “우린 지난 5년 동안 단 하루도 돈을 잃어본 적이 없다”라고 말한다. 치사하지만, 법을 어긴 것은 아니다.
그러면 여기서 질문을 하나 해 볼 수 있다. 애초에 골드만 직원이 애플 주식을 살 때, B거래소부터 넣지 말고 A와 B거래소에 동시에 주문을 넣으면 되지 않을까. A에서 99만9900주를 사고 B에서 100주를 사라고 동시 주문을 넣으면 되지 않을까. 그럼 초단타회사가 중간에 새치기를 못 할 텐데.
안 된다. 브로커가 아무리 동시에 주문을 넣는다고 하더라도 각각의 거래소까지 도달하는 광케이블의 물리적인 길이가 다르고 서버와 스위치 등 인터넷 장비들을 거치면서 발생하는 딜레이가 각각 다르므로 시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골드만 브로커의 컴퓨터에서 B거래소까지는 0.00005초 만에, A거래소까지는 0.00008초 만에 신호가 간다고 치자. 만일 초단타회사가 B거래소에서 골드만의 매수 신호를 캐치하고 0.00003초 안에 A거래소에 새치기 주문을 보낼 수 있다면 골드만 브로커가 제아무리 동시에 주문을 넣는다고 해봐도 새치기를 막을 수 없다.
더욱이 브로커는 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조차 파악할 수가 없다. 이것은 찰나에 벌어지는 일이다. 브로커의 모니터, 그리고 브로커의 눈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다. 0.00003초 안에 두 거래소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브로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분명 500달러로 나와 있었던 매물이, 엔터키를 치는 순간 자동으로 500.01달러로 값이 올라 계약이 체결된 이유를 그는 알 수가 없다. 고객인 국민연금에도 설명할 수가 없다. 삥 뜯겼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삥을 뜯긴다. 완전범죄가 탄생한다.
이것은 이해를 돕기 위해서 든 단순한 예일 뿐이다. 실제로 초단타매매 회사들은 최고의 수학자들과 최고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최고의 IT 엔지니어들을 동원해서 일반인들의 머리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알고리즘들을 돌린다.
바로 이래서 초단타꾼들이 그토록 빠른 인터넷 속도에 집착한다. 지금도 뉴저지에는, 런던과 프랑크푸르트에는 그리고 여의도 거래소 주변에는 이런 꾼들의 컴퓨터 서버들이 광통신 선에 물려서 팽팽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 미국에선 초단타회사가 큰돈을 주고 거래소 서버가 있는 방 안에 자기네 트레이딩 시스템을 들여놓기도 한다. 이것을 ‘코로케이션(colocation)’이라 한다. 사기 같지만, 합법이다. 이게 현실이다.
아웃사이더가 만든 거래소, IEX
당연한 얘기지만 초단타꾼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외부에 알리지 않는다. 언론 인터뷰를 하지도 않고 무슨 컨퍼런스 같은데 가서 돈 많이 번다고 자랑하지도 않는다. [플래시 보이스]에 등장하는 초단타회사들은 과묵한 프로그래머들과 시스템 엔지니어들, 알고리즘 개발자들을 고용해서 가장 빠른 인터넷회선과 가장 똑똑한 자동 트레이딩 알고리즘을 설치한 후에, 프로그램을 돌리면서 조용히 돈만 번다.
[플래시 보이스]의 주인공들은 뉴욕 증권가에서 일하던 똘똘한 증권맨들과 엔지니어들이다. 각자 약간 아웃사이더 기질이 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서서히 이런 초단타회사들의 전략을 눈치채게 된다. 이들은 이 기생충들에 당하지 않기 위해 다니던 회사들을 그만두고 직접 IEX(Investors’ Exchange)라는 새로운 거래소를 하나 만든다.
