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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 진보넷에서 활동하는 신훈민 변호사는 2015년 4월, 세월호 1주년에 즈음해 집회에 나갔습니다. 그로부터 5개월여가 지난 2015년 9월의 어느 날, 신 변호사는 경찰 전화를 받습니다. 집회와 관련해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서에 나와 조사를 받으라는 전화였죠.

어떻게 하면 ‘제대로’ 조사받을 수 있을까? 세월호 집회 피의자 신분으로 변호사가 직접 쓰는 경찰 조사 체험기. 이 생생한 체험담이 유사한 일을 겪을 수도 있는 독자께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1. 변호사 님은 달라요? 
  2. 경찰 조사에 앞서 준비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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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번호다. 받을까 말까. 변호사니까 받아야지. 사건 의뢰일수도 있다.

“여보세요?”

“신훈민 씨죠?”

“네 맞습니다.”

“OO 경찰서입니다. OOO 수사관입니다.”

“(응? 웬 경찰? 보이스피싱?) 아, 네. 무슨 일이시죠?”

“4월 11일에 세월호 집회 나가셨죠? 블라블라블라. 경찰서에 와서 조사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목소리가 좀 익숙한데… 혹시 예전에 OO경찰서에 오거나 저랑 통화한 적이 있으신가요?”

“전화 한 적 없습니다. OO 경찰서에는 접견 때문에 간 적은 있어도 조사 받으러 간 적은 없는데요. 그리고 4월이면 5개월 전인데, 기억이 안 납니다. 제가 피의자인 건가요?”

“아. 전화를 많이 하다 보니 착각했나 봅니다. 네. 피의자입니다. 그런데 혹시 변호사신가요?”

“네.”

“하하하. 그럼 더 잘 아시겠네요. 해산명령불응으로 조사 받으셔야 합니다.”

“하하하. 해산명령불응이요? 흠, 알겠습니다. 언제 갈까요?”

“이번 주는 O요일, O요일 가능합니다.”

“이번 주는 시간 안 되니까. 다음 주에 가겠습니다. 화요일 오후 어떠신가요?”

“네 좋습니다. 그날 뵙죠. 지능팀으로 오셔서  OOO 수사관을 찾으시면 됩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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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지?

전화 끊었다. 사건 의뢰가 아니고 경찰 출석 요구라니. 올해 4월이면 5개월 전이다. 4월에 뭘 했는지 하나도 생각 안 난다. 그 날 집회 가기는 했나? 잠시 고민하다가 급히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잊었다. 점심 먹고 진보넷 사무국 회의 시간에 살짝 언급했다. 활동가들이 신났다.

“집회 나가서 뭐하고 다니길래 사진을 찍혀요?”

“전 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 집회 나갔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진만 들고 이름, 전화번호, 주소를 어떻게 알았대요?”

“잘 모르겠습니다. 제 추측입니다만, 여러 집회 장소 주변의 기지국을 털어서 전화번호를 확보하고 중복되는 번호를 뽑아서 전화번호 확보하고 이름, 주소 등을 파악해 나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진보넷에서 문제 제기했던 기지국 수사죠. 뭐, 정보과 형사들이 제 얼굴을 알고 있었을 수도 있고요.”

“경찰 리스트에 올라간 것 축하해요.”

“설마요. 하하하.”

“조사받으러 갈 때 변호사 대동할 거예요? 진술해요? 묵비해요?”

“고민 중입니다.”

Daniel Lobo, CC BY
Daniel Lobo, CC BY

곰곰이 생각해보니 집회 나가서 별일 하지도 않는데, 왜 내가 조사를 받아야 하는지 짜증이 났다. 생각하면 할수록 짜증은 커졌다. 경찰 조사받으러 가서 확 뒤집어 버릴까. 세월호 집회 나가면 어때서? 그날 집회에 갔었는지, 해산명령을 들었는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날 어쩌겠다는 거지?

검찰 단계에서 불기소로 끝나는 것보다 기소당하고 법원에서 싸우면 좋겠다.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처벌받으면 어떠리. 당당하게 싸워야지. 주변 지인들한테도 떠들어댔다. 이런 부당한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처벌받더라도 끝까지 싸워야지 그냥 넘어가지 못하겠다고.

