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를 위한 빅데이터 활용 논의가 한창이다. 빅데이터란 대용량 데이터를 획득, 저장, 분석해 가치 있는 정보와 스토리를 추출하고 이를 의사결정이나 미래 예측에 활용하는 기술이다.
정부는 대국민 맞춤형 서비스 제공과 데이터 기반 정책을 수립하고, 기업은 맞춤형 고객관리 시스템과 타겟마케팅을 선보이고자 정부와 기업이 모두 빅데이터 활용에 관한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정책을 추진 중이다.
개인정보보호법, 시행 1년여 만에 개정 논의
미래창조과학부는 위치기반 광고에 대한 정보주체의 사전동의 의무 완화를 위해 인터넷 규제개선 평가단을 구성하였고(참조), 프라이버시 정책연구 포럼은 개인정보보호법제 개선을 위한 정책연구보고서를 발간하였으며(참조), 국회는 개인정보보호법제 개선 토론회를 여는 등(참조) 개인정보 보호 관련 부처들은 빅데이터를 활용한 신성장 동력을 만들어 내기 위해 관련 법들에 대한 정비에 착수했다. 계속되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대한 우려 속에 우여곡절 끝에 2011년 3월 개인정보 보호법이 국회를 통과하여(참조), 그 해 9월에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행 1년여 만에 개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 그동안 무슨 문제가 있어 이토록 시행 1년여 만에 개정하자고 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는 것일까?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무역의 증대, 전자정부 전 세계 1위를 홍보하며, 기술의 발전만 생각하던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관심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일까?
2008년 GS칼텍스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시작으로 옥션, 농협, 네이트 등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계속해서 발생하자 많은 국민들은 자기 자신의 개인정보가 다른 사람에게 유출되어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나 아닌 사람이 자신이 되어 생활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증폭되면서 시작된 것 같다.
계속되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따라 개인정보 보호법은 헌법재판소가 판례로써 인정한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진 법으로써 모든 부분에서 국제적 기준에 부합한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 그러한 기준에 맞춰 제정되었다.
빅데이터 활용해서 창조경제 이룩하자?
하지만 법 제정 2년여 만에 결국 개정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개정을 주장하는 논의를 요약하여 추론하자면, 개인정보 보호법 시행으로 인하여 정보통신 기업을 비롯한 사회 모든 영역에서 개인정보 수집과 이용에 엄청난 사회적 비용과 불편함을 초래하고 있으니 ‘규제 만능법’인 개인정보 보호법을 완화하여 빅데이터를 활용한 창조경제 활성화를 꾀하자는 것으로 귀결되는 듯 하다.
한편으로 진보네트워크센터, 경실련 등 시민단체와 백윤철 교수 등 개인정보 보호법 관련 일부 학자들은 개인정보 보호법이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정보 보호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한 가운데, 개인정보 수집과 이용에 관한 관행은 제정 이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고 있으며, 정부는 여전히 개별법을 통하여 개인정보를 수집함으로써 개인정보 보호법이 무력화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신용카드나 포인트 카드를 만들 때, 인터넷에서 어떠한 서비스를 이용하려 할 때, 가입자는 대부분 개인정보 수집 및 활용 동의에 활용하지 않으면 어떠한 서비스도 이용할 수도 없으며, 거의 강제하여 받아내는 동의서를 통하여 우리의 개인정보는 지금도 수많은 업체에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빅데이터 활용, 무엇이 문제인가
다시 빅데이터 활용 문제로 돌아가 보자.
모 광고에서 스마트 TV를 통하여 아내의 취향과 선호 상품을 알아낸 남편이 아내를 위한 가방을 사오는 장면이 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자면, 우리는 지하철을 타거나 식사를 하거나, 여행하거나, 상품을 사면서 대부분 신용카드를 사용한다. 역으로 카드회사는 우리가 어디에 사는지, 어느 곳에 있는지, 어떤 상품을 좋아하는지 등에 관하여 너무나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빅데이터 활용의 가장 커다란 목적은 국가와 기업 모두 맞춤형 서비스 제공에 있다. 개인에 대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결국 그 개인에 대한 기호와 취향 등 여러 가지의 개인에 관한 정보를 분석해야만 가능하다. 즉, 빅데이터의 활용에 있어 개인은 정부와 기업의 타겟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미국을 비롯한 외국에서는 빅데이터 활용을 통한 경제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나라는 외국과 가장 크게 다른 환경이라면 전 국민이 태어나면서부터 바코드를 붙이듯 강제적으로 본인식별번호를 부여받고, 개인의 모든 활동을 추적할 수 있는 키 데이터(Key Data)로서 ‘주민등록번호제도’ 라는 그 어떤 나라에도 없는 제도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빅데이터 논의 출발점은 주민등록번호 폐기로부터
익명성에 기초한 데이터를 수집하여 통계를 추출하고, 정책 방향을 설정하며,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이미 인터넷 주소자원 관리법에 의하여 국가가 모든 IP 주소를 관리하고 있고, 주민등록번호에 의하여 인터넷을 사용하는 개인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상황은 분명히 크게 다르다.
