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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여론조사 기사 가려 읽기: ‘서울 청소년 첫 경험 나이가 13.6세’라고요?

여론조사는 인구통계학, 사회학, 심리학 등 다양한 요소가 동원되는 전문적인 분석 작업입니다. 한 개인의 견해가 아닌 사회집단의 공통된 견해, 즉 사회 동향이나 대중의 경향성을 도출해내는 작업입니다. 그래서 조사방법도 정확해야 하고, 표본집단도 적절히 구성되어야 합니다.

이에 대한 이론도 무척이나 많습니다. 결과 발표에 따른 사회적 파급효과도 크기 때문에 더더욱 정확한 근거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작업입니다. 도출된 결과를 객관적으로 그리고 왜곡 없이 정확히 전달해야 하는 책임도 늘 따릅니다. 독자들은 여론조사 결과를 접한 뒤 다수 여론에 자신의 의견을 얹거나, 소수 여론에 힘을 실어주거나,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 이건 믿어도 되겠구나!’

찬성 40% 반대 60% 결과를 두고도 ‘40%나 찬성했다’와 ‘60%나 반대했다’는 전혀 다른 의미로 전달됩니다. 게다가 기사 말미에 신뢰도 95%에 오차 +-0.5% 등의 문구를 덧붙이면 독자들은 ‘아, 거의 믿어도 되겠구나!’라고 비판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쉽게 다가가는 그래프, 인포그래픽 등이 더해지면 더더욱 전달력이 높아집니다.

독자들은 ‘여론조사/설문조사’라는 단어에 ‘전문성’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때문에 더더욱 의심 없이 해석 내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파급효과의 비중에 반하여,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의미를 왜곡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여론조사 과정 곳곳에 존재합니다.

표본집단을 한쪽에 쏠리게 하거나, 질문을 편파적으로 한다면 의도된 여론조사결과가 나옵니다.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해석을 뒤틀어버려도 마찬가지로 독자들에게 다른 메시지를 전할 수 있습니다. 조작된 여론을 다수 여론으로 몰아갈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여론조사를 보도하는 쪽에선 무척이나 조심히, 책임감을 가지고 다루어야 하고, 읽는 사람은 그 맥락을 세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례 1: ‘우리 회사 이름이 기사로 나가면 좋겠는데…’

여론조사 기사를 전문기관이나 양심 있는 기자들만 쓰는 것은 아닙니다. 회사명이나 브랜드명을 노출하게 하는 홍보 차원에서 마케터들이 ‘가짜’ 설문조사 결과를 만들어 보도자료로 배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식입니다.

노래 한 곡 어떠세요!(남성) vs 집에 가서 차 한 잔 할까요!(여성)
교제 초기에 상대가 이런 제안을 해오면 십중팔구 뭔가 불순한 속셈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결혼정보회사 비에나래가 연애결혼 정보업체 커플예감 필링유와 공동으로 …(중략)… 설문조사 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중략)…

손동규 비에나래 대표는 “미혼남녀가 불순한 제안으로 꼽은 사항들에는 ‘은밀한 공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라며 “교제 초기에 진도를 나가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수법이므로 상황판단을 올바르게 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 이데일리, [미혼남녀, 속 보이는 제안 1위는?], 2013년 8월 1일

이 기사를 언뜻 읽을 때엔 ‘음 역시 이성의 저런 작업 멘트는 조심해야겠군’하고 넘기겠지만, 어느 날 길을 걷다 “비에나레”, “커플예감필링유” 등의 브랜드를 다시 접하면 ‘어? 전에 그 기사에서 본 거 같아!’ 하고 떠올리게 될 겁니다. 네. 결혼정보회사 브랜드를 노출하기 위한 설문조사 기사(로 위장한 광고)입니다.

설문조사기관이 제3의 여론조사 전문기관이 아니라 여론조사주제와 관련된 사업을 하는 회사일 경우, 자사 사업을 위해 내부적으로 설문을 돌린 게 아니니 당연히 브랜드 노출 목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뒤 그 결과를 배포하는 것이라 보시면 됩니다. 물론 그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우리 회사 이름 걸린 기사가 좀 나갔으면 좋겠는데..’ 라고 이야기하는 사장님을 만족시키는 데에는 이만한 쉬운 작업이 없습니다.

사례 2: 좀 더 노골적으로 광고해볼까

아예 노골적으로 자사 주관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자사 제품을 광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래 보도자료를 한번 볼까요.

광학전문기업 니콘 안경렌즈는 온라인 설문조사 전문기관 두잇서베이와 함께 지난 달 17일부터 20일까지 직장인 1천 251명을 대상으로 ‘직장인 눈 피로도’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중략)…

니콘 안경렌즈를 유통하는 ㈜에실로코리아의 이승준 마케팅 팀장은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등 디지털 기기를 자주 사용하는 경우 안경 착용이 눈 건강 보호에 도움이 된다”며 “최근 니콘 안경렌즈에서도 눈의 피로를 덜어주는 ‘릴랙씨 네오’ 시리즈와 청색광 차단 코팅 기술 ‘NCC BLUE’가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 뉴스와이어, [니콘 안경렌즈, 직장인 대상 ‘눈 피로도’ 설문조사 진행], 2013년 7월 12일

자사가 진행한 눈 피로도 조사 결과를 소개하면서 ‘그러니 우리 회사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마무리하는 식입니다. 사실상 상품광고가 목적인 설문조사 결과입니다.

