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리포트] 뉴스토마토의 명태균 녹취록과 10년 전 세계일보의 정윤회 문건.
김건희(대통령 부인)의 공천 개입 의혹이 윤석열 정부의 새로운 리스크로 떠올랐다. 지지율 20%가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
두 가지 질문으로 시작해 보자.
- 첫째, 윤석열(대통령)은 왜 이 사건에 격노하지 않나.
- 둘째, 이렇게 뭉갠다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인가.
이게 왜 중요한가.
- 김건희가 국민의힘 총선에 개입한 정황이 최소 세 차례 드러났다.
- 첫째, 김건희가 미는 후보가 실제로 공천을 받았다는 의혹이 있고,
- 둘째, 김건희가 개입했는데도 공천에 떨어진 정황도 있다. 이것 때문에 김건희와 한동훈(국민의힘 대표)의 사이가 결정적으로 틀어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 셋째, 김건희 때문에 떨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김건희가 미는 후보가 공천을 받았다는 주장이다.
- 셋 다 정황은 구체적인데 해명이 부실하다.
첫 번째 사건: “나는 김영선이라 했는데.”
- 발단은 9월 5일 뉴스토마토 단독 기사였다.
- 김건희가 김영선(전 국민의힘 의원)에게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내서 지역구를 바꾸라 했다는 내용이었다.
- 두 명의 의원이 봤다고 했는데 그 한 명이 이준석(개혁신당 의원)이었다. 이준석은 직접 SBS에 출연해 “그 의원이 나”라며 “공천 개입이라 하기는 약간 애매하다”고 말했다.
- 이때만 해도 그런 말이 돈다는 정도였다. 그런데 추석 연휴 직후 후속 보도가 나왔다.
- 김영선의 선거 컨설턴트 역할을 했던 명태균의 통화 녹음이 공개됐는데, 이런 내용이다. 2022년 보궐 선거 때 명태균과 누군가의 통화 내용이다.
- “사모하고 전화해 가, 대통령 전화해가지고. 대통령은 ‘나는 김영선이라 했는데’ 이라데. 그래서 윤상현이, 끝났어.”
- ‘윤핵관’ 의원들이 다른 후보를 공천하려고 윤상현(당시 공천관리위원장)을 압박했는데 명태균이 나서서 교통 정리를 했다는 이야기다. 김영선은 창원의창에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명태균과 윤석열의 통화.
- 명태균과 윤석열의 통화 녹음을 들었다는 사람도 있다. 국민의힘의 한 당직자는 “명태균이 과시하려고 대통령과 통화 녹음파일을 스피커폰으로 여기저기 들려줬다”고 말했다.
- 대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윤석열이 “K가 이건 당에 맡겨 달라고 했다”고 말하자 명태균이 “영남 지역구에 여성 의원이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했고 윤석열이 “알았어, 내가 다시 알아볼게”라고 한 뒤 윤석열이 K에게 다시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창원의창에 연고가 없던 김영선이 허수아비라도 꽂으면 당선될 공천을 받았다.
- 윤상현은 “소설 같은 이야기”고 “원칙에 따라 공천했다”고 반박했다.
- 이때는 이준석(개혁신당 의원)이 국민의힘 대표를 맡고 있었다. 대통령실의 개입이 있었다면 이준석이 몰랐을 리 없다. 이준석은 “수조 물 시음 사건(2023년 6월 30일) 이전이라 그다지 나쁜 이미지는 아니었다”면서 “공천에 따른 하자는 없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사건: “여사가 전화 왔어.”
- 올해 총선(22대)에서 김영선은 공천을 받지 못했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창원의창에 김종양(전 경남경찰청장)을 공천했다.
- 명태균 통화에 이런 대목이 있다. “김영선 컷오프야. 여사가 직접 전화 왔어. 그러니까 빨리 기사, 빨리 내 갖고 빨리 확인하고. 그 기사를 여사한테 줘야 돼요.” (뉴스토마토는 통화 상대방이 누구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 이 통화를 한 날은 김영선 컷오프가 발표되기 하루 전이었다. 김건희는 어떻게 알았을까.
