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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희망이 주어지는 것은 오로지 희망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다.”
– 발터 벤야민, ‘일차원적 인간’ 중에서 H. 마르쿠제가 인용.

 

인간은 진화로부터 행복을 이끌어내는데는 무능했다. 역사는 그 증거다. 우리 입장으로 좀 더 풀어서 말하면, 여전히 21세기 자랑스런 선진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는 위태롭다.

죽음과 모욕: 진화는 행복을 담보하지 않는다 

역사를 돌아보면, 기술과 제도는 평화와 안녕보다는 전쟁과 파괴에 좀 더 진심을 다해 전력한 것처럼 보인다.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는 이 진화의 실패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좀 더 계급적으로 말하면, 피라미드 아랫쪽 사람들은 피라미드 윗쪽 사람들이 장악한 기술과 제도로부터 자신의 행복과 안전을 획득하는데 아직까지 실패하고 있다. 공화국의 행복과 안전은 피라미드 아랫사람에게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계단이다.

노동자는 여전히 손쉽게 죽고, 손쉽게 잊혀진다. 손쉽게 모욕당하고, 그래도 되는 것처럼 취급된다. 그 죽음과 모욕이 때로 차마 같은 인간으로 바라보기 힘들 만큼 비극적일 때 해도해도 너무할 때 우리는 그 죽음과 모욕을 사회적으로 응시한다. 그리고 다시 또 손쉽게 잊는다. 한몸이 된 자본과 정치 혹은 제도는 말단 노동자의 죽음과 모욕이 해당 산업의 진화를 적극적으로 방해할 때만 그 죽음과 모욕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같이 가면 길이 된다’를 읽었다. 이 ‘좋은 생각’ 같이 따뜻하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제목은 페이크다. 이 책은 희망이 아니라 절망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그 깊은 어둠, 죽음과 소외된 노동과 공동체의 실패를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모두 각자 사정이 있으니 어쩔 수 없다는 핑계, 모두에게 간절한 밥벌이즘이 얽힌 그 방조 시스템을 저자는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ILO의 모토는 “평화를 갈구한다면 정의를 가꾸어라”다. 세상만사가 일터와 불가분으로 연결되어 있고, 안팎으로 들이미는 총구를 막으려면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일터의 정의를 키우는 것이 우선이라는 믿음이다. 믿음이란 때로 연약한 갈대 같다는 점을 알아차린 ILO 창설자들은 이 모토를 탄탄한 돌에 새겨 건물 밑에 부적처럼 넣어두었다. (본문 중에서)

부끄러움, 따뜻한 언어가 담아내는 소외된 노동의 세계 

저자는 책에서 능력주의를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하지만 스스로 인정하는 것처럼 이 책은 능력주의의 세례를 받고 선택된 엘리트 지식인, ILO에서 일하는 경제학 박사님이 쓴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ILO에서 일하는 경제학자라는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 주관적 한계를 명백히 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그 한계와 조건 속에서 책을 읽도록 경고한다. 이 책은 인본주의적 이상을 가진, ILO에서 일하는, 문학작가가 되고 싶었던, 한 경제학자가 바라본 노동의 세계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저자는 경제학의 언어가 아니라 마치 문학의 언어로 소외된 노동과 너무 손쉽게 대체되는 사람들, 그들의 안타까운 사연과 절규를 담아낸다. 그래서 그는 자주, 글을 쓰는 동안에도 문득, 글 쓰는 자신을 바라보며 부끄러워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건 소박하고, 때론 찌질하기까지 하다. 위대함과 찌질함은 불가분이다.

그런데 인간의 찌질함, 인간의 존엄이라는 위대함이 어쩔 수 없이 만나는 공간이 있다. 화장실이다. 이상헌은 화장실이 제공되지 않는 비닐하우스 농장에 동원된 외국인 노동자를 불러오고, 안산 반월·시화 단지에서 통제되는 화장실과 그 화장실 통제에 저항해 물을 마시지 않기로 한 외국인 노동자의 존엄을 건 결단을 이야기한다.

화장실을 둘러싼 이 놀라운 부조리극은 외국인 노동자뿐만 아니라 대기업 계열사에 다니는 한 젊은 한국인 직원에게도 펼쳐진다. 직원이 희망퇴직을 거부하자 기업은 화장실에 못하게 하고, 견디다 못해 화장실에 가면 경고장을 발부해 모욕한다. 그야말로 저질 코미디. 하지만 누구도 웃을 수 없는 코미디.

그런 낯부끄러운 K 대한민국의 이면을 이야기할 때도 이상헌은 고발하는 자의 위대한 분노가 아니라 유엔 사무총장 옆에서 오줌 누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 솔직함이 그 담담함이 그 부끄러움이 이 책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좋다.

