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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아이폰5 흠집게이트’ 사태를 불러온 애플의 불공정약관이 철퇴를 맞았습니다. 소비자의 문제 제기, 공정위의 판단, 더불어 소비자의 목소리를 모으고, 사건을 조사해 해당 약관을 심사청구한 시민단체(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이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져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소비자정의센터 박지호 님께서 직접 털어놓는 ‘아이폰 5 흠집게이트’ 사건에 관한 체험과 소회입니다. (편집자) [/box]

“(애플 ‘하드웨어 품질 보증서’의) 해당 약관 조항은 책임 소재의 여부를 불문하고 표면상의 결함에 대한 사업자 책임을 일률적으로 배제하고 있어서 불공정합니다.”

지난 10월 11일 공정거래위원회 약관심사과 담당자가 기자들 앞에 섰다. 공정거래위원회 담당자의 육성이 조금 흔들리긴 했지만, 담고 있는 의미와 판단은 명확했다. 국내 모바일기기(스마트폰, 태블릿) 시장점유율 14%를 차지하고 있는 애플의 ‘하드웨어 품질 보증서’에 대한 시정조치를 애플이 수용했다는 발표였다. 이로써 오랫동안 소비자가 분통을 터뜨렸던 ‘아이폰5 흠집게이트’ 사태는 일단락됐다.

아이폰5 구매자의 분통을 터뜨리게 한 흠집들
(사진: 계란소년)

약관심사청구 복잡하고 어렵지 않을까

약관심사청구는 어감상 왠지 어렵고 전문적으로 느껴지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box type=”note” head=”‘약관(約款)’이란? “]’약관(約款)은 계약 당사자가 불특정 다수 상대방과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미리 일정한 내용과 형식을 마련한 계약을 뜻한다. 즉, 대량 거래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된 계약 형식과 내용을 통칭한다. 불특정 다수 소비자를 상대하는 대형 제조사나 온라인 서비스 사업자 등이 약관 형태로 소비자(사용자/구매자)와 계약을 체결한다. [/box]

약관과 관련하여 법률상 이익이 있는 자(계약자)라면 누구나 쉽게 공정거래위원회에 서면이나 전자문서로 심사를 청구할 수 있다.

"참 쉽죠?"로 유명한 화가 밥 로스(1942~1995)   (c) Bob Ross Inc (말풍선 추가)
“참 쉽죠?”로 유명한 화가 밥 로스(1942~1995)
(c) Bob Ross Inc (말풍선 추가)

약관심사가 청구되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약관 판단 기준에 따라 불공정 여부를 판단한다. 그런데 문제는 심사 기간이다. 언제까지 심사해야 한다는 기한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아서 심사청구한 뒤에 몇 년이 흘러가기도 한다. 이번 ‘아이폰5 흠집게이트’는 올해 초(3월)에 약관심사를 청구했으니 6개월 남짓 걸린 셈이다.

물론 우리나라 공공기관 사이트를 만만히 보면 큰 코 다친다!
복잡복잡한 공정거래위원회 첫 화면
gong_02
공정위에 ‘불공정’을 신고한다는 게 말처럼 “참 쉽지”만은 않은 게 현실
참! 다양한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공정위 불공정거래 신고 화면 페이지

이번 애플 ‘흠집게이트’ 같이 불공정약관이라고 판단되면 공정거래위원회는 해당 업체에 약관 삭제나 수정을 권고하거나 명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불공정약관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기도 한다. 만약 업체가 공정위원회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처한다. 업체로서는 이래저래 창피스러운 일이다.

‘애플마니아’마저 치를 떨게 한 애플의 대응

작년 말 나는 앱 마켓 구매절차를 조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즈음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이폰5가 출시되었다. 하지만 전에 들리지 않던 파열음이 들려왔다. 신제품에 스크래치와 흠집이 자주 발견된다는 것. 사실 스크래치는 제조 및 유통과정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리 큰일은 아니다. 문제는 제조사의 대응. 애플은 애플마니아조차도 치를 떨게 하는 대응을 준비하고 있었다. 소비자에게 제대로 고지조차 않는 품질 보증서를 근거로 문제 있는 제품의 교환과 환불을 거부했고, 소비자를 무시하는 행태로 일관했다.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는 진행 중인 사업(앱 마켓 구매절차 조사)의 연장선에서 이 문제에 집중했다. 피해가 계속되자 공식적으로 아이폰5를 비롯한 모든 애플 제품의 하드웨어 관련 교환・환불 거부 사례를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예상보다 훨씬 더 소비자 불만과 피해는 컸고, 또 심각했다.

사례를 하나 예시해보자. 대부분 사례는 아래와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된다.

