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냐의 북라이딩] 북살롱 목요일 언니, 청와대 국민청원 기획자, 얼룩소 설립자, ‘홍보가 아니라 소통입니다’ 저자 정혜승의 종횡무진 독서 탐험기.
오늘 ‘마냐의 북라이딩’에서 함께 읽을 책은 [다정한 조직이 살아남는다] (엘라 F. 워싱턴, 이상원 옮김, 갈매나무: 2023.)입니다. 구글, 메타, 아마존, 넷플릭스, 슬랙 등 ‘포춘’ 500대 기업의 80%가 다양성과 포용을 기업 운영의 핵심 가치로 삼습니다.
DEI(다양성, 형평, 포용; Diversity, Equity, Inclusion) 전문가로 다양한 기업을 컨설팅하는 저자는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이 실제로 기업을 더 강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이 글은 서평이자 필자의 책 [정부가 없다]에 담긴 글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편집자)
다정한 조직이
살아남는다?
– 마냐의 북라이딩
사회적 아픔을 대하는 태도를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다정한 조직이 살아남는다]에 담긴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2020년 미국 미니애폴리스 경찰 데릭 쇼빈은 용의자 조지 플로이드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7분 46초 동안 무릎으로 목을 눌러 그를 살해했다. 경찰의 과잉 진압과 인종차별에 대한 분노가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미국의 흑인들이 400년 동안 견뎌온 고통의 무게를 드러냈다고 했다.
특히 흑인들은 집에서, 일터에서 괴로워했다. 다들 울음을 터뜨리고 자기만 숨쉬기 어려운 것이냐 묻곤 했다. 업무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이것이 과연 개인적인 일일까? 정부나 사회적 대응 외에 기업도 이런 문제를 간과하지 않았다.
슬랙, 유급으로 유색인종 직원에게 ‘감정휴가’
메신저 및 프로젝트 협업 툴을 만드는 회사 슬랙의 창업자이자 당시 CEO 스튜어트 버터필드는 당시 흑인과 유색인종 직원을 대상으로 사내 성명을 내고 공감과 애도를 표현하며 심리상담 기회와 ‘감정 휴가’라는 유급 휴가를 제공했다.
팀원들에게 ‘감정 휴가’를 쓰라고 권고할 수 있는 것, 누가 감정적으로 취약해 제대로 업무를 하지 못한다는 낙인을 찍지 않아도 된 것에 고마워하지 않을 직원이 있을까? 그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인종 평등 문제에 회사가 무엇을 더 개선할 수 있을지 직원들에게 계속 의견을 올려달라고 했다.
“CEO가 앞장서 회사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을 공개적으로 비판한다는 생각에, 직원들은 온전한 자신으로서 진정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안전지대를 실감하는 듯했습니다.”
슬랙의 경험 전문가 글로벌 매니저이자 산업 및 조직 심리학 박사인 레이철 웨스터필드의 말이다.
베스트바이, 흑인과 여성을 위한 ‘사과 성명서’
전자제품 소매업체 베스트바이 본사는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지점에서 불과 7마일 떨어진 곳에 있었다. CEO 코리 베리는 직접 성명서를 작성했다.
“이제부터 무얼 해야 할까요? 흑인 남성과 여성이 자신들을 보호해주어야 하는 이들에게 오히려 공격당하기 일쑤인 이 악순환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국에서 유색인종으로서의 삶은 안전하지 못하다는 이 서글픈 진실을 어쩌면 좋을까요?
저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들의 경험을 그대로 인정하며 충분히 행동하지 못했음을 사과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제가 이끄는 회사에서 가능한 한 다방면으로 영구적이고 체계적인 변화를 이루어내는 일도 마찬가지로 중요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사회적 현안에 영향을 받는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때 함께 눈물 흘리고 괴로워했다. 이런 아픔을 담담하게 인정하고 보듬을 때, 상황은 다르게 전개된다.
PwC, 2016년 토론과 2000년 다양성 포용 투명성 보고서
2016년에도 경찰 총격으로 시민이 사망하는 사건이 이어지고 흑인을 향한 경찰 폭력에 분노한 흑인 퇴역군인이 경찰 다섯 명을 죽이면서 혼란이 이어졌다. 컨설팅업체 PwC 미주 대표이사 팀 라이언은 직원 5만5000명에게 메일을 보냈다.
“여러 사건으로 마음이 무거울 것을 잘 압니다. 우리는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직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미국 전역을 들끓게 한 부당함에 회사가 충분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느꼈던 직원들은 놀라워했다. 얼마 후 PwC는 인종 문제를 주제로 종일 토론을 진행했다.
고객 서비스를 포기하고 하루를 온전히 비운 이례적 결정이었다. 대부분의 직장에서 ‘흑인’이라는 단어조차 금기시되던 시절에 이런 토론을 벌였던 PwC는 2020년 ‘다양성, 포용, 투명성’ 보고서를 업계 최초로 냈다.
인적 자원(HR)에서 인적 자본(HC)의 시대로
굳이? 대체? 왜 기업들이 저런 일들에 앞장서는 것일까?
사람을 자원으로 보던 ‘HR(human resources)’의 시대에서 이제는 인적 자본, HC(human capital)의 시대로 움직인다는 글을 만났다. 직원에게 주인의식을 요구하지만 실제로는 소모품, 하나의 자원으로 여겨왔던 과거와 달리 최근 몇 년 사이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 트렌드는 주주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넘어가면서 직원이 ‘중요한 이해관계자’로 등장했다.
그동안 주주 이익만 최우선으로 봤다면, 이제는 △직원에게 투자하고, △직원에게 공정한 보상과 혜택을 제공하고, △직원을 존엄한 존재로 인정하고 존중하고 △다양하고 평등하며 포용적인 직장을 만들고 △직원의 의견을 경영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한 일로 떠올랐다. 1950년대 미국의 노동경제학자들이 쓰던 단어 ‘인적 자본’이 ESG 시대에 부활한 셈이다.
사회와 마찬가지로 직장 역시 유토피아가 아니다. 하지만 어디에서든 인간이 본연의 자기 모습으로 영혼을 지키고 살 권리가 있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재난과 참사에서 서로를 끌어안는 온기가 없다면 공동체가 어떻게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기업들도 하는 일을 정부는 다르게 더 잘할 수 있지 않나?
다정한 조직이
살아남는다!
– 마냐의 북라이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