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소셜코리아 칼럼] 생산적 금융과 돌봄 국가로의 전환이 2050년을 결정한다. 부동산 공화국을 넘지 못하면 미래도 없다. (정승일/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7분)

오늘날 우리는 인구 위기 대응을 둘러싸고 국가의 존망을 가를 역사적 분기점에 서 있다.

두 개의 시나리오: 저위 추계와 고위 추계

하나는 쇠락과 국가 소멸의 길이다. 2023년 12월 통계청이 발표 ‘장래인구추계: 2022~2072년’의 ‘저위 추계’가 보여주듯, 이 경우 총인구는 2072년 3천만 명 수준으로 급감하고 지방은 광범위하게 소멸한다. 노인 등 비노동인구 비중은 총인구의 절반에 육박하며, 청·장년 노동인구는 과도한 부양 부담에 짓눌려 사회 전체의 활력마저 상실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펼쳐진다.

그러나 같은 ‘장래인구추계’는 또 다른 길, 즉 ‘고위 추계’라는 더 낙관적인 시나리오 역시 가능함을 제시한다. 출산율이 반등해 2050년 합계출산율이 1.34명 수준을 회복할 경우, 총인구는 2072년 약 4천3백만 명으로 완만하게 감소하며, 경제 전체가 감당해야 할 노인 부양 부담 역시 상대적으로 완만한 속도로 증가하는 경로에 들어설 수 있다.

잠정적 유토피아

이 지점에서 주목할 개념이 있다.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이론가이자 재무장관으로 ‘스웨덴 모델’의 기틀을 닦은 비그포르스(Ernst Wigforss)가 제시한 ‘잠정적 유토피아(Provisional Utopia)’다. 그는 인간이 꿈꾸는 이상 사회를 고정된 종착지나 추상적 이념 목표로 보지 않았다.

그 대신 그것을, 현실의 조건과 집단적 의지에 따라 끊임없이 새롭게 정의되고 조정되는 ‘잠정적 목표’로 이해했다. 경제 법칙에 대한 맹목적 추종을 거부하고, 인간의 상상력과 그 꿈을 현실로 만들고자 하는 도덕적·정치적 의지를 중시한 것이다. 구체적인 미래상, 즉 ‘잠정적 유토피아’를 국가의 비전으로 제시하고, 이를 향한 전략과 정책을 실천해 나가는 정치의 능력과 의지가 핵심이라는 인식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고위 추계’ 인구 시나리오를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구현하겠다는 선택은 하나의 잠정적 유토피아를 향한 도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성패는 인구 구조나 경제 여건 그 자체보다도, 지금 우리의 정치적 선택, 다시 말해 의지와 능력에 달려 있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오늘날 청년들이 가장 강하게 원하는 삶은 ‘워라벨이 있는 삶’이다. 이는 단순한 개인적 욕망이 아니라, 오늘날 유럽 시민들이 누리는 삶의 질, 나아가 노무현 대통령이 꿈꾸었던 ‘유러피안 드림’과도 맞닿아 있다. 이러한 삶의 조건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때에만, 출산율 반등을 전제로 하는 고위 추계 시나리오 역시 현실성을 갖게 된다.

2072년은 다소 먼 미래이므로, 보다 가시적인 목표 시점으로 24년 뒤인 2050년을 상정해 구체적인 수치로 상상해보자. 예컨대 독일의 경우, 2050년 1인당 실질 소득은 약 7만 달러 수준에 이르고, 연간 노동시간은 약 1,300시간, 즉 주 4일제에 가까운 노동 체제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사회가 2050년까지 이와 유사한 수준의 삶의 질을 달성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오늘날 청년들이 꿈꾸는 ‘워라벨이 있는 삶’이 현실이 되고, 동시에 고위 추계 인구 시나리오 역시 실현 가능한 미래가 될 것이다.

연 4.5%의 노동생산성 증가 – 부양인구 부담 감소 

그러나 이러한 꿈을 실현하기 위한 ‘수학적 조건’은 냉혹할 만큼 엄격하다. 무엇보다 먼저, 인구가 ‘고위 추계’ 시나리오로 전개된다 하더라도 청·장년 노동인구의 절대적·상대적 감소는 피할 수 없다. 여기에 더해, ‘워라벨이 있는 삶’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려면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을 현재의 약 1,900시간에서 1,300시간 수준으로, 즉 30% 이상 대폭 줄여야 한다.