희망 없는 사람의 희망을 위해서 

혼자 가면 죽는다. 책의 전언을 뒤집어 해석하면 혼자서 가면 낭떠러지라는 것, 길이 없다는 것일 테다. 하지만 혼자 가고 싶지 않은데 혼자 가도록 강요한다면, 그런 세계에 우리는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 이 책이 그 명시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진 않다. 하지만 벤야민의 말처럼, 우리에게 희망이 주어지는 것은 오로지 희망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다. 우리는 희망 없는 사람들을 위해 그 희망을 발견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희망이 없는 사람들은 이런 책을 읽을 마음과 시간의 여유조차 없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이 책을 읽는다면, 그럴 여유가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당신은 희망 없는 사람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 책을 읽고, 뭐라도 소감을 남기는 일은 어떤가. 정치인이 어떤 법에 어떻게 투표하고 있는지 지켜보고, 쉽게 잊히겠지만, 기억하는 일은 어떤가. 잊어버릴 테니 계속 기록하고 떠들어야 한다. 그것부터 해야 한다.

지난해(2022) 10월 15일 SPC 계열 SPL 공장에서 23살 여성 노동자가 죽었다. 막을 수 있는 사고였고, 막아야 하는 사고였다. 그래서 이 사고는 우리가 ‘교통사고’라고 부르는 그런 사고가 아니라 우리가 ‘강도 사건’이라고 부를 때의 그 사건이다. MBC는 사건 직후 SPC에서 5년 동안 758명의 노동자가 산재를 당했다고 보도했다. 발생률이 제조업 평균보다 1.4배 더 많다는 설명이었다. 윤석열(대통령)은 (경영계에서 주장하는) “중대재해법 보완이 필요한 사항은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중대재해법(2022.1.시행)은 태어나면서부터  빠른 속도로 누더기가 되어갔고, 지금도 그 누더기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나는 결심했다. 우리동네에서 가장 많은 빵집은 파리바게트다. 우리 동네 산책 코스에도 3개나 있다. 나는 지난해 10월 이후로 죽을 때까지 파리바게트에서는 빵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소심한 다짐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SPC 같은 거대 기업이 나 같은 개미 소비자의 결심 따위가 뭐 그리 무섭겠나 싶다. 하지만 저마다 각자의 방법으로 실천하면 그뿐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SPC 계열사의 빵과 아이스크림과 도넛과 커피를 먹거나 마시지 않겠다는 게 내 결심이고 내 실천이다.

마음의 책 

지적 호사가라면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은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 같은 경제 문외한을 기준으로 한다면 몰랐던 걸 많이 배웠다. 지식의 책이 있고, 창조의 책이 있으며, 마음의 책이 있다. 이 책은 지식의 책이라기보다는 마음의 책이다. 마치 ‘무소유’와 같은 책. ‘무소유’를 통해 나는 법정이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 그 시선을 그저 잠시 공감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나는 ‘무소유’라는 책의 풍경에 잠시 머물렀다. 항상 책은 독자가 잠시 머무는 풍경 같은 거니까.

나는 이 책을 젊은 친구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끝까지 남는 책은 마음의 책이다. 놀라운 창조의 책, 훌륭한 지식의 책조차도 마음이 담겨 있지 않다면 껍데기에 불과하다. 숫타니파타를 보라, 부처의 말씀조차도 소박하게 가득찬 마음이 거기에 있을 뿐이다.

잡문에 불과하지만, 글쓰는 사람으로서 모든 책은 질투의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그래서 세속의 영광으로 둘러싸인 책을 읽고는 실망하면서 또 동시에 안도하기도 한다. [사피언스] 같은 책은 뛰어난 책이지만, 내 세속적인 질투에도 불구하고 나를 안도하게 하는 책이고, [총균쇠] 같은 책은 질투하고 싶어도 그 질투의 감정마저 뛰어 넘어 저절로 존경을 표하게 하는 책이다.

그런데 때로는 [총균쇠] 같은 위대한 책을 읽을 때와도 다르게 그 질투를 아득하게 뛰어 넘는 책들이 있다. 질투가 아닌 응원의 마음으로 읽게 되는 책도 있다. 이 화려한 세계, 그래서 더 초라한 그 세계의 이면을 비추며 희망할 수 있게 하는 글, 그런 책… 세상의 결핍을 이야기하지만, 그 결핍을 통해 더 많이 가지라고 부추기고, 가진 것이라도 빼앗기지 말라고 조바심을 내게 하는 게 아니라 그 결핍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의 공모, 우리 자신이 가담한 그 공범 구조를 비판하고, 성찰하게 하는 마음의 책. 이 책이 그런 책이다.

여담, 나침반의 비유가 신영복의 글이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신영복의 글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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