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규 칼럼] 의료대란,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두 차례에 걸쳐 그 해법을 찾아봅니다. (7분)
의료대란의 해법
- 의사 집단은 하나가 아니다
- 세 의사 집단별 맞춤 해법 (가제, 예정)
이른바 의료대란은 단지 응급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의료시스템은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어서 어디선가 문제가 생기면 다른 곳에도 여파를 미친다. 가령 내가 일하는 요양병원에서 상태가 많이 안 좋으면 급성기병원(환자가 급성질환이나 응급질환으로 입원 가능하고 급성기 동안 치료를 주로 담당하는 병원)으로 전원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전원은 매우 어렵다. 즉 중환자들 상당수가 문제가 될 수 있거니와, 갈수록 심각해질 것이다. 하지만 사태의 해결 전망은 불투명할 뿐 아니라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의사, 최소한 세 가지 집단으로 구별해야
최근의 사태와 관련해서 내가 제일 답답한 것은, 사람들 대다수가 의사를 하나의 집단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의사는 결코 하나의 집단이 아닌데도, 한쪽에서는 모든 의사들이 나쁜 놈인 것처럼 몰아붙이고 다른 쪽은 의사들은 아무 문제도 없고 정당한 것처럼 강변한다. 둘 다 진실이 아니다.
천관율 기자도 예전에 말한 바가 있는데, 의사는 적어도 크게 세 가지 집단으로 구별할 수 있다.
- 첫 번째 집단은 필수의료 중에서도 주로 중증의료에 종사하고 병원에서 근무하는 봉직의다.
- 두 번째 집단은 동네에서 개원하면서 각자 개인사업자로서 자신의 이익이 가장 중요한 개원의다. 이들은 대개 필수의료이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가벼운 질환 중심이다.
- 세 번째 집단은 피부미용 등 비보험 진료나 실손보험을 활용한 비급여 진료 위주로서, 시장경쟁을 감당하는 대신 성공하면 큰 이익을 챙기는 비보험, 비급여 중심의 의사다. 이 세 집단이 처해있는 처지나 입장은 완전히 다르다.
팩트: 의사 수는 적고, 너무 많이 일한다
일단 기본적인 데이터부터 이야기해 보자. 외국에 비해 한국의 인구당 의사 숫자가 적다는 것 자체는 그냥 팩트다. 일정 규모의 의대 증원 역시 노령화 때문에라도 그 필요성이 인정된다. 한국의 높은 의료접근성 등을 근거로 이걸 아예 인정하지 않는 의사들도 많은데, 이건 또 다른 데이터로 설명이 된다.
한국은 의사 숫자는 적지만 의사 1인당 진료 횟수나 병상 숫자 등 의료행위의 총량은 외국에 비해 매우 많다. 즉 의사 숫자 그 자체는 적지만 그 의사들이 지나칠 정도로 과도하게 일해서 높은 의료 접근성 등이 유지되고 있다. 그렇게 된 이유도 상당 정도 명확한데, 이는 행위별 수가체계의 문제점 및 이와 관련된 과잉의료 등의 요인 때문으로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다.
정부나 의사 양쪽 모두 자기들에게 유리한 데이터만 이야기하지만, 실제 진실은 둘 다 사실이면서 또한 둘 다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의사 숫자가 적은 것은 맞고, 그 대신 이미 있는 의사들이 과도하게 일해서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한편 고소득을 올리는 것도 맞다. 일단 이걸 양쪽 모두 인정해야 그다음 논의도 가능하다.
세 의사 집단 간의 차이
더 중요한 것은 위에서 이미 언급한 세 집단 간의 내부적 차이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첫 번째 집단인 봉직의가 주로 맡는 필수의료 특히 중증의료는 실제로 저수가 즉 건강보험에서 주는 돈이 적다. 시민단체 상당수는 의사의 고소득을 이유로 저수가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데, 적어도 중증의료 쪽은 명백히 저수가이고 이건 인정해야 한다.