- 실제로 이 통화 직후 컷오프됐던 김영선은 험지인 김해갑에서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결과적으로 공천을 받는 데 실패했지만 김건희가 손을 쓴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뉴스경남에 김영선이 김해갑에 출마한다는 기사가 떴는데 이 기사 제보자가 명태균이었다고 한다.
- 대통령실은 “결과적으로 공천이 안 됐는데 무슨 공천 개입이냐”고 일축했다. 그런 통화를 한 적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칠불사 모임: 이준석과 김영선의 수상쩍은 거래 시도.
- 공천을 받는 데 실패한 김영선은 이준석을 찾아갔다. 김건희와 주고받은 텔레그램 메시지를 공개하는 조건으로 개혁신당 비례대표 1번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른바 칠불사 모임을 뉴스토마토가 단독 보도했다.
- 이준석은 “폭로 내용에 완결성이 없었다”면서 “개혁신당 구성원 모두가 부정적이라 거부했다”고 말했다.
- 당시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맡고 있었던 김종인(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강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1번을 달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3번을 달라고 해서, 거론할 가치가 없으니까 상대를 안 해버렸다”고 말했다.
- 김영선의 제안을 거절하긴 했지만 개혁신당이 김영선의 제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한 정황이 있다. 칠불사에서 새벽까지 회의를 했고 천하람(당시 후보)이 기자회견 초안을 준비했다고 한다.
- 김영선과 결별한 두 가지 이유를 추측할 수 있다. 첫째, 김영선이 들고 온 정보가 파괴력이 크지 않을 거라 판단했을 수 있고, 둘째, 비례 1번을 줄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 분명한 건 김영선이 김건희의 약점이 될 만한 정보를 쥐고 있었고 딜을 시도하다가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세 번째 사건: “이철규가 김건희 루트야.”
- 서울의소리가 김대남(전 대통령실 선임행정관)과 이명수(서울의소리 기자)의 통화 녹음을 공개했다.
- 김건희(대통령 부인)가 이원모(전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에게 공천을 주라고 지시했고 이철규(당시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가 힘을 썼다는 취지의 말이다.
- “이철규가 용산 여사를 대변해서 공관위에서 일을 하고 있다. (중략) 아주 그냥 여사한테 이원모 하나 어떻게 국회의원 배지 달게 해주려고 저 지랄을 떨고 있다. (중략) 이원모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고. 근데 그렇게 신줏단지 모시듯이 저 야단 난리 치고 있잖아. 왜냐면 이원모 잘못되면 이철규가 날아가.”
- 김대남은 지난 총선에서 용인갑에 공천 신청을 했지만 탈락했다. 김대남 대신 이원모가 출마했는데 낙선했다.
- 김대남과 이철규는 모두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돈거래 의혹도 나왔다.
- 김영선-명태균 돈거래는 공천 개입과 별개의 사건이 아니다. 명태균이 김건희의 도움을 받게 해준 대가로 받았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 JTBC가 “검찰이 김영선이 명태균에게 6300만 원을 건넨 정황을 수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는데 오늘 아침 뉴스토마토에 좀 더 구체적인 정황이 나왔다.
- 김영선이 달마다 의원 세비 절반을 명태균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2년 동안 모두 9600만 원에 이른다.
- 김영선에게는 “공천 어떻게 받은 줄 아시죠?”라고 했고,
- 비서관에게는 “나하고 딱 약속한 건 2분의 1이야”라고 했다. 이번 달 세비 얼마 들어왔느냐고 물어서 920만 원이라고 하니 “1원이라도 틀리면 끝이야”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 김영선이 명태균의 ‘백’으로 당선됐다는 걸 알고 있거나 그렇게 믿었다는 이야기다.
명태균은 누구인가: 역술인? 정치 브로커? 사업가?
