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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오전 8시] 고 김용균 원청기업 및 대표 무죄 판결에 관하여… 국제노동기구 고용정책국장 이상헌 박사와 나누는 노동과 세계 그리고 인간에 관한 이야기.


5년 전. 김용균, 24살. 2018년 12월 10일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한밤중에 혼자 점검에 나섰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 벨트가 김용균을 삼켰다. 청년의 죽음을 우리는 슬퍼했다. 겨우겨우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었다.

지난 12월 7일, 김용균 5주기를 며칠 앞두고, 대법원은 고 김용균 원청기업과 원청 대표이사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그뿐 아니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2024년 1월 27일로 예정됐던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법 적용을 한번 더 유예하려고 한다. 이미 2년 동안 적용을 유예한 조항이다.

빵공장에서 물류센터에서 택배 물건을 들고 오르던 새벽 아파트 계단에서 계속 노동자가 죽어간다. 골목에서 지하차도에서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시민들이 죽는다. 모두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에(도 계속) 벌어진 일이고, 또 그 법이 다루는 중대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다(중대재해법 시행 2022년 1월 17일, 이태원 참사 2022.10., 오송 지하차도 참사 2023.7.).

고 김용균의 죽음을 계기로 만든 법은 계속 미뤄지고 유예되며 후퇴한다. 그 하염 없는 기다림, 뻔뻔스런 유예, 노동과 인권의 후퇴에 관해 이상헌 박사(국제노동기구 고용정책국장)이 이야기했다.

알림 및 안내

인터뷰는 2023년 12월 8일 제네바 시각 기준 오전 8시에서 9시까지 화상으로 진행했습니다. 이상헌 박사와 협의 아래 인터뷰를 답변 중심으로 요약해 정리하고, 글 하단에 인터뷰 전문도 함께 올립니다. 인터뷰 전문을 읽을 독자는 아래 목차 중 맨아래 ‘인터뷰 전문’을 선택하시면 됩니다. (편집자)

  • 사건 개요: 위탁용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주) 소속 운전원인 피해자가 한국서부발전(주)의 태안발전본부 컨베이어벨트에서 단독으로 점검 작업을 하던 중 발생한 사망사고.
  • 사안 개요: 피고인 한국서부발전(주), 한국발전기술(주) 및 위 회사들의 대표이사, 본부장, 사업소장 등 임·직원들인 피고인들이 업무상과실치사, 근로자 사망으로 인한 산업안전보건법위반, 안전조치의무 위반으로 인한 산업안전보건법위반으로 기소된 사안.
  • 판결 결과: 검사와 피고인들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여, 피고인 한국서부발전(주) 및 위 회사의 대표이사인 피고인 2, 본부장인 피고인 3, 계전과 차장인 피고인 14에 대하여 각 무죄, 나머지 피고인들에 대하여 일부 유죄, 일부 무죄(이유무죄 포함)로 판단한 원심판결 확정.
  • 사건번호: 대법원 2023. 12. 7. 선고 2023도2580 판결.

이상헌의 ‘제네바 오전 8시’

08. 누가 한국 소비자를 두려워하랴

질문 정리: 민노

산업안전보건법의 한계


법원의 최종판결이니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동의하기 힘들다. 나는 경제학자다. 법률가가 아니다. 그 한계를 인정하면서 말하면, 대법원 판결은 우리 법률 체계가 산업재해를 매우 제한적으로 보는 바로 그 관점을 상징한다. 그래서 더 중대재해법이 필요하겠구나 생각한다.

물론 고 김용균 재판은 중대재해법의 적용을 받지 못했다. 사건 행위시 법인 산업안전보건법 적용을 받았다. 그렇다고 중대재해법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이번 판결은 그런 점에서 한계가 더 자명했을 거라는 말이다.

1994년생 김용균은 2018년 12월 11일 새벽, 태안화력발전소 기계에 끼여 그 삶을 마감해야 했다. 김용균이 계약직으로 몸담은 한국발전기술은 한국서부발전㈜의 하청업체였다. 김용균의 죽음은 중대재해법(2022년 1월 27일 시행)의 계기가 됐다.

