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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콜드케이스] 미디어를 통해 반영·증폭·구성되는 문제적 현상과 사고방식을 ‘캡콜드’ 김낙호 교수가 명쾌하게 분석합니다. 오늘 케이스는 이강인 탁구 스캔들과 이슈 쏠림.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내가 어떤 이야기의 일부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선행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만 한다.

제프리 R. 핼버슨, H.L. 구달 주니어. & 스티븐 R. 코먼., ‘마스터 내러티브란 무엇인가’, 마스터 내러티브와 이슬람 극단주의. 2011.

“부처의 눈에는 부처가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가 보인다”는 무학대사의 촌철살인은 “대사가 돼지처럼 보인다”는 급조된 왕(이성계)의 오만을 품위 있는 위트로 깨부순다. 내가 무학대사를 떠올린 이유는 그 품위나 위트 때문은 아니다. 마스터 내러티브, ‘나’라는 개인이 속한 나의 집단, 나의 종족, 나의 뿌리, 내 어머니 이야기 때문이다.

개딸에게는 수박만 보이고, 대깨문에게는 개딸만 보이며, 나팔국에게는 오로지 좌빨만 보인다. 이대남에겐 김치녀만 보이고, 이대녀에겐…. 사실이나 이념보다 그 자기 정체성의 뿌리가 존재를 좌우한다. 우리의 진짜 모국은 어떤 나라일까. 파란나라일까, 빨강나라일까, 노랑나라일까…. 어쩌면 사실이나 논리, 합리성, 당위 따위는 그 감정과 정체성의 뿌리와 비교하면 아주 부차적인 장식들에 불과한 건 아닐까, 나는 가볍게 근심한다. 내가 속한 ‘더 큰 이야기’는 어떤 것인가. 늘 궁금해하지만, 잘 모르겠다.

캡콜드에게 이슈 쏠림에 관해 묻고, 이슈 쏠림에 관해 듣고, 이슈 쏠림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 실현 불가능한 증오가 실현 가능한 사랑”(황지우)이 되기는커녕, 이 매일매일 실현되는 증오와 무의미가 아주 가끔씩, 찰나라도 의미와 화해를 만날 수 있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단 하루라도 그랬으면 좋겠다. 인간은 섬으로 태어난 게 아니다. 인간은 대륙의 일부로 태어났다. 어느 시인(존 던)은 그렇게 노래했지만, 그 대륙은 이미 모든 인간의 수만큼 깨져버린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어려운 문제, 이슈 쏠림의 원인과 해법을 캡콜드에게 물었다.

캡:콜드케이스 [ep. 07]

질문, 정리: 민노

알림 및 안내

이 글은 2024년 3월 8일 화상을 통해 진행한 인터뷰를 정리한 것입니다. 몇몇 항목은 캡콜드 님과 협의해서 추후 보완했습니다. ‘목차’에서 궁금한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항목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편집자)

이강인 인스타그램. 20123.12.10.

가령, 이강인 탁구 스캔들


민노: ‘이강인 탁구 스캔들’을 언급하셨는데요.

김낙호 교수(이하 ‘캡콜드’): 이슈 쏠림이라는 현상의 한 예로 들었는데요, 이슈 쏠림은 이슈에 참여한 개인의 의지나 취향의 문제라기보다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거죠. 손흥민과 이강인이 화해하고 나서는 관심이 급속히 사그라들었는데, 제 질문은 그겁니다. 왜 다들 그렇게 열을 낼 정도로 궁금증과 비판을 던진 사안인데도 딱히 더 심화한 질문과 토론으로 이어지지 않고, 그냥 그렇게 대충 끝나버리는 것일까. 온통 온라인을 달군 이슈지만, 사회적으로 별로 이익을 얻는 구석이 없잖아요.

민노: 하지만 플랫폼 사업자는 그런 이슈가 계속돼야 이익을 얻잖아요?

캡콜드: 그게 가장 중요한 지적인 게, 이강인 탁구 스캔들 같은 이슈들이 끊임없이 생산되고, 거기에 관심을 쏟아붓고, 또 관심이 다른 사안으로 빠지고, 그런 ‘흐름’이 계속돼야 한단 말이죠. 그래야 미디어 플랫폼이 이익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이강인 인스타그램. 2024.02.10.