우리나라는 이미 빅데이터를 활용하지 않아도 주민등록번호에 의한 통계분석과 기관간 활용을 공유한다면 그 어떤 국가보다도 훨씬 정교한 개인데이터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며,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수많은 개인정보 유출 사고로 인하여 전 세계 공유재가 되어버린 우리나라의 주민등록번호를 폐기하지 않은 채 빅데이터 활용을 통한 창조경제의 활성화 전략은 굉장히 우려스러운 지점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빅데이터를 논의할 때 주민등록번호를 폐기한 후 익명성에 기초한 빅데이터 활용에 대하여 논의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익명성이 수반되지 않은 빅데이터의 활용은 맞춤형 서비스의 제공과 창조경제의 활성화라는 이면에 개인정보의 공유와 타겟 감시라는 오명을 쓸 수도 있다.
우리나라가 전자정부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도취하여 개인정보 유출 문제를 아직 생각하지 못했다면, 개인정보 보호법 완화를 통하여 빅데이터 활용을 논의하기 전에 개인정보 수집에 대한 반강제적 동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대한 수집자에 대한 책임, 개인정보 수집을 통한 감시 등의 목적 외 활용 등과 같은 개인정보 보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프리즘(PRISM) 사건의 교훈
최근 이러한 논의를 뒷받침하는 미국의 프리즘(PRISM) 사건은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프리즘은 미국 NSA, CIA 등 정보기관들이 전화통화기록, 이메일, 비디오, 온라인 채팅, 사진, 검색키워드 등에 대하여 개인정보를 수집할 때 사용하는 프로그램이다.
구글, MS, 페이스북, 야후, AOL, AT&T, 애플 등 미국의 정보통신 대기업들은 거의 이러한 프리즘 정책에 협조했다. 물론 미국은 프리즘은 테러방지를 위해 의회의 승인을 받아 국내가 아닌 국외 활동을 감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한다고 주장했지만, EU, 시민단체, 외국 기업 등에서는 미국의 국내법에 의하여 다른 나라 시민의 기본권이 침해된 상황에 대하여 미국의 답변을 요구했고, 프리즘의 개인정보 수집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이미 구글, 페이스북, AOL, 애플은 동의 없는 개인정보 수집과 통합, 개인 위치정보의 실시간 저장, 사용자들의 검색결과 유출 등으로 파장이 일었던 경험이 있었으나, 이번 프리즘 사건으로 거대 정보통신 기업들이 국가의 빅브라더 감시에 개인의 검색기록까지 협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개인정보 수집과 공유,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맞춤형 서비스 제공이라는 명분이 감시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스마트 문명의 빛과 그림자
현재 스마트기기라는 이름을 단 채로 많은 기기들이 출시되고 있다. 스마트기기란 스마트폰, 스마트 TV 등과 같이 정보통신기기 중 유저인터페이스(User Interface) 기능 향상을 위하여 소프트웨어에 의해 기기 본연의 기능에서 인터넷, 이메일, 위치정보 기능 등이 추가되어 활용되는 기기를 가리킨다. 이는 그만큼 개인의 정보를 실시간 끊임없이 수집하고 패턴을 분석하여 사용자에게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내가 생성한 정보지만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사람이 내 정보를 이용해 성향과 패턴을 분석하고, 내가 받고 싶지 않은 광고를 지속해서 보낸다면 스마트(smart)한 기기가 나중에는 사악(wicked)한 기기가 되어 나를 감시하는 도구로 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정보통신기술은 유토피아를 약속할 수도 있고, 사생활의 종말과 감시 사회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 도구와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말이다.
[box type=”info”]좀 더 명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 제목을 수정합니다. 기존 “빅데이터로 창조경제? 주민등록제도 먼저 폐지하라!”를 “빅데이터로 창조경제? 주민등록번호 먼저 폐기해야”로 수정했습니다. (수정 시각: 2013년 6월 17일 오전 11시 18분) (편집자)[/box]
주민등록번호가 없어도 잘 살 수 있을까요? 불안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물론 저는 없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좋은 글 많네요. 잘 보고 갑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