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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8일 어버이날이 끝나갈 무렵 유명 공동구매 게시판에는 폭풍이 불어닥쳤다.

사건의 발생

글로벌 기업 델(Dell)에서 공급하는 24인치 LCD 모니터(모델명 U2412M)를 평소 가격 29~30만 원대가 아닌 13만 원 정도에 구입이 가능하다는 상품정보가 게시되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이 제품은 델 본사 홈페이지에서 정상가 545,600원에 특별 할인 금액 227,700원 적용해 317,900원에 구매가 가능한 것으로 나와 있었다. 그러다가 온라인 공동구매 커뮤니티인 뽐뿌에서 핫한 구매정보가 등록되는 뽐뿌 메인 게시판에 가격이 더 추가 할인 방법을 알려주는 등록되었던 것.

뽐뿌에 이 정보를 올린 게시자는 해당 상품 정보를 공유하는 동시에 자신이 올린 방법으로는 하루만 구입 가능하다는 말도 함께 했고, 많은 사람이 결제를 했다.

뽐뿌에 올라온 델 모니터 핫딜 정보

사건의 흑과 백

우선 델 코리아 해당 제품의 가격명시에도 뽐뿌의 구매자가 등록한 상품정보에도 실제 가격이 136,400원으로 표시된 적은 없다. 그러나 ‘오늘의 특가 온라인 특별할인 쿠폰코드’를 넣으면 이미 할인된 가격 317,900원에서 181,500원이 더 빠져 136,400원으로 계산이 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델 코리아는 해당 제품을 판매할 때 그 주의 할인가격이라는 ‘특가’와 그날에만 해당하는 ‘특별할인가’ 둘 중 하나를 제품 판매에 적용해왔다. 그러다 해당 상품에 쿠폰이 추가 적용되는 행운(?)이 구매자의 눈에 띄게 된 것이다.

해당 제품은 가격과 성능이 호평을 받을만한 급은 아니었다. 해상도와 기능을 따져보면 2015년 5월에 구매하기에는 빛이 바랜 급이었으며 가격 또한 30만 원 대로 사기에는 싸지 않았다.

그러나 델 코리아 공식 홈페이지에서 기본적으로 할인된 가격에 쿠폰을 추가로 적용하기만 하면 누구나 쉽게 추가 할인된 가격이 되니 그쯤 되면 제품의 성능과 관계없이 터무니없이 싼 맛이 제품의 강점이 된 것이고, 그렇게 사람들은 대란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델 모니터 결제 과정 예

5월 9일이 되면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던 소동은 뜻밖에 9일이 되고 10일이 되어도 사라지지 않았고 그렇게 델 코리아의 모니터는 주말을 통해 계속 주문이 쌓여갔다. 주말 내내 이어지는 ‘델 모니터 대란’을 보며 주문자도 구경꾼도 모두 과연 주문이 진행될 것인지 아닌지 또 다른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러나 주문은 성사되지 않았다.

월요일 오전이 돼서야 주문이 전량 취소가 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많은 사람이 ‘그러면 그렇지’ 하는 식의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몇몇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지만 몇몇 목소리 큰 구매자들은 정신적 피해보상을 주장하거나 사은품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등의 의견을 표해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 서비스에서 그 분노를 고스란히 토해 또 다른 토론의 장을 열기도 했다.

델 온라인 팀의 사과 문자

실수에 접근하는 여러 주체

이 사건이 흥미로운 이유는 실수인 것으로 보이는 어떤 사건에 대해 대처하는 각 주체의 심리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실수 대처에 미비한 글로벌 기업
  • 뭔가 이상하다(업체의 실수일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틈새 이익을 노린 구매자들의 꿈
  • 사실 확인 없이 핫 이슈를 노리는 언론의 책임

델 코리아는 공식 보도자료를 내지 않고 고객센터 문의를 통해서만 시스템 오류로 발생한 제품의 주문 취소 및 환불 절차를 진행한다고 소극적으로 밝혔다. (현재는 델 온라인 스토어에 사과문을 게재해 알리고 있다.)

모든 구매자가 업체의 실수일 것이라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커뮤니티 뽐뿌는 이런 식의 할인과 관련한 정보에 밝은 사람들도 많고, 실제 댓글에서도 ‘과거 델에서 가격을 잘못 알렸을 때에도 그대로 보내준 적이 있었다’는 식의 댓글을 달 정도로 여러 사례를 아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이른바 ‘델 모니터 대란’에 대해 성급한 목소리를 낸 것은 정작 실망한 구매자보다 이를 소재로 성급한 보도를 한 언론이었다.

미디어들, “글로벌 기업이 이럴 수가” 분노 폭발…?

