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냐의 북라이딩] 분열하는 미국, 분열하는 세계… 2036년 두 나라로 갈라져 싸우는 미국의 광기 어린 두 얼굴을 그려낸 더글라스 케네디의 ‘원더풀 랜드’에 관한 서평. (⏳5분)

📕마냐의 북라이딩📚
2036, 두 세계로 갈라진 미국의 지옥도
더글라스 케네디, [원더풀 랜드] (2024)
“독립 기념일에 불꽃놀이 대신 화형식이 열렸다. 예전에는 같은 나라였지만 이제는 갈라진 나라에서 내 친구를 공개적으로 불태워 죽였다.”
더글라스 케네디, ‘원더풀 랜드’, 2024.
2036년, 두 나라로 쪼개진 미국
소설 첫 줄부터 아연하다. 대중소설 작가 더글러스 케네디의 [원더풀 랜드]는 2036년 미국이 두 나라로 쪼개진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화형당한 친구 막심은 코미디언. 예수님을 불경스럽게 언급했단다. 미국 중부 국가인 공화국연맹은 기독교 신정국가로 마치 대법관 같은 12사도가 화형을 결정했다. 잔혹 행위를 혐오하기보다 은근히 즐긴다는 군중심리에 부응했다. 화형식은 생중계 판권 수입만 한 해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비즈니스. 더구나 막심은 성전환 수술을 받고 여성이 된 성전환자에 유대인으로 골고루 핍박 대상이었다.
주인공 샘 스텐글은 미국 동부와 캘리포니아 서부로 구성된 연방공화국의 정보국 요원이다. 분단국가의 비극은 가장 개인적인 일에서 드러나는 법. 존재조차 몰랐던 이복자매 케이틀린이 공화국연맹 경찰국 요원이고, 샘과 케이틀린은 서로 상대를 암살해야 할 처지다. 이 자매에게는 무슨 일이, 아니 대체 미국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책에 나온 2045년 미국 연방공화국과 공화국연맹 지도. 분명 허구인데, 현실 세계에서 최근 반트럼프 시위가 확산하는 지역과 연방공화국이 겹친다. 이유 있는 분열의 미래다.

설정이 다 한 소설이다. 앞으로 20여 년 미국이,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극단적으로 상상하는 데 현실적으로 느껴진다면(기분 탓이 아니라) 작가의 통찰력 덕분이다. 일어난 사건들과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사건들을 엮었더니 인류 멸망은 아니지만 디스토피아는 분명하다.
소설 속 21세기 연구자들은 “2016년이 미국의 분리를 초래한 분수령”이라고 했다. “텔레비전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나와 유명해진 부동산 사업 깡패”를 대통령으로 뽑은 해다. 소설에서는 2024년 트럼프와 유사한 후보가 당선된 뒤 보수화된 대법원이 공화당에 유리하게 선거구를 변경한다. 덕분에 “2028년 이후 미국은 하나의 정당이 지배하는 전체주의 국가로 거침없이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 무렵 미국의 모든 주에서 합법적 임신 중지가 금지됐고, 동성 결혼에는 위헌 판정이 내려진다. 공립학교에서도 기독교 수업이 허용되고 공영방송에 대한 정부 지원이 끊겼다. (무엇이 중요한지 알겠는가?)



연방공화국 리더 채드윅…’머리에 칩 심은’ 일론 머스크
극심한 대립은 보수와 진보로 갈라지다 못해 유혈 충돌로 이어졌다. KKK단을 계승한 ‘뉴 클랜’은 무고한 상대편 시민을 상대로 무차별 총기 난사 테러를 감행한다. 1400여 명이 희생당한 ‘그 시대의 9.11’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분리독립 혁명을 이끈 연방공화국 리더 채드윅은 테크 기업가 출신. 그가 바라는 국가는 이렇다.
“이제 미국에서 새로운 나라의 출범을 모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자와 빈자의 차이가 크지 않은 나라, 여성들에게 임신 중지권과 자기 선택권을 보장하는 나라,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형제자매들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나라, 정부가 모든 차별을 종식하는 법과 제도를 갖춘 나라, 교육과 건강, 주거를 사회보장제도의 핵심 요소로 여기는 나라, 예술을 일부 특권층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향유하는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4년 안에 미국의 모든 자동차를 전기차로 바꿀 생각입니다.” (57쪽)
더글라스 케네디, ‘원더풀 랜드’, 2024. 중에서.
진보 성향이라면 몹시 이상적인 비전. 그러나 작가는 연방공화국을 올바른 쪽으로만 보지 않는다. 억만장자 채드윅은 2020년대 초반에 생체 이식 ‘채드윅 칩’을 개발한 인물이다. 관자놀이에 칩을 삽입하면 휴대폰 없이 연락처 목록의 사람을 불러 즉시 대화가 가능하다. 검색이나 AI에 명하는 모든 일을 머릿속 지시만으로 구현된다.

