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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담 엔터테인먼트 제공.

아이유의 신곡 [Love Wins All]은 최근 가장 논쟁적인 노래 중 하나였다. 노래 자체는 그저 아름다운 멜로디 속에 연인간의 사랑을 노래하는 평이한 곡일 뿐이다. 그런데 왜 이 노래가 그런 논쟁을 촉발했을까?

#LoveWins 역사적 맥락: 아이유 신곡 논쟁거리 된 이유


역설적으로 이건 이 노래가 너무 평이하기 때문이었다. 원래 이 노래의 제목은 [Love Wins]였다. 그러다 일각에서 [Love Wins]가 퀴어운동의 구호이며 아이유가 이를 전용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에 아이유 측이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바꾼 게 지금의 제목, [Love Wins All]이다.

[Love Wins]는 퀴어들의 구호이며, 이를 아이유가 전용했다는 건 사실일까? 어떤 말이든 사회적, 역사적인 맥락이라는 게 있다. “사랑이 이긴다”는 말은 “혐오는 결국 진다”는 말의 거울이다. 모든 형태의 사랑을 존중하는 퀴어운동과 찰떡처럼 잘 어울린다. 실제로 혐오범죄와 성차별에 맞서 많은 퀴어들이 “Love Wins”를 구호로 외쳐왔다.

  • “사랑이 이긴다(Love wins)”는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할 수 있는 흔한 표현이다. 하지만 흔한 표현이라고 하더라도 거기에 역사적 맥락이 더해지면 고유한 상징성을 가진다. ‘사랑이 이긴다’는 표현도 그렇다.
  • 제임스 오버거펠은 미국 모든 주가 동성결혼을 인정해야 하고, 미국의 어느 한 주에서 동성결혼을 한 사람에 관해서는 미국 모든 주가 이를 법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오버거펠 대 호지스’ 사건의 당사자가 됐다.
  • 2015년 6월 26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수정헌법 14조에 따라, 동성결혼은 합법이고, 동성결혼이 합법이었던 다른 주에서 동성결혼을 한 사람은 모든 주에서도 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기념비적인 판결을 내린다.
  • 이 역사적인 판결이 있기까지 오버거펠의 주장을 지지하기 위해 사용한 소셜미디어 해시태그가 바로 #LoveWins 였다. (편집자)

오버거펠 대 호지스 소송의 원고인 제임스 오버거펠(왼쪽)과 그 변호사 알 거하드스타인. 역사적인 2015년 6월 26일 금요일 아침 워싱턴DC 이스트 캐피톨 거리. 위키미디어 공용.
#LoveWins 해시태그를 사용해 연방대법원 동성결혼 합헌 판결일 당일 축하 메시지를 트위터에 올린 오바마. 그리고 같은 취지로 다음날 트윗을 올린 백악관.

하지만 그게 이 말이 퀴어만 쓸 수 있는 말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 메시지는 퀴어는 물론 성별, 인종, 민족 등의 ‘다름’을 초월한 사랑의 절대성을 말하는 것이다. 퀴어가 아니라도, 꼭 퀴어에 직접적으로 연대하지 않아도 “Love Wins”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이 이긴다”는 말에 퀴어가 가장 중요한 핵심인 것도 맞다. 사회 운동의 맥락도 있거니와, 현대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랑이 바로 퀴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소한 “사랑이 이긴다”는 말에는 퀴어에 대한 존중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맥락 없이 “사랑이 이긴다”고만 외쳐봐야, 그 외침은 공허하기만 하다.

김상기 칼럼 ‘러브 윈스 올’, 한마디로 블랙코미디


이건 ‘억까(억지로 까기, 억지로 비판 논리를 만드는 일)’만이 아니다.

국민일보 김상기 콘텐츠퍼블리싱부장의 칼럼, [‘데스크시각’ 러브 윈스 올]은 그 메시지의 공허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글이다. 김상기 기자는 이 글에서 “혐오는 지역과 인종, 종교, 세대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발작하듯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며, “아이유의 노래를 들려주고 귀를 씻게 하자”고 말한다.

김상기, 러브 윈스 올. 2024. 2. 22.

이건 블랙코미디다. 국민일보의 동성애 혐오는 유구하다. 동성애를 ‘성오염’으로 칭하거나, ‘죄이기에 반대해야 한다’고 말하거나, 차별금지법에 반대하거나, 동성애 치료를 권장하거나… 이런 저질 기사가 그야말로 쏟아져 나온다. 2020년에는 국민일보의 차장급 기자들과 10년차 이하 소장파 기자 등으로 구성된 노조에서 “혐오는 언론사의 언어가 될 수 없다”며 자사의 동성애 혐오 보도에 유감을 표명한 바도 있다.