탁구 스캔들의 진짜 정체: 정몽규 총알받이로 축협 이슈 지우기


민노: 이슈가 이슈를 잡아먹는 측면에서도 이슈 쏠림은 비생산적인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슈로 이슈를 교란한달까, 오늘의 이슈로 어제의 이슈를 어뷰징한달까.

약간 별개의 이야기지만, 이강인 탁구 스캔들이 흥미로운 점은 이 이슈가 생성 유통된 그 전략적인 목적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라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혈기 왕성한 축구 선수 간 갈등은 언제든 어디서든 있을 수 있는 일인데요(물론 이강인이 잘했다는 건 아닙니다! ^^). 특히 두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1. 누가 이 사건을 영국의 황색 타블로이드 ‘더 선’에 흘렸는가? 밀실에 가까운 대한민국 축구팀의 내부에서 일어난 일을 누설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한정적인데 말이죠.

2. 그리고 왜 축구협회는 ‘더 선’의 사실확인 요청을 거의 그 자리에서, 단 2시간 만에 확인해 줬는가? 이런 스캔들을 해당 국가의 축협에서 바로 그 자리에서 인정하는 건 극히 이례적인 일이니까요.

이 두 개의 질문에 가장 답해야 할 축구협회는 아무런 말이 없었죠. 신중하거나 침묵해야 할 때는 기어코 ‘관계자’가 나서서 입을 벌리고, 정말 국민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해야 할 땐 침묵하는 비겁하기 짝이 없는 행태를 이어오고 있죠. 그 와중에 이강인이라는 축구선수는, 그 잘잘못을 떠나 일종의 총알받이 신세가 됐고요.

자신을 뒤로 숨고, 지켜야 할 선수들은 총알받이로 소모하는… 역대급 최악을 거듭 갱신하고 있는 정몽규(축구협회장). KFA 제공.

그러니까 이강인 탁구 스캔들은 대한축협의 총체적인 관리 부실과 마구잡이식 감독 선정 문제, 그로 인한 아시안컵의 실패와 이 모둔 문제의 중심에 있는 정몽규의 독선적이고 독단적이며 비민주적인 일처리라는 그 ‘진짜 문제’를 지워버리고, 아무런 사회적 효용 가치가 희박한, 정확한 사실 관계도 확정하지 못한 채, 온갖 억측과 소설을 동원해 ‘이강인 싸가지’에 집중된 측면이 강했습니다.

진짜 비판 대상이 되어야 할 사람은 정몽규 축협회장인데, 이강인이 정몽규의 희생양 역할을 했죠. 이강인 탁구 스캔들은 대한 축협의 무능과 위선과 무책임을 일시적으로 위장하는 가리개로 너무 조악하게, 그리고 뻔뻔하게 악용된 ‘급조한 스캔들’로 느껴져서 저에겐 그 점이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영국의 황색언론 ‘더 선’의 가십성 기사가 제기하는 의문에 대한축협이 ‘선수들끼리 싸운 거 맞음!’이라고 ‘사실 확인’을 해준 것도 ‘너무 웃픈 코미디’고 말이죠. 그건 마치 자식을 보호해야 할 부모가 자식의 치부를 자기 일신의 안녕을 위해 남에게 함부로 떠벌리는 모양새였고요. 그런 점에서는, 격한 표현이지만, 대한축협이 폐륜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정말 너도나도 이슈의 자극적인 부분, 이강인이 싸가지 없이 손흥민에게 대들었다, 하극상이다, 주먹질했다더라, 그래서 손흥민 손가락 탈구됐다, 아시아컵 축구 경기에서도 패스해야 할 순간에 패스하지 않았다 등등… 소모적으로 무책임하게 클릭 저널리즘의 돈벌이를 위해 이 이슈에 뛰어들었죠. 그러는 사이에 가장 비판받아야 할 축구협회는 사라졌고요.