중증일수록 치료에 막대한 비용을 지출해야 하지만, 건강보험이 보조하는 돈은 외국과 비교해 매우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사 말이 다 맞는 건 아니다. 저수가를 벌충할 방법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핵심은 행위의 총량을 늘리는 것이다. 3분 진료로 대표되는 박리다매, 필요하지 않은 것까지 권하는 과잉진료나 과잉검사 등이 대표적이다. 아니라고? 알만큼 아는 사람들끼리 이러지 말자.
그런데 박리다매나 과잉진료는 주로 두 번째 개원의 집단에서 이루어진다. 첫 번째 집단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중증일수록 박리다매나 과잉진료는 그리 많지 않다. 첫 번째 집단 특히 대형병원은 박리다매나 과잉진료보다 지방의 환자까지 쓸어모아서 총량을 늘리거나 전공의 노동력을 값싸게 부리는 방법으로 이익을 남기는 면이 더 크다. 한편 세 번째 비급여 중심 의사 집단은 박리다매는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비급여라서 원하는 대로 돈을 받을 수 있고, 성형이나 미용이 아닌 비급여는 실손보험이 적용되므로 환자들도 별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중증∙필수의료의 현실 = 전공의 착취 시스템
결국 현재 한국에선 중증∙필수 의료일수록 오히려 전공의의 값싼 노동력에 의존하는 등 비용에 비해 보상이 적다. 게다가 중증일수록 의료사고에 따른 배상 부담이나 사법처리 등의 위험도 커진다. 각종 리스크나 과도한 노동시간 등 첫 번째 집단이 다른 집단에 비해 조건이 좋지 않은데, 보상조차 첫 번째 봉직의 집단이 가장 낮다.
그동안은 대부분이 자연스레 선택하는 전공의에 대한 초과 착취와 사람을 직접 살린다는 보람, 이른바 ‘바이탈뽕’으로 유지해 왔지만, 이제 더는 그 착취 시스템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게 현 사태의 본질이다. 사실은 원래도 의사 면허만 있으면 세 집단 간을 서로 옮길 수 있었지만, 관례나 문화 등 몇 가지 요인으로 그간은 옮겨가는 것이 대세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첫 번째 봉직의 집단은 이제 더는 이 일을 계속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돈은 좀 덜 벌어도 일종의 보람 내지 자긍심으로 첫 번째 집단이 유지되었지만, 이제 그런 게 무의미하다고 전공의 등 상당수가 판단한다.
개원의 비급여 의사 집단의 이중성
사태를 풀기 위해서는 우선 세 집단을 제대로 구분하고 각기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모든 의사는 다 나쁜 놈이다 또는 역으로 모든 의사의 주장은 다 이해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식으로 어느 한쪽을 편들 이유가 없다. 의료대란이 장기화하자 최근에는 의사 입장을 이해하는 분위기도 강한데, 이것도 꼭 그렇지도 않다.
그간 실제 내용을 살펴보면 의사 스스로 내부적인 문제가 많다. 가령 중증의료 쪽에서는 돈보다 더 크게 와닿는 의료사고 리스크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배상보험 의무 가입이 논의되었지만 병원장 모임인 병원협회나 개원가는 이를 강력히 반대했다.
건강보험에서 책임져야지 병원이나 의원이 보험료를 낼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원래 건강보험에서 병원이나 의원에 주는 수가에는 위험도에 대한 보상도 포함돼 있다. 건강보험에서 책임지려면 위험도 보상 수가는 안 주는 것이 맞지만, 이것 역시 강력히 반대한다.