이런 혐오 논조가 국민일보의 사실상 최대 주주가 여의도순복음교회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비밀도 아니다. 국민일보의 지분 100%는 재단법인 국민문화재단이 보유하고 있는데, 국민문화재단은 국민지주㈜와 순복음선교회, 고 조용기 목사 출연금으로 설립된 재단으로서 현 이사장이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다.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비롯한 한국의 대형 교회와 주류 개신교단은 내부 결속을 위해 동성애 혐오를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제공.

어제는 혐오를~ 오늘은 사랑을~~! (단, 동성애는 빼고)


김상기 기자 본인의 명의로 나간 기사 중에서도 성소수자 혐오 기사가 많다. 2018년에는 선한목자교회 유기성 목사의 발언을 인용하여, “동성애 합법화는 안 된다” “‘동성애자를 어떻게 품을 것인가’라는 문제보다 ‘동성애 합법화 움직임을 막아야 한다’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를 기사화했다.

2018년에는 디즈니 영화에 동성애 인물이 출연해 논란이라는 기사를 두 편이나 연속해 냈다. 이 과정에서 해당 역할을 연기한 잭 화이트홀의 발언을 왜곡하기도 했다. “(연기를) 제대로 해 내 관객들을 공감시켜야 한다는 부담을 느꼈다”는 맥락의 발언을, “이성애자인 자신이 동성애 인물을 연기해야 한다는 점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식으로 왜곡한 것이다. 꼭 이성애자임에도 동성애자를 연기하는 게 싫은 것처럼 말이다. 이건 언론으로서의 양심조차 위배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서유럽의 기독교 세속화가 심각해 동성애 확산으로 인한 전체 사회의 국수주의화가 발생할 거라는 기사나, 포미닛의 새 뮤비가 동성애를 연상시켜 누리꾼들이 혀를 찬다는 기사, 갤럭시에 동성애 이모티콘이 탑재돼 한 시민단체가 불매운동을 시사했다는 기사도 썼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 ‘랑’

이런 불화가 일어나는 이유는 간명하다. 동성애는 그들이 얘기하는 ‘사랑’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는 ‘사랑’은 오지 이성애만이 포함되며, 동성애를 비롯한 젠더 다양성은 사회를 무너뜨리는 혼란이며,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종교적인 죄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사랑의 범주를 좁혀왔다. 한때는 다른 인종 간의 사랑이 그랬다. 또 때로는 장애인들의 사랑도 그랬다. 세상은 변했다. 여전히 같은 생각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최소한 공개적으로 그들의 사랑을 죄처럼 막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남은 마지막 터부가 있다. 성소수자들의 사랑은 현대 사회에 가장 중요한 금기다. 동성혼은 물론 두 동성이 파트너십을 맺는 것도 금지되며, 많은 사람이 ‘내 앞에 보이지는 말게 하라’는 혐오 발언을 쉽게 뱉어낸다.

국민일보 기사뿐만 아니라, 최근 대중매체에 성소수자가 종종 등장하는 데 대해 소위 ‘PC(정치적 올바름)’가 세상을 망치고 있다며 울분을 토하는 사람들도 있다. PC주의를 내세우느라 작품성을 망가뜨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저 단순히 다양성이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을 듣는 경우는 더 많다. 애당초 인종차별을 다룬 우화였던 영화 ‘위키드’가 주연 배우를 흑인으로 캐스팅했다는 이유로(그리고 덧붙여, 주연 배우의 외모를 이유로) PC라며 비난받은 것도 한 예다.

어떤 사랑만이 이기고 어떤 사랑은 지는 세상. 그 기준이 과학적 근거나 사회학적, 철학적인 진지한 논의가 아니라, 아무 근거도 없는 주류 집단의 ‘기분’에 의해 좌우되는 세상. 이게 정말 ‘사랑이 이기는’ 세상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사랑이 이긴다’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Love Wins]란 제목의 노래 중 가장 유명한 노래로 캐리 언더우드의 [Love Wins]가 있다. 이 노래는 꼭 퀴어에 대한 사랑만을 표현하진 않는다. 하지만 “다르다고 해서 나쁜 건 아니”란 메시지를 분명하게 표현했고, 뮤직비디오에서도 화합의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드러냈다. 캐리 언더우드는 퀴어 프렌들리한 컨트리 스타로도 유명하다.