이강인이 ‘총알받이’ 하는 사이에… 정몽규는 저 멀리로… 이강인 인스타그램. 2024.10.19.

이강인 탁구 스캔들의 또 다른 비극, 비완결성


캡콜드: 제보야 어디서든 나왔을 수 있고 축협이 그걸 인정하든 말든 기사는 나갔겠죠. 그보다 중요한 건 과하게 집중적으로 쏟아진 관심이, 오히려 빠르게 피로를 부르는 문제입니다. 가령 민노씨께서도 좋아하는 노래가 있을 텐데, 그걸 듣고 싶을 때 한 번씩 듣는 게 아니라 강제로 며칠 동안 계속 그 노래만 들린다고 생각해 보세요. 제대로 감상을 처리하기 전에 먼저 질려버리겠죠. 한 이슈에 대한 불타는 관심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인간의 뇌가 만들어지지 않았으니까요.

이게 아주 비극적인 요소인데, 고밀도 이슈 몰아치기로 인한 단기 피로감으로 인해, 왜 선수들 간 팀워크가 만들어지지 않았는지에 대한 축협 운영방식까지 이어지는 더 구조적인 문제로 논의가 진행되기 전에 그냥 선정적으로 소비되고 지겨워서 대충 관심이 식고 망각으로 봉합되는 셈입니다.

즉, 고밀도 쏠림은 어떤 이슈가 좀 더 깊은 토론, 사회적인 경험과 개인적인 경험의 접목과 같은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풍성해지기 전에 사람을 질려버리게 하고, 그냥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경향을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슈 쏠림은 미디어 플랫폼의 설계? (인게이지먼트 문제)


민노: 오늘날 각종의 크고 작은 커뮤니티, 미디어 플랫폼은 그런 쓰잘데기 없는 이슈, 혹은 쓰잘데기 없도록 고밀도로 유통되는 이슈들을 위해 설계된다고 보시나요.

캡콜드: 그런 치고 빠지는 흐름을 만들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되지는 않았다고 봐요. 다만, 경험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서비스가 자연스럽게 반응하도록 구성된 것에 가깝긴 하겠죠. 이슈 유통의 생성과 유통의 흐름을 경험하면서 점차 그것에 최적화한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민노: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은 단순히 반응적인 설계라기보다는 파괴적인 혐오 감정을 적극적으로 유도함으로써, 즉 정제된 레거시 미디어의 노출도를 의도적으로 낮추고, 개인 피드의 노출도를 높임으로써 자극적인 감정적인 충돌을 유도한 측면이 강하지 않나요? 내부 고발자(프랜시스 하우겐)의 고발 내용이 그런 것이기도 했고요.

2021년 10월 25일 영국 상원에서 진술하는 프랜시스 하우겐(사진 오른쪽). 영국 상원 제공. CC BY NC ND.

캡콜드: 2007년 즈음부터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흥하면서 사람들의 반응, 소위 ‘인게이지먼트’(클릭, 좋아요, 공유, 댓글, 리트윗 등을 포괄하는 이용자의 반응과 참여 혹은 그것을 수치화한 것. 편집자)가 가장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죠. 말씀하신 페이스북 내부 고발도 그런 인게이지먼트를 높이기 위한 방식을 폭로한 것이었구요. 하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됐다기보다는 이용자의 인게이지먼트를 분석함으로써 반응적으로 구성된 것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 결과 소위 ‘바이럴’이라는 현상이 종종 터지며 이용자들의 반응이 폭발한 측면이 있죠.

이슈 쏠림에도 장점이?


캡콜드: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것까지는 좋죠. 하지만 어떤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은 그런 심히 단축된 구간 안에서 해결하기 대부분 어렵잖아요. 통상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바로 알 수 있죠. 수개월, 수년 이상이 걸리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앞서도 말했지만, 불꽃은 크고 뜨거우면 빨리 타버리죠.