- 정치 컨설턴트 역할을 했다. 2003년부터 한동안 창원에서 광고 업체를 운영했다고 한다.
- 미래한국연구소 회장이라는 이름으로 윤석열 취임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 김종인과 이준석 등과 친분을 과시했다고 한다. 이준석이 함성득(전 경기대 교수)을 명태균에게 소개했고 김종인도 이준석을 통해 명태균을 알게 됐다고 한다. 함성득은 슬로우뉴스와 통화에서 “이준석이 있는 자리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명태균을 만났다”고 말했다. 김종인은 “이준석이 당대표에 도전했을 때 그 사람이 붙어 다니면서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김건희와 명태균의 연결고리는 확인되지 않았다.
명태균의 반박.
- 뉴스토마토에 소송을 걸었는데 크게 두 가지를 주장하고 있다.
- 첫째, 김건희는 김영선과 문자를 주고받은 적 없고, 둘째, 김영선에게 김해로 옮기라고 요청하거나 지원하겠다는 내용이 없다는 주장인데 둘 다 지엽적인 내용이다. 김건희는 나만 친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 텐데 본질과 거리가 멀다.
- 김영선에게 김해갑으로 옮기라고 요청했다는 게 뉴스토마토 처음 보도였는데 후속 보도를 보면 김영선이 창원의창에서 공천을 못 받게 되니 옮길 곳을 제안했을 가능성이 크다. 명태균은 뉴스토마토 첫 보도를 반박했지만 두 번째 보도에 대해서는 별말이 없다.
누가 제보했나.
- 뉴스토마토는 취재원을 밝히지 않았다.
- 김기성(뉴스토마토 편집국장)은 슬로우뉴스와 통화에서 “여러 언론사가 같은 제보를 받은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언론사들이 보도를 내보내지 않은 이유를 두 가지로 봤다. 첫째, 입증할 만한 증거가 부족했고, 둘째, 부담감이 컸을 거라고 한다.
- 김기성은 “명태균이란 사람을 믿을 수 있느냐도 고민했는데 드러난 정황만으로 의미가 크다고 판단해서 기사를 내보냈다”고 말했다.
김건희와 명태균의 대화 녹음은 없다.
- 제보자는 김건희 쪽이 아니고 명태균 쪽도 아니다. 김영선이 여기저기 흘리고 다녔고 김영선 쪽에서 제보자가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
- 아직 김건희와 명태균의 대화 녹음 같은 건 없다. 실제로 명태균이 김건희와 연락을 했는지 안 했는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다.
- 다만 대통령실이 해명하지 않고 뭉개면 오히려 의혹이 사실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쏟아지는 후속 보도.
- JTBC는 김영선이 명태균에게 6300만 원을 전달했다는 사실을 처음 보도했고,
- SBS는 김영선이 김건희 의혹을 폭로하겠다며 공천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아이뉴스24는 김영선이 개혁신당에 전국 조직망을 들고 가겠다고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 한겨레는 명태균이 김건희 초청으로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 MBC는 “명태균이 대선을 도와주고 김건희에게 칭찬받았다”고 했다는 김영선 발언을 보도했다.
- KBS는 어제까지 메인 뉴스에 한 건도 관련 보도가 없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 보수 언론도 일단 관망하는 분위기다.
명태균 음성을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나.
- 통비법 문제가 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공개하는 경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 서울의소리 녹음 파일은 당사자가 직접 공개했으니 해당이 안 되지만 명태균 녹음 파일은 통비법 위반이 될 수 있다.
- 다음 달 국정감사에서 공개될 가능성도 있다.
대통령실 반응.
- “드릴 말씀 없다”고만 했다.
- 해명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까. 하지 않은 걸 안 했다고 입증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드러난 의혹은 해명해야 한다. 명태균이 김건희에게 전화했는데 옆에서 윤석열이 “나는 김영선이야” 했다는 대목은 반박하려고 하면 충분히 반박할 수 있다.
- 김건희가 공천에 개입한 게 사실이라면 공직선거법 위반이 될 수 있다.