누구든 “사랑이 이긴다”고 말할 수 있다. 단지 세상을 지배하는 배타성, 혐오와 차별에서 눈을 돌리고 “사랑이 이긴다”고 말하는 건 불가능하다. “사랑이 이긴다”는 메시지에는 화합과 연대의 가치가 녹아있을 수밖에 없다. 또, 그래야만 한다.

‘다른 세상’을 현실로 경험하면, 그 세상을 금기시했던 기존 권력은 상대화한다.

사실 혐오자들은 자신들이 혐오를 하는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 오히려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저 막연하게 ‘사랑이 이긴다’고만 하면, 혐오를 무기로 든 자들조차 ‘맞다’며 정신승리하는 난장판이 벌어진다. 아이유가 말하는 ‘사랑이 이긴다’는 메시지는 대체 뭐였을까? 아이유도 김상기처럼 ‘사랑은 이기지만, 동성애는 죄니까 지는’ 세상을 바랐을까?

위의 칼럼을 쓴 김상기 국민일보 부장은 아이유의 노랫말을 인용하며 기사를 마쳤다. “부서지도록 나를 꼭 안아 / 더 사랑히 내게 입 맞춰 Lover /Our love wins all Love wins all.” 하지만 그가 인용한 이 노랫말은, 이 부분만 떼어놓고 보면 너무 공허하다.

아이유는 이 노래를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는 지금을 대혐오의 시대라 한다. 분명 사랑이 만연한 때는 아닌 듯하다. 눈에 띄는 적의와 무관심으로 점점 더 추워지는 잿빛의 세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을 무기로 승리를 바라는 것이 가끔은 터무니없는 일로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직접 겪어본 바로 미움은 기세가 좋은 순간에서조차 늘 혼자다. 반면에 도망치고 부서지고 저물어가면서도 사랑은 지독히 함께다. 사랑에게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

아이유, “Love Wins All”

대혐오의 시대, 눈에 띄는 적의. 아이유도 사랑을 방해하는 ‘가해’를 분명히 얘기하고 있다. 이 가해에서 눈을 돌리면 ‘사랑이 이긴다’는 메시지도 빛을 잃는다. 이성애자가 동성애자의 사랑을,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사랑을, 어떤 종교인들이 또 다른 종교인들의 사랑을 욕하는 현실을 용인하면서 “사랑이 이긴다”는 메시지에 힘을 줄 수 있을까.

김상기 기자가 아이유의 “Love Wins All”을 인용했으니, 나도 캐리 언더우드의 “Love Wins”를 인용하며 글을 마치고 싶다.

“정치와 편견, 대체 어떻게 이렇게까지 된 거죠? 모두 자기편을 선택하고 나면, 그게 맞든 틀리든 신경 쓰지 않아요. 하지만, 난 희망을 붙들고 놓지 않을게요. 난 믿으니까요, 우린 자매이며 형제라는 걸, 함께 손을 잡으면 쓰러지지 않을 거라는 걸. 난 믿어요, 결국엔 사랑이 승리하리라는 걸.”

캐리 언더우드, “Love W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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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1. 흠…아이유팬입니다.
    사랑이 이긴다..기자님의 생각 잘읽었습니다.
    흠..소수자가 슬로건으로 쓴 구절에대해 더 깊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슬로건이 꼭 일정집단이 전유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뜻이 절실하다 해도 사랑이 이긴다 같은 인류의 고유명사에데해 그누구도 점유할수없다고 생각합니다. 해외관련 업무가 좀 있는편이라 독일과 일본의 성수자 친구에게 러브윈즈에 대해 물어봤죠. 러브윈즈를 노래의 타이틀로 하는것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고…그친구들은 러브윈즈는 자신들의 슬로건은 맞지만 전유물은 아니라고 하더군요. 오히려 점유한다는 인상을 남기는것 같아 오만한 집단으로 보일까 걱정하더군요. 그리고 아이유의 러브윈즈올의 가사를 읽어본적 있나요? 그리고 노래소개글이라던가 논란이 일어난후에 아이유가 개시한글을 읽었나요? 흠..읽었다면 도저히 남여간의 사랑노래라고 확정할수 없으실텐데..기본 러브윈즈올은 팬송입니다. 그리고 남여간에 사랑이라고 특정하지도 않았어요. 그곡을 수십번은 들은바로는 인류애를 노래한다고 느꼈어요…흠..기사를 작성하는건 기자님의 자유이시지만 누군가를 비판할때에는 혹시라도 오해나 틀림이 없게하기위해서 글쓰는 시간보다 많은 시간을 조사해야하지 않나요? 그럼 이런 기사는 못쓰실텐데..꼭 생각이 고착화한 분들의 글은 전제가 특정되어 있더군요. 비판을 하기위해서 전제를 정해놓은것처럼요. 앞으론 좋은글 쓰시길 바랍니다.