물론 [도가니] (2011)라는 영화에서 촉발된 ‘도가니법’(성폭력특별법에서 장애인 여성과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성폭행 범죄의 공소시효를 없앰. 편집자)은 정말 전광석화처럼 입법화하기도 했죠. 다만 그 경우에도 이미 시민사회에서 장애인 여성과 아동에 관한 성폭행에 관해서는 공소시효를 없애야 한다는 ‘해법’이 이미 마련된 상태였다는 걸 주의할 필요가 있어요. 모든 것이 이렇게 준비된 상태라면, 그리고 거기에 여론의 거대한 불꽃과 바람이 필요한 상태라면, 그때 이슈 쏠림은 장점이 있을 수 있죠.

하지만 대부분 이슈 쏠림은 어떤 문제의 해법으로부터 오히려 더 멀어지게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영화 [도가니] (2011, 황동혁), CJ ENM.

총선의 시간, 정치와 연예계 이슈 쏠림 차이?


캡콜드: 이슈 쏠림에서 양자(정치 vs. 연예, 스포츠) 차이는 점차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다른 면이 많았다고 기억할 수도 있겠지만요. 승부 속에 인 캐릭터성을 통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고, 그걸 폭발적으로 팬덤화하고 하는 과정을 정치가 연예나 스포츠로부터 많이 배웠다고 할까요. 점점 비슷해지고 있죠.

한동훈, 이재명, 윤석열의 캐릭터 쇼


민노: 캐릭터가 핵심 키워드 같습니다.

캡콜드: 오늘날엔 정치권에서도 개별 정책으로 이슈 쏠림을 유도한다기보다는 자신을 상징하는 캐릭터를 만드는 방식을 선호하죠. 정책은 만들기도 어렵고 쉽게 유사품이 나오지만 캐릭터는 선명하게 차별화할 수 있으니까요. 가령 이번 총선에서 한동훈 전 장관이 적극적으로 만드는 캐릭터가 있죠. 가령 나이 든 분들께는 한동훈은 그냥 ‘똑똑한 사람’입니다. 한동훈이 무슨 정치관이나 사회관을 가졌는지는 잘 몰라요. 영어도 잘하고, 옷 잘입고, 기존 운동권 정치인과는 다르고. 내용은 없어요. 그냥 다르는 거죠. 차별적이고 인상적인 캐릭터로만 남는 거죠.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원주중앙시장에 방문한 한동훈(비상대책위원장). 2024. 2. 26.

민노: 민주당 쪽은 어떻게 보십니까.

캡콜드: 이재명(이라는 캐릭터) 지키기에 올인한 것처럼 보였죠. 민주당이 어떤 사회를 만들고, 어떤 정치를 할지에 관해서는 별로 진전이 없었어요. 이재명의 정치생명을 연장하는 방식에만 집중했죠. 정책 가치관이라면, 이재명 본인도 계속 왔다 갔다 했고요. 가령 위성정당만 해도 지난 총선 때, 그리고 대선 때 그리고 이번 총선 때, 그때그때 입장이 변했단 말이죠. 그래서 민주당 역시 내용은 증발하고, 이재명이라는 캐릭터를 지키는 팬덤의 구도만 남았단 말이죠.

이재명(민주당 대표). 2024.02.16. 민주당 제공.

민노: 윤석열이라는 캐릭터는 어떻게 보시나요.

캡콜드: 지금은 뭐라고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당선 전까지는 누구든지 베어버리는 검찰총장 캐릭터를 구축했잖아요. 그다음에는 무슨 매력적 캐릭터를 만든 게 없이, 그냥 무지한 발언만 종종 터트리는 평범한 최고위직이 되어버렸습니다.

총선의 시간이 오자 최근 민생토론회에서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고 있지만, 거기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별로 없죠. 왜? 내용이 없으니까요. 가령, 연구 예산은 줄이면서 장학 제도는 대폭 확대하겠다고 하고. 이게 서로 앞뒤가 안 맞아요. 이런 행태는 새로운 캐릭터를 구축하는데도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런 ‘질 낮은’ 민생토론회 투어로는 캐릭터를 구축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제22대 총선 태풍의 눈으로 등장한 ‘런종섭’ 이종섭(당시 국방부장관)과 이종섭을 귀국시키라는 요구를 묵살하고 있는 윤석열(대통령). 제73주년 인천상륙작전 전승행사. 2023.09.15.

