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꺾정 칼럼. 35] 12.3 내란과 보수 몰락의 위기 그리고 그 해법을 말한다. (강우진 경북대 교수) (⏳5분)
22대 국회가 개원했습니다.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 한 표를 읍소하며 당선된 300명의 국회의원이 과연 유권자를 위해 제대로 일하는지 지켜보고 감시해야 할 때입니다. 이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안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지니까요.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칼럼을 통해 유권자의 시각에서 22대 국회와 정치를 비평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정’치개혁이니까요.
윤석열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였던 12.3 내란 시도는 시민의 저항과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 그리고 국회의 대통령 탄핵 의결로 일단 실패했다. 내란의 1차 시도는 저지되었지만, 내란 주체와 그 동조 세력 그리고 민주주의 수호 세력 간의 대립은 물리적 충돌이 유예된 채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16 박근혜 탄핵 vs. 2024 윤석열 탄핵
국회의 탄핵 의결로 민주화 이후 보수 세력은 집권 여당으로서 두 번째 탄핵을 당했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국정농단 사태가 드러났고 국회는 2016년 12월 9일 재적 의원 300명 중 찬성 234명 반대 56명(299명 참여, 기권 2명, 무효 7명)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가결했다. 국회의 탄핵 의결은 이듬해 헌법재판소에 의해서 만장일치로 인용되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국민이 공적으로 위임한 권한을 비선 실세가 사유하여 국정 전반에 개입한 국정농단에 대한 심판이었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 결정 사유는 앞선 결정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국민(헌법 제1조)에 의해서 선출된 대통령은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지닌다(헌법 제66조). 윤석열의 12.3 내란 시도는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 보더라도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여 비상계엄을 선포하였고 헌법기관인 국회의 계엄해제권 행사를 방해하기 위해서 군과 경찰을 동원하여 국회를 봉쇄하고 침입했다.
또한,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침입하였고 국회의원과 정치인, 언론인 주요 인사에 대한 불법체포를 시도했다. 이는 대통령이 자유 민주주의 근본 질서를 흔든 것이다. 두 번째 탄핵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전복 시도에 대한 국회의 심판이었다.
박근혜 탄핵 때와는 다른 집권 여당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2024년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서 집권 여당인 보수 세력의 태도 또한 다르다. 당시 당내 비주류였던 비박 세력은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서 책임지기 위해서 박 대통령이 탈당과 사임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에 찬성했다. 이후 비박 세력은 탄핵안 통과 후 원내대표 경선에서 패배하자 결국 바른정당을 창당하였다.
2024년 자유 민주주의 체제의 근간을 흔든 12.3 계엄 사태를 둘러싸고 집권당인 국민의힘의 대응은 전혀 달랐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상정되었지만, 여당인 국민의 힘 의원 105명은 표결에 불참하였다. 이로써 탄핵안은 투표 불성립으로 자동 폐기되었다. 많은 국민은 집권 여당 의원의 행태에 대해서는 내란이라는 반헌법적 행위에 동조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제기했다.
또한 내란죄 탄핵에 불참한 의원들의 얼굴과 실명을 1면에 보도하는 언론(경향신문 2024년 12월 9일)을 비롯해 역사적 기록 보존 시도가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탄핵안 불참에 대한 거센 비판에 직면한 국민의 힘은 2차 탄핵안 표결에는 참석했다. 하지만 마라톤 회의 후 ‘탄핵안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12월 14일 2차 투표 결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은 국민의 힘 의원이 일부 이탈하여 찬성 204표 반대 84표(기권 3표, 무효표 8표)로 가결되었다. 내란 시도라는 자유 민주주의 근본 질서 유린 앞에서 집권 보수 세력은 당파적 이익의 수호에 골몰하였다.
그때는 국정농단, 지금은 헌정파괴… 한국의 집권보수
한국의 집권 보수 세력은 왜 두 번이나 국정농단과 헌정질서 유린의 주역이 되었는가? 이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한국형 보수의 정체성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두루 알듯이 한국의 보수는 한국형 분단국가 수립과 위로부터 권위주의적 동원에 의한 한국형 산업화를 달성한 주역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 세력은 자신만의 이념을 만들고 발전시켜 오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한국의 보수 정당은 민주화 이후 3당 합당이 민주화 세력 일부를 끌어들여 산업화와 민주화의 가교 구실을 했다고 자부하곤 했다. 그런데도 권위주의 정권 시기 한국 보수 세력의 이념은 잘 알려져 있듯이 한국 사회의 나침반을 제시하는 적극적인 이념이라기보다는 반공주의에 기반을 둔 부정적인 이념이었다.
‘공동체 자유주의와 대한민국 선진화’(박세일 교수)와 ‘따듯한 보수’(유승민)와 같이 새로운 보수를 위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보수의 재구성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보수의 심장’이라고 언론이 부르는 대구 청년들에게 보수의 가치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이 대답을 못 하거나 안보 또는 반공을 이야기한다. 시대에 걸맞은 정체성을 발전시켜 오지 못한 한국의 주류 보수 세력은 가치 보수가 아니라 권력 보수였다.
한국의 보수는 민주주의자인가?
한국 정치의 부조리극을 상징하는 장면들을 통해서 권력 보수의 민낯을 알 수 있다. 국민의 힘은 제20대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을 구속한 국정농단 수사의 수사팀장을 역임했으며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 후보를 영입하여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윤석열 후보는 대선에서 승리한 후 당선인 신분으로 박 전 대통령을 방문하여 인간적인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전하고 정책 계승과 홍보를 통해서 명예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윤석열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박 전 대통령을 다시 방문했다.
또한 국정농단 수사에서 검사로서 “대통령의 직무권한을 사유화함으로써 국정을 농단하고 헌법 가치를 훼손했다”며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30년을 구형했던 한동훈 국민의 힘 비상대책위원장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방문했다. 한국 정치 부조리극의 절정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한국의 주류 보수 세력은 민주주의 원칙을 공유한 민주주의자인가? 민주주의 체제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 간의 잠정적 합의에 기반을 둔 균형 체제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핵심 차원인 공정하고 경쟁적이며 주기적인 선거 체제가 이 합의의 가운데 있다. 선거 체제를 중심으로 정의할 때 민주주의가 공고화되기 위해서는 해당 사회의 주요 정치세력이 민주주의를 원칙의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행위의 규범으로 내면화해야 한다.
한국 사회의 국가 형성과 산업화를 주도했으며 여전히 사회의 각 영역에서 헤게모니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보수 세력의 중심 세력이 민주주의 원칙을 수용하지 않을 때 민주주의는 근본적인 위협에 처할 수 있다. 한국의 보수 세력은 이명박 정부 시기 집권당으로서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국가 기관을 동원하여 대통령 선거 과정에 개입하였다.
또한 한국 보수의 적지 않은 세력이 자신이 집권당으로 치른 선거 결과가 불리하게 나타나자, 부정선거 음모론을 신봉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부정 선거론은 이번 12.3 내란 사태의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로 드러나고 있다. 윤석열은 12.12 내란을 정당화하는 담화를 발표하여 선관위 시스템은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으며 국방부 장관에게 이를 점검하도록 지시했다고 강변했다.
12.3 내란 시도를 통해서 한국의 권력화된 보수가 초래한 한국 민주주의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한국 보수가 민주주의 원칙을 공유하고 내면화한 민주주의자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또한, 탄핵에 지지하는 다수 시민의 연합을 최대 민주 연합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정파적 증오를 넘어서 민주주의자 연대가 필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