한편 모두들 필수의료의 저수가를 이야기하지만, 수가를 정하는 상대가치점수 평가에서 필수의료 쪽을 더 쳐주는 대신 자신 점수가 낮아지면 이를 기를 쓰고 반대하는 것 역시 바로 의사 자신이다. 자신이 받는 돈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결국, 의사들 특히 두 번째 개원의 집단이나 세 번째 비급여 의사 집단은 정말로 의료사고나 필수의료를 걱정하는 게 아니다. 그건 전부 정부가 알아서 할 일이고 모든 것은 저수가 때문이며 의료계 내부에서 자신들이 같이 책임져야 할 문제는 전혀 아니라는 것이 그간 의사의 태도였다.
중증∙필수의료 저수가, 사법 리스크… 의사도 함께 해결해야
필수의료 특히 중증의료 쪽의 저수가와 사법리스크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인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그건 기본적으로 의료계 내부에서도 함께 책임져야 한다.
의료계 내부의 불균형이 매우 심한 것도 첫 번째 집단이 두 번째나 세 번째로 옮겨가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인데도, 그것에 관해서는 별로 언급이 없고, 불균형을 조금이나마 시정할 노력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맨날 저수가 즉 정부나 사법적 판결 즉 법원 등 남 탓만 하고 스스로는 아무 잘못도 없다고 강변하는데 과연 그런가?
3분 진료나 과잉진료는 문제가 아닌가? 또한 현재 의사 집단 간 지나친 내부 불균형은 결국 중증∙필수의료를 담당할 의사 수요를 사라지게 한다. 그런데 그걸 전부 외부 탓으로만 돌릴 수 있는가? 내부를 개선하려는 노력부터 해야 남에게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의사 집단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가령 세 번째 비급여 의사 집단이나 두 번째 개원의 집단 일부의 초과이익 중 일정 부분을 첫 번째 집단에 나눠줄 방안 등에 관한 고민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런 방안을 포함해서 현재의 내부 불균형을 개선하고, 고령화와 맞물려 앞으로 폭증할 위험성이 큰 의료비 증가에 대해 어떻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지는 이어지는 글에서 따로 이야기하겠다.
의사 집단 악마화, 특히 봉직의∙전공의에겐 그러지 말자
다만 비의료인에게 꼮 말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의사 집단의 문제가 많긴 하지만, 모두를 한꺼번에 싸잡아서 악마화하지는 말자. 특히 첫 번째 봉직의 집단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실제로 주로 문제가 되는 건 세 번째 비급여 의사 집단과 두 번째 개원의 일부이고 첫 번째 봉직의 집단 다수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중증∙필수의료를 맡아온 사람들이다.
또한 지금 사직한 전공의들도 사실은 첫 번째 집단 중에서도 가장 초과 착취당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나중의 기대이익을 생각한 측면이 있지만 어쨌든 현실에선 가장 약자였고, 오히려 그들은 적어도 당장은 돈만 밝히는 것이 아니었기에 바이탈과(내과, 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소아과, 응급의학과) 전공의를 했던 것이다. 무조건적인 악마화할 게 아니라 무엇이 문제인지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또한 전공의가 떠난 자리에서 지금도 응급실이나 필수의료의 현장을 지키는 의사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간 첫 번째 집단을 유지한 요인 중 하나가 보람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의사 중에서 여전히 기본적인 책임을 다하려고 하는 이들이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지지하는 것이 우선이다. 의사는 다 도둑놈들이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이 상황 속에서도 맡은 책임을 다하려는 의사들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내부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의사 집단을 싸잡아서 비난하는 것은 오히려 의협 지도부 등 현재 의사 집단을 주도하는 이들에게 도리어 핑곗거리를 줄 수도 있다. 앞서 말했듯 그들은 내부 문제점에는 침묵하면서 모든 것을 외부 탓으로 돌린다. 어떤 의미에서는, 내부 문제점을 가리기 위해 세 집단의 차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모두 입장이 동일한 하나의 집단인 것처럼 프레이밍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럴수록 오히려 이러한 차이를 고려하면서 그에 맞게 논의해야 한다. 의사를 모두 한통속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한 번 더 강조한다.
다음 글에선 의사 집단의 차이를 고려한 해법을 이야기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