방향성 부재과 이슈 쏠림의 관계 (수도이전 vs. 의료대란)


캡콜드: 점점 더 이슈 쏠림이 생길 수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을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사회적 방향성을 두고 긴 호흡으로 토론하다보면 이슈 쏠림이 생길 수가 없어요. 가령 노무현 정부 시절 ‘수도 이전 이슈’를 생각해보면, 사회적으로 논의해야 하고, 다양한 입장과 근거, 토론을 거쳐야 했던 사안이었고, 그래서 쉽게 사회적 의제에서 사라지지 않았죠. 어느 한 쪽으로 이슈 쏠림이 생기지도 않았고요.

민노: 전공의 파업과는 다른가요? 전공의 파업도 꽤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데요.

캡콜드: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윤석열 정권 이전 정부에서도 일어난 일이죠.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게 파업하고, 정부는 자르겠다고 협박하고요. 다만 그 정도나 강도에서만 조금 차이가 있고요. 현재는 이슈에 대한 피로도만 올라가고, 갈등과 긴장도만 올라가고 있는 형편이죠.

실질적인 토론이나 대화, 협상이 없잖아요. 각자의 정답만 있고. 후속 토론을 사실상 양쪽 모두 거부하고 있는 상태인 거죠. 물론 몇몇 전문가들이 나름의 해법을 제안하고 있긴 하지만, 다수 시민 입장에서는 둘 다 지겹다, 짜증난다… 그런 거라는 거죠. 이 중대한 이슈가 이슈 쏠림에 가깝게 소비되고 있는 거죠.

민노: 어느 쪽으로 결정이 되더라도 그 결론이 ‘해법’과는 먼 결론일 거다?

캡콜드: 그렇죠. 어느 쪽으로든 승부(?)는 나겠지만, 그 승부의 결론이 의료문제 해법과는 별로 상관이 없어지는 거죠. 이제 점점 더 사회적인 의제를 다투는 방식이 공동의 ‘해법’을 찾는 방식이라기보다는 그냥 한번 빠르고 뜨겁게 불사르고 그다음엔 잊어버리는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갈등의 섬세한 조율이나 해결에는 별 관심이 없어졌죠. 정말 중요한 현상 중 하나는 그런 갈등의 디테일, 해법의 디테일보다는 누구랑 누가 싸운다. 이런 거죠. 그게 큰 화제성을 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민노: 의료대란의 핵심 의제는 뭐라고 보시나요.

캡콜드: 필수 의료의 안정적인 유지, 그 조율을 위해 필요한 지속가능한 의료보험 체계, 필수 의료에 대한 적정수가의 보장과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의료 노동력의 제공. 그걸 중심에 놓고 인력과 어느 정도의 수련으로 참여할 수 있는지 그 해법을 좀 더 섬세하게 접근해나갈 필요가 있죠. 그런데 지금 논의는 보세요.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를 ‘의대 정원 2000명’, 그게 전부에요. 거기에 대해 누구는 찬성하고, 누구는 반대하죠. 복잡다단한 의료체계의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고 그 해법에 관해 고민하는 방식 대신에 의사 집단을 캐릭터화하죠. 돈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집단. 그런 식의 접근으로는 의료체계 문제의 해법을 마련하기 어렵죠.

캐릭터를 부정적으로만 볼 수 있을까


민노: 캐릭터라는 건 어떤 점에서는 필연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캡콜드: 적당한 캐릭터라면 필수적이죠. 그러나 비유하자면 지방도 영양소로서는 필요하지만, 과하면 건강에 좋지 않고, 병에 걸리는 거죠.

자기 동일시? 그냥 관객?


민노: 캐릭터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어떤가요. 자기 자신을 캐릭터화하는 걸까요? 그러니까 적극적으로 감정을 투사해서 동일화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보세요? 아니면 그냥 운동 경기를 즐기듯이 응원하는 정도에서 머무는 경우가 많다고 보세요.

