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냐의 북라이딩] 100년 전, 인종차별주의자가 시작한 이상한 전쟁이 있다. 그 전쟁은 마치 마녀사냥과도 같다. 100년째 실패를 거듭하는 전쟁, ‘마약 전쟁’ (⌚6분)

미국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납치하면서 “미국으로 유입되는 마약 밀매 조직의 배후”라고 했다. 1989년 미국이 파나마 실권자였던 마누엘 노리에가 군 총사령관을 납치할 때도 같은 대사였다. ‘마약과의 전쟁’은 모든 게 용서되는 마법의 주문이라도 되는 것일까? 심지어 내란 수괴 윤석열도 한때 ‘마약과의 전쟁’을 외쳤다. 요한 하리의 ‘마약 전쟁’을 새삼스럽게 꺼내보는 이유다. 베스트셀러 ‘도둑맞은 집중력’의 작가 요한 하리가 2015년 미국에서 출간했고, 작년에 번역된 책이다. 관련 TED 영상 조회수가 1,200만에 달한다.

한국어 부제는 ‘우리는 왜 이 전쟁에서 실패를 거듭하는가?’ 보통 마약 전쟁이라면, 마약을 단속하고 중독자들을 처벌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궁극적 목표는 중독자들이 마약을 끊고 회복되도록 하는 것일 텐데 100년을 그렇게 싸워도 중독자는 계속 늘어났다. 그렇다면 마약과 싸우는 방식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저자는 마약 전쟁의 출발부터 살피는데 뭔가 이상하다. 아주 이상하다.
인종차별주의자가 시작한 100년 전 ‘마약 전쟁’
100년 전 마약 전쟁에 나선 공무원 해리 앤슬링어. 마약국 자체가 별 볼 일 없는 부서였다. 그런데 그는 인종차별주의자였다. 흑인, 멕시코인, 중국인이 마약을 통해 자신들의 위치를 망각하고 백인을 위협한다고 믿었다. 그는 흑인들이 마약을 하면 백인 여성을 욕망한다는 식으로 선동했다. 30명의 전문가에게 대마초가 얼마나 나쁜지 물었는데, 실제 나쁘다고 답한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29명은 별문제 없다고 답했다. 동네 약국에서 모르핀, 헤로인 다 처방해 주던 시절이다. 그는 30명 중 1명 전문가의 답변만으로 전쟁에 나섰다.

특히 당대의 재즈 가수 빌리 홀리데이를 무너뜨리는 데 매진했다. 흑인에다, 여자가 자유를 노래하다니, 온당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의 신념을 위해 너무 많은 심각한 문제들이 ‘마약과의 전쟁’으로 묻혔다. 토론에 나선 한 전문가는 해리 앤슬링어를 이렇게 비난했다:
“당신은 이 나라가 과학적으로 논의해야 할 문제를 중세와 같은 방식으로 다루도록 이끌어왔어요.”
해리 앤슬링어가 빌리 홀리데이를 마녀사냥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며 권력을 남용해 괴롭힌 이야기는 몹시 생생하다. 요한 하리의 필력에 빠져드는 이유인 동시에, 북클럽이 한 친구가 “너무 전지전능한 시점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풀었다”고 불편을 토로했던 원인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요한 하리를 믿고 보는 작가로 확실히 믿게 될 정도의 스토리텔링이다.

100년째 실수, 잘못된 문제 진단
요한 하리는 마약이 괜찮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100년간 마약과 싸워도 상황이 악화한 것은 문제 진단을 잘못한 탓이라는 게 핵심이다. 일단 중독에 대한 오해다.
베트남전 당시 미국 참전 군인의 20%가 헤로인을 사용했다. 전쟁이 끝나면 수십만 명의 마약 중독자가 거리를 헤맬 것이라 걱정했다. 하지만 95%는 별문제 없이 헤로인을 끊었다. 유명한 쥐 실험도 있다. 우리에 물과 마약이 포함된 약물을 놓으면 쥐는 약물을 마신다. 그런데 그 우리에 쥐가 재미있어야 할 다른 장난감, 음식, 짝짓기 상대를 넣어주면 그냥 물을 택한다. 고립된 쥐는 거의 언제나 중독되지만, 즐겁게 생활하는 쥐는 약물에 의존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마약을 찾는 이유는 외로움, 실직 등 상황에 짓눌린 탓이라는 가설을 뒷받침한다. 흡연 중독성도 만만치 않은데, 10만 명 중 650명이 흡연 때문에 사망하지만, 코카인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10만 명 중의 4명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한 공무원이 마약에 맞서 거대한 성전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다른 이해관계가 작동했다. 해리 앤슬링어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통제하고 억압하는데 마약 전쟁을 동원했다. 이어 공산주의자들이 마약을 들여오고 있다고 비난했다. 익숙한 선동이라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통제하고 억압해야 할 소수자, 시민, 야당이 있을 때 적지 않은 권력자들이 마약 전쟁을 이용했다.
한국 사례도 책에 포함됐다. 1970년대 중반 정치적 자유, 개인적 자유를 억압하는 데 한계를 느낀 박정희 대통령은 인플레이션 등 자신의 실책에 관심을 두지 않도록 국민의 마음을 돌려놓을 쟁점, 관심거리가 필요했다. 당시 시골 농부들이 쉽게 말아 피던 대마초가 갑자기 금지됐다. 박정희 찬양 노래 작곡을 거부한 가수 신중현이 감옥에 갔다고 저자는 기록했다. 정작 박정희의 아들이 마약에 중독된 것도 요한 하리는 빠짐없이 취재했다.

