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리포트] 복지 축소 앞두고 ‘모든 것을 멈추자’ 운동 확산… “아무도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는다”, 14% 지지율에 내각 붕괴 상황인데 버티기 돌입. (⏳5분)
프랑스가 유럽연합의 골치덩어리가 됐다. 제2의 이탈리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 지난해 성장률 1.2%, 국가 부채는 114%다. 신용등급도 떨어졌다.
- 실업률은 7.5%, 내년까지 16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거라는 전망도 있다.
- 올해와 내년 성장률 전망은 0.7%까지 떨어졌다.
- 에마뉘엘 마크롱(프랑스 대통령)의 지지율은 14%를 기록했다.
미셀 바르니에(전 프랑스 총리)가 99일 만에 물러난 데 이어 프랑수아 바이루(전 프랑스 총리)가 반년 만에 물러났고 세바스티앵 르코르뉘(프랑스 총리)는 27일 만에 물러났다가 4일 뒤 다시 복귀했다. 돌아온 총리를 두고 두 차례 불신임 투표가 있었지만 겨우 부결됐다.

영국의 BBC는 “프랑스가 유럽의 새로운 환자(sick man)가 됐다”고 평가했다.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게 왜 중요한가.
- 핵심은 재정 건전성이다. 국가 부채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 지출을 줄여야 하는데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반발이 거세다.
- 결국 지지율이 깡패다. 지지율 없이는 어떤 개혁도 밀어붙일 수 없다.
- 더 근본적인 문제는 성장률이다. 성장을 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 지금은 잘 나가던 시절 복지 시스템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인구 고령화 충격도 겹쳤다.
-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마크롱 정부 7명의 총리.
- 2017년 마크롱 1기 때만 해도 지지율이 64%를 찍었다.
- 유류세 인상에 반발해 노란조끼 시위가 정권 퇴진 운동으로 번지면서 23%까지 떨어졌다.
- 2020년 코로나 펜데믹 때 지지율이 올라서 2022년 연임에 성공했지만 연금 개혁이 지지율을 끌어내렸다.
- 그리고 올해 들어 급기야 내각이 붕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 가브리엘 아탈(전 프랑스 총리)은 마크롱의 ‘젊은 피’ 카드로 불렸지만 긴축 예산안을 두고 갈등하다 사임했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 프랑수와 바이루는 하원의 불신임 투표가 가결돼 물러났다.
- 국방부 장관 출신의 세바스티앵 르코르뉘는 위기 돌파형 총리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블로콩 투(Bloquons Tout·모든 것을 멈추자))’ 운동에 맞설 정치력이 없다. 장관 시절에도 언론 노출을 꺼려서 별명이 ‘수수께끼(l’enigme)’였다.
- 마크롱 임기는 2027년까지다. 임기를 채우겠다는 입장이지만 동력이 없는 상태다.
- 연금 개혁을 중단한다고 약속한 뒤 르코르뉘의 불신임을 막았지만 내년 예산을 두고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 마크롱 1기에서 총리를 지낸 에두아르드 필리프는 “마크롱은 임기를 채우기 전에 물러나야 한다”면서 “그게 위기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품위있는 결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원집정부제의 한계.
- 프랑스의 이원집정부제(Semi-présidentiel)는 대통령제보다는 의원내각제에 가깝다.
- 한국은 국무총리를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가 동의하는 구조인데 프랑스는 대통령과 총리가 행정권을 나눠맡는다.
- 대통령이 외교와 국방을 맡고 총리가 나머지를 맡는다. 의회에서 불신임하면 총리가 사임해야 한다. 집권 여당이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 총리가 버틸 수 없는 구조다.
- 최근 마크롱의 지지율은 20%를 밑돌고 있다. 노란조끼 때보다 더 인기가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원집정부제에서 여소야대 국면이 되면 총리를 야당에 넘겨주지 않는 이상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모두가 긴축을 반대한다.
- 마크롱 정부는 300억 유로의 지출 삭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집권 여당인 앙상블은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지만 의석 수가 27% 밖에 안 된다.
- 좌파 연합 NFP는 긴축을 반대하고 복지 확대와 부자 증세를 요구한다.
- 극우 성향의 RN도 증세와 긴축을 모두 반대한다.
- 프랑스의 재정 적자는 GDP 대비 6% 수준이다. 국가 부채는 114%다. 유럽연합의 부채 상한은 60%다.
- 국채 금리도 급등했다. 성장률 추락과 높은 국가 부채, 작동하지 않는 정치의 삼중 함정에 빠져 있는 상태다. 연금 개혁도 노동 개혁도 모두 실패했다.