캡콜드: 그건 사안마다 다르다고 봅니다. 그런데 심리학에서 말하는, 기본적인 인그룹과 아웃그룹의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속한 내부 집단(인그룹)에 대해서는, 모든 성원이 각자의 복잡한 사정이 있고, 이유가 있다고 여깁니다.

가령 이재명이 위성정당 약속을 어겼다고 해도 이재명 지지자 입장에선 다 이유가 있는 거고, 여권 지지자 입장에서는 윤석열이 이태원참사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도 그걸 단순하게 바라볼 게 아니라 다 이유가 있고, 복잡한 사정이 있는 거죠. 그렇게 자기 내부 집단에 관해서는 아주 입체적으로 섬세하게 복합적인 변인들을 고려해서 바라봐요. 아주 섬세하죠.

그런데 아웃그룹, 외부 집단에 관해서는 인식을 아주 단순화하죠. 그저 무능하고, 무식하고, 야만적이고, 폭력적이고… 반민주적이고, 거짓말쟁이죠. 그렇게 내가 속한 내부 집단과 내가 속하지 않은 외부 집단에 이중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방식과 유사하게, 그리고 외부 집단을 단순화하는 것과 유사하게 이슈에 관해서도 필요에 따라 단순화하는 거죠.

민노: 내로남불과 맥락적으로 유사해 보이네요?

캡콜드: 나름 비슷한 맥락이긴 하지만, 내로남불은 훨씬 더 전략적인 의도가 강하긴 하죠.

해법의 방향성: 포모와 인게이지먼트를 넘어서


민노: 현상은 충분히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 이제 해법이 궁금한데요.

캡콜드: 인게이지먼트 최대화를 목적으로 하는 미디어 환경과 함께 개인 차원에서는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  현상’이라는 게 있습니다. 자기만 뒤처지거나 제외되는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는 건데요. 그래서 모두가 모든 것에 관해 알아야 한다는 강박과 공포심을 자극하는 거죠. 그런데 이게 재밌는 게, 딱히 정확히 알 필요도 없어요.

불안감을 덜 수 있을 만큼만, 이런 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정도만을 얕고 넓게 추구하게 만들죠. 거기에 한국 문화의 경쟁적 요소까지 더해지면 더욱 공격적으로 ‘남들은 아는 무언가를 내가 놓치면 뒤처진다’가 되는 거죠. 그런 강박과 공포를 자극하는 사람들의 온라인, 모바일 관계망도 아주 넓어졌고요.

정리하면, 개인 차원에서는 포모 현상이 있고, 미디어 차원에서는 인게이지먼트을 목표로 하는 진화 현상이 있죠. 좀 더 큰 사회적 차원에서는 정치가 그걸 빠르게 자신의 권력으로 치환하는 방식으로 소모하고 있고요.

손석희도 강조한 어젠다 키핑의 중요성


민노: 어떻게 그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요.

캡콜드: 미디어의 방향성에서는 인게이지먼트를 극대화하지 않고도 잘 먹고 잘사는 미디어 통로, 구조를 만들어야 하고요. 그런 것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격려해야겠죠. 슬로우뉴스 같은 미디어를 100개 더 만들자고 말할 수도 있고(웃음).

그리고 손석희(전 JTBC사장)도 말했던 어젠다 세팅보다 이제 ‘어젠다 키핑’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에 관해서는 동의해요. 이슈를 제안하고 올려놓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걸 관리하고 유지하는 것도 아주 중요해졌어요.

