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폴리시] 쿠팡 배달 노동자 93%가 새벽 배송 금지에 반대… “상차하에만 1시간24분, 당사자 배제한 사회적 대화는 모순.” (⌚7분)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새벽 배송 금지’를 주장하지만, 그보다 노동자 생계가 먼저 흔들리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정진영(쿠팡 노조위원장), 개혁신당 토론회, 2025.12.18
쿠팡 노조위원장 정진영은 18일 개혁신당이 주최한 토론회 ‘새벽 배송 금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서 교각살우(잘못된 점을 고치려다 그 방법이 지나쳐 오히려 일을 그르친다는 뜻)를 걱정했다. ‘택배 사회적 대화 기구’가 화두로 꺼낸 새벽 배송 금지가 임금 저하와 고용 불안을 부를 것이라는 우려다.

이게 왜 중요한가.
- 새벽 배송 금지는 건강권뿐 아니라 일자리 문제와도 연동돼 있다. 일하는 사람 생계가 달린 문제다. 새벽 배송 기사들을 대변하는 쿠팡 노조 목소리는 중요하다.
- 정진영 주장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 첫째, 새벽 배송 금지는 야간 노동자들의 임금 저하와 고용 불안을 불러온다. 새벽 배송은 야간·새벽 시간대 노동을 기반으로 돌아간다. 이 시간대 업무가 줄면 소득 감소, 인력 감축이 뒤따른다.
- 둘째, 민주당 주도로 지난 9월 출범한 택배 사회적 대화 기구에 쿠팡 노조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쿠팡 노조는 기구 참여를 요구하고 있지만 계속 쫓겨나고 있다. 외부 판단만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일방적 처분에 다름 아니다. 노동자를 위한다면서 정작 노동자 의견이 빠진 결정은 모순이다.
- 셋째, 건강권 보호엔 동의하지만 ‘금지’는 해법이 아니다. 노동자 건강권을 지키려다 생존권을 위협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건강을 지키자고 일자리를 줄이거나 소득을 떨어뜨리는 방식은 노동자에게 선택지 없는 강요가 될 수 있다.

쿠팡 노조가 제시한 대안.
- 쿠팡 노조는 대안도 내놨다. 새벽 배송 금지 대신 노동자 건강권을 실질적으로 지키는 기준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 첫째, 낮은 임금을 높여야 한다. 정진영은 “고강도 노동인데도 최저 임금만 받고 일하는 택배 노동자들이 굉장히 많다. 이 때문에 야간 노동을 선택하는 분이 적지 않다”면서 “지금보다 급여 수준을 높인다면, 반 강제적으로 야간을 선택하는 상황은 줄일 수 있다”고 했다.
- 둘째, 주간 배송 시 겪게 되는 마찰과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낮에는 교통이 혼잡하다. 택배를 위한 주·정차 공간이 부족하다. 주민·경비와 마찰로 인한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택배 픽업존’을 시행하는 것도 방안이다.
- △택배 기사 임금 상승을 위한 대리점 수수료 상한 적용과 투명화 △악천후 대비 위한 기상 정보 사전 공유와 악천후 시 자동으로 배송 시간 제한을 완화하는 시스템 도입(악천후 땐 가정에 배달되는 시간이 지연되는 시스템을 의미) △고용 형태가 아닌 현장 위험을 기준으로 한 명확하고 일관된 폭염 규칙 재정비 등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 *쿠팡 CLS(쿠팡 로지스틱스 서비스)* 영업점이 평상시 택배 기사의 대체 인력을 확보해 휴무를 보장하거나 야간 택배 기사의 건강 검진을 독려하여 수검률(검진 받은 비율)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
📌 CLS:
쿠팡의 배송 전문 자회사 쿠팡 로지스틱스 서비스(Coupang Logistics Services) 약자. CLS는 물류센터보다는 작은 규모로 물류센터에서 넘어온 상품을 분류, 소분, 포장하는 최종 단계의 물류 작업장인 쿠팡 캠프를 운영한다. 반면 물류센터(풀필먼트센터, FC)는 상품 입고, 보관, 분류, 포장, 출고 등 물류 전 과정을 관리한다. 쿠팡 계열사인 쿠팡풀필먼트서비스(Coupang Fulfillment Services, CFS)가 물류센터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건강권 보장’ 명분만으론 현장을 납득시킬 수 없어.”