마크롱의 패착.
- 마크롱 1기 때 의욕적으로 법인세와 소득세, 부동산세를 줄였다. 그때부터 마크롱의 몰락이 시작됐다.
- 연간 500억 유로의 세수가 줄었는데 불가피한 지출이 늘었다. 코로나 팬데믹 대응에 1700억 유로를 썼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가스 공급이 중단되면서 에너지 보조금으로 720억 유로를 썼다.
- 긴축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하는 상황이다. 국채 금리가 오르니 차입 비용이 늘고 정부 지출이 줄고 경기 둔화에 세수 부족의 악순환에 빠졌다.
- 프랑스의 정치 불안이 유럽연합 전체의 금융 불안으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유럽연합의 연결된 위험.
- 유로 존에 묶여 있으니 프랑스나 이탈리아처럼 경기 부양이 필요한 나라들도 재정 정책에 한계가 있다.
- ECB(유럽중앙은행)의 긴축 기조가 재정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 프랑스발 불안이 이탈리아나 스페인, 벨기에 등으로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 그나마 다행인 건 프랑스는 저축률이 높고 소비 성향이 낮은 나라다. 가계 저축률이 18%나 된다. 최악의 상황까지 가지는 않을 거라는 전망도 많다.


“아무도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는다.”
- 프랑수아즈 프레소(르몽드 칼럼니스트)가 이런 글을 썼다.
- “우리는 공공 지출에 완전히 중독돼 있다. 좌우를 막론하고 모든 정부가 불만의 불을 끄고 사회적 평화를 구매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었다. 이제 이 제도가 수명을 다했다는 것을 누구나 느낄 수 있다. 우리는 낡은 복지국가의 종말에 와 있다. 하지만 아무도 대가를 치르거나 개혁이 필요한 상황에 직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극우 포퓰리즘에 발목 잡힌 유럽.
- 프랑스가 구조 개혁에 실패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가 24% 의석을 확보한 극우 정당 RN이다. 다음 선거에서 RN으로 정권이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 독일에서도 극우 정당인 Afd(독일을 위한 대안) 지지율이 집권 여당인 기민-기사연합에 맞먹는 수준까지 치고 올라왔다. 프리드리히 메르츠(독일 총리) 지지율은 반년도 안 돼 50%가 꺾였다.
- 유럽 전역에서 극우 포퓰리즘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민 제한과 긴축 반대, 보호 무역 강화 등의 의제가 사회 갈등을 키우고 정치 불안이 투자 심리 위축과 금융 불안으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한국에 주는 교훈: 골든 타임이 다가오고 있다.
- 한국의 국가 부채는 지난해 기준으로 GDP의 49%다. 복지 지출은 GDP의 15.5%로 프랑스의 절반 수준이다.
- 프랑스가 고부담-고복지 체제라면 한국은 저부담-저복지 체제다. 한국은 아직 여유가 있지만 인구 고령화의 충격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 기획재정부는 2035년이면 국가 부채가 GDP 대비 71.5%까지 늘어날 거라고 보고 있다. 복지 지출도 급격히 늘어날 전망이다.
- 만약 이재명 정부의 계획대로 성장률을 복원하고 분모를 늘리면 지출을 늘리면서도 부채 비율을 유지하는 게 가능할 수도 있다.
- 거위 털을 뽑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결단을 내려야 할 때도 있다. 개혁의 동력은 정치적 신뢰다. 사회적 연대도 힘이 있을 때 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