사례: 조지 플로이드, 손석희의 세월호


캡콜드: 가령 미국 사례지만, 흑인에 대한 경찰 폭력은 늘 있었음에도, 개별적 비극으로 소비되었어요. 하지만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일어난 이후 마침내 미디어도 반응을 달리 했죠. 예전에는 흑인 A가 경찰 폭력으로 죽었다. 흑인 B가 경찰 폭력으로 죽었다. 흑인 C가 경찰 폭력으로 죽었다…. 였다면 조지 플로이드 이후 미디어는, 흑인 D가 죽었을 때 A, B, C 사건을 다시 호출하며 하나의 패턴으로서 해석하려고 했어요. 즉, 공통의 맥락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사안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그렇게 보도 방향을 바꾼 거죠. 어젠다 키핑이 어떤 식으로 작동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 사례죠.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현장 동영상 캡처. 조지 플로이드에 가해지는 경찰 폭력을 촬영한 여러 영상 중에서 특히 이 영상을 찍은 다르넬라 프레이저(당시 18세)는 2021년 6월 11일 퓰리처상 특별상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어젠다 키핑이라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던 손석희의 세월호 보도라는 좋은 사례가 있는데, 좀 더 긴 호흡의 사회적인 의제로 끌고 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에서 다소 아쉬움이 있어요. ‘세월호’ 하나가 아니라 세월호를 포괄해서 한국식 안전불감증이라는 어젠다로 끌고 왔어야 했다는 거죠.

세월호 참사 이후 당시 손석희 JTBC 뉴스 앵커의 ‘앵커 브리핑’. JTBC News 영상 갈무리.

이슈의 ‘패턴’ 읽어내기


민노: ‘패턴’이라는 말이 아주 중요한 키워드 같습니다.

캡콜드: 정치 스캔들, 스포츠 스캔들… 계속 일어나겠지만, 하나의 패턴으로 다루면, 의제로서 되새김질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별 이슈를 소모해 버리는 게 아니라 거기에서 대안과 해법을 마련하기도 훨씬 더 쉬워질 테고요.

이선균이 떠난 후


캡콜드: 좀 더 희망 사항을 이야기하자면, 고 이선균 배우가 떠오르는데요. 이선균의 자살 이후에 우리가 이선균 마약 이슈를 어떻게 다뤘는지 한번 보세요. 이선균 생전에는 마담과 대화 했느니 마느니 온갖 가십으로 정작 사건과도 직접 관련이 없는 이야기를 떠들다가 이선균이 자살하고 나서는 모두 잊었잖아요?

이선균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방법은 그저 안쓰럽다고 안타까워하거나 ‘기레기’들을 저주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마약사범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다룰 것인가. 어떻게 하면 그 죗값을 행동으로 제대로 치르게 하고 다시 사회에 복귀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맥락에서 마약의 늪에서 빠져나와 복귀한 스타들 이야기, 과거 사례들을 엮어서 이야기해볼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런 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고(故) 이선균.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이슈 쏠림과 프레이밍


민노: 이슈 쏠림은 잘못된 프레이밍과는 불가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슈 쏠림은 ‘잘못된 혹은 피상적인 프레임’이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그렇다면 올바른 프레임을 제안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하면 될까요. 기존 미디어들이 그런 제대로 된 프레이밍을 할 수 있을까요?

캡콜드: 이슈 쏠림과 잘못된 프레이밍은 대체로 불가분이죠. 정확히는, 쏠리다 보면 프레이밍이 어긋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여기 나쁜 놈이 하나 있다 빨리 다들 화내자, 라고 하면 자연스레 저놈을 때려잡자로 프레이밍이 생깁니다. 뭐 때려 잡아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 세상사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게 문제죠.

저출산, 저성장의 시대정신을 찾아서


민노: 곧 총선입니다. 이런 이슈 쏠림은 주의해라, 그리고 그 이슈 쏠림을 해체할 항체랄까요? 올바른 프레이밍은 이거다, 혹은 그런 이슈에서 이런 ‘맥락’과 ‘패턴’을 발견해 보자, 이렇게 모범 답안을 예시해 주신다면요.

캡콜드: 기존의 부정적인 이슈 쏠림보다는 새로운 시대를 제대로 준비할 필요가 있잖아요? 지금으로선 ‘저성장 저출산’ 시대의 비전을 무엇으로 설정할 것인가. 그게 아주 중요하겠죠.

이슈 쏠림으로서의 [파묘] 쇠말뚝


민노: 최근 영화 [파묘]와 관련해서 쇠말뚝이 좀 이슈였습니다.

