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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 단독] 유민 외할머니 “사위 뭐하든 신경 안 쓴다”

[앵커]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가 이혼한 뒤 유민이 자매를 키워온 것은 외할머니였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 외할머니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논란에 대한 진실을 가장 잘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유민이 외할머니를 이채림 기자가 단독으로 만났습니다.

[리포트]
경기도 안산의 한 연립주택.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김유민 양이 외할머니 이모씨, 여동생 유나 양과 함께 살던 집입니다.

할머니는 공사 현장 페인트칠 등을 하며 두 손녀를 키워왔습니다. 유민이가 숨진 뒤에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그마저도 그만뒀습니다.

이모씨 / 김유민 양 외할머니
“일은 내가 뭔 일을 해 힘들어 죽겠는데. 예전에나 했지. (요즘에는 안하세요?) 못하지.”

때문에 관리비도 그즈음부터 내지 못했습니다. 조용하던 이씨는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의 얘기가 나오자 흥분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모씨 / 김유민 양 외할머니
“(유민이) 아버지가 사위인데, 나하고는 아무 관련 없어.”

40일간 이어진 김씨의 단식 소식을 묻자 퉁명스런 대답만 돌아옵니다.

이모씨 / 김유민 양 외할머니
“(단식) 하든지 말든지, 난 그거 신경 안 써.”

같은 빌라에 8년 이상 같이 산 인근 주민들은 김 씨가 딸들을 찾아 온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웃 주민
“(엄마는) 같이 안 사는 거 같고 가끔 오는 거 같던데. 아빠는 모르겠는데… 없는 건지, 있으면서 바빠서 안 오는 건지.”

세월호 사고 이후 작은 손녀 유나 양마저 집을 떠나 세 식구가 살던 집엔, 할머니만 혼자 남았습니다.

TV조선 이채림입니다.

“단독”이라는 ‘특종’ 딱지가 붙은 이 짧은 보도(전문, 이하 ‘해당 보도’)는 ‘유민 아빠’ 김영오 씨를 둘러싼 논란의 문제점을 모두 함축한다. 결론을 말하면, 이 논란은 언론이 다룰만한 의제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점에서 ‘가짜’ 논란이다.

세월호 특별법 문제를 김영오 씨 사생활 문제와 연계해서 다루고 있는 조선일보 기사들
세월호 특별법 문제를 김영오 씨 사생활 문제와 연계해서 다루고 있는 조선일보 기사들

1. 근거도 없는 사생활 폭로를 ‘단독’ 보도하는 ‘1등 언론’

해당 보도에서 앵커는 “유민이 자매를 키워온 것은 할머니”라면서 “어쩌면” “모든 논란에 대한 진실을 가장 잘 알고 있을 수 있”다고 전제한다. 간단히 말해서 있을 수 없는, 있어서도 안 되는 보도 방식이다.

우선 앵커도 독자(시청자)도 무엇이 논란인지 아무도 모른다. ‘단독’이 붙은 이 보도를 통해서 독자는 그저 막연하게 한 개인의 사생활, 그것도 “어쩌면”이라는 단서를 단 리포트를 통해 누군가의 사생활을 ‘관음’하는 시선으로 따라가게 된다. 심지어 여기에는 ‘이웃 주민’이라는 그 사생활과는 전혀 상관없는 무책임한 ‘관찰자’까지 그럴듯한 취재원으로 둔갑해서 등장한다.

김영오라는 한 개인이 이혼 뒤에 그 자식을 보살폈는지 보살피지 않았는지 여부를 확정하는 문제가 대한민국 ‘1등 언론’이라는 곳에서 ‘단독’이라는 거창한 특종 딱지를 붙여 하는 의제인가? 만약에 여기에 그렇다고 답한다면 ‘바보 선언’이다. 혹여 당신이 그렇게 ‘착각’했더라도 이 보도의 관점이 잘못된 관점이라는 건 1분만 차분하게 생각하면 저절로 알 수 있다.

