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레터 2024년 4월17일 (수).
“그러나” “하지만” 15번, 사과한 거 맞나.
- “더 낮은 자세와 더 유연한 태도로 보다 많이 소통하고 저부터 민심을 경청하겠습니다.”
- 윤석열(대통령)이 총선 이후 6일 만에 입장을 밝혔다. 국무회의 모두 발언을 생중계로 잠깐 내보낸 게 전부였다. 그나마 “~했지만”, “~하더라도”, “~했음에도”, “~그러나” 같은 변명으로 채웠다. 동아일보가 세 봤더니 15번이었다. 결국 열심히 했는데 국민들이 몰라줘서 아쉽다는 이야기다.
- 한국일보는 “성찰 없는 반성문”이라고 했다.
- 경향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은 “’국정 방향 옳았다’는 윤석열, 그대로 간다”다. 한겨레도 “국정 방향은 옳다”를 제목으로 뽑았다. 사설에서는 “그럼 국민더러 바뀌라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 “불통-협치-의료 해법 없었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성난 민심 앞에 국정 최고지도자로서 책임과 자성의 메시지는 미약했고 향후 국정 전반의 변화와 쇄신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 중앙일보도 “정책보다는 정치가, 스타일과 태도가 문제였다”면서 “이런 부분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 여론이 안 좋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을까. 4시간 뒤에 대통령실 관계자가 기자들을 만나 비공개회의 발언을 흘렸다. 조선일보는 “비공개회의에서 ‘국민께 죄송’”을 제목으로 뽑았다. “국민들 뜻을 잘 살피고 받들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다고 한다.
국민의힘도 부글부글.
- 한 국민의힘 의원이 경향신문 기자에게 “가장 나쁜 사과”라고 말했다. “패배를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 같다”는 이야기다.
- 낙선한 한 국민의힘 후보는 “의미 없는 말씀”이고 “처절함이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쟁점과 현안.
환율 오를 이유만 넘쳐난다.
-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찍었다. 역대 네 번째다. (앞서 세 번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2년 레고랜드 사태 때다.)
- 첫째, 미국이 금리 인하를 늦출 가능성이 크고, 둘째, 중동 분위기도 심상찮다. 셋째, 원화 가치가 떨어지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빠져나갔다. 환전 수요가 늘면 환율이 뛴다. 넷째, 선물 매도도 계속되고 있다. 환율 상승에 베팅했다는 이야기다.
- 원화 값과 코스피 지수와 국채가 동시에 급락하는 트리플 약세를 두고 “탄탄한 미국 경제가 한국 시장에 악재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연말까지 강(强)달러가 계속될 거라 환율이 1450원까지 갈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 오창민(경향신문 논설위원)은 “최악의 물가, 치솟는 국제유가, 막대한 재정적자, 일본에조차 뒤지는 경제성장률 등 한국 경제는 이미 사면초가에 놓였다”고 지적했다.
내친김에 이재명 연임 간다.
- 임기는 8월까지다. “연임 문제는 이재명 선택에 달린 문제”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 정성호(민주당 의원)가 “나쁜 카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박지원(전 국가정보원장)도 “당연히 하셔야 한다”고 말했다.
- “대선 주자가 당 대표를 또 하는 건 리스크가 크다”는 지적도 있다.
이스라엘-이란 전면전은 피할 듯.
- 일단 이스라엘이 미국의 권고를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 베냐민 네타냐후(이스라엘 총리)가 “영리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군사 기지와 석유 시설을 공격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더 큰 전쟁을 촉발하지 않으면서 고통스러운 보복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르게 읽기.
삼성전자에 64억 달러 보조금.
- 미국 정부의 반도체 자립주의 전략이다. 인텔에 85억 달러, TSMC에 66억 달러를 지급한 데 이어 세 번째 규모다.
- 삼성전자가 10년 동안 400억 달러 투자를 약속한 데 따른 보상 성격이다.
-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반도체의 주력 생산 기지가 미국으로 넘어갈 가능성을 걱정할 상황”인데 “한국은 대기업 특혜라는 반기업 정서에 묶여 보조금 지급은 엄두도 못 낸다”고 지적했다.
- 일본도 구마모토에 TSMC 공장을 유치했다. 1공장에 4760억 엔을 지원한 데 이어 2공장에도 7320억 엔을 지원하기로 했다.
- 한국 정부가 반도체 산업에 지원한 건 세액 공제 1조9468억 원이 전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지난해 반도체 산업에 투자한 금액이 48조2723억 원과 6조5910억 원이다.
- 한국일보도 “직접 보조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더 깊게 읽기.
산 자들의 10년.
- 한국일보의 세월호 기획이 돋보였다.
- 참사 이전에도 여러 차례 재앙의 전조가 있었다. 세월호 선장을 지낸 신보식이 이런 말을 했다. “세월호가 6,825톤짜리 배인데 지게차 몇 대 다녔다고 한쪽으로 기울어지겠습니까? 다 복원력 탓이죠. 이러다 배가 넘어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게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 무리한 증개축에 과적에 평형수도 제대로 채우지 않았다. 최대 적재량의 두 배를 실었다. 직원들은 “새가슴이라 화물 예약을 적게 받는다”는 질책을 듣기도 했다. 격실을 차단하는 수밀문도 열어두고 다녔다.