이 IEX 거래소에서는 모든 외부 주문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0.00035초만큼 딜레이된다. 시간 지연을 위해서 약 60km짜리 광케이블을 두루마리 휴지처럼 둘둘 말아놓고 신호를 통과시킨다. 이렇게 하면 초단타꾼들이 IEX에 뿌려놓은 미끼 주문들이 체결된다고 해도 그 신호가 외부로 곧바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러니 초단타매매꾼들이 다른 거래소로 새치기하러 들어갈 여지가 없어진다. 다들 ‘좀 더 빨리, 빨리, 빨리….’를 외치는 트레이딩의 세계에서 ‘우리는 일부러 늦게 간다!’는 발상을 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IEX가 무슨 엄청난 정의감 때문에 이런 일을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들은 이렇게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공정한 거래소를 만들어서 보수적인 투자자(브로커, 고객)들을 끌어모은다는 계획이다.
홈페이지는 iextrading.com. 아직 성공을 확신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닌 것 같다. 조만간 금융규제기관으로부터 정식 증권거래소 면허를 받을 수 있을지 결정이 난다고 한다. 당연히 기존의 다른 거래소들은 이들을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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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 보이스]를 읽고 든 생각은 다음과 같다.
1. 일반투자자, 국민은 시스템적으로 봉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일반 투자자와 연기금은 봉이다. 정보의 부족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위에서 얘기했듯이 현대의 증권거래는 ‘남보다 빨리’가 매우 중요하다. 남보다 빨리 주문을 넣을 수만 있다면 거의 리스크 없이 돈을 벌 수 있다.
그런데 거래소와 증권사들은 큰 수수료를 내는 초단타매매꾼들의 주문을 개미 혹은 일반 투자자들의 주문보다 빨리 처리해주는 행태를 보여왔다. 한국 법원도 이들에게 면죄부를 줬다. “증권사가 순서대로 주문을 접수해야 하는 법적 의무는 없다”라는 것이 2014년 김소영 대법관의 스캘퍼 무죄 판결이다. 일반 투자자들(초단타매매자가 아닌 모든 투자자와 트레이더들)은 똑같은 정보를 갖고 경쟁해도 빠른 회선을 가진 꾼들에게 세금처럼 일정 부분을 뜯길 수밖에 없다.
“나는 주식투자 안 하니까 상관없다 하하하!” 하며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내는 국민연금, 퇴직연금, 생명보험, 손해보험, 자동차보험, 예금, 적금의 상당 부분은 어떤 형태로든 국내 혹은 해외 주식과 파생상품에 간접 투자되고 있다. 모두가 초단타매매회사의 밥이다. 연기금과 펀드들은 워낙 덩치가 크니까 매매할 때마다 살점 조금 뜯겨도 당장엔 티가 나지 않을 뿐이다.
2. 증권거래 시간을 확 줄여도 상관없다
현재 한국거래소는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매일 6시간 운영된다. 이걸 더 늘리자는 의견도 있다. 그래야 외부상황이 그때그때 주식의 가격에 반영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현실에선 큰 의미가 없다. 거래소가 제아무리 365일 24시간 문을 연다고 해도 일반 투자자는 전문가를 당할 수 없다. 일반 투자자나 기관이 아무리 서둘러서 주문을 넣는다고 해도 전문 초단타업체들의 새치기[footnote]front-running; 선행거래[/footnote]를 막을 수 없다.
거래시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인간 투자자들은 피곤해진다. 자동 컴퓨터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초단타꾼들이 인간 투자자들의 몫에서 1원씩 1원씩 뜯어갈 수 있는 여지만 많아진다. 그러니 어차피 이럴 바에 거래소 운영시간을 늘리지 말고 오히려 대폭 줄이는 게 나을 것이다. 초단타거래자들이 스캘핑 할 수 있는 여지를 줄여야 한다.
난 그냥 하루에 1시간씩만 거래소를 운영하는 편이 낫다고 본다. 개장시간 단축한다고 상장기업들의 주가는 내려가지 않는다. 연휴라고 주가가 내려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업의 내재가치가 떨어지지도 않는다. 일반 투자자들의 신뢰를 되찾는 게 우선이다. 꾼들이 지배하는 도박판은 지속할 수 없다. 울며 겨자 먹기로 주식시장에 투자해야 하는 연기금으로 버티고 있는 시장은 정상은 아니다. 파생상품도 마찬가지다.