- 지난 10월 말 쿠팡 택배 영업점 단체 쿠팡파트너스연합회(CPA)가 새벽 배송 기사 24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93%가 새벽 배송 금지 방안에 반대했다. 이 가운데 70%는 “야간 배송을 규제하면 다른 야간 일자리를 찾겠다”고 답했다.
- 지난 11월 말 추가 실시한 조사에서도 야간 택배 기사의 98%, 주간 택배 기사의 86%가 새벽 배송 금지에 반대했다. CPA는 쿠팡의 택배 위탁 기사 2만 명 가운데 절반이 속한 국내 최대 규모의 쿠팡 유관 단체다.
- 영업점 태경로지스 대표 김봉섭은 “새벽 배송은 야간에만 택배 업무가 가능한 기사들의 사실상 유일한 생존 수단”이라며 “내 할 일만 잘하면 직장을 잃을 일도 없고 평생 직장이라 생각해 택배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폐업·실직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휩싸였다”고 현장 상황을 전했다.
초심야 제한해도 새벽배송 가능? “현장 모르고 하는 소리”
- 쿠팡 노조와 달리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는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이른바 ‘초심야 시간대’ 배송을 제한하자고 주장한다. 0~5시 택배 배송을 하지 않아도 소비자들은 선조치를 통해 아침에 택배를 받아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긴급히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만 휴일·새벽 배송을 택하고, 나머지는 평일·주간 배송으로 전환해 물량을 조정하면 된다는 것.
- 김봉섭은 “0~5시 배송을 중단하고도 새벽 배송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택배 현장을 전혀 모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봉섭은 한국교통연구원 조사를 인용해 “택배 기사들이 배송 물량을 스캔하며 상차하는 시간만 1시간 24분이 걸린다. 오전 5시에 입차하고 상차까지 하면 배송 캠프에서 아무리 빨리 출발해도 소비자들이 새벽 배송으로 인식하는 시간 내 배송지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 “새벽 배송이 필요한 물품만 빼고 배송을 제한하자는 말도 문제다. 새벽 배송이 필요한 물품과 아닌 물품을 구분하는 기준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 소상공인 생존권도 위협받는 상황에 처할 것.”
- “가뜩이나 어려운 민생 경제에 재를 뿌리겠다는 심산으로 밖엔 읽히지 않는다.”
- 소상공인연합회 전문위원 류필선은 “소상공인 셀러뿐 아니라 새벽 배송 이용 소상공인도 새벽 배송이 중단되면 손해가 막심해질 것”이라며 “많은 소상공인이 식재료를 새벽 배송으로 받아 하루 장사를 준비하는데, 새벽 배송이 중단되면 새벽에 차를 몰고 식자재를 구매하러 가야 해 인력 충원이 필요한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고 했다.
- 국내 최대 물류산업 학회 한국로지스틱스학회는 지난달 6일 ‘새벽 배송과 주 7일 배송의 파급효과 관련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새벽 배송과 주 7일 배송이 중단돼 택배 주문량이 약 40% 감소할 경우 소상공인 매출은 18조 3000억 원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e커머스 업체 매출 감소분 33조여 원 등을 포함하면 경제적 손실은 54조 원에 달한다는 게 학회 분석이다.
- 이 보고서에 따르면, 새벽 배송 시장은 2015년 4000억 원에서 2024년 11조 8000억 원 규모로 성장했다. 류필선은 “특히 소상공인들이 주로 유통하는 과일, 식재료 등 빠른 배송이 필수적인 품목의 유통을 촉진시킨 것으로 분석됐다”고 소개했다.
- 류필선은 “만약 ‘택배 사회적 대화 기구’와 관련 국회의원들이 노조(택배노조) 측 주장을 일방적으로 수용해 새벽 배송이 금지된다면, 쿠팡을 포함한 새벽 배송 온라인 플랫폼 입점 소상공인들의 피해를 모아 손실보상 촉구에 나서는 것도 불사할 방침”이라고 경고했다.