델 모니터 대란을 다룬 뉴스들

다음(Daum) 뉴스에서도 톱(Daum Top)으로 꼽은 국민일보의 기사를 비롯해 10여 개가 넘는 미디어가 ‘델 모니터 대란’을 다뤘다. (다음 뉴스 검색 기준) 많은 기사의 논조는 델이 잘못했고, 네티즌들은 분노했다는 것이었다. 제목을 몇 개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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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일보 – ‘델 모니터 대란’ 우려가 현실로.. “글로벌 기업이 이럴수가” 분노 폭발
  • 쿠키뉴스 – 40만원 쌌던 델 모니터 대란에 인터넷 부글부글
  • 미디어잇 – ‘모니터 대란’으로 체면 구긴 델, 소비자도 ‘허탈’
  • 소비라이프 – ‘델 모니터 대란’ 시스템 오류로 주문취소…뿔난 소비자들
  • 경기일보 – 델 모니터가 13만6천원? ‘델 모니터 대란’ 오류에 뿔난 소비자들
  • CBC미디어 – 델, ‘모니터 대란’ 일방 취소…아마존과 비교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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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네티즌들이 델에게 속았다는 탄식을 하고, 소비자들은 분노를 하며 소송을 하겠다는 움직임을 전하기도 한다.

이런 기사에 달린 댓글은 그에 비하면 차분하거나 기사의 톤을 지적한 것들이 상당하다. 옮겨보면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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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가 화가 많이 났네”
  • “도대체 어디서 누가 폭발했다는 건지… 이 글 최초 올라왔던 게시판에도 ‘역시 취소구나. 아쉽네요.’ 이런 글 밖에 없었는데… 기자야 네가 폭발했구나.”
  • “상식적으로 갑자기 저정도 할인할 리가 없잖아? 아쉽지만 폭발할 것까지야…”
  • “기자도 하나 주문했었나봐요ㅋㅋ”
  • “기자가 거지근성이 있네. 실수한거가지고 무슨 분노씩이나. 다들 실수인거같긴한데 밑져야본전이니까 일단 주문이나 해보자 하고서 산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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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델이 한국을 만만하게 봐서 그러는 것이니 본때를 보여주자는 댓글도 있고, 진화한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댓글도 있다. 이런 게 한국에서나 통하지 외국에서는 오류도 이벤트라거나 한국 소비자는 기업이 가지고 놀기 좋다는 한국 호구론을 펼치기도 한다.

비정상적인 것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물론 분노한 한 트위터 이용자가 ‘소리를 질러서 해결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하는 걸 보면 저 기사들이 전혀 없는 내용을 적은 것 같진 않다.

델 관련 트윗

3일 동안 별다른 대응을 취하지 않다가 소극적인 태도로 고객센터를 통해서만 취소를 공지하는 대기업의 소비자 서비스는 기업 브랜드에 맞지 않는 수준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류 혹은 비정상적인 상황인 것을 짐작하면서도 구매를 강행했고, 그 구매가 취소되자 정신적 피해보상 운운하며 콜센터 직원을 전화로 괴롭히고 온라인에 폭언을 쏟는 구매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진상 갑질? 소비자는 왕이다?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

마지막으로 이런 소동을 성급한 보도로 발행해 먹지 않아도 될 욕을 먹고 마는 기성언론의 모습을 보자. 오늘도 우리는 인간적인 실수 뒤에 따를 수 있는 용서나 화해 혹은 배려를 기대하다 욕설과 서로에 대한 실망의 흔적만 남긴 셈이다.

[box type=”info” head=”현실적으로 따져보면?”]
(1) 참고로 기업이 해당 가격으로 판매할 의사가 없으면서도 마치 싼 가격으로 특정 물건을 판매할 것처럼 소비자에게 광고하는 경우 이는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서 금지하는 거짓광고(허위광고)에 해당하며, 시정조치 및 과징금 부과,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2) 현재 델코리아 홈페이지 하단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표시되어 있다.

“Dell은 가격표시, 재고여부 및 기타 사항에 대한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지만, 의도치 않은 오류가 때때로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당사는 이같은 오류에 기반한 주문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위 조항을 변호사에게 문의해 보았다. 위 조항을 따르면 델코리아는 고객과 이미 체결한 구매계약을 일방적으로 취소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델코리아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항이므로 약관규제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해당 조항(판매자의 일방적 주문 거절)은 무효로 판단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3) 그렇다고 해서 구매자의 모든 주장이 받아들여져서 델코리아가 반드시 모니터를 배송해야만 한다거나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할 가능성이 높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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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1. 딴 얘기긴 하지만, 준전문가급으로도 쓰이던 델 울트라샤프가 좀 연식이 됐다고 성능면에서 호평받을 게 없는 제품으로 취급받을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요. 물론 저 화면크기로는 50엔 못사고 30도 고민되는 가격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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