  2. 좋은 글 읽고 넘어가려는데, 웬 이상한 댓글이 원글에서 하지도 않은 말을 멋대로 지어내면서 이상한 비판을 하네요. 똑같은 글을 읽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애초에 원글은 아이유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비판하지 않았는데, 왜 “아이유팬”이 급발진을 하시는지부터 이해가 안됩니다.

    원글에서는 Love wins를 퀴어가 전유했다고도, 그래야 한다고도 말한 적 없습니다. 오히려 원글 보시면 “Love wins가 퀴어만 쓸 수 있는 말은 아니”라고 명확하게 언급했습니다. 도대체 뭘 보고 Love wins를 퀴어가 전유해야 한다고 읽으신건지? 게다가 원글 어디에서도 “아이유의 노래를 남녀간의 사랑노래라고 특정”한 적 없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말이 나옵니까? 진짜 그 말 찾아보려고 여러 번을 다시 읽었습니다. 심지어 원글은 아이유 노래를 비판한 적도 없습니다. 원글은 아이유 노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오히려 아이유의 노래를 맥락없이 맘대로 사용한 국민일보 칼럼을 비판하는 글입니다.

    애초에 원글은 Love wins라는 말의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강조했습니다. 이 말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고려한다면, 이 말을 사용할 때에는 퀴어에 대한 존중이 담겨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건 “Love wins는 퀴어들만 쓸 수 있는 슬로건이다”와는 완전히 다른 말입니다.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Love wins를 보편적인 사랑 노래라고 이야기하면, 그 메시지는 오히려 공허해지고 만다는 게 원글의 요지입니다. 맥락이 없으면 “사랑이 이긴다”같은 말은, “착하게 살자” 수준으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말입니다.

    그런데 댓글다신 분은 Love wins가 “인류의 고유명사”(?)일 뿐이고, 아이유도 “인류애”를 노래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무려 수십번이나 듣고 내린 평가랍니다만, 그런 평가야말로 원글에서 말한 것처럼 아이유의 노래를 공허하게 만드는 짓임을 알아줬으면 합니다. 그 노래 원래 팬송인거 저도 압니다. 그게 진짜 맥락인거 다 아니까, 팬송이면 걍 팬송이라고 하세요. 팬송이라면서 무슨 인류애를 노래한다고 느낍니까? 모든 인류가 아이유팬이에요? 그런 식으로 “보편적인 사랑”이라고 강조하면 할 수록 아이유의 노래는 공허한 노래가 됩니다.

    남이 쓴 글도 제대로 못 읽으면서 마지막에 생각이 고착화되었다느니, 조사를 많이 해야한다느니 말씀하시는 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생각이 고착화된 분들은 있는 글도 제대로 읽지 않고 비판을 하시더군요. 이번처럼 허수아비 때리기를 안하시려면 있는 글부터 제대로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3. “바른말” 댓글 읽고 어이없어서 웃고 갑니다. 저걸 쓰면서 본인은 굉장히 의미있는 비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모니터 뒤의 사람을 생각하니 실소가 튀어나오네요. 이런 소리를 하면서 “내가 아는 OO는 안 그러던데?”의 레퍼토리는 항상 변하질 않으니 그것도 참 웃긴 일입니다.
    그 외에도, 저는 아이유 ‘러브 윈즈 (올)’ 사태에서 퀴어들의 반응과 그에 대한 아이유 팬들의 반응, 그리고 거기에 다시 반응한 아이유의 대응 또한 문제가 많다고 보는 입장인데, 기사는 국민일보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아이유에 대해서는 마지막에 살짝 운만 떼는 식으로 지나갔네요. 아이유 개인에 대한 비판보다는 한국의 문화장 전반에 대한 비판이 되어야하는 것은 맞지만, 그 부분은 다소 아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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