카메라맨
왜 무엇을 위해서 타인의 사생활까지 들춰내야 하는가? TV 조선의 해당 보도는 그 ‘왜’가 빠져있다. 혹은 숨기고 있다. (사진: JunoNamkoongLee, CC BY ND)

2. 진짜 논란을 숨겨라 

TV조선 해당 보도에서 ‘생략된’ 논란의 정체는 무엇인가. 당연히 세월호 특별법이다. 앞서 밝혔듯 김영오라는 개인의 사생활이나 부양의무에 관한, 사실도 확정하지 못한, 보도를 대한민국 국민이 고민할 필요는 없다.

그러니 앵커가 말하는 ‘논란’이 김영오라는 한 개인의 사생활 추적이라면, 그 자체로 ‘쓰레기 언론’으로서 커밍아웃한 셈이고, 세월호 특별법 논란의 ‘진실’을 김영오라는 사생활 추적과 연계한다면 그 역시도 결론은 같다. TV 조선 해당 보도의 마지막 리포트 멘트를 보자.

“세월호 사고 이후 작은 손녀 유나 양마저 집을 떠나 세 식구가 살던 집엔, 할머니만 혼자 남았습니다.”

감상적인 휴머니즘으로 위장한 이 언술이야말로 세월호라는 공적 의제를 한 개인의 ‘사생활’ 혹은 ‘한 할머니의 소외’로 둔갑시키는 전략적 언어에 다름 아니다. 물론 그 수준은 아주 저급하다.

세월호 특별법. 해당 보도에선 단 한 줄도 단 한 단어로도 표현되지 않는 ‘진짜 논란’의 정체는 세월호 특별법이다. 그래서 진짜 논란의 시작과 끝은 세월호 특별법을 어떤 모습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입안하고, 국회를 통과하게 해 제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즉, 세월호 사태를 우리 사회가 어떤 방식과 절차를 통해 합리적으로 해결할 것인가이다.

세월호 사건 후속 조치 현재 상황

세월호 특별법과 김영오라는 개인의 사생활 혹은 그가 아버지로서 해왔던 부양의무 이행 여부를 추적해서 무책임하게 폭로하는 일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런 가짜 논란을 우리는 ‘가십’이라거나 ‘해프닝’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런 가짜 논란을 만드는 언론을 네티즌은 흔히 ‘기레기’라 부른다.

3. 세월호 특별법 토론하기 vs. 사생활 캐기

유민아빠 김영오 씨는 세월호 특별법 유가족 안을 상징하는 인물인 건 맞다. 더불어 40일 동안,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의지로 세월호 특별법을 상징하는 인물로 부각한 것도 맞다. 하지만 김영오 씨의 단식 투쟁은, 그 방법론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와는 상관없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담은 세월호 특별법(유가족 안)을 관철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김영오 씨의 사생활과 부양의무 등이 세월호 특별법의 정당성과 무관한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세월호 특별법은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을 우리 사회가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한 우리 사회의 ‘숙제’다. 그런데 쟁점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인정할 것인지 여부다. 달리 말하면 유가족 안을 수용할 것인지에 관한 ‘싸움’이다. 이 싸움에서 수사권과 기소권 포함을 지지하는 편이 있고, 그 반대편이 있다.

그런데 유가족 안을 반대하는 편에서 ‘유가족 중 누구누구는 얼레리 꼴레리’라고 법안을 공격한다고 치자. 이런 자와 상대해야겠나. 이런 자와 대화해야겠나. 그런 자가 있다면 세월호 특별법 논의 테이블에 올라올 자격이 없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 TV 조선의 해당 보도는 여기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싸움의 상대방으로 인정해야 하는 때가 있고, ‘논외’로 쳐야 하는 때가 있는 법이다. ( ‘애들은 가라’는 표현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세월호 특별법은 더군다나 정략적인 당파의 이해를 떠나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의제다. 어떤 특정한 진영에 속한 일 개인의 도덕성이나 사생활로 그 법안에 관한 판단을 달리해야 하는 안건이 전혀 아니라는 말이다.