시간 규제 부작용? “쉴 시간이 사라졌다.”
- 택배기사 비노조연합 대표 김슬기는 배송 시간 규제 정책이 불러오는 부작용을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는 ‘오후 10시 이후의 심야 배송’은 제한토록 했다. 2020년 한 해에 10명이 사망하는 등 택배 기사 과로사가 사회 문제가 되자 내놓은 조치였다.
- 김슬기는 “10시 이후 택배 어플이 막힌 것인데 결과적으로 택배 기사에게는 타임어택(제한 시간 내 모든 배송 물량을 처리해야 하는 고강도 작업)을 시키는 효과가 생겼다”며 “*집하*가 있는 기사들의 경우 배송보다 거래처가 우선이기 때문에 거래처를 우선 돌고 배송은 후순위로 밀린다. 후순위로 밀린 물량을 제때 처리 못하면 구역을 빼앗긴다. 택배 기사 과로를 막기 위해 생긴 10시 이후 배송 제한 때문에 택배 기사는 쉬지 않고 뛰어야 한다”고 증언했다.
- 김슬기는 “구역을 뺏긴 기사들이 택한 건 결국 투잡이다. 발표하는 나도 돈이 모자라 여러 일을 하고 있다. 택배 기사를 위해 영업 시간을 제한했더니 돈이 모자라서 투잡을 뛴다”며 “저녁이 있는 삶을 주겠다던 정부가 생각난다. 덕분에 저녁에 투잡을 뛴다”고 꼬집었다. “규제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과로를 막는 게 목적이라면 방식을 바꿔야 한다.”
📌 집하:
판매자(보내는 사람)가 맡긴 물건을 택배사가 처음으로 모아 접수·수거하는 과정을 말한다. 배송 조회에서 ‘집하’, ‘집하 처리’, ‘집하 완료’가 뜨면 판매처에서 나온 물건이 택배 기사·물류센터 쪽으로 넘어가 배송 여정이 시작됐다는 뜻.
국회입법조사처 “쿠팡노조 참여 보장해야.”
- 일방적 새벽 배송 금지 추진에 현장 반발이 들끓고 있다는 걸 보여준 토론회다. 택배 사회적 대화 기구가 새벽 배송 기사들을 대표하는 쿠팡 노조의 참여를 거부하는 행태엔 어떤 명분도 없어 보인다.
- 국회입법조사처도 17일 보고서를 통해 “사회적 대화에는 출범 당시부터 택배노조가 노동계를 대표하여 참여해 왔고, 심야 배송을 주로 수행하는 쿠팡 택배 노동자가 다수 소속된 쿠팡노조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뒤 “심야 배송을 주업으로 하는 노동자의 경우 소득 감소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이들 목소리가 사회적 대화 구조 속에서 소외될 경우 사회적 합의 이후에도 현장 수용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 조사처는 “사회적 대화의 정당성과 실효성은 이해당사자의 실질적 참여에서 비롯한다”며 “심야 배송 당사자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노동계 내 충분한 논의를 거쳐 노동계에서 합의된 안을 제시하거나 이들의 대화 참여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 한편, 쿠팡 창업자이자 실질적 소유주인 김범석(쿠팡Inc. 의장)은 17일 개인정보 유출 사태 관련 국회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쿠팡에 대한 여론이 악화일로를 걷는 가운데, 김범석이 쿠팡 노동자 사망 관련 과로사를 은폐·지시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대국민 사과와 해명이 필요한데도 무책임, 회피로 일관하는 김범석과 쿠팡에 사회적 공분이 크다.
- 개혁신당 대표 이준석은 사안을 분리해 대처하겠다고 했다. 청문회 후 “김범석은 한국 국회를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한 이준석은 “재벌 총수 행태를 감시하는 것과 새벽 배송이라는 서비스 양태를 논의하는 것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새벽 배송 논의가 오늘 같이 여러 당사자의 토론을 통해 단계적으로 진행되면 좋았을 것”이라며 “일부 주체가 사회적 기구 참여를 거부 당하는 운영 방식은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