문제는 이 두 조건이 동시에 작동해야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수십 년간 ‘일하는 사람’의 수는 줄고, ‘일하는 시간’도 감소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1인당 소득은 현재의 두 배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참고로 2050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을 두 배로 늘린다는 것은, 1인당 소득 기준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약 3% 수준을 유지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방정식을 풀 수 있는 해법은 사실상 하나뿐이다. 바로 ‘시간당 노동생산성’의 비약적인 향상이다. 단순 계산을 해보면,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국 경제에 요구되는 시간당 노동생산성의 연평균 증가율은 약 4.5%에 달한다. 지난 10년간 한국 경제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연 2% 안팎에 머물렀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에는 그 속도를 두 배 이상 끌어올려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노동인구 1인당 노동생산성이 매년 4.5%씩 꾸준히 증가한다면, 2050년의 노동생산성 수준은 현재의 약 3배에 이르게 된다. 반면 같은 시점의 부양비, 즉 노동인구 대비 비노동인구 비율은 고위 추계 시나리오를 전제로 할 경우 현재의 두 배를 넘지 않는다. 그 결과, 청·장년 노동인구가 감당해야 할 노인부양 부담은 2050년에 오히려 지금보다 줄어들 가능성도 생긴다. 부양해야 할 인구가 늘어나는 속도보다, 노동인구의 소득이 증가하는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전망은 중요한 전제를 포함한다. 노동소득 분배율이 현재보다 악화되지 않는다는 조건이 그것이다. 나아가 향후 소득 분배 및 재분배 정책이 적극적으로 작동해 노동소득이 자본소득보다 더 빠르게 증가한다면, 미래 세대의 노동자가 부담해야 할 노인부양비의 실질적 하중은 더욱 가벼워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부동산 공화국 해체와 생산적 금융

노동생산성을 매년 4.5%씩 끌어올리는 일은, 통상적인 공정 개선이나 업무 효율화 수준으로는 결코 달성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전 산업에 걸쳐 인간 노동을 AI·로봇·자동기계 등으로 대체하고 보완하는 대규모 기술혁신과 설비투자가 2050년까지 중단 없이 지속되어야 한다. 제조업 현장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비롯한 ‘피지컬 AI’가, 서비스업에서는 생성형 AI가 기존 인간 노동의 절반 이상을 대체·보완하는 수준의, 말 그대로 ‘또 하나의 산업혁명’이 완수되어야만 가능한 목표다.

노동생산성 연 4.5% 증가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를 내포한다. 이는 노동자 1인당 투입되는 설비·장비의 규모, 즉 자본장비율이 매우 빠른 속도로 상승해야 함을 뜻한다. 다시 말해, 대대적인 실물투자가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목표다. 그리고 이러한 실물투자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한국 경제의 ‘자원 배분 시스템’ 그 자체, 즉 금융·투자 시스템의 근본적인 전환이 불가피하다.

문제는 지난 25년간 한국 경제의 금융·투자 흐름이 ‘산업적 순환’에서 이탈해,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에 갇힌 ‘금융자산적 순환’, 다시 말해 재테크 중심의 구조로 고착되어 왔다는 점이다. 아파트 가격이나 주가 상승은 개인의 자산 증식이나 금융회사의 단기 수익성에는 기여했을지 모르지만, 경제 전체의 생산능력과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2050년을 향한 ‘잠정적 유토피아’를 진지하게 추구한다면, 이 자금 흐름은 이제 의도적으로, 때로는 강제적으로라도 방향을 바꿔야 한다. 부동산과 금융자산 시장을 맴돌고 있는 수천조 원 규모의 자금을 설비투자(CAPEX), 연구개발(R&D), 소프트웨어·AI 구축과 같은 생산적 투자 영역으로 이동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금융기관의 역할 역시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은행은 더 이상 토지와 건물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전당포식 영업’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대신 기업과 산업의 기술력, 혁신 역량, 그리고 미래 현금흐름을 평가해 자금을 공급하는 ‘생산적 금융’으로 과감한 대전환을 이뤄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노동생산성 혁신과 인구 위기 대응, 그리고 2050년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한 번영을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금융의 새로운 책무다.

