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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나온 판결: 287번째 이야기] 대법원의 이재용 무죄 판결이 남긴 사회적 해악들. (이상훈/변호사) (⏳4분)


👨‍⚖️ 이재용 ‘삼성물산 합병’ 판결비평

이재용 회장은 이미 ‘경영권 승계 및 지배권 강화’를 위해 박근혜에게 뇌물을 줬다는 사실이 인정돼 감옥에 다녀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7월, 대법원은 ‘삼성물산 불법합병’의 주된 목적이 ‘경영권 승계 및 지배권 강화’가 아니라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19개의 혐의 전부 무죄입니다. 이번 판결은 자본시장 교란 행위에 대한 잘못된 선례가 됐고, 검찰의 기소와 공소유지에도 의문이 남습니다. 우리 사회에 깊은 후유증을 남긴 이재용 무죄 판결, 이상훈 변호사가 비평했습니다.

나의 순진함을 반성한다

2025년 7월 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상고심 선고공판에서 19개 혐의 전부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 등 나머지 피고인 13명도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주주총회일이 2015년 7월 17일이니까, 그로부터 정확히 10년이 되는 날에 사법부가 축포를 터트려 준 것이다.

고백하건대, 2020년 9월 검찰이 이 회장을 기소했을 때 국정농단 사건으로 감방 갔다 왔는데 또 보내는 것은 조금 심하다고 생각했고, 1심 선고 전날에는 나라 경제가 어려우니 법원에서 양형을 과하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참으로 순진했다. 설마 19개 혐의 전부 무죄가 선고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엄청난 분량(1589쪽)의 1심 판결문은 마치 재판부가 꼼꼼히 고민해서 고민한 듯한 허상을 띠면서 단 5쪽의 대법원 판결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단지 재벌 총수 1명을 면책한 사건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에 깊은 후유증을 남겼다.

무죄 판결의 후유증들

우선, 이번 판결로 인해 많은 전문가는 다른 선행 판결들과의 모순을 회피하기 위한 궤변을 강요받게 되었다. 사람들이 가장 의문을 제기한 부분은 이 회장이 자신의 ‘경영권 승계 및 지배권 강화’ 작업에 도움을 받기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86억여 원의 뇌물을 줬다가 감방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판결에서는 합병의 주된 목적이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 및 지배권 강화’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법원의 판단 근거는 이 회장에 대한 국정농단 판결에서는 이 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포괄적인 승계작업에 관한 청탁만 인정했을 뿐 개별 현안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관한 청탁까지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형표(전 보건복지부 장관)와 홍완선(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직권남용, 업무상 배임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판결문을 보면 “박 전 대통령이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 안건에 대한 국민연금 공단의 의결권 행사문제를 잘 챙겨보라고 지시하였고, 이후 경제수석실과 고용복지수석실에서 합병안건이 성사되도록 적극적으로 챙긴 사실”을 인정한 후 “박 전 대통령이 직접 또는 수석비서관을 통해 문형표에게 지시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판결했다(서울고법 2017.11.14. 선고 2017노1886 판결). 따라서 이제 전문가들은 판결들이 모순되지 않도록 “이 회장은 청탁하지 않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알아서 챙겨주었다”는 괴상한 결론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둘째, 자본시장 교란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자본시장법 위반죄의 판단 기준에 대한 잘못된 선례를 만들었다. 이 회장에 대한 공소사실의 대부분은 ‘증권사 분석보고서 발표 개입, 과장된 장래 계획에 대한 공표, 국민연금 설득 과정에서 진행된 대통령 로비, 사전 동의 없는 삼성물산 주주들의 연락처 활용, 목표주가를 설정한 자사주 매입, 지배력 상실 회계처리라는 결론을 위한 문서 조작 등 부적절한 행위와 회계기준에 비추어 일부 미흡한 공시’ 등 건전한 시장 신뢰와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없어져야 하는 행위에 대한 것이었다. 행위 하나하나가 심도 있게 논의되어 이에 대한 엄중한 법적 기준이 제시되어야 할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입증 없이 잘못된 선례가 만들어짐에 따라 향후 유사한 다른 사건에서 부정적으로 작동하게 되었다.

셋째, ‘법꾸라지’ 도움을 받으면 국내 최대의 삼성 그룹을 상속받는 데 겨우 16억의 세금만 내면 된다는 법 경시 결과를 만들었다. 1996년 초 이 회장은 이건희 선대 회장으로부터 증여받은 61억 원에서 증여세 16억 원을 내고 남은 돈으로 비상장회사였던 예스원과 삼성엔지니어링 주식을 샀다가 곧바로 상장된 이들 회사의 주식을 처분하여 조성한 563억 원 중 일부로 삼성에버랜드의 지분 62.5%를 취득했다.

그리고 나머지 돈으로 삼성전자 전환사채를 싸게 인수해 개인주주로서는 이건희, 홍라희에 이어 삼성전자의 3대 주주가 되었다. 그런데 지난 2015년 이재용 회장이 많은 지분을 가진 제일모직(기존 삼성에버랜드와 제일모직과의 합병법인)과 삼성물산이 합병되면서 결국 이 회장은 삼성생명의 지분 19.34%와 삼성전자 지분 4.06%, 삼성바이오로직스 51% 등 주요 산업 및 금융계열사 지분을 보유한 통합삼성물산의 지분 16.5%를 보유하게 되어 삼성그룹의 지배주주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하게 된 것이다.

외국 투자자 ISDS 구제 vs. 국내 투자자 지리한 소송 중

결론을 정해 놓고 판결한 듯한 법원의 무죄 판결과 함께, 과연 검찰의 공소제기와 공소 유지가 진정으로 이 회장에 대한 처벌을 목적으로 진지하게 진행된 것인지도 의문이다. 검찰이 ‘보여주기 식’ 면죄부 기소를 하면서 법원과 서로 나누어 총대를 멘 가능성도 보인다.

황당한 무죄 판결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은 과제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국내 투자자들과 외국 투자자들 간의 피해 구제 균형 문제이다. 삼성 합병으로 손해를 본 외국 투자자들은 국제투자분쟁(ISDS) 절차를 통해 피해를 구제받고 있다. 이미 미국 사모펀드 메이슨은 정부로부터 총 746억 원을 지급받아 사건이 종결되었고,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2023년 7월 중재 판정부로부터 1300억여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고 현재 항소심 절차 진행 중이다. 반면 국내 투자자들은 배상받지 못한 채 지리한 소송을 진행 중인데, 이 회장은 합병과 관련해서 그 난리를 쳤는데 적어도 이에 대한 민사책임은 부담하는 것이 상식에 부합한다.

광장에 나온 판결: 287번째 이야기

– ‘삼성물산 불법합병’에 대한 대법원의 이재용 등 무죄 선고 판결비평
– 대법원 제3부 재판장 이숙연, 주심 오석준, 이흥구, 노경필 대법관 2025.7.17. 선고 2025도2805 [판결문 보기]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 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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