뉴스와이어를 통해 배포된 이 보도자료는 매일경제, 중앙일보(베타뉴스), 세계일보, 쿠키뉴스, 이데일리 등이 받아 보도하였습니다. 받아 쓴 언론사들이 NCC BLUE 라는 상품명을 빼버린 것이 그나마 양심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식의 설문조사 보도자료는 여론조사의 목적이 아닌 광고, 홍보를 주목적으로 하므로 설문 지문이 객관적인지, 표본집단이 적합하게 구성되었는지에 대한 검토가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온라인 설문조사 전문기관으로 언급된 위 업체 역시 이러한 기업들의 수요가 있음을 간파하고 빠른 설문진행 및 결과수집을 모토로 하고 있는 스타트업 업체로  알려져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여론조사라는 것은 질문을 어떻게 구성하였는지, 답변항목을 어떻게 구성하였는지, 질문을 어떻게 배치하였는지에 따라 그 결과양상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특히 정부기관이 자주 정책추진을 목표로 왜곡된 설문조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죠. 이런 조작은 그래도 쉽게 들통이 나곤 합니다. (참고: 한겨레, [‘집회는 불온’ 결론 유도하는 ‘불온한 설문’], 2013년 7월 8일)

사례 3: 잘못된 표본집단…취업 사이트에서 ‘이직’ 의향 질문하기?

심지어 표본집단 자체가 오류일 수밖에 없는 다음과 같은 사례는 조작이 눈에 띄지도 않습니다.

직장인 10명 중 9명은 올 하반기에 직장을 바꿀 계획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직장인 1,438명을 대상으로 ‘올 하반기 이직에 대한 생각’을 묻는 조사에서 무려 91.1%의 응답자가 ‘이직을 준비할 생각이다’라고 응답했다. 이직을 계획하고 있는 직장인 중 77.5%는 ‘채용 정보를 수시로 확인’하며 하반기 이직에 대한 본격적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 CBS 노컷뉴스, [직장인 91% “올 하반기에 직장을 바꾸겠다”], 2013년 7월 31일

자사 사이트에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도자료로 배포한 경우입니다. 인크루트는 구인·구직정보를 제공하는 취업포털 서비스죠. 당연히 이직하려는 사람들이 주로 접속하는 사이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곳의 방문자에게 ‘이직 할 생각이 있느냐’고 질문하면 당연히 대다수 사람이 ‘그렇다’고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직장인 91% 이직 희망’으로 해석하는 것은 당연히 오류일 수밖에 없습니다.

위 설문 해설은 ‘인크루트 사이트에 방문한 직장인 91% 가 이직을 희망한다’라고 적어야 정확한 해석일 것입니다. 물론 인크루트 홍보를 위한 보도자료이기 때문에 조사의 객관성 정확성은 그 업체 홍보팀 입장에선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례 4: 엉터리 해석…’첫경험 평균 나이가 13.6세’라구요? 

이렇듯 다양한 요인에 따라 설문조사 결과가 뒤틀릴 수 있습니다. 잘못된 설문조사는 프로모션 목적으로 하루에도 적지 않게 생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기사를 읽을 때 이 설문조사가 정확한 조사인지 엉터리인지 항상 의심하며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조사 결과뿐만 아니라 조사에 대한 해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뉴시스 기사를 받아온 조선일보의 다음 트윗을 봅시다.

서울 지역 청소년 첫 성경험 평균 나이가 13.6세라는 잘못된 정보를 유포하는 기사 소개 트윗

이 기사 요약은 잘못된 기사 요약입니다. 기사 내용에서 소개된, 질병관리본부가 진행한 이 설문조사의 정확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서울에 사는
  2. 성관계 경험이 있는
  3. 476명의 청소년 가운데 
  4. 첫 경험 나이는 평균 13.6세

게다가 이 기사 소개 트윗은 전체 청소년 중 섹스 경험이 있는 청소년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내용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즉, 섹스 경험이 아직 없는 청소년들까지 더하면 첫경험 평균 나이는 훌쩍 올라갈 것이지만, 이 기사 소개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생략하여 마치 ‘청소년들이 중1쯤 되면 다들 섹스를 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뉴시스가 뽑고 조선일보가 받아적은 기사 제목 또한 ‘성관계 경험 있는 청소년 중 절반 이상 피임 안 해’가 아니라 “서울 청소년 절반 이상 성관계시 피임안 해” 로 뒤집어 적어 얼핏 봐서는 마치 서울 청소년 절반 이상이 섹스를 하는 것과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신문 기사 제목은 눈길을 끌고자 하는 목적도 분명 있지만, 팩트에 있어 오해나 선입견을 조장해서는 안 됩니다. 이 기사는 거꾸로 설문조사결과를 독자가 이해하는 데에 있어 불필요한 오해와 선입견을 조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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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정보 독자 스스로 걸러 읽는 수밖에…

이렇듯, 여론조사 기사를 읽을 때엔 여론조사가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취약성을 이해하고 항상 의심하며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언론사 기자들이 책임감과 사명감, 올바른 저널리즘을 지니고 정직하게 기사를 작성한다면 독자들이 굳이 머리 싸매며 ‘해독’을 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런 착한 언론사를 찾기란 쉽지가 않죠. 결국, 읽는 사람이 알아서들 걸러 읽는 수밖에 없습니다.

기사가 전달하는 어떤 조사 내용을 근거로 자신의 견해를 결정하거나 판단하는 것 것 역시 신중하게 유보하는 것이 좋습니다. 경영/비즈니스 영역에서의 여론조사 활용은 잘못된 해석에 대한 책임을 담당자에게 물으면 되지만, 언론 보도는 피해자가 명확하게 있지 않은 이상 소송을 걸거나 책임을 물을 길이 없죠. 그냥 잘못된 정보가 전달되고 끝납니다. 이를 지적하는 매체 비평도 너무 부족하죠.

결국, 독자가 스스로 방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rainygirl.com’에도 실렸습니다. 글의 표제와 본문, 삽화는 슬로우뉴스 편집원칙에 따라 일부 수정하고 보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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