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지역의사제 논의가 놓친 질문…‘어디서 어떤 의사를 어떻게’ 지역에서 함께 살아갈 의료인을 키워내려면? (김새롬/인제대 의대교수) (⏳4분)
지역의사제를 둘러싼 정치적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이달 초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정부와 여당이 지역 간, 진료과목 간 의료인력 불균형 해소를 위해 지역의사제 도입에 합의했고, 그 결과 지난주 국회에서는 지역의사제 관련 법안이 공청회를 거쳐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지역의사 보는 서로 다른 입장
여야 의원들과 정부가 내놓은 지역의사제 관련 법안들은 그 내용이 대동소이하다. 도무지 지역의 의사 부족과 수도권으로의 의사 쏠림이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지역에서 일정 기간 일할 의사들을 따로 선발하자는 내용이다. 지역에서 일할 의사들을 별도 전형으로 선발하고, 이들에게 학비와 기숙사비 등 지원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지역의사제 법안은 이렇게 선발되어 교육받은 의사들이 의대를 졸업한 후 최대 10년 동안 정해진 지역에서 근무하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청회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각자의 입장과 무관하게 지역의 필수의료 공백과 의사 구인난의 심각성, 이에 대한 정부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데에는 공감을 이룬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역의사제라는 새로운 정책을 놓고서는 입장이 갈렸다. 대한의사협회의 대변인과 정책이사의 경우 지역의사제가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의무복무 조항이 헌법에 보장된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여지가 있다고도 주장했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서울 소재 병원에 적을 두고 있다.
비수도권 국립대 병원 소속인 다른 두 교수는 지역의 의사 부족에 대해 정부가 대응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면서 지역에서 일할 의사를 양성하기 위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기획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의사의 근무지역 선택에 있어서 의미있는 영향을 미치는 몇 안 되는 요인 중 하나가 출신 지역과 교육·수련을 받은 지역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공청회에서 발언한 법조인은 직업선택의 자유가 아닌 직업 ’수행’의 자유를 일부 제한하는 이 법이 헌법을 위반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의견을 냈다. 환자단체대표 역시 지역의사제의 필요성을 지지했다.

어떤 지역? 어떤 의사?
지역의사제를 둘러싼 논의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빠져있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새 제도를 통해 채우고자 하는 ‘지역’과 길러내고자 하는 ‘의사’는 도대체 어떤 지역과 어떤 의사인가. 의료의 공백을 메워야 할 공간이 서울이 아닌 모든 지역인지, 상급종합병원이 있는 대도시가 아닌 지역인지, 혹은 보건진료소가 있는 의료취약지를 의미하는지 등을 현재로서는 알기 어렵다.
이러다 보니 공청회에서도 제도에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이 염두에 둔 문제와 고통의 내용이 크게 달랐다. 아직 도입되지 않은 제도라 구체적인 내용이 다 준비되지 않았다고 해도, 입법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구체화하고 그에 걸맞는 정책수단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기울일 때 어렵게 도입된 새로운 제도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의사제 도입에 반대하는 주장 중에는 ‘의사들이 살고 싶은 지역’을 만들면 지역 근무를 강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있다. 하지만 이 말은 각 지역이 의사 유치를 위해 서울에 준하는 경제발전과 교육·문화시설을 갖춰야 한다는 것인데,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다.
공청회에 참석했던 경상국립대학교 김영수 교수는 시민이 믿을 수 있는 병원과 의료인이 ‘살 만한 지역’의 조건이 지역 발전의 지지대가 된다고 말했다. 인구감소는 피할 수 없는 현상으로, 서로 돌보는 마을을 만들어 존엄한 노년을 준비하는 데 힘을 보탤 의료인을 양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어떻게 선발·교육·수련할 것인가
둘째, 지역의사제가 지역에서 일할 의사를 뽑고 키우자는 것인데, 막상 이들을 어떻게 선발하고, 교육하며, 수련시킬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빠져 있다. 의과대학을 다니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준다고 해서 갑자기 지역사회 책무를 중히 여기는 다른 의료인이 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어떤 의학교육과 실습, 전공의 수련이 이루어져야 할까?
참고할만한 사례를 찾기 어렵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스스로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 주민들의 삶과 일터를 그리듯 상상할 수 있는 의사를 키워내야 한다는 점이다. 직접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병실에 누워서, 진료과와 진단명이 붙은 ‘환자’가 되기 이전의 사람들, 그들의 일상과 지역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의사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퇴원한 환자가 어떤 일상을 겪는지, 삶의 신산함이 건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미루어 짐작하고 개입 지점을 고민할 역량이 있는 의료인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서는 이들이 사회적 학습과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시간과 자원을 제공해야 한다. 의료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의 주체로 나서는 지역의 일꾼으로 활동할 의사를 양성하자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다.
일본의 자치의대 출신 의료인은 “내가 원하는 전공보다 지역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분과를 수련받으려 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러한 의료인을 어떻게 선발하고, 길러낼 수 있을까? 시장에서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사회적 가치와 명예를 소중하게 여기며 기꺼이 그에 복무하려는 의료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조롱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지역의사제 반대의 논리가 되어선 안된다. 전문직 노동 윤리가 보여주는 다층적인 모습조차 정책을 기획하는 데에 고려해야 할 현실로 받아들여, 대안적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지역에서 함께 살아갈 의료인, 가장 필요한 것은 ‘관계‘
정부는 2025년 5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책정해 지역·필수의료 교육 강화를 위한 의대 교육과정 혁신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지역사회기반 의학교육’은 단순히 ‘실습 장소를 대학병원에서 개원가로 옮기자’는 얘기가 아니라, 그보다 더 넓고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 바로 병원 밖 시민의 의견을 더 적극적으로 묻고 반영하는 것으로 이는 지방정부의 중요한 정치적 책무다.
지역에서 함께 살아갈 의료인을 기르는 데에 돈과 법이 아닌 다른 유인책이 필요하고, 그것은 아마도 관계가 아닐까 한다. 지역의 사람들과 더 끈끈한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일은 의대생 개인의 분투로 이루어질 일이 아니다. 의과대학, 지방정부, 중앙정부가 한데 힘을 모아 의료와 지역사회의 거리를 좁혀 나가야 한다.
의료계가 우려하듯 지역의사제는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할 근본 대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과는 다른 의료, 지역사회와 더 밀접한 관계를 맺는 의료인을 기대하는 마음이 새로운 의료정책을 한발씩 진전시킬 것이다. 한국 의료가 마주하게 될 암울한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한다면, 비관과 냉소를 멈추고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힘을 보태기를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