- 민주당은 논평을 내고 “소문이 무성하던 김건희의 국정농단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국혁신당도 논평을 내고 “여사공화국의 명백한 증거”라고 비판했다.
- 민주당은 김건희 공천 개입 의혹을 포함한 김건희 특검법을 다시 발의했다.
최순실 사건과 닮은 꼴: 무너지는 건 순식간.
- 그때는 비선 실세가 최순실이었고 지금은 ‘실선 실세’가 김건희라는 걸 모두가 안다. 모두가 우려하고 일찌감치 경고가 끊이지 않았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
- 최순실 사건 전에 정윤회 문건이란 게 있었다. 정윤회는 최순실의 전 남편이고 2002년 박근혜 의원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다.
- 2014년 11월, ‘비선실세’가 문고리 3인방을 통해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담긴 문건을 세계일보가 단독 보도했다.
- 청와대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고 정호성(비서관)과 안봉근(비서관) 등이 세계일보 기자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검찰이 박관천(당시 공직기강비서관실 경정)과 세계일보 기자들을 공무상 비밀 누설과 허위 사실 적시 등으로 기소했다.
- 검찰은 세계일보를 압수수색 하면서 강하게 밀어붙였다. 조한규(당시 세계일보 사장)에 따르면 검찰이 기자들을 미행해서 일부 기자들은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거의 식사를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 박현준(세계일보 기자)이 나중에 관훈저널에 이런 글을 썼다. “권력은 영원하지 않고 시간은 진실의 편이라고 믿는다. 진실의 순간은 도둑같이 올 것이다.”
- 정윤회 문건은 박근혜 2년 차 때 사건이었고 1년 반 뒤 최순실 사건이 터졌다.
- 박관천이 그때 이런 말을 했다. “우리나라 권력 서열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 3위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 황당무계한 소리처럼 들렸지만 박관천의 말은 사실로 드러났다.
- 김건희 공천 개입 의혹은 어떨까.
어떻게 될까.
- 요즘 아침 신문을 보면 비판의 강도가 조중동이 더 강하다. 어제 조선일보 논설실장(박정훈) 칼럼에 이런 대목이 있다.
- “‘김 여사는?’이란 반박을 받으면 말문 막힐 때가 많다. 윤석열 지지자들이 ‘X팔리는’ 심정이 된 것이다.”
- 경향신문 칼럼에서 이준웅(서울대 교수)은 “한국 언론에 머로 순간이 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 ‘머로 모멘트(Murrow moment)는 언론이 유력 정치인의 말을 조신하게 받아쓰다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비판적으로 돌아서는 순간을 말한다. 1954년 CBS의 에드워드 머로가 조 매카시(당시 상원의원)의 색깔론 공세를 비판했던 걸 두고 만든 말이다.
- “정부·여당에 대해 점잖게 지적하며 정치적 훈수를 아끼지 않던 보수 언론이 이제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논조로 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 다니엘 할린의 영역 이론에 따르면 정치 담론은 합의의 영역과 논쟁의 영역, 일탈의 영역이 있다. 트럼프가 논쟁의 영역을 넘어 일탈의 영역으로 뛰어들자 많은 언론인이 중립에서 벗어났다. 맞서지 않으면 공범이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 2016년을 돌아보면 4월부터 미르재단 의혹이 쏟아졌는데 10월 들어 JTBC 태블릿 PC와 함께 TV조선의 최순실 의상실 영상이 공개되면서 여론이 돌아섰고 그동안 의혹으로 떠돌던 퍼즐 조각이 맞물리기 시작했다. 탄핵과 장미 대선까지 7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 윤석열이 김건희 공천 개입 의혹을 뭉개고 갈 수 있을까. 10월에는 국정감사도 있고 주가 조작 사건 수사도 시작된다. 오늘 디올 백 수사심의위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김건희는 한동안 뉴스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다.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도 수사에 착수했다.
대단한 기사인데 왜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이렇게 정리되어 냐오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