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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지금’의 모습을 투명하게 응시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권력을 바라보는 일이다. 그 권력이 작동하는 통치 구조를 살펴보는 일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강력한 대통령제를 주축으로 하는 정치 체제다. 그래서 대통령은, 그저 제도가 아니라, 우리 삶의 조건이 되는 토양이다.

보통명사 ‘박정희’

그래서 우리는 지나간 시대를 통칭하는데 그 대통령의 이름을 빌려온다. 이승만 시대, 박정희 시대, 전두환 시대, 김영삼 시대, 김대중 시대, 노무현 시대 등은 지나간 시대의 풍경뿐만 아니라 그 풍경을 감싸는 공기를 함축한다. 대통령 이전에는 고유명사에 불과했을 그 이름은 역사 속에서 보통명사화한다.

‘보통명사화’한 대통령 중에서 가장 강력했던, 지금도 여전히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이름을 하나만 뽑아야 한다면 그 이름은 ‘박정희’다. ‘박정희’라는 이름은 해방 이후 현대사에 있어,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강력하게 작용한다.

그래서 그 이름은 단지 과거 한 시대를 지칭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이데올로기 형태를 띠며 아직도 ‘지금, 여기’에 끊임없이 부딪힌다. 그것은 관성으로서의 ‘과거’가 아니라, 그 관성의 시스템이며, 지금 여전히 사회 전체에 스며들어 있는 강력한 담론구조의 핵심이다.

경부고속도로를 배경으로 한 박정희 우표
경부고속도로를 배경으로 한 박정희 우표

1. 반공 정치 이데올로기

반공이라는 한국전쟁 이후 남한을 규정하는 최대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국민들 대다수 의식에 내면화된 시대는 박정희 시대였다. 그것은 남한이 취한 생존 전략이었으며,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박정희 정권이 취한 생존 전략이었으며, 그럼으로써 김일성 주의의 한 대척점이 된다. 박정희 시대의 ‘반공’과 김일성 시대의 ‘주체사상’은 그 본질에 있어서는 같다.

그것은 서로에게 타자였다. 그리고 그 권력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서로 극단적으로 타자화하면서,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 정당성을 구축하면서 공생한다. 그 둘은 서로에게 반대말이 아니라, 마치 서로에서 있어 동전의 뒷면과도 같다.

반지: 구멍과 동그라미

반지는 신비한 물건이다. 반지는 동그라미로 둘러싸인 구멍이다. 동그라미만 있어도, 구멍만 있어도 완전한 반지가 되지 못한다. 남북한은 서로에게 원과 구멍이 된다. 그렇게 울타리(동그라미) 안으로 자기 진영을 결속시키고, 구멍에 무한한 공포와 증오를 쏟아 붇는다. 하지만 그 구멍은 무한하다.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김일성과 박정희는 극히 이례적인 ‘장기 집권’에 성공한다.

동그라미가 결속을 상징한다면, 구멍은 결핍과 욕망을 상징한다. 구멍은 채워지지 않는다.
사진: 영화 ‘반지의 제왕’ 이미지 합성(출처 미상)

나는 홀로 자신을 규정할 수 없다. 나는 남자고, 대한민국에 살며, 특히 서울에 살고 있다…라고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관계‘의 그물망에 내가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그 관계의 의미망에 붙들리지 않고선 나는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내가 나를 세우기 위해선 타자와의 관계를 필연적으로 필요로 한다. 나는 나 홀로 ‘나’일수는 없다.

박정희라는 남한 권력의 가장 강력한 존립근거는 국민이 아니라 북한이라는 존재였다. 그 권력은 자신의 이름과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타자로서 북한을 설정했고, 북한 역시 남한에 대해 그랬다. 남한은 북한을 타자로 설정하고, 자신을 그 타자로부터 소외시킴으로써 주체를 확립할 수 있었다.