부당하다 분하다 잘못 없다 

하루가 지났다. 어제 상황을 찬찬히 복기했다. 변호사 신분으로 집회시위 도중에 경찰서로 연행된 분들을 접견 가면, 적지 않은 분들이 어제 나와 같은 모습을 보였다.

‘부당하다. 분하다. 잘못한 것이 없다. 정당하니까 다 말하고 끝까지 싸우겠다.’

대개 그리 말씀하신다. 분하고 부당하더라도 되도록 일단은 진술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씀드린다. ‘지금 혐의를 벗어야 하는데, 진술하는 것이 도움되기보다는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경찰은 여러분의 무죄를 입증해주는 사람들이 아니다. 법원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서 다투는 것이 좋다’고 말씀드린다.

불안 분노 걱정 사람 여자

어제는 나도 열이 받은 상태였다. 차분히 앉아서 피의자로서 어떤 자세로 조사를 받는 것이 좋을지 고민했다. 최근 집회시위 관련해서는 검찰이 대부분 기소하기 때문에 진술해봐야 경찰과 검찰을 도울 뿐이지 나한테 좋을 것은 없다. 진술을 거부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이 사건 무죄를 확신하고 있다.

조사를 잘 받으면 기소 안 되고 그냥 끝나지 않을까? 조사받는다고 경찰, 검찰을 오가는 것도 일이고, 법원에서 싸우면 시간 많이 걸린다. 접견 가서 피의자들에게 변호사로서 했던 이야기들과는 달리, 나는 진술해도 되지 않을까?

진술할 것인가, 묵비할 것인가 

내 주변에 가장 흔한 직업군이 변호사다. 전화했다.

“OO 변호사님, 저 훈민입니다. 통화 가능하신가요?”

“오. 신변. 무슨 일이에요?”

“집시법 위반 때문에 전화했습니다. 블라블라블라… 진술하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묵비할까요?”

“음.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신변이 맡은 사건인가요?”

“제가 피의자입니다.”

“(ㅋㅋㅋ) 어쩔… 블라블라블라”

“네, 감사합니다.”

변호사들 의견이 나뉜다.

  1. 그 정도면 진술해도 무방할 것 같다.
  2. 그래도 묵비하고 법정에서 다투는 게 좋다.
  3. 유리한 정황만 진술하고 나머진 묵비해라.

회의 논의 상의 조언

‘너도 변호사면서 고작 집시법 위반으로 경찰 조사받는 걸로 주변 변호사한테 연락하느냐’고 물을 수 있다. 이해한다. 그런데 경찰에서 전화 받은 날 엄청나게 열 받았다. 사건의 당사자가 되면 판단이 흐려진다.

변호사가 아닌 사람보다 조금 나을 수 있겠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피의자면 피의자답게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어지간하면 변호사의 조언을 따르는 것이 좋다. 내 사건에서 변호사의 다수 의견은 ‘진술을 거부하는 것이 좋겠다’ 였다. 그래도 고민했다. 일단 다수 변호사의 의견을 좇아 진술하지 않기로 했다.

혼자 조사받기로 한 이유 

몇몇 변호사들이 경찰 조사를 받으러 갈 때 동행하겠다고 연락했다. 무척 감사했지만(수첩에 기록해두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사는 혼자 받겠다고 말씀드렸다. 해산명령불응으로 조사받으니 그리 심각한 상황이 아니기는 하다. 초범이니 유죄라고 해도 50만 원 이하의 벌금이겠지?

그러나 범죄가 어떠하든지 조사받을 때는 변호사와 함께 가야 한다. 경찰 수사관은 프로다. 어떻게든 문제점을 찾아낸다. 게다가 경찰이 가득한 곳에 혼자 앉아서 조사받으면 위축될 수밖에 없다. 괜히 사람 기분 나쁘게 하는 이상한 경찰도 있다. 자존감이 위협당하는 지저분한 경험이다. 변호사와 같이 갈 수 있다면 같이 가는 것이 무조건 좋다.

하지만 굳이 혼자 조사를 받겠다고 한 것은, 집회시위 과정에서 연행된 많은 시민이 혼자 조사를 받기 때문에 나도 같은 상황에서 조사를 받고 싶었다. 담당 수사관이 내가 변호사라는 사실을 아는 상황이니 별 의미 없을 것 같았지만, 혼자 조사를 받을 때 어떤 기분이 들지도 궁금했다.