왜냐하면 산업안전보건법은 이런 산재사고에서 기업 CEO 개인의 사건 인지 여부 등을 개인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산재는 개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기업 경영이라는 구조적 측면이 훨씬 더 크게 작용한다. 그런데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재를 구조적으로 보지 않고, 개인의 문제 개별적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마치 민사사건처럼.

중대재해처벌법의 한계


한편 중대재해처벌법이 산재에 관한 경각심을 높인 건 확실하다. 하지만 산업안전보건법과는 반대로 사안을 너무 사업주나 대표이사에 관한 형사처벌에 관한 문제로 환원시켰다. 그러면 결국 남는 건 그 형사처벌 대상에서 벗어나려는 법리적 다툼이다.

사실 중대재해법은 기업 입장에서는 핸들링(관리)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인다. 소위 ‘오너’의 횡령이나 배임이든 세금이나 상속이든 계속해왔던 노하우를 쌓아왔던 문제의 일종에 불과한 거다.

경영 구조와 관련해서 파악해야


결국 중대재해는 사업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 행위, 경영 구조와 관련해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산업재해는 산업현장의 안전에 관한 문제고, 현장을 안전하게 유지하려면, 안전교육을 해야 하고, 신입사원에게 더 신경 써주고, 관리감독 권한도 높여주고, 그렇게 안전시스템을 계속 발전시켜가야 한다. 결국 이 문제는 경영 시스템 문제다.

기업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뭔가를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해서 돈 버는 엔터티(entity; 업무 유용한 정보를 저장 관리하기 위한 집합적인 것)를 구성하는 거다. 그러니 경제적 인센티브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기업의 행위가 바뀌기 힘들다. 우리는 그런 경제적 인센티브 구조를 바꾸려는 관점이 부족한 것 같다.

경제적 인센티브가 핵심이다


가령 파리바게뜨(SPC) 경우를 떠올려보자. 일시적으로 공장을 중단할 수는 있지만, 그러고 나서 계속 일한다. 산업안전보건법에 이미 그런 규정이 있다. 무조건 스톱하게 돼 있다. 해당 사고가 난 공장만 작업을 중단시키는 거다. 그러면 경제적 타격은 별로 크지 않다.

중대재해법이 추가적으로 기업에 미칠 수 있는 경제적인 인센티브 효과도 그렇게 크지 않은 것 같다. 가령 파리바게뜨만 해도 A공장 산재사망사고로 A공장이 일시적으로 폐쇄되거나 작업이 중단돼도, B C D E 공장이 같은 제품을 생산해서 공급하면 그만이다.

평택 SPL 제빵공장 직원 기계끼임 사망 사고(2022년 10월 15일, 가 일어난 SPC 계열사 에스피엘주식회사(SPL) 정문 본 모습. 아시아 최대 규모 베이커리 생산공장으로 파리바게뜨에 반죽과 완제품 빵 등을 공급한다.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추팔산단1길 157 소재. 사진은 구글지도, Brendan Min 제공.
  • 청주공장: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산단로 88 (송정동)
  • 대구공장: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논공중앙로54길 7
  • 충주공장: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주덕농공길 73
  • 세종공장: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진동길 15
  • 서천공장: 충청남도 서천군 종천면 종천공단길14번길 52
  • 성남2공장: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갈마치로244번길 15 (상대원동) → 2023년 8월 8일 또 다시 끼임 사고 발생. 이틀만인 8월 10일 사망. 성남 샤니 공장은 상시 노동자 50명 이상이 근무하는 사업장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임.

유력한 수단인 ‘불매운동’…하지만 기업의 자신감


그러니까 현재로선 유력한 방법은 불매운동이다. 하지만 한국 불매운동은 처음에는 불길처럼 솟았다가 조금 있으면 금방 수그러진다는 걸 기업들은 잘 안다. 잘 기억하고 있다. 대처가 쉽다.

