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련 칼럼] 시민이 내란 보도에 분노하는 근본 이유, 언론은 아는가. (윤복남/민변 회장) (⏳4분)
정면에서 헌법에 반한 포고령
윤석열이 선포한 12.3 비상계엄과 직후 공포된 포고령 1호는 헌법 체제에 정면으로 반한다. 이는 4월 4일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원일치 파면 결정으로 헌법규범적 판단이 내려졌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이 군통수권자의 지위에서 벌인 내란 우두머리 행위를 ‘지지’하는 일부 정치세력이 현실에 존재한다는 이유로 이를 조장하고 옹호하는 목소리가 그대로 공론의 장에 들어왔다. 우리 사회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약한지 확인한 셈이다. 특히 내란행위를 벌인 대통령을 배출한 집권여당 국민의힘 소속 대다수 국회의원들은 내란행위에 동조하거나 정당화시키거나 이를 홍보하는 작태를 서슴없이 보였다.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의미에 관하여 헌법재판소는 이렇게 설시해왔다.
“헌법 제8조 제4항이 의미하는 ‘민주적 기본질서’는, 개인의 자율적 이성을 신뢰하고 모든 정치적 견해들이 각각 상대적 진리성과 합리성을 지닌다고 전제하는 다원적 세계관에 입각한 것으로서, 모든 폭력적·자의적 지배를 배제하고, 다수를 존중하면서도 소수를 배려하는 민주적 의사결정과 자유·평등을 기본원리로 하여 구성되고 운영되는 정치적 질서를 말하며, 구체적으로는 국민주권의 원리,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제도, 복수정당제도 등이 현행 헌법상 주요한 요소”
2013헌다1
헌법재판소 결정내용에 비춰볼 때, 윤석열의 행위는 명백히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는 사안이었다. 그럼에도 윤석열과 그 지지세력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반국가세력 척결’을 외치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고, 여기에 ‘부정선거론’까지 얹었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권력이 이를 배출한 정치세력의 정책기조와 방향에 따라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내란사태에서 문제가 된 부분은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가다.
사상 초유의 민주주의 파괴, 언론은 책임 다했나
일정 수준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성숙된 국가에서 군대를 동원해 입법부를 침탈하는 행위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초유의 상황에 언론이 민주적 공론의 장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발전하는데 저해요소로 작용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비상계엄부터 파면결정까지 주요 레거시 미디어는 ‘기계적 중립’과 ‘따옴표 보도’, ‘받아쓰기’에 치중했다.
반헌법적, 반법치적 주장이 명백함에도 현직 국회의원의 발언, 현직 대통령 또는 그의 대리인(변호인)의 입장, 현직 국방부 장관의 주장 등을 이유로 이를 액면 그대로 기사화하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언론중재법 제4조(언론의 사회적 책임 등)에 규정된 ‘민주적 여론형성에 이바지함으로써 그 공적 임무를 수행한다’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은 사실상 실종되었다.

주요 정당과 고위공직자의 공식적 표명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느냐, 사안은 실시간 진행되는데 어떻게 매번 분석 기사를 쓸 수 있느냐는 일선 언론인들의 고충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시민들이 언론의 보도행태에 분노하는 근본적 이유는 그 비중과 횟수, 보도내용의 일차원성과 자극성 등에 기인한다.
집권세력이 세상을 송두리째 거꾸로 돌리는 행위를 계속 반복하고, 시민들은 상식적으로 너무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있는데 포탈에 뜨는 언론기사들에는 상상 이상 비중으로 내란세력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성 기사라고 하더라도 언론인이 어떠한 관점과 시각으로 기사를 작성하는지에 따라 문맥상 의미는 상이해질 수 있지만 최소한의 노력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언론이 오히려 공론장의 건강성을 훼손한다는 문제제기까지 나온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언론보도 모니터링에 따르면, 기계적 중립을 넘어 내란세력 옹호 목적으로 보이는 기사들까지 확인된다. 윤석열이 법원의 적법한 체포영장을 대통령 경호처를 내세워 물리적으로 거부할 때, 내란수괴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됐을 때, 서울서부지법 폭동으로 사법부 독립성이 물리적으로 훼손되었을 때도 그 자명하고 중대한 불법성보다는 이에 반박하는 윤석열 측 입장을 부각하는 기사가 다수 보도되었다. 현대 법치주의 국가는 규범작동의 예측가능성을 기반으로 운영된다. 현행 실정법과 사법부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고위공직자들에게 언론의 날선 비판 기사가 계속되어도 모자람이 없는 상황이다.

대선 맞은 언론의 태도, 자기반성과 성찰이 먼저다
민주적 공론장은 최대한 넓게 보장되는 자유로운 의사표현에 의해 형성된다. 그것이 정치적 표현의 자유라고 한다면 더욱 강하게 요청된다. 하지만 시민에게 보장할 범위와 고위공직자, 집권여당, 권력자 등에게 허용되는 수준은 달라야 한다. 민주공화정 체제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권자 시민의 위임에 의하지 않은 권력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권력을 위임받은 세력이 위임의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여 민주공화정 체제 자체를 공격하는데, 민주적 공론장에 이바지하는 언론은 철저히 헌법수호적 관점에서 사태를 주시하고 보도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제 대통령 선거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 새로운 민주주의를 위해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대통령 선거에서 언론의 역할은 더 중요하다. 대선을 후보자 간의 스포츠 경기처럼 보도하거나 정책·공약에 대한 심층 분석 없이 단순 중계에 그치는 행태, 특정 후보나 정당에 대한 편파보도, 형식적 균형만 강조하는 태도, 네거티브 공방이나 갈등을 부각해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방식, 여론조사 남용과 왜곡, 사회적 약자나 소수정당에 대한 보도배제 등 언론의 고질적 문제를 정면으로 살피며 자기반성과 성찰을 해야 할 때다.
비상계엄부터 파면까지 긴 과정에서 시민들이 가장 크게 고쳐야 할 영역으로 꼽는 게 정치개혁, 언론개혁, 사법개혁이다. 내란세력으로 인해 시민의 일상을 빼앗겼고, 이를 추종·옹호하는 언론보도로 정신적 스트레스와 고통을 받았다. 제대로 된 언론이 없으면 건강한 공론장 형성 자체가 불가능하고 나아가 민주주의는 요원하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언론기관과 언론인들 스스로 어떻게 개혁해 나갈 것인가를 자문하고 저널리즘 본령이 무엇인지 다시금 찾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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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 칼럼은 시민사회·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글입니다.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