  1. 드디어 손에 쥔 아이폰5! 판매자 눈앞에서 개봉했더니 흠집이 있다. 당연히 찝찝하다.
  2. 그래서 다른 제품으로 교환을 요구한다. 환불도 아닌 교환이다.
  3. 하지만 판매자는 교환을 거부한다. 내부 지침상 개봉 후에는 교환이나 환불이 불가능하다고 답변한다.
  4. 애플 서비스센터로 가서 항의해도 돌아오는 내용은 똑같다. 내부 지침으로 인해 교환이나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것.

100만 원짜리 새 제품을 샀는데도 중고품을 사는 느낌. 환불도 아닌 제품 교환을 요청해도 번번이 무시당하는 상황. 뭔가 기만당한 기분까지 들기에 충분하다. 이쯤 되면 정신적인 피해보상이라고 청구하고 싶은 심정이다. 요건을 충족하는 많은 소비자 피해 사례를 수집했다. 그리고 올해 3월 공정거래위원회에 애플 ‘하드웨어 품질 보증서’는 제조사 잘못을 고객에게 떠넘기는 불공정 약관이라고 신고했다.

결국은 소비자의 힘

6개월 남짓이 흘렀다. 드디어 공정위는 애플 해당 약관을 불공정하다고 판단했고, 애플은 공정위가 더 강한 조치를 내리기 전에 자진시정했다. 앞으로 애플 제품을 구매할 때 새 제품에 흠집이 있으면 교환 혹은 환불이 가능하다. 너무도 당연한 일. 그런데 이게 ‘개선’의 결과다.

무엇보다 이번 결과를 이끌어 낸 것은 자신의 피해보상과는 무관하지만, 향후 애플 소비자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기꺼이 협력해준 소비자의 힘이다. 불편했을 것이다. 찝찝했을 것이다. 기본 기능과는 상관이 없어도 왠지 짜증 났을 것이다. 마치 나도 모르게 부가서비스에 가입되어 매달 3천 원씩 빠져나가던 통신비처럼. 하지만 이들 소비자는 이 ‘막연한 불편함’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자화자찬이라서 민망하지만 두 번째 공은 당연히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에게 있다고 자부한다.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는 신기한 집단이다. 부당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행하고 있는 기업을 보면 무섭게 반응한다. 시장점유율, 국내 영향력 등은 중요치 않다. 오로지 소비자의 이익, 그리고 스스로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낸다. 그리고 실천하는 열정이 있다. 가끔 자신의 시간과 이익보다 우선하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그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요즘 같은 경쟁시대에 정말 신기한 단체고, 멤버들이다.

여전히 문제는 ‘약관’….”귀하의 유일한 구제수단은 오로지”

세계적인 기업을 상대로 실질적 개선을 이끌어 냈다는 자부심도 한편에 있다. 하지만 그저 담담하다.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만든 것뿐이다. 그 당연함을 이상한 기업이 이상한 정책으로 불편하게 왜곡했었던 것뿐이다. 그리고 이 성과에 만족하기엔 이르다. 여전히 제2, 제3의 ‘흠집게이트’를 준비하고 있는 불공정 약관이 널려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소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소비자가 피해를 당연하다고 여기게 만들려고 의도한다. 물로 그 의도는 최대한 소비자에게 보이지 않은 형태로 숨겨져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건 바로 ‘약관’이다.

가령, 애플의 불공정약관을 하나 더 예시해보자. 아이튠스( iTunes) 스토어나 앱스토어(App Store) 약관은 “귀하의 유일한 구제 수단은 오로지 iTunes의 결정에 의해 교체 또는 지불된 금액을 환불 받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불합리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미리 결정하는 것도 부족해 자신만이 그 불합리를 해결할 수 있다는 애플의 태도는 오만하다. 소비자에게 부당함을 초래할 수 있는 전형적인 불공정약관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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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 약관 ‘Mac App Store, App Store 및 iBooks Store 판매 조건’ 중 ‘환불 방침’

애플뿐만 아니다. 우리나라 통신사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이다. SKT, 올레닷컴, LG U+의 약관에는 ‘회사 사정으로 일방적으로 서비스를 중단해도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할 수 없는 조항들이 포함돼 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세상의 모든 불공정 약관을 바로 세울 수 있을까? 어려운 일이다.

대개 약관은 ‘오로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소비자에게 일방적으로 제시되는 계약 조건으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 대부분 소비자는 약관을 읽어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복잡하고 따분한 계약서를 꼼꼼히 읽는 소비자는 여전히 적다. 약관의 주요 내용을 만화로 제시한다든가 하는 개선들이 있지만, 아직은 너무 미약하다(게다가 만화 역시 따분하다!).

이용약관의 주요 내용을 만화로 설명하는 한 통신사
하지만 만화가 쉽게 계약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빠지지 않는 ‘공인인증서’

갈 길이 아직 멀다.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폰5 흠집게이트’ 사건은 그 가능성을 보여준 귀한 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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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1. 세상의 모든 불공정약관을 바로 세워주세요.정말 정의롭고 십기한 단체인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에 무한한 사랑과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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