짝패: 괴물로부터 자기를 소외시키는 괴물들 

북한에 관한 타자화가 극도로 심화해 정점에 오른 시기가 바로 박정희 시대다. 그리고 이른바 유신체제가 가능했던 건 그 ‘짝패’처럼 북한의 김일성 유일지도 체제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정희의 유신과 김일성의 유일지도 체제(혹은 주체사상)은 짝패를 구성하면서 또 서로 극단적으로 타자화시킴으로써 스스로 정당성을 획득했다.

박정희 시대는, 그 시대 남한은 북한이라는 ‘괴물’로부터 스스로 도피하고, 자신을 소외시킴으로써, 그리고 그 ‘괴물‘을 더욱 흉측하게 만듦으로써 자기 스스로는 빛나고,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으로 포장했다. 그 자기 모멸적인 정당화가 심화할수록 북한에 대한 타자화 역시 가속됐다.

독재자: 혼자 말하는 사람

그 적대적 공생과 타자화로 점철된 야만의 시대가 가능했던 것은 ‘혼자서 말하기‘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남북한은 서로에게 지옥이 됐다. 왜냐하면 그 관계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가짜 관계이지, 서로 소통하기 위한 대화의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독재의 어원이 ‘혼자서 말하기’라는 사실은 그런 면에서 의미심장하다. 독재 혹은 독재자의 어원은 공화정 로마 말기의 관직인 종신 독재관(Dictator Perpetuo)에서 왔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자신의 일기에서 독재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dictator’의 어원은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단적으로 구술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독재자는 혼자만 말하는 사람이다. (1985년 3월 14일)
– 김현, [행복한 책 읽기](문학과 지성사, 1999)

독재자는 혼자서 말한다. 그리고 그 독백은 동어반복적으로 자신을 정당화한다. 나는 옳다. 왜냐하면, 나는 옳으니까. (김현) 그게 박정희 시대였고, 김일성 시대였다. 그리고 지금도 혼자만 말하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는 혼자 말하고, 누군가는 그 말을 받아 적는다  박근혜 정부의 국무회의 모습 (상) / 오바마 정부의 국무회의 모습  출처: 사관이 된 장관들  사진: 달뉴스(후진적인 교육 현장 청와초교, 매일 아침 받아쓰기 시험)
누군가는 혼자 말하고, 누군가는 말없이 그 말을 받아 적는다
박근혜 정부 국무회의(상) / 오바마 정부 국무회의
사진: 달뉴스(후진적인 교육 현장 청와초교, 매일 아침 받아쓰기 시험)

2. 개발독재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새마을 운동’과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그리고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의 신화를 이야기한다. 자원이라곤 사람밖에 없던 가난한 나라는 ‘수출 강국’이 됐다. 그야말로 ‘한강의 기적’이다. 이 신화는 분명히 매혹적이다. 그리고 상당한 공을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 경제발전의 열매는 누구에게 돌아갔는가. 그리고 그 경제발전은 어떤 더 깊은 부조리를 이 땅에 심어놓았나.

경부고속도로 개통식 (1970년 7월 7일)  사진: 박정희 대통령 기념재단
경부고속도로 개통식 (1970년 7월 7일)
사진: 박정희 대통령 기념재단

이필상 교수는 2000년 신동아 인터뷰에서 이렇게 간명하게 지적한다. 그의 말을 옮겨보자.

가장 큰 문제는 정경유착을 통한 불법지배체제 형성입니다. 정통성 없는 독재권력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보겠다는 재벌과 불법공생관계를 형성한 것이죠.
그 둘째 병폐는 빈부격차입니다. (중략) 특혜를 받는 쪽은 자꾸 발전하고 부가 축적된 반면 일반 기업과 서민 계층은 인플레이션의 피해를 입으며 소득이 자꾸 떨어지고 빈부차이가 계속 벌어졌습니다.
셋째 문제는 경제력 집중이에요. 재벌을 집중지원해 경제성장을 이룬다는 정책을 펴다보니 일반 중소기업이 빈사상태에 빠진 거죠.
넷째 부작용은 지역격차입니다. 대개 동쪽에서 집권세력이 나오다 보니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산업이 발전했습니다. 그 결과 동서간 경제력 격차가 커지고 그것이 지역감정을 일으키는 요인이 됐어요. 지배계층은 그것을 또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경제의 동서분단선을 만든 겁니다. 그에 따른 사회갈등이 선거 때마다 극단의 형태로 표출되면서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골이 깊어진 것입니다.

