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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의 북라이딩] 반복하는 역사의 패턴. ‘역사동역학’을 시작한 피터 터친이 말하는 혁명과 반란 그리고 내전의 신호들… 우리는 어디쯤 왔을까? (⏳5분)

📕마냐의 북라이딩📚

반란∙혁명∙내전의 역사적 패턴…
그 불안정의 신호들

피터 터친, [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2025)

역사는 수많은 종말(End Times)을 지나왔다. 사회적 격동과 정치적 폭력이 반복되면서 국가는 붕괴하곤 했다. 오늘날 정치적 혼란 역시 어떤 역사적 패턴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 역사를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까?

‘역사동역학’… 반란∙혁명∙내전∙혼란의 신호들

피터 터친은 역사동역학(cliodynamics)을 시작한 연구자다. 그리스 신화 역사의 뮤즈 클리오(Clio)에서 이름을 딴 이 학문은 역사에서 되풀이되는 중요한 양상들을 분석한다. 원래 동물학을 전공한 저자는 역사의 패턴과 데이터를 과학적으로 해석했다. 그중에서도 국가가 어떻게 종말을 맞는지 분석했다. 원제는 [End Times: Elites, Counter-Elites, and the Path of Political]. 어떤 종말의 열쇠는 엘리트 계급에 있다는 주장이다. 그가 유명해진 것은 2020년대 미국의 정치적 불안을 2010년에 역사동역학으로 예측한 덕분이다.

“어떤 나라의 실질임금이 정체하거나 감소하고, 부유층과 빈곤층의 격차가 커지고, 석박사 학위를 받은 젊은 졸업생이 과잉 생산되고, 공적 신뢰가 감소하고, 공공 부채가 폭증하는 경우, 언뜻 전혀 달라 보이는 이런 사회적 지표들이 실제로는 서로 역동적으로 관련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런 상황 전개는 정치적 불안정이 엄습함을 보여주는 주요한 지표로 작용했다.”

피터 터친

저런 신호가 나타나면 어김없이 반란, 혁명, 내전, 혹은 혼란이 이어졌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는 미국 데이터들이 1970년대에 불길한 방향으로 돌아섰으며 2020년 전후로 불안이 극심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국가, 모든 복잡한 사회는 통합과 해체의 수순을 주기적으로 반복한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불안정을 낳는 네 가지 요인 중 첫 번째는 대중의 궁핍화. 먹고사는 문제가 위협받으면 분노한 민심이 동력이 된다는데, 이건 뭐 인류 역사에서 흔한 원인 아닌가. 그런데 엘리트들이 과잉 생산될 경우, 고급 학위를 가진 인재끼리 좋은 일자리를 놓고 의자 뺏기 싸움이 등장하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라고 한다. 여기에 재정건전성과 국가 정당성 약화, 지정학적 요인 등도 문제라는데 일단 엘리트 이슈에 꽂힌다.

상위 1%가 자산과 권력을 세습하고 키우는 동안, 나머지 알량한 파이를 놓고 엘리트들이 피 터지게 싸우다가 충돌하는 사례, 그런 엘리트들이 더 꼴 보기 싫어지는 민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저자는 남부와 북부 엘리트들의 패권 전쟁으로 미국 남북전쟁을 들여다본다. 19세기 중국에서 3700만 명이 희생된 태평천국의 난은 지도자 홍수전을 비롯해 고위 간부 대부분이 과거 시험에 낙방한 이들이었다.

한국과 미국, 그 불안정의 퍼즐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의 국민소득에서 상위 1%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대 이후 2023년까지 2배 이상 증가했고, 대졸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라며 “이 문제는 특히 (정치적 안정성 관점에서 가장 위험한 인구 집단인) 고학력 청년 남성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의 그래프에서 나타나듯 한국 청년 남성의 우경화가 가파른 것은 사실이다. 이것이 정치 불안의 신호라는 해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강조 표시는 편집자.

1970년대 말 이후 40여 년 미국에서는 4년제 졸업장이 없는 이(전체 인구의 64%)들이 실질임금 감소로 기반을 잃었으며 저학력 남성들 절망사(자살, 알코올 중독, 약물 남용 죽음)가 4배로 증가했다. 2016년 노동계급 부모는 1976년에 비해 자녀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네 배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했다. 와중에 미국 민주당은 어느새 지배계급의 정당이 됐다. 한때 공화당이 지지했던 상위 1% 초고액 자산가와 고학력자 및 전문직 종사자로 구성된 상위 10%를 대변하는 정당이 됐다. 반면 트럼프는 반(反)엘리트 연합을 이끌며 공화당을 우익 포퓰리즘 정당으로 개조하며 혁명에 나섰다.