그리고 소비자 입장에서도 조금 어쩔 수 없는 게 있긴 하다. 파리바게뜨나 쿠팡 새벽배송 같은 건 많은 시민들에게 너무 익숙한 소비재고, 서비스다. 나도 최근에 한국 갔을 때 의식하지 못한 채로 파리바게뜨에 들어간 적이 있을 정도다. 그리고 당장 급하면 ‘새벽배송’ 서비스를 쓴다.

그러니까 기업은 자신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유럽이나 미국과 비교하면, 불매운동으로 버틸 수 있는 여지(선택권)가 그렇게 많지 않다.

MBC 뉴스데스크, “하룻밤 근무에 5만 보”…쿠팡 물류센터 노동자 또 사망. 2020.10.16.
KBS 뉴스, 쿠팡 50대 노동자 사망…한파에 ‘핫팩’ 하나로 버텼다. 2021. 1. 19.
JTBC 뉴스룸, 새벽 근무하다…쿠팡물류센터 60대 노동자 쓰러져 숨져. 2023. 1. 8.

불매운동에 공감하지만 타협… 한국적 상황


많은 분들이 쿠팡 노동자를 비롯한 택배 노동자 사망사건을 안타까워하고 공감한다. 하지만 이번 한번만 쿠팡 쓰자, 이러면서 계속 자신과 타협한다. 불매운동은 불편을 감수하는 거지만, 불편함에도 강도라는 게 있다. 한국 소비자가 느끼는 불편함의 정도는 외국, 여기 유럽이나 미국 소비자가 느끼는 강도보다는 크다.

왜냐하면 한국은 서비스 시장 독과점이 심하니까. 예를 들어 유럽, 스위스에서 파리바게뜨 같은 일이 생긴다? 그러면 사고난 프렌차이즈 가지 않고, 그냥 동네 빵집 가면 된다. 아니면 집에서 만들어 먹으면 된다.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그런 면에서 한국 소비자가 불매운동이 쉽지 않은 건 이해할 만한 측면이 있다.

안락한 소비생활 vs. 산업안전


그럼에도 중대재해는 사회적으로 너무 중요한 문제다. 그러니까 중대재해 상황에 대해서는 안타까워하고 분노하면서 본인의 안락한 소비 생활을 계속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 양립할 수 없다. 선택해야 하는 거다. 결과적으로 불편을 감수하지 않으면 불매운동을 통해 산업재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법률적 개입 방식도 마찬가지. 법률이 제대로 개입하면 소비자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즉, 기업이 제대로 처벌받으면, 예전처럼 싸고 신속하게 서비스를 누릴 수 없을 확률이 높아진다. 가령 새벽배송이 노동자 안전과 결부되면, 예전보다 배달이 늦어질 거고, 가격도 예전보다 올라갈 가능성도 크다. 소비자는 그 불편과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더 안전해진다. 공짜는 없다.

미디어오늘 기사 캡처 갈무리.

개인의 각성 결심이 아니다 사회 운동이다


불매운동은 개인의 각성이나 결심이라는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다. 불매운동은 사회적이고 조직적인 것이다. 개인이 자기 결심으로 특정 상품을 불매하거나 특정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는 걸, 불매’운동’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불매운동은 사회적인 거다. 물론 불매운동이라는 거대한 운동의 말단에선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행동하겠지만, 그런 개인의 자발성이 사회적인 흐름을 만들어내는 사회경제적 운동이다.

당연히 그걸 매개하는 단체나 그룹, 온라인 플랫폼도 있을 수 있다. 다만, 어떤 경우든 간에 불매운동은 자발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수십만 명, 수백만 명이 움직이는 운동을 수직적인 조직 방식으로 운영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내가 보기엔 한국은 할 수 있다. 우리는 사회운동 경험이 풍부하니까. 역사와 노하우가 있다. 물론 다시 강조하지만, 소비재 분야에서는 생활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해서 쉽지는 않다.