- 세월호의 침몰 원인은 유압 솔레노이드 밸브 결함과 복원력 상실 때문이라는 게 결론이다.
- 세월호 유족 장훈의 인터뷰도 마음이 아프다. “왜 이 결론을 받아들이는 데 오래 걸렸을까. 거대한 악당이 꾸민 음모 탓에 아이들이 희생됐다고 생각해야 마음의 도피처가 생겨서는 아닐까. 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평범한 얼굴을 한 공범들이 조금씩 잘못을 쌓아 올리다 한순간에 무너져 발생한 사건이었다. 장훈은 이후 배가 왜 침몰했는지 더 묻지 않기로 결심했다.”
- 강승묵의 엄마 은인숙은 10년 만에 남편 강병길을 용서했다고 한다. 강병길은 아들과 마지막 통화에서 “해경 지시를 잘 따라서 조심히 나오라”고 했다. 당장 밖으로 나가 바다로 뛰어내리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자책으로 지난 10년을 살았다. 은인숙이 말했다. “당신 탓이 아니라고, 원망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해 줬어야 했는데. 우리 남편 너무 외롭고 힘들었을 텐데.”
- “내가 승묵이와 통화했더라도 당신처럼 이야기했을 거야.” 강병길은 그날 처음으로 은인숙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소선거구제는 오히려 국민의힘에 불리했다.
- 다음 총선 이전에 국민의힘 주도의 선거법 개편 논의가 시작될 수도 있다.
- 올해 총선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전국 합산 득표수 격차는 160만 표, 비율로는 5.4%포인트 차이인데 민주당이 67석을 더 가져갔다. 의석수 점유율로는 24%포인트 격차다.
- 국민의힘은 수도권에서 43.7%의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122석 가운데 19석밖에 못 챙겼다. 비율로는 17%가 채 안 된다.
- 세 가지 의미를 짚을 수 있다.
- 첫째, 국민의힘 지지자들의 사표가 많다는 것이고,
- 둘째, 지금의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가 국민의힘에 불리하다는 이야기다.
- 셋째, 중대선거구제나 완전 연동형으로 갔다면 국민의힘이 지금보다 27석 이상을 더 가져갈 수 있었을 거란 계산도 가능하다.
집값 비쌀수록 국민의힘 득표율 높았다.
- 국민의힘 득표율과 아파트값은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강남구가 62%의 득표율을 기록한 반면 은평구는 38%에 그쳤다.
- 같은 한강 벨트지만 마포갑에서 조정훈(국민의힘)이 당선되고 정청래(민주당)가 당선된 것도 부동산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조정훈 득표율은 48%인데 용강동과 아현동은 53%와 52%를 기록했다.
- 올해 총선의 이변으로 꼽혔던 도봉갑도 재건축 이슈가 표심을 움직였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 지난 대선과 비교하면 집값도 떨어지고 국민의힘 득표율도 떨어졌다.
오늘의 TMI.
일요일에 문 여는 외국인 특화 은행.
- 하나은행 을지로6가점은 일요일에 문을 연다. 수십 명씩 대기가 걸리기도 한다.
- 외국인들은 이체 금액이 제한되거나 신용카드 발급이 까다로워 오프라인 창구 거래를 선호한다고 한다. 외국인 특화 점포가 33곳에 이른다.
- 4대 은행 점포는 2019년 3525곳에서 올해 2812곳으로 줄었다.
미국 헌법에 없는 질문, 트럼프가 감옥에서 당선된다면?
- 성 추문 의혹을 막으려고 13만 달러를 건넨 혐의로 법정에 섰다. 회사 장부에 법률 비용이라고 기록했다. 전직 대통령이 형사 법정에 나온 건 미국 역사상 처음이다.
- 민주당 성향이 강한 뉴욕주에서 재판을 받기 때문에 불리한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전 미국 대통령)는 배심원 선정 등을 문제 삼으며 시간을 끌고 있다.
- 조 바이든(미국 대통령) 지지율이 오르고 있고 트럼프가 유죄를 선고받을 경우 지지 의사를 철회하겠다는 공화당 지지자들도 늘고 있다.
- 트럼프의 범죄 혐의는 34건에 이른다. 뉴욕타임스는 “판세를 예측할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분석했다.
- 트럼프가 유죄 선고를 받더라도 출마는 할 수 있다. 감옥에서 당선될 경우는? 뉴욕타임스는 “아무도 모른다(No one knows)”고 설명했다. 미국 헌법에는 이런 경우에 대한 아무런 조항이 없다. 연방 재판이 아니라 셀프 사면을 할 수도 없다. 석방 소송을 진행할 수도 있지만 역시 전례도 없고 예측도 어렵다.
해법과 대안.
서울대병원 산과 지원자 0명.
- 빅 5 병원 산과 전문의가 2007년 20명에서 올해 9명으로 줄었다.