보통 사람 대신 엘리트가 유리해지는 것은 금권 정치의 특징이기도 하다. 하원의원 당선자 평균 지출액은 1990년 40만 달러에서 2020년 235만 달러로, 상원의원 당선자 평균 지출액은 같은 기간 390만 달러에서 2700만 달러로 급증했다. 2021년 기준 로비스트 1만2000명이 37억 달러를 쓰면서 각종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소외된 이들의 불만이 폭발하는 것도, 불안한 시절 음모론이 판치는 것도 수순이다. 음험하고 사악한 동기를 지닌 집단이 미국 정부를 통제한다거나, 유대인,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CIA, 유엔, 세계경제포럼 등이 현실 정치권력을 잡고 있다는 믿음이 존재한다. 음모 판타지는 중국 공산주의자들을 겨냥해 ‘중공 세력(Chicoms)이 미국 정부에 침투해 있다고 믿거나, 러시아 정부가 트럼프 정부를 조종한다고 믿는다. 저 ‘중공 세력’ 비난마저 미국, 한국이 닮았다니 이것도 세계화인가?

혁명을 막는 지배 엘리트의 전략

불안정이 가져오는 파국, 혁명을 막는 것은 언제나 지배 엘리트의 숙명. 다툼의 시대를 종식하는 일련의 개혁이 해체 대신 통합을 이끈다. 이런 맥락에서 100여 년 전 미국에서 노동자 권익이 증진된 것은 당대 엘리트의 결단이었다. 영국은 위기를 제국주의 정책으로 돌파했다. 식민지 이주는 엘리트 간 내부 압력을 낮춘다.

자신만만하게 역사를 통해 미래를 분석하는 저자는 역사동역학 부심이 넘치는데, 다른 학자들이 틀렸다는 주장에도 과감하다.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바버라 월터의 일부 분석을 한심하고 순진한 것으로 치부한다. 예컨대 ‘노동계급, 농노, 병사들’이 봉기한 러시아 혁명이라는 설명에서 당시에는 ‘농노’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식이다. ‘농노’를 서로 어떻게 정의했는지 궁금해지지만, 더 들어갈 생각은 없다. 번역 문제인지, 원문 자체 문제인지 도입부에서 화끈하게 매력적인 이 책은 중반부가 고비다. 역사를 해석할 때 ‘체리피킹’ 방식으로 입맛대로 사례를 들면 안 된다고 강조하는데 저자는 그 함정에서 자유로운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국가가 무너지는 신호에 둔감할 수 없다. 왜 대다수 노동자가 경제성장의 과실을 공평하게 나눠 갖는 데서 배제되어야 할까? 양극화는 더 심해지는데, 당연한 질문들이 사라진 채 부동산이나 코인 등 욕망만 뜨거운 시대다. 1%가 거의 가져가는 부와 권력 대신 알량한 파이 조각에 목숨 건 각자도생의 시간이 무섭다. 저자의 마지막 당부를 가져와 본다.

“우리의 통치자들에게 우리 공동의 이익을 증진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복잡한 인간 사회가 순조롭게 작동하려면 엘리트-통치자, 행정가, 사상의 지도자-가 필요하다. 우리는 엘리트를 없애기를 원하지 않는다. 비결은 엘리트들이 만인을 위해 행동하도록 제약하는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이, 사회의 부조리와 약자를 고민하는 지식인은 멸종했는데, 권력자 엘리트들을 어떻게 제약할까? 한덕수, 최상목 같은 엘리트를 경험한 뒤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 안다. 트럼프식 반 엘리트 혁명 말고, 진짜 혁명을 꿈꾸지 않을 수 없는데 막막하다.

둘 다 캐릭터가 만만찮았다.

남은 질문들

국가가 무너지는 위기
  • 실질임금 감소, 빈부격차 심화, 고학력자 과잉생산, 공적 신뢰 감소, 공공부채 폭증이 불안정의 지표라는데, 우리는 어디쯤 있는 것 같아요?
  • 엘리트 내부의 경쟁과 갈등을 당신도 심각하게 보고 있나요? 어떤 지표를 더 위중하게 인식하나요?
  • 혹시 불안정을 초래하는 다른 신호를 인지한 적 있나요?
  • 해체와 통합이 반복된다고요. 우리 역사에서는 어떻게 나타났다고 볼 수 있을까요?
위기를 벗어나는 과정
  • 대다수 노동자가 경제성장의 과실을 공평하게 나눠 갖는 데서 배제되는 건 어떻게 개선해요?
  • 지배계급이 혁명적 상황을 피하려면 일련의 개혁으로 사회 체계의 균형을 바로잡으면서 대중의 궁핍화와 엘리트 과잉생산 추세를 뒤집어야 한다는데요. 미국이나 한국에서 과연?
  • 낙관적 사례, 식민지 제국주의로 인구 압력을 낮추거나 경제적 압력을 해소한 영국, 그러나 끝내 쇠락한 영국은 어떻게 봐요?
  • 성공도 했으나 끝내 혁명을 막지 못한 러시아 사례. 근데 현대에서는 어떤 이들이 혁명을 꿈꿀까요?
  • 장기적인 집단적 선을 위해 단기적인 이기적 이득을 기꺼이 희생시키는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는데요. 표가 되지 않는 정책을 누가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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