‘기업의 이익보다는 사람의 목숨이 우선이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자.’

‘유민아빠’라는 상징에 담은 가치는 이런 것이다. 더불어 그 가치의 실현 방법은 이런 것이다.

‘세월호 특별법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담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유민아빠’와 김영오 씨는 서로 별개의 존재다. 이는 김영오 씨가 그저 어떤 사회적인 싸움의 도구와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김영오 씨의 실천과 투쟁을 재료로 시민들의 마음과 마음이 더해져 만들어진 ‘유민아빠’는 자연인 김영오 씨와는 또 다른 존재로서의 상징이라는 의미다. 즉, ‘유민아빠’라는 상징을 만들어낸 것은 김영오 씨를 포함한 그 상징의 가치를 지지하는 다양한 성원으로서의 시민이지 김영오 씨 개인이 아니다.

조선일보 2014년 8월 21일 1면 '세월호'에 멈춰선 한국 정치
조선일보 2014년 8월 21일 1면 ‘세월호’에 멈춰선 한국 정치

4. 어떤 ‘순수함’ 혹은 ‘이율배반’에 관하여

그러니 상징과 그 상징을 표현하는 ‘한 개인'(김영오 씨)을 같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그러면 왜 싸우는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놓치는 우를 범하기 쉽다. 우리는 ‘그 개인’을 위해 연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 상징에 담긴 ‘가치’를 위해 연대할 뿐이다.

그런데 흔히 어떤 싸움이 일어나면 반대 진영에선 어떤 상징의 가치를 부정하는 대신에 그 상징을 표상하는 한 개인을 공격한다. 그렇게 하면 그 상징 전체의 정당성을 공격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그 ‘싸움’을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잘못된 관점과 시각을 덧씌운다. 멀리 볼 것 없다. 조선일보를 보라.

더불어 어떤 기치를 걸고 싸우는 사람이 있을 때 우리는 흔히 그 사람이 완전무결한 ‘성인’이길 원한다. 스스로는 전혀 그렇지 않으면서도 그런 걸 원한다. 이상헌 박사는 사람들이 ‘정의’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이율배반’을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파면 다 나온다. 앞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다층성, 입체성을 말했는데, 생각해보라. 자식을 잃고, 부모를 잃은 그런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인간 내면에는 단 1%라도 속물적인 생각들이 머물 수 있다. 당장 장례는 어떻게 치를까, 부족한 장례비용은 어떻게 충당해야 하지, 그게 인간이다. 누구나 그렇고, 그건 당연한 거다.

한국 사회가 ‘정의’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율배반적이다. 자기 자신은 전혀 그렇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에게는 “순수한 슬픔”, “순수한 마음” 같은 걸 강요한다. 이율배반이다.

정부 일각과 여당, 그리고 일부 언론에서도 세월호 유가족을 ‘슬픔을 위장한 이익집단’인 것처럼 본다. 그런 시선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런 것들을 통틀어 인간에 대한 예의가 부족하다.

– 이상헌, 편지 쓰는 경제학자가 바라본 세상 중에서

어떤 싸움을 상징하는 인물이 있다고 치자. 그 인물이 김영오 씨와 같이 세월호 유가족을 (적어도 대중적 인식의 차원에서는)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라고 치자. 그런데 그 싸움과는 무관하게 그 사람의 사생활이 문란하고, 도덕적으로 비난받을만한 삶을 살아왔다고 한다면, 당신은 그 사람에 관한 실망 때문에 그 사람을 ‘그릇’으로 삼아 담았던 당신이 추구했던 가치를 그 순간 포기할 것인가?