캡콜드: 우리가 일제에 억압받은 건 사실이고, 쇠말뚝이 일본에는 있지도 않은 풍수지리설에 근거한 게 아니라는 것도 사실이죠. 우리로선 일제에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픽션과 사실을 구별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사실관계도 중요하고, 당한 사람들을 내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단순하게 그건 사실이 아니잖아! 라고 하면 그건 내치는 모양새죠. 당신의 감정은 존중한다고 여지를 주고, 쇠말뚝은 픽션이지만 그 쇠말뚝을 이용해서 토지대장을 만들었고, 대한민국의 토지를 수탈한 게 더 중요한 사실이라는 걸 알려야죠. 그러니까 쇠말뚝은 기존에 그 땅에서 살던 사람들을 내쫓고 지주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토지 수탈을 진행했다는 착취 사안으로 리프레이밍해야죠.

일제가 쇠말뚝을 우리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꽂았다는 게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그런 주장을 하는 게 합리적이진 않더라도 그 현상을 둘러싼 여러 맥락을 좀 더 섬세하게 바라볼 필요는 있을 것 같아요.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이야기는 무엇인가. 내가 맞고, 네가 틀렸잖아. 혹은 내가 틀리고, 네가 맞았어. 이런 단순한 건 아니잖아요. 실제로 일제가 우리를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억압했고, 수탈했는지를 지금 우리에게 남은 일제의 잔재들과 연결시켜서 생각할 필요가 있겠죠. 영화 [파묘]의 ‘쇠말뚝’ 논란도 이슈 쏠림에 의해 사안이 좀 부정적으로 단순화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파묘] (2024. 장재현) 쇼박스.

미국, 트럼프 vs. 바이든 대선


민노: 미국은 대선 모드인데요. 궁금합니다. 거긴 어떤가요?

캡콜드: 미국에서 트럼프는 이슈 쏠림마저 초월할 정도로 지지가 강고합니다(….) 미국에서도 이슈 쏠림 현상 자체는 우리와 큰 차이는 없지만, 여전히 이슈 계층 구조가 있어서요. 다수가 A 의제를 이야기해도 소수지만 B 의제를 이야기하는 계층이 있어요. 가령 뉴욕타임스 구독자들이 꺼내는 의제는 슈퍼마켓 연예잡지 읽는 이들과 아예 다르죠. 한국은 그런데 그런 차이나 계층화가 더 희미한 편이라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는 평등하죠.

민노: 경향이나 한겨레 독자와 조중동 독자는 좀 차이가 있지 않나요?

캡콜드: 경향 독자나 조선 독자나 ‘의제 차원’에서는 같은 이슈를 가지고 물고 뜯는다고 생각해요. 전문적 의제에 관심을 두고 싶으면 거기에 집중하고, 연예 이슈에 관심이 있으면 거기에만 관심을 가져도 좋을 텐데, 우리는 모두가 동시에 하나의 이슈에 관심을 집중하는 측면이 강한 것 같아요. 포모 현상이죠.

‘트럼프 올마이티’ 도널드 트럼프. 트럼프 인스타그램. 2024. 3. 5.

두 배로 밝게 타는 빛


민노: 마무리해 주시죠.

캡콜드: 이슈가 너무 밝고 뜨겁게 타면 더 빨리 사그라든다. [블레이드 러너] (1982, 리들리 스콧)에서 엘던 타이렐(조 터켈)이 로이 배티(루트거 하우어)에게 건네는 대사가 떠오릅니다(웃음).

[블레이드 러너] (1982, 리들리 스콧)

타이렐: 두 배로 밝게 타는 빛은 절반밖에 지속할 수 없지. 그리고 로이, 넌 아주, 아주 밝게 빛났어. 너를 봐라. 넌 돌아온 탕아야. 넌 굉장히 자랑스러운 존재지.

로이: 난… 의문스러운 일들을 했어.

타이렐: 대단한 일들이기도 했지. 남은 삶을 즐기거라.

로이: 생물역학의 신이 당신을 천국에 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겠군.

숭고하고 아름다운, 영화사상 가장 인간적인 비인간(유전적으로 설계된 인조인간 안드로이드 ‘레플리칸트’)의 죽음. [블레이드 러너] (1982, 리들리 스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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