–  [인터뷰]고려대 경영대학장 이필상 교수, 박정희 개발독재는 시장경제 발전의 암세포”(신동아, 2000년 12월호, 커버스토리)

박정희는 경제의 ‘파이’를 키웠다. 하지만 그 파이를 독식한 건 정경유착 세력이었다. 옥스포드 사전에 등재된 한국어 고유명사 ‘재벌'(chaebol)은 박정희가 산파 역할을 한 탐욕스런 아이였다. 노동권을 극도로 제한하고, 노동자를 무자비하게 탄압하며, 전태일이 그렇게 자기 몸을 산화하며 죽어간 것도 박정희 시대였다. ‘하면 된다’는 구호는 있었지만, 그리고 그 구호는 많은 국민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지만, 주어도 목적어도 없는 구호였다.

이것이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의 본질이다. 그래서 그 야만적인 경제구조의 편파적 분배는 아직도 고스란히 우리 경제의 토대로 작동한다. 재벌 개혁을 외치고, 평등한 분배를 주장하는 시민사회가 그 작은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87년 6월까지 기다려야 했으며, 그 87년 총파업의 여름을 지나고서도 아직 분배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세월이 흘러 ‘복지’가 유행가처럼 유행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의 딸 박근혜 대통령은 공약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고, 승자독식과 정경유착의 개발독재는 세계화라는 미명 하에 ‘양극화’라는 이름으로 진화한 지 오래다.

3. 자기 검열과 소외 

노예가 되는 가장 치욕적인 방식은 자신을 ‘타인’의 시선으로 감시하고,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검열자’의 시선을 내면화해 스스로 자신에 대한 검열자가 되어 자신을 사지절단 하는 일은 자기를 자신으로부터 떠나보내고, 파괴하며, 소외시킨다. 국가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감옥이 되고, 국민은 자발적인 죄수가 된다.

원형감옥 (사진: Friman, CC BY)
원형감옥 (사진: Friman, CC BY)

그 감시 기제와 방식은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제도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개인에게 작용한다. 박정희 시대는 가장 왕성하게 노골적인 형태로 개인의 의식을 지배하고, 조정했으며, 끊임없이 순응했다. 그 풍경을 간단히 스케치해보자.

甲은 밤 12시가 지나기 전에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아니면 구치소 신세다. 밥 딜런과 비틀즈 팬인 乙은 머리를 기를 수 없다. 당장 순경이 ‘바리깡’을 들고서 乙 앞머리를 밀어 버린다. 甲, 乙, 丙, 丁은 길을 걷다가도 5시가 되면 얼어붙어 국기 하양식을 지켜보며 왼쪽 가슴에 손을 갖다 대아야만 한다. ‘박정희’라는 이름은 함부로 입 밖으로 꺼내서는 안 되는 이름이다. 그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기 위해서는 최소한 ‘대통령’이라거나 ‘각하’라는 명칭을 그 뒤에 존경 어린 마음으로 붙여 써야 한다.

긴급조치 시대, 지성의 요람이라는 대학은 휴교로 빈터가 되고, 시위를 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인혁당 사건이라는 세계 사법사상 더없이 치욕스런 사건을 조작해내고, 최종판결 18시간 만에  죄 없는 목숨을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하는 시대. 국제법학자회가 이 국가에 의한 사법살인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1975년 4월 9일)로 선포하는 시대. 그런 시대에 양심과 그 양심에 따른 비판은 곧 목숨을 내놓는 일이다. 그러니 어떻게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가 있을 수 있을까.

여전히 억압은 현재 진행형: 농담과 풍자에 죽자고 달려드는 국가, 그리고 국가보안법
사진: 박정근,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라 (소셜펀치)

박정희 시대는 개인의 양심이 국가라는 거대한 이데올로기에 무참하게 압살당했던 시대였다. 그래서 순응적인 인간, 새마을 운동정신으로 근면성실하게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국가에서 시키는 대로 그저 아무런 비판정신 없이 살아가면 그는 ‘모범시민’이 된다.