세월호 특별법 문제를 '막말' 논쟁으로 막장화하는 대한민국 언론
세월호 특별법 문제를 ‘막말’ 논쟁으로 막장화하는 대한민국 언론

5. 우리 모두는 이미 유민아빠다 

김영오 씨 개인에 관한 사생활 들추기 식 보도를 ‘단독’이라는 특종 딱지 붙이며 퍼뜨리는 언론이 ‘1등 언론’을 자처하는 대한민국의 언론 환경은 건강하지 않다. 확실히 이런 현상은 병적이라고 부를만한 ‘비정상의 정상화’를 상징한다고 나는 판단한다.

김영오 씨뿐만 아니다. 그리고 조선일보뿐만 아니다. 다양한 언론 매체들에서 ‘논란 없는 논란 만들기’ 현상을 가속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제를 가치 없는 한 개인의 ‘가십’과 ‘해프닝’으로 만들려고 일 년 365일 지속적이고, 조직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세월호와 관련해 이런 현상은 대한민국 시민사회를 향해 그러니 당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이렇다.

‘김영오 씨는 당신이 추구하는 세월호에 관한 정의를 대신하는 존재인가?’ 

들풀(Deulpul)은 ‘스타’를 내세우는 각성 방식의 맹점을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스타를 만들고 추종하는 형태의 각성 방식은, 각성의 폭과 깊이는 둘째 치더라도 스타가 물리적으로 사라지거나 윤리적으로 정당성을 잃는 순간 덩달아 일거에 물거품이 된다. 정치적 열정의 채널이 개인에게 물려 있기 때문이다. 스타가 물리적으로 사라지면 허상을 만들어 쫓아야 하고, 윤리적으로 정당성을 잃으면 어거지 합리화를 해야 한다. 이것은 시민적 열정을 쉽게 좌절시키거나 변질시키기에 딱 좋은 구조다. 스타를 따라다니며 사인을 받는 것으로는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무언가 의미 있는 변화를 진실로 추구한다면, 사인을 받는 게 아니라 자신이 사인을 하러 나서야 하는 것이다.”

– Deulpul, 저항과 연대를 노래하는 사람들 중에서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김영오 씨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담아야 한다는 세월호 특별법의 정당성을 우리 대신 성취하거나 실현하는 사람이 아니다. 왜냐하면, 세월호에 있어 우리는 모두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누가 우리를 대신할 수 없는 문제다. 유민아빠는 좀 더 안전한 대한민국, 좀 더 강력한 재발 방지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마음과 마음이 모아진 하나의 상징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민아빠’라는 상징은 김영오 씨만의 소유물도 아니고, 그를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는 상징도 아니다. 달리 표현하면, 유민아빠라는 상징은 김영오 씨의 개인적인 사생활과 그 과거의 행적들로 인해 처분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당신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세월호 특별법에 담아내야 한다고 믿는다면, 그것만이 확실하게 세월호 특벌법의 가치와 목적을 담보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우리 모두는 이미 유민아빠다.

“거꾸로 된 건 너희들이 아니라 우리들인 것 같다. 거꾸로 된 세상에서 살게 해서 미안해.” (글/그림: 최남균) https://www.facebook.com/leepary
“거꾸로 된 건 너희들이 아니라 우리들인 것 같다. 거꾸로 된 세상에서 살게 해서 미안해.”
(글/그림: 최남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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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1.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특히 상징에 대해 말씀하신 부분, “‘유민아빠’라는 상징을 만들어낸 것은 김영오 씨를 포함한 그 상징의 가치를 지지하는 다양한 성원으로서의 시민이지 김영오 씨 개인이 아니다.” 가 와닿았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사건의 현상과 원인, 결과가 아니라 거기로부터 파생된 아이콘에 대해서만 떠들어대는 언론이 보기 싫어 뉴스도 안 봤는데…이렇게 찬찬히 뜯어주고 얘기해주는 분들이 아직 계시는군요.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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