사람 소녀 여자 혼자 고독 여행

변호사’님’하고 달라요?

조사받을 때 기분이 어떨지 궁금해서 집회시위 관련해 다수의 재판을 받고 있는 활동가를 만나 물었다.

“조사받으면 어때요? 익숙해져요?”

“그거 안 익숙해져요.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앉아 있는데, 경찰은 그냥 단순한 일거리예요. 사무적이랄까. 이 사람과 왜 문답을 해야 하는 거지. 나는 이런 사회에 너무 화가 나는데 어떻게 이 사람은 이렇게 사무적으로 물어보는 거지? 경찰도 지네들 일을 하는 거니까 싶으면서도, 그런 상황 자체가 화가 나요. 몇 번을 조사받아도 적응이 되지 않아요.”

“적응이 안 되는 거군요. 그런데 저는 너무 억울해요. 제가 뭘 잘못했다고 오라고 하는 것이죠? 해산명령불응도 말이 안 돼요. 제가 변호사인 것 알고 부른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일반 시민들한테도 이러는 것 아니에요? 5개월 전 집회에서 뭘 했는지 어떻게 기억해요? 아무것도 안 했으니 기억이 안 나죠. 기껏해야 증거라고 당시 있었던 사진 한 장 보여줄 것 같은데요.”

“훈민 씨도 접견 가봤잖아요. 집회시위로 연행된 사람들 다 그래요. 아무 잘못도 안 하고 경찰 조사받으러 가요. 변호사’님’하고 달라요?”

“아뇨, 같아요. 그 사람들하고 저하고 다를 것이 없죠. 다를 것 없죠. 아효… 그리고 변호사 없이 가도 되겠죠?”

“많은 시민이 혼자서 조사받아요. 훈민 씨는 변호사니까 이번에 혼자 가는 것도 좋은 경험일 거예요.”

시민이 누려야 하는 많은 권리가 있다. ‘중고딩’ 때 학교에서 시민의 권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니 알 수가 없다. 기껏해야 납세와 국방의 의무 정도 알고 졸업할까?

교실

영어 같은 과목을 미친 듯이 가르칠 게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으로서 어떠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야 한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 알아야 하는 것은 법이다. 진술하지 않을 수 있다.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 대한민국헌법과 형사소송법에 적혀 있는 권리다.

이러한 권리를 행사한다고 하여 비난해서는 안 되며 어떠한 불이익도 있어서는 안 된다. 수많은 사람이 국가에 맞서서 목숨과 맞바꿔 구현해낸 권리다. 변호사와 함께 갈 것인가를 놓고 계속 주저한 것도 ‘내가 이 권리를 포기할 수 있는가’라는 고민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가기로 했다. (다음 편에 계속)

인권 자유 권리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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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헌법 제12조

②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④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다만, 형사피고인이 스스로 변호인을 구할 수 없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가 변호인을 붙인다.

헌법재판소 2004. 9. 23. 선고 2000헌마138 결정

(…) 불구속 피의자의 경우에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우리 헌법에 나타난 법치국가원리, 적법절차원칙에서 인정되는 당연한 내용이고 (…) 피의자·피고인의 구속 여부를 불문하고 조언과 상담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변호인의 조력자로서의 역할은 변호인선임권과 마찬가지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의 내용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다.

형사소송법

제243조의2 (변호인의 참여 등) ①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피의자 또는 그 변호인·법정대리인·배우자·직계친족·형제자매의 신청에 따라 변호인을 피의자와 접견하게 하거나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피의자에 대한 신문에 참여하게 하여야 한다.

제244조의3(진술거부권 등의 고지) ①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피의자를 신문하기 전에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알려주어야 한다.
1. 일체의 진술을 하지 아니하거나 개개의 질문에 대하여 진술을 하지 아니할 수 있다는 것
2. 진술을 하지 아니하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아니한다는 것
3. 진술을 거부할 권리를 포기하고 행한 진술은 법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
4. 신문을 받을 때에는 변호인을 참여하게 하는 등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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