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 헤게모니 전쟁, 그 지형도

생성형 AI의 주도권을 둘러싼 빅테크의 합종연횡이 활발합니다. 전쟁의 진실은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가끔 드러나는 전투의 양상을 통해 그 거시적인 흐름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AI 헤게모니를 둘러싼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쟁, 마이크로소프트라는 든든한 배경을 두고 애플과의 계약을 통해 검색에서 구글에 도전장을 던진 오픈AI, 그리고 이들에게 핵심 변수인 엔비디아까지.

그 치열한 전장의 풍경을 도안구(IT 칼럼니스트)의 시선으로 크고 넓게 훑어봅니다. (편집자)

최우선, GPU가 기본이다

다들 엔비디아 GPU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구글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데도 왜 허덕대는지 의아해한다. 구글은 가장 강력한 슈퍼컴퓨팅 인프라를 보유했다. 하지만 자사 AI 서비스를 위한 인프라와 고객 대상으로 그런 인프라를 빌려주고 관리하도록 하는 클라우드는 전혀 다른 영역이다.

생성형 AI 인프라 투자에는 시간이 걸린다. 자체 칩을 만들었다고 해도 엔비디아의 최신형 칩에 대응하지 않으면 답이 없다. 자체 칩을 만들어 서비스한다고 큰소리치던 아마존 웹 서비스(AWS)가 부랴부랴 엔비디아와 화해했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내보내고, 앞으로도 가장 빠르게 가장 많은 인프라를 사들여 서비스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NVIDIA GTC 2024에서 키노트하는 젠슨 황. 엔비디아 유튜브 동영상 캡처.

현재는 엔비디아 칩 확보가 우선이다. 자체 칩 환경을 많이 가져가겠지만, 지금 당장은 엔비디아 칩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다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상한 일이다.

오라클은 엔비디아와 먼저 협력해 GPU 인프라를 구축해 놓았고, 요즘 그 덕분에 재미를 보고 있다. 오라클이 죽었다는 건 헛소리다. 오라클은 화려하게 부활 중이다. 오라클 클라우드 인프라스트럭처에 있는 엔비디아 GPU 슈퍼컴 때문에 최근 생성형 AI를 학습시키려는 스타트업들이 몰려들고 있다. 최근에는 일론 머스크의 X.AI 학습과 관련해 100억 달러 규모의 딜이 거의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GPU 인프라가 가장 기본이고, 가장 중요하다. 10년 후에는 상황이 바뀔 거라는 등의 이야기는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이는 마치 AI 반도체 시장 대응에 참패한 삼성전자가 금세 치고 올라올 거라는 사기와 다를 바 없다. ‘언젠가’는 대응하겠지만 단기간 내에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내 판단이다. 지금 삼성전자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메타가 만든 파이토치(토치와 카페2를 기반으로 한  딥러닝 라이브러리) 진영에서 텐서플로우가 참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구글은 자사의 TPU(텐서 처리 장치, 2016.05. 구글이 발표한 데이터 분석 및 딥러닝용 하드웨어)를 사용하기 위해 텐서플로우를 만들었기 때문에 당연히 다른 칩을 사용할 때 유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기네가 쓰려고 만든 것이다.

알파고 실물(왼쪽)과 TPU

챗GPT 탑재한 아이폰?!

오픈AI의 혁신 인프라는 모두 마이크로소프트 애저(2010 이래 MS의 클라우드 컴퓨팅 플랫폼)가 맡고 있다. 오픈AI가 애플과 협력한다는 것은 애플도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을 잡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구글은 10억 명의 검색 사용자를 확보했다. 이들 모두에게 생성형 AI를 제공하려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AI 인프라가 필요하다.

반면에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AI는 1억 명을 대상으로 1년 넘게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그 수는 구글 검색 사용자와 비교하면 적을 수 있지만, 가장 강력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프라 운영 경험을 가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면서 점차 인프라를 확장해 나가면 된다. 새로운 칩도 설계하면서 말이다.

문제는 오픈AI와 애플과의 협력이다. 애플은 아이폰을 2007년 처음 출시했고, 아이폰 사용자 수는 매년 계속 증가한다. 그 수가 2023년에는 대략 20억 명에 육박했거나 도달했다고 보는 시장 기관들이 많다.

상상해 보라. 20억 사용자에게 생성형 AI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야말로 엄청난 인프라가 필요할 것이다. 애플이 엔비디아에 상상할 수 없는 돈을 주고 우선 공급해 달라고 한다고 해서 그 인프라를 바로 도입해 이런 규모의 사용자에게 서비스할 수는 없다.