3. 금융업 종사자들의 욕심은 죄가 아니다. 하지만 권장할 것도 아니다.
흔히 금융시장을 가장 완벽한 완전경쟁 시장이라고 말한다. 무한에 가까운 플레이어의 수,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공개되는 정보, 실시간에 가까운 거래속도, 0에 수렴하는 거래비용 등. 하지만 겉보기에 그렇다뿐이지 금융시장 역시 복잡한 룰과 시스템, 기득권과 수많은 면허제도가 얽혀있는 내부자들의 게임이다. 그 룰과 시스템이 복잡해질수록 내부자들과 꾼들이 불로소득을 챙길 여지가 커진다.
인터넷 주식거래 프로그램으로 주문을 넣으면 우리 일반인의 눈에는 그게 실시간으로 공정하게 체결되는 것 같겠지만, 밀리세컨드와 마이크로세컨드의 기준으로 보면 어마어마한 시차와 허점이 있다. 이것은 공정한 자유경쟁 시장이 아니다. 비전문가의 눈에만 공정해 보일 뿐이다.
물론 [플래시 보이스]의 마이클 루이스는 초단타매매회사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나도 동의한다. 그들은 정부에 의해 주어진 규칙과 금융시스템을 열심히 공부하고 이를 잘 이용해가면서 이익을 극대화하는, 아주 이성적인 장사꾼일 뿐이다.
문제는 금융이라는 것이 그렇게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경쟁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금융은 상하수도나 전기, 대중교통과 같은 사회의 인프라로서 출발한 산업이다. 근본 목적은 경제 안에서 돈이 잘 돌도록 하는 것이다. 대중교통 시스템의 존재 목적이 사람을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듯이, 금융시스템의 존재 목적은 돈이 남는 곳과 돈이 필요한 곳을 연결해서 자본이 원활히 흐르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런 원래의 목적 달성과는 상관없이, HFT 같은 기생충적인 사업모델을 가진 집단이 가져가는 몫이 전체 시장의 50% 이상으로 커지게 되면 그 제도를 손봐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금융이 자유경쟁 시장이라는 환상은 깨져야 한다. 트레이딩이 신성한 개인의 권리라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애초에 화폐라는 금융거래의 미디엄은 시장경쟁의 산물이 아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만들고 수량과 흐름을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금융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가 필요하다. 금융은 공공인프라다. 금융이라는 혈관을 통해서 사회의 가치가 잘 흐르고 있는지 볼 수 있도록 투명성을 높여야 하고, 지나친 수익을 올리는 금융업체 혹은 개인은 과감하게 규제 혹은 과세해야 한다. 업계 사람들이 금융시스템 선진화니 자유경쟁이니 효율적인 시장이니 어쩌고 하면서 우는소리 한다고 봐줄 필요가 없다. 원래 도박판에서도 눈치 없이 너무 많이 따가면 문밖에서 두드려 맞는 법이다.
엄청난 글입니다. clap clap clap
정말~ 덕분에 좋은 글 읽어보네. 이런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할지.. 일단 가볍게 떠오른 방향은 이런 종류의 수익을 당연히 공공연하게 인정하고 투명하게 공개되는 환경을 만들고.. 공정하게? 세금을 굉장히 크게 물려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ㅎ
시장에서 돈만 빼가고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매매네요. 좋은글입니다. 빨리 초단타 매매를 막거나 해도 손해가 가도록 하는 법안이 생겨야겠군요
저는 초단타매매자 였습니다. 단타매매는 싸게 사서 비싸게팔아 차익을 남기는 돈벌이 방법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세상에 모든 물건은 이런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에 불법도 아니고 세금을 더 매길 수도 없습니다. 다만 한국에서는 불공정거래로 걸 수는 있겠습니다만 관련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그정도의 관심과 열정이 있을지 의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