수혜자 ‘업자들’ vs. 여전히 이상한 전쟁
마약과의 전쟁에서 또 다른 수혜자는 마약 업자들이다. 멕시코 마약 카르텔은 미국에서 판매하는 마약만으로 매년 190억~290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대신 5년간 6만 명이 살해당하는 등 핏값으로 처절하게 대가를 치른다. 제프리 마이런 하버드대 교수는 마약 거래상에 대한 단속이 심할수록 살인율이 더 높아진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게다가 인종차별주의자가 시작한 마약 전쟁은 여전히 인종차별 중이다. 마약상 중 19%가 아프리카계로 분류되지만 실제 체포된 마약상은 64%가 아프리카계다.
와중에 마약과의 전쟁에서 실제 이기고 있는 사례는 다소 충격적이다. 스위스에는 헤로인 처방 진료소가 있다. 중독자에게 아예 처방한다. 그 결과, 중독자 중 사망자가 줄었고, 정규직 비율이 세 배 늘었다. 노숙자가 사라지고, 중독자 중 3분의 1이 중독에서 벗어났다. 그 비용은 과거 단속과 처벌에 들어간 예산보다 훨씬 저렴하다.
포르투갈은 2001년 마약 사용과 소지를 합법화했다. 판매는 불법이지만 접근이 다르다. 미국은 마약 예산 90%가 처벌과 단속에 쓰고 10%만 치료와 예방에 쓰지만 포르투갈은 거꾸로다. 마약 중독을 형사 사법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공중보건의 문제로 접근해 마약 사용을 처벌하지 않자, 헤로인 사용이 절반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미국에서는 두 배로 늘었다.
결코 마약을 옹호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마약 중독자 중 10%는 실제 마약으로 인한 문제를 일으킨다. 하지만 90%는 마약으로 해를 입지 않는다. 미국 제약회사들이 판매했던 펜타닐 등 오피오이드계 진통제보다 중독 문제가 적은 편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나 기업 등 발주처 입맛대로 연구 결과를 내놓았던 전문가들의 문제는 따로 다룰 일이지만 넘어가자.
중독자, 배척과 징벌만이 능사일까?
한 시절 인류 역사는 마약에 기대어 발전했다. 기원전 2000년, 안데스 고원의 선조들은 환각성 있는 풀을 피울 때 쓰는 파이프를 만들었다. 그리스의 엘레우시스 신전에서는 2000년 동안 매년 마약 파티를 벌였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서기 700년 정도에 양귀비를 재배했다. 마약은 마시려는 욕구, 식욕, 성욕과 함께 제4의 욕구로 해방감과 안도감을 준다는 학설도 있다.
누구나 마약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던 세계에서 예술, 문학, 과학, 철학이 생겨났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덜 줄수록 마약에 덜 의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중독자들을 배척하고 범죄자로 만드는 것이 능사가 아니란 것을 확실히 보여준다. 각자의 절망을 중독으로 드러내는 이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해 절망에서 벗어나도록 한다면 무엇이 바뀔까?

100년간 패배만 거듭하며 중독자가 늘어난 마약 전쟁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최소한 마약 운운하며 정치적 이익을 챙기는 권위주의 정치인들의 거짓말에는 넘어가지 않으면 한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가장 긴 징역형, 가장 가혹한 사회적 낙인, 가장 낮은 수준의 중독 치료 등 민주주의 국가 중 가장 혹독한 마약 정책을 시행하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각별한 인사를 전했다.
남겨질 질문들
북클럽에서 이 책을 토론하며 나눴던 질문을 남겨본다.
- 마약에 관해 관심 없었나요? 혹시 생각이 바뀐 부분이 있나요?
- 한 개인의 아집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데 동의해요?
- 그 팀은 뭔가요? 공무원은 문제 제기하지 않고 그냥 순응하는 게 맞아요?
- 전문가들은 알면서 그 꼴을 두고 봤다는 걸까요? 전문가는 뭘까요?
- 10명 중 1명만 문제가 된다면 그냥 풀어줘요?
- 불안과 공포는 결국 혐오와 차별의 전략적 도구인데요, 통하네요? 별수 없나요?
- 각국의 사정이 미국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엄벌주의가 이용된 걸까요?
- 마약과의 전쟁을 어떻게 보세요? 앞으로 바뀔 여지가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