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숙의 새필드] 대중 문화를 연구한 필자가 영화와 드라마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오늘 추가할 새 필드는 ‘은중과 상연'(2025). (⏳4분)
📢 스포일러 경고
이 글은 아주 약한 수준의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질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은중과 상연] (2025)은 동경과 질투 그리고 애증이 뒤섞인 개인적인 이야기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실상은 죽음을 둘러싼 사회적·윤리적 질문을 전면에 제시한다. 표면적으로는 두 여성 친구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서사가 펼쳐지지만, 그 내면에는 한국 사회가 직면한 제도적 공백, 문화적 규범, 그리고 개인과 공동체의 충돌이라는 복합적인 층위가 겹겹이 배치되어 있다.
주인공 상연이 시한부 판정을 받고 오랜 친구 은중에게 “마지막 여정을 함께해 달라”는 부탁을 하는 순간, 드라마는 감정적 눈물샘 자극을 넘어 생명과 존엄, 자기결정권과 타인의 윤리적 책임이라는 거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는 한국 사회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죽음이란 것
한국 사회에서 죽음은 개인의 일이자 동시에 한 집안의 일이다. 장례 문화, 제사, 상속과 같은 제도뿐 아니라, 죽음을 둘러싼 정서적 태도까지 한국적 맥락이 깊게 스며 있다. [은중과 상연]은 죽음을 단순히 개인적 선택이나 자연적 사건으로 그리지 않는다. 상연의 결단은 은중의 삶을 뒤흔들고, 주변 인물들의 관계망을 재편한다. 이 지점에서 드라마는 죽음을 둘러싼 사회적 성격을 드러낸다.
그러나 한국에서 죽음은 온전히 개인의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죽음은 전통적 규범과 현대적 권리 담론 사이에서 충돌하는 어떤 것이다. 드라마는 이를 극적으로 드러내며, ‘죽음을 선택하는 권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남겨진 자가 떠안는 윤리적 책임의 무게를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묘사한다.

시한부의 부탁과 남겨진 자의 윤리
상연의 부탁은 단순한 우정의 확인을 넘어선다. 그것은 은중에게 죽음을 함께 짊어져 달라는 요구이며, 결과적으로 은중은 ‘남겨진 자’로서 윤리적 갈등을 직면하게 된다. 사랑과 우정이라는 개인적 감정은 곧 도덕적 판단과 법적·사회적 제약의 문제로 확장된다.
도덕의 차원에서 은중은 친구의 선택을 존중하고 싶지만, 동시에 그 선택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상황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법적인 차원에서는 안락사나 조력 자살이 제도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에 상연의 요청은 은중을 잠재적으로 ‘공범’으로 만든다. 끝으로 사회적 차원이 남았다. 주변인의 시선, 가족의 개입, 종교적·문화적 금기 등이 은중의 윤리적 고민을 압박한다.
이러한 다층적 갈등은 드라마가 단순히 감정극을 넘어 윤리적 담론을 촉발하는 사회적 의제 생산 장치로 기능함을 보여준다.

제도의 부재와 자기결정권의 한계
[은중과 상연]이 던지는 가장 직접적 질문은 “죽음을 선택할 권리는 누구의 것인가”이다. 한국에서는 존엄사가 아주 까다로운 조건 속에서 일부 제도적으로 허용되지만, 이는 연명치료 중단에 국한되며 ‘적극적 자기결정권’으로서의 안락사나 조력 자살은 여전히 불법이다.
상연의 선택은 제도적 공백 속에서 떠돌아다닌다. 그 결과 은중은 제도의 빈자리를 개인의 윤리적 책임으로 감당해야 한다. 드라마는 이 지점을 날카롭게 드러내며, 국가가 책임지지 않는 영역을 개인이 모두 감수해야 하는 현실을 비판한다. 이로써 작품은 한국 사회의 복지·법·윤리 체계가 얼마나 죽음 앞에서 무용지물인지를 고발한다.

여성 서사의 전환: 우정과 돌봄의 정치학
이 드라마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죽음을 둘러싼 질문을 여성 서사 속에서 풀어냈다는 점이다. 상연과 은중의 관계는 단순한 ‘여성 우정’이나 ‘은밀한 사랑’의 서사를 넘어 돌봄(care)의 정치학으로 확장한다. 남성 중심의 죽음 서사가 주로 ‘투쟁’과 ‘영웅적 선택’에 집중했다면, [은중과 상연]은 돌봄, 부탁, 수용, 갈등이라는 관계적 맥락 속에서 죽음을 성찰한다.
여기서 ‘돌봄’은 단순한 감정적 헌신이 아니라, 사회가 외면한 죽음의 책임을 개인이 떠안는 구조적 불평등을 드러내는 장치다. 여성 인물들의 선택과 갈등은 곧 한국 사회의 성별화된 돌봄 구조와 맞닿아 있다.

한국적 특수성과 글로벌 플랫폼
[은중과 상연]은 삶과 죽음, 선택과 책임, 우정과 사랑과 같은 모든 문화권에도 보편적으로 소구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루면서 동시에 한국 사회 특유의 제도적 공백, 가족주의적 압력, 여성 간의 감정을 억압적 규범으로 재단하는 시선 등 한국적 맥락을 선명히 드러낸다. 이는 넷플릭스에서 유통되는 한국 드라마의 ‘공식’ 같은 것이기도 하다.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글로벌 플랫폼은 한국적 특수성을 지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되 거기에서 보편적 성격들을 세계 시청자들과 공유하게 하는 전략을 제작자들로부터 세우게 했고, 결과적으로 한국 드라마는 특정한 한국 사회의 이야기를 넘어 보편성을 가진 문화 컨텐츠로 확장해 세계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이는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이 가진 문화적 중개 기능을 보여주는 동시에, 한국 콘텐츠가 글로벌 담론의 장에서 한국적인 것을 뛰어넘어 보편적 질문을 제안할 수 있는 위상을 획득했음을 잘 보여준다.

이제 더는 피할 수 없는 질문: 집단기억과 사회적 공론장의 확장
이 작품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 상품에 머물지 않고, 집단기억을 형성하는 매개로 기능한다. 드라마는 죽음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을 시청자 개개인의 기억과 경험에 연결시키며, 공론장의 확장을 촉진한다. 시청자는 극 중 인물들의 선택을 평가하며 자연스럽게 “내가 은중이라면?” “내가 상연이라면?”이라는 질문에 맞닥뜨린다.
이 과정은 단순한 시청 경험을 넘어, 한국 사회가 앞으로 어떤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결국 [은중과 상연]은 집단적 성찰의 장으로서 드라마의 사회적 기능을 극대화한다.
그렇게 [은중과 상연]은 개인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한국 사회 전체를 향한 질문을 예비한다. 시한부의 부탁은 개인적 관계를 넘어 사회 제도의 공백을 드러내며, 남겨진 자의 윤리는 공동체 전체의 책임으로 확장된다.

이 드라마가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 죽음을 선택할 권리는 누구의 것인가?
- 남겨진 자의 윤리적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 국가는 어디까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는가?
[은중과 상연]은 이런 질문들을 미학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정면으로 시청자에게 그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드라마적 허구와 진실, 그 재미와 감동을 넘어, 한국 사회가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현실이자 과제다.
죽음을 둘러싼 사회적 질문은 이제 드라마 속 허구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직면해야 할 현실이다. [은중과 상연]은 모두들 죽음을 애써 외면하는 현실을 시각적 대중예술의 언어로 증언하며, 동시에 이제 당장 이 죽음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죽음을 모두의 광장에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을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