- “산과의 삼중고를 해결하지 않으면 2000명이 아니라 2만 명을 증원해도 지원자가 없을 것”이란 말도 나온다. 첫째, 낮은 수가, 둘째, 잦은 응급 상황, 셋째, 소송 위험이 문제다.
- 제왕절개 수가는 102만~200만 원 정도다. 미국은 2200만 원 정도 된다. 일본도 700만 원 수준이다.
- 월평균 분만 건수도 대학 병원은 30~40건에 이른다. 서울대병원의 한 의사는 “한 달에 25번이나 주말과 야간 수술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 의료 사고에 무과실이 입증되면 국가가 전액 보상을 하지만 대부분은 입증이 쉽지 않아 소송으로 간다. 배상액이 10억~15억 원에 이른다.
4대강 진흙탕에 나물을 심었더니.
- 화천군 화천읍 대야리. 4대강 사업을 하면서 수변 공원을 만들었는데 잡풀이 듬성듬성 난 상태로 방치되면서 토사와 흙탕물이 북한강으로 흘러들어 수질 오염이 심각했다.
- 화천군이 10년 전 30억 원을 들여 눈개승마 90만 포기를 심었다. 축구장 15개 넓이다. 눈개승마는 뿌리 발육이 좋고 번식력이 강하다. 소고기와 인삼, 두릅의 세 가지 맛이 난다고 해서 삼나물이라고 불린다.
- 3년 뒤부터 토사 유실량이 90% 이상 줄었고 1억 원 이상 들던 관리 비용도 절반 이하로 줄었다. 3년 전부터는 눈개승마를 채취해 판매하고 있다. 올해는 1억 원 이상 세외 수입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달리기가 수감자들을 바꿨다.
-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샌퀜틴(San Quentin) 교도소에는 1000마일 클럽이라는 동아리가 있다. 작은 운동장을 105바퀴씩 뛴다. 이들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진다.
- 미국은 교정 시설 수감자가 200만 명에 이른다. 흑인이 전체 인구의 13.6%인데 수감자 비율은 38.7%다.
- 한 수감자는 “우리가 사회에 포함된 것처럼 느낀다”고 말했다. 다른 한 수감자는 “코치들은 우리를 판단하지 않았고 우리의 범죄가 무엇인지 묻지도 않았다”면서 “내 삶의 회복과 변화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 마라톤 코치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노력하는 것 중 하나는 그들이 인간성을 되찾도록 돕고 인생의 최악의 순간, 즉 그들이 저지른 범죄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가치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다.”
- CNN이 소개했다. 마라톤 프로그램을 수료한 사람들의 재범률이 0%라고 한다.
아이를 안 낳는 게 합리적인 선택.
- KDI(한국개발연구원) 보고서다. 고용률 격차 감소가 출산율 하락에 40% 가까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 무자녀 여성의 경력 단절이 2014년 33%에서 지난해 9%로 크게 줄었는데 유자녀 여성은 27%에서 24%로 줄었다. 출산을 포기해야 경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 KDI는 “한두 달 출산휴가나 1~3년 육아휴직으로 한계가 있다”면서 “재택근무와 단축 근무 등 제도적 지원을 10년 이상 늘릴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 “육아기 단축 근무로 근로 시간이 줄더라도 여성이 생애 전반에 걸쳐 제공하는 노동시간은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제안이다.
밑줄 쳐 가며 읽은 칼럼.
보수 맞나.
- 이상훈(서울경제 투자증권부장)은 국민의힘은 보수가 아니라고 본다.
- “보수의 가치는 무엇인가. 자유와 책임, 공공선과 안정 희구, 신뢰와 신의 중시, 기성 질서와 현실에 대한 인정, 약자 배려 등을 추구한다.”
- 국민의힘은 이런 가치와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다. 이상훈은 “신뢰와 신의를 중시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진정 고민하는 보수 정부라면 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려갈 때가 더 위험하다”던 노무현의 조언.
- 집권 1년 11개월 차. 윤석열은 벌써 하산 길이다.
- 이기수(경향신문 편집인)는 “윤석열 정치엔 봄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남은 3년 그의 운명, 참회의 질과 속도가 가른다”는 분석이다.
- 이재명 역시 승리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이 의석이라면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뭘 하고 싶었을까. 이 의석으로도 문재인 정부는 뭘 왜 못했을까 반추해야 할 때다.”
- 이기수는 “겸손한 권력, 답을 내놓는 정당만이 수권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저널리즘은 식전 기도와 같다.
- “공동체 안에서 다른 이들과 뉴스를 읽고 논하는 이들은 자신의 가치를 공유하고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연결성 역시 강화되는 기쁨을 누린다”는 게 커뮤니케이션 학자 제임스 캐리의 주장이다.
- 뉴스 회피자들에게 뉴스는 지나치게 부정적이고 어렵고 읽어봐야 바뀌는 게 없다. 진입 장벽도 높다. 사회적 약자일수록 뉴스를 회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 서수민(서강대 교수)은 “소수자의 뉴스 회피 현상은 무지와 냉소, 궁극적으로 불평등과 사회적 고립을 고착화하는 악순환을 낳는다”고 지적했다. 역설적으로 뉴스 소비 습관이 공동체의 재건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