예술은 세종문화회관의 거대한 장식들 속에 갇히고, 모든 스포츠는 그저 ‘국가대표’를 통한 애국심을 함양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렇게 국민들은 몇몇 엘리트 예술인과 체육인이 만들어내는 환상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며, 그 성취에 존경만을 보낼 자격만을 가진다.

‘공식’ 예술은 일상과 유리된 채 거대한 건물 속에 갇힌다
(출처: 세종문화회관 홈페이지)

자기 검열을 내면화해 그 검열이 습관처럼 몸에 달라붙어야 ‘평온’을 얻는 시대. 박정희 시대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커다란 흉터는 자기 검열의 내면화다. 자기 검열과 극단적 소외의 집단화는 우리가 그 타자화된 굴종에 대한  ‘위대한 거부’로써 87년 6월을 만들어내기까지 우리 사회 전체를 투명한 감옥으로 만들었다.

우리의 매트릭스

부버는 두 개의 근원어를 말한다. ‘나-너‘라는 근원어와 ‘나-그것‘이라는 근원어다. ‘나-그것‘의 관계에서는 오직 메마른 지식과 지배/복종과 욕망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진정한 관계가 아니며, 가상인 관계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정한 만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때 남는 것은 자기 소외다. 나는 자신에게 멀어지며, 나는 결국은 나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타인은 지옥일 수 있지만, 그 타인에게 손을 내밀어, 진정한 관계를 가진다면, ‘나-너‘라는 근원어의 관계를 만들 수 있다면, 이미 그 때 그 타인은 ‘진실한 너‘가 된다. 혼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또 다른 나와 분열적인 ‘복화술‘로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 아니라 실체로서, 주체로서, 나와 너로서 대화하는 것.

정치 체제로서는 자유주와의 민주주의를, 경제로서는 복지와 평등을, 문화로서는 조화와 다양성을 지향해야 하는 시대적 요구 앞에서 ‘박정희’는 그 시대를 만들어야 하는 우리에게 적지 않는 과제를 남긴다.

시대의 퇴행, “유신독재가 뭐가 잘못됐(냐)”는 목소리가 점점 더 득세한다
(삽화 기획/디자인: 써머즈)

우리가 근심해야 하는 건 박정희 개인이 아니다.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박정희라는 인물로 상징되는 그 시대, 그리고 여전히 이 시대의 토양으로 자리하고, 더욱 강력하게 부활하는 ‘박정희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지하게 논의해야 하는 것은 박정희라는 그 개인의 치적이나 과오가 아니다.

중요한 일은 박정희라는 시대, 박정희라는 ‘시스템’의 관성이 아직도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사회 여기저기를 비판적으로 점검하고, 거기에서 그 독재와 독선과 인권유린의 그림자를 사라지게 하는 일이다.

박정희가 숭배의 대상이 되는 순간, 더는 '대화'는 불가능해진다  (삽화 기획/디자인: 써머즈)
박정희가 맹목적 숭배 대상이 되면, 더는 ‘대화’는 불가능하다. 정말 “할 말이 없”게 된다.
(삽화 기획/디자인: 써머즈)

우리는 박정희 시대가 남긴 아픈 흉터들을 통해 그 흉터가 보이 싫다고 외면하거나, 무조건 비판하는 극단론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것은 박정희를 부정하지만, 정작 그 박정희 시스템을 흉내 내고, 다시금 확대 재생산하는 어리석음에 불과하다.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가 갖는 이데올로기적 속성과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역사의 반동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며, 그것을 효과적으로 지양해야 한다. 그것은 반대자를 포용하되, 적극적으로 토론하고, 대화함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그럴 때 박정희 자체를 옹호하든 비판하든, 우리는 ‘박정희 시스템’이라는 ‘매트릭스’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편견과 맹목적 신화화로는 그 매트릭스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우리의 ‘시온’이 어디이며, 어떤 모습일지는 구체적인 대화와 관용의 태도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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