아이폰에 챗GPT를 탑재하기로 한 애플과 오픈AI의 계약이 마이크로소프트에 좋을까? 나쁠까? 좋을 거라는 답변이 45%, 나쁠 거라는 답변이 26%. 블룸버그테크놀로지 유튜브 캡처. 2024. 05.14.

MS 인프라 빼놓곤 상상할 수 없다

애플은 구글에 아이폰 검색 독점권을 주고 연간 200억 달러를 받는 회사다(2022 기준). 애플이 오픈AI와 협력했다면 당연히 마이크로소프트 인프라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프라를 공짜로 제공하기도 쉽지 않다. 현재 미국 공정거래 관련 규제 기관에서는 구글 검색 관련 반독점 소송이 진행 중이고, 마이크로소프트는 구글을 비난하며 소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에 오픈AI를 내세워 딜을 성사시킨 것을 보면 뭔가 묘수를 찾은 것 같기는 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AI 지분이나 독점 계약에 애플을 끌어들여 자사를 향한 각국 규제 기관들의 칼날을 피하는 방식을 취한 걸까? 그 내용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고, 나도 무척 궁금하다.

애플이 관련 서비스를 모두 무료로 제공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구글과 삼성전자도 생성형 AI 서비스와 관련해서는 신제품 위주로만 무료로 풀었고, 그것도 한시적이었다. 하지만 애플은 이미 많은 서비스 영역에서 유료화 노하우가 있으니 생성형 AI와 관련해 월정액 서비스를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B2B 시장에 확실히 포지셔닝하면서 애플과도 자주 협력한다.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가 서로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지금 대형 GPU 인프라가 없는 AI 기업은 클라우드 사업자 영역을 벗어날 수 없다.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제공.

엠비디아에 찬사 보낸 오픈AI

오픈AI는 GPT-4를 시연하면서 마무리쯤 엔비디아 팀에 찬사를 보냈다. 어쩌면 최근에 출시한다고 했던 엔비디아의 신제품을 먼저 제공받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픈AI와 함께 만든 생성형 AI 슈퍼컴퓨팅 인프라가 있다. 이를 아예 애플용으로 만들어서 애플 데이터센터 안에서 시리와 같은 서비스와 애플 고객 정보를 연동해 서비스한다면 어떨까?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안에는 엔비디아 DGX 서비스가 들어가 있고, 오라클 클라우드 인프라스트럭처(OCI)의 데이터베이스 서비스 관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통째로 들어가 있는 어플라이언스 환경이 구축되어 있다.

애플 데이터센터 안으로 마이크로소프트 애저가 통째로 들어간다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다.

한편, 서비스 소개가 있고 나서 바로 마이크로소프트 홈페이지에 관련 포스팅이 올라왔다.

GPT-4o 시연 모습. 오픈AI 동영상 캡처.
GPT-4o ‘제한 상황’ 시연 모습. 오픈AI 동영상 캡처.

구글, 정신 못차린다

참고로 구글은 개발자 행사와 클라우드 행사를 한 달 간격으로 진행했다. 도대체 왜 별개로 했는지 알 수 없다. 개발자 행사를 하고 나서 B2B 행사를 하는 것이 기업들의 준비에 더 도움이 되는데, 순서가 뒤바뀐 셈이다.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다.

순다르 피차이(구글 CEO). 구글 I/O(연례개발자회의) 키노트 장면. 구글 I/O 유튜브 캡처.

며칠 전 만난 개발자는 “구글은 방향은 잘 잡은 것 같은데 뭔가가 부족해 보인다. 품질도 그리 뛰어나지 않다”고 말했다. 아마도 구글의 천재들이 남들에게 무릎 꿇고 서비스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오라클 출신 인사가 와서 힘을 빼라고 해서 수익은 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검색 반독점 소송에서 휘청거리는 순간이 오면, 구글이 지금처럼 큰소리를 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픈AI가 검색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뭔가를 하고 있는 걸 보면 구글도 긴장해야 한다. 샘 올트먼은 구글을 꺾은 사람으로 역사에 기록되길 원하는 것 같다. 마이크로소프트라는 뒷배를 이용해서라도 말이다. 그리고 나면 마이크로소프트에 칼을 꽂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애플이라는 거대한 고객과 손잡아 구글을 궁지에 몰아넣는 게 급선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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