모든 상황을 녹화, 녹음할 수 있어 “경찰 업무, 사업 협상, 섹스 등의 영역에서 혁명을 불러일으켰다”는 칩이다. 방화벽이 있다지만 정보국은 개인 파일을 다 들여다볼 수 있다. 완벽한 감시 사회다. 채드윅은 이상적 인물처럼 보이지만 역시 장기 집권하는 계몽 군주. 머리에 칩을 심은 일론 머스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항상 감시받고 살면서도 멋진 동네에서 문화적으로 세련된 사람으로 살고 있는 척해야 하잖아요. 과연 우리가 자유로운가요?.. 말 한마디 잘못하거나 걸음을 한 발짝 잘못 내디뎌도 인생이 끝나버릴 수 있어요.”
위와 같음.
공화국연맹의 광기… 하지만 연방공화국도 마찬가지
예수님 불경죄로 화형까지 집행하는 공화국연맹이 더 미친 사회란 건 분명한데, 연방공화국도 만만찮다.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준 것과 별개로, 평화로운 체제 유지에도 불구하고, 규칙을 강조하는 감시 국가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최첨단 기술 덕분에 비판적 시각을 가진 연방공화국 사람들은 전두엽 절제술을 받는다. ‘인식력 안정’ 시술인데 분노를 억제한단다.
사람들은 모두 데이터로 존재를 드러낸다. 특정인에 대한 신상정보를 사전 검색하게 되면서 타인에 대해 느끼는 신비감은 모두 사라졌다고 정보국 요원 샘은 생각한다. 스포일러라 생략하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이런저런 신기술들은 인간의 정체성과 본질을 공허하게 만든다.
권위적인 신권정치 독재국가인 공화국연맹에서는 정부가 결혼 상대를 정해준다. 치마 길이도 정해준다. 독실한 기독교 사회라도 욕망이 은밀하고 위험해질 뿐 위선 떠는 건 예나 지금이나 미래나. 감시국가 연방공화국에서는 나를 숨기는 게 먼저다.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은 리스크다. 정보국 요원들은 특히 그렇다. 데이팅 앱을 통해 주기적으로 섹스 파트너를 구할 뿐 일회성 관계 이상 맺는 것은 불안하다. 서로 호감을 쌓으며 관계를 이어가는 게 아니라 상대의 호감을 얻어 평점을 유지해야 한다. 외롭냐고? 그렇지 않은 세상을 겪어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기본값이 다를 뿐이다.

디스토피아의 고전, ‘1984’는 통제와 억압을 통해, ‘멋진 신세계’는 기술과 쾌락을 통해 인간을 지배한다.
세밀한 개인의 일상에 대한 작가의 상상도 마음 편하지 않은데 국제 정세라고 괜찮을 리 없다. 소설 속 미래에서 중국은 대만을 침공했고, 러시아는 몽골을 침략했다. 2032년 하마터면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핵전쟁이 발발할 뻔했고, 연방공화국은 중국과 손잡고 ‘~스탄’ 중앙아시아 이슬람 국가들, 중동과 북아프리카 국가, 튀르키예를 고립시켰다. 원천적으로 여행을 금지하는 봉쇄 정책이 지속되면서 국제 테러는 사라졌다. 그럴싸한가? 작가가 지어낸 미래와 미국이 이란을 침공한 현실 세계 중에 어느 쪽이 더 비현실적인지 헤아리기 어렵다. 책은 더글러스 케네디인데! 당연히 술술 읽히고 반전에 반전이 이어진다. 이 소설은 분명 영화로 만들어질 법한데, 그저 영화와 소설로 남았으면 좋겠다.
책의 원제는 [Flyover]. 책에서 ‘새 용법’이라며 소개한 단어 뜻은 ‘미국 중부 지역’을 이르는 속어(비하어)라고 한다. 서부나 동부 해안 지역에 비하여 덜 중요하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란다. 당혹스러운 것은 저 원제의 영어판 책은 미국에서 출간되지 않았다. 영국에 거주하는 미국 작가라서 영어로 썼을 텐데 한국어판과 프랑스어판만 먼저 번역 출간됐다. [빅 픽쳐] 이후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고, 프랑스에서는 훈장까지 수여한 인기 작가란 점을 감안해도 왜? 트럼프에 대한 노골적 비판 때문일 수도 있다는 의심은 입증되지 않았다. 누가 금서로 지정하지는 않았겠지만, 미국 출판사들이 알아서 기었을 가능성은?

질문과 토론
책은 오티움 북클럽에서 함께 읽었다. 우리가 토론한 발제를 남겨본다.
내전을 피하려면
- 이 픽션의 상상이 현실 논픽션처럼 보이는 대목이 있나요?
- 미국은 내전 상황을 우려해야 할까요? 세계 각국은요?
- 공동체 정체성이 하나가 아니라면 분리(자치) 혹은 통합(중앙집권) 중 어느 쪽이 현실적 대안일까요?
- 내전을 피하려면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까요?
유토피아는 어디에
- 독재국가와 감시국가 미래의 현실 가능성은 어떻게 보세요?
- 분노 억제하는 전두엽 절제술, 생체칩 등의 현실성은요?
- 봉쇄 정책으로 국제 테러를 없앤다는 가설 등 세계는 점점 폐쇄적으로 바뀔까요?
- 선거를 통해 하나의 정당이 지배하는 전체주의 국가로 나아갈 가능성은요?
- 개인 정보는 어디까지 오픈되고 보호될지 상상해 볼까요? 사랑하고 관계 맺는 방식은 어찌 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