돌봄의 탈상품화와 돌봄의 시간 확보

시간당 노동생산성 향상의 핵심 수단이 ‘AI 기술’과 ‘생산적 금융’이라면, 그 혁신을 실제로 운용하는 궁극적 주체는 결국 ‘사람’이다. 인구 감소의 충격을 완화하고 고위 추계 인구 시나리오를 지속 가능한 경로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동과 돌봄을 둘러싼 제도의 구조적 대개혁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된다.

첫째, 활력 있는 고령자의 재발견이 필요하다. 앞으로 65~70세는 더 이상 일방적으로 부양받는 ‘노인’으로 규정되어서는 안 된다. 이들이 축적해온 경험과 숙련이 사회적으로 사장되지 않도록, 정년 제도와 사회보험, 직업훈련 체계를 전면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만약 이 연령대 인구의 절반가량이 노동시장에 남아 있거나 재진입할 수 있다면, 고위 추계 인구 시나리오는 훨씬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미래로 다가올 것이다.

둘째, 여성 고용률의 획기적인 제고가 필수적이다. 현재 60%대에 머물러 있는 한국의 여성 고용률을 스웨덴 수준인 85%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출산과 육아, 구조적 성차별로 인해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이탈하는 현실은 단순한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 전체에 치명적인 손실이며 출산 기피의 가장 핵심적인 원인이다. 채용·승진·임금 전 과정에서의 성차별을 철폐해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노동자’로 대우받을 때에만, 출산율 반등 역시 지속 가능한 흐름이 된다.

이를 위해서는 출산과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 단절을 구조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그 핵심은 ‘아이 돌봄의 전면적 사회화’다. 이제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국가공동체가 필요하다”는 말은 비유가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출산과 보육·돌봄을 개별 가정, 특히 여성에게 전가해온 ‘사적 돌봄’의 시대는 끝나야 한다.

국가는 질 높은 공보육과 돌봄 서비스를 충분하고 안정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청년 세대가 가장 두려워하는 ‘독박 육아’와 ‘사교육비 부담’의 공포를 제거해야 한다. 돌봄과 교육이 국가가 책임지는 공공 서비스로서 탈상품화될 때, 여성은 경력 단절에 대한 불안 없이 일할 수 있고 가정의 안정성 역시 회복될 수 있다.

오늘날 청년들이 요구하는 ‘연 1,300시간 노동’, 즉 주 4일제는 단순히 휴식과 여가의 확대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남성(아버지)과 여성(어머니)을 장시간 노동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다시 가정으로 돌려보낸다는 뜻이다. 남성이 가사와 육아를 실질적으로 분담하고, 온 가족이 저녁과 주말을 함께 보내며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날 때에만 출산율은 오늘날 유럽 수준인 1.3명 내외로 반등할 수 있다.

적게 일해야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고, 아이를 낳아 키워야 미래의 노동력과 소비 시장이 확보된다. 노동·돌봄·인구가 맞물려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바로 인구 위기 시대에 국가가 감당해야 할 가장 본질적인 개혁 과제다.

결론: 운명이 아니라 의지가 미래를 만든다. 

2050년에 대한민국이 맞이할 미래는,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이 말하듯 냉혹한 시장 법칙에 의해 운명처럼 정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2026년 오늘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미래는 인구 구조나 경제 법칙의 자동 결과가 아니라, 명백히 정치적 선택의 산물이다.

부동산 불패 신화를 깨고, 자금의 흐름을 생산적 금융과 기술혁신으로 과감히 돌려 ‘최고의 효율’을 창출하는 것—곧 AI와 산업 혁신의 과제다. 그리고 그렇게 축적된 막대한 부(Wealth)를 다시 사람에게 투자해, ‘최고의 돌봄(Welfare)’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것이 사회 혁신의 과제다. 기술혁신과 사회혁신이라는 두 개의 바퀴가 동시에, 그리고 맞물려 돌아갈 때에만 ‘고위 추계 인구 시나리오’는 비로소 현실이 된다.

그 순간 우리는 워라벨이 보장된 풍요로운 삶, 다시 말해 ‘잠정적 유토피아’를 2050년의 청·장년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주어진 운명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선택해 만들어낸 미래다.

관련 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