불매운동은 자신의 생활 방식을 바꾸는 것


그래서 불매운동은 본인의 생활 방식을 바꾸는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예를 들면, 밤 10시가 넘으면 치킨 배달을 시키지 않겠다든지 자기 자신과의 약속. 그런데 정말 오랜만에 친한 친구가 놀러왔다고 생각해보자. 친구가 해외 축구보면서 치킨 먹고 싶다고 하면 ‘내가 지금 산업안전 위해 10시 이후에는 음식 배달을 시키지 않고 있어서…’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을 거다.

그런 예는 얼마든지 생각해볼 수 있다. 급한 일이 있거나 본인이 좀 몸이 안 좋고 이러면 또 어쩔 수 없이(?) 자신과 타협한다. 내가 쓴 책 중에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 (2015)는 책이 있다. 그 책 제목 때문에 욕도 참 많이 먹었는데, 산업재해는 구조적인 건데, 왜 개인의 불편 같은 소아적인 걸로 접근하느냐는 불만이었다.

책 제목 때문에 욕먹었던 책…

구조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힘을 만들어내는 일을 좀 해야 하는데, 노동문제는 대부분 다 소비자가 있는 문제이고, 이 노동 문제를 풀기 어려워진 이유가 기업들이 항상 소비자 핑계를 대기 때문이다. 기업은 말한다:

‘소비자 만족을 위해서 그 시스템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이런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난 건 유감이지만, 우리에겐 수천만 명의 고객이 있다.’

기업에게 소비자는 항상 좋은 핑계다. 기업이 그렇게 나오면, 소비자는 ‘우리는 우리가 걱정할 테니 기업은 당신들 일이나 제대로 하시오’ 이렇게 나와야 이야기가 되는데, 한국에서는 소비자 논리가 나오면 그냥 게임 끝이다. 저 책 제목은 그런 걸 조금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는 취지였다.

노동자가 소비자고 소비자가 노동자다


설문조사할 때 본 질문 앞에 나오는 질문을 ‘필터링 퀘스천’이라고 한다. 어떤 입장에서 본 질문에 답하는지를 정하기 위해 걸러내는(필터링) 질문이다. 그 필터링 질문에 따라 뒤에 이어지는 같은 질문에 관해서도 대답이 달라지곤 한다. 가령 소비자로 답하느냐, 노동자로 답하느냐에 따라서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 서로 다르다.

많은 이들이 소비자이면서 노동자다. 서비스 노동자에게 군림하는 소비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노동자이기도 하다. 사실 그 둘을 분리하는 건 시장경제의 논리다. 왜 그렇게 그 둘을 분리하려고 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국은 확실히 그 둘의 분리가 좀 심한 편이다.

고 장덕준 유족 제공. 매일노동뉴스에서 재인용.

‘점주는 무슨 죄인가’라는 가짜 논리


불매운동 막바지에 흔히 나오는 ‘점주는 무슨 죄인가?’라는 논리가 있다. 한국 기업과 한국 언론은 이 분야에서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소비자 편익 문제, 수출 경쟁력 문제, 그러다가 맨 마지막에 보면 결국 일자리 없어진다, 이런 거다.

이런 논리의 특징이 뭐냐면, 결국 문제의 장본인인 기업은 쏙 빠진다는 거다. 파리바게뜨를 봐라. 결국 ‘왜 점주를 괴롭히냐’는 거다. 그렇게 기업은 문제에서 빠지고, 결국 점주와 소비자 진흙탕 싸움을 만든다. 그 가짜 논리에 좀 체계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가령 생각해보자. 점주 스스로, ‘변화가 없으면 전체 파리바게뜨 매출 타격이 심각할 것 같다! 그러니 파리바게뜨 본사는 신속하게 대책을 마련해라. 그래야 우리가 먹고 살 수 있다!!’ 이런 논리는 가능할 것 같은가? 깨몽하시라. 한국 프렌차이즈 구조에서 점주는 본사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파리바게뜨, 입에 착! 가격도 착! “착!” 한빵 프로모션 진행. 2023. 02. 22. SPC 제공.

점주는 본사에 요구도 못하고 손해만 떠맡는 구조


한국 프렌차이즈는 아래(점주)의 불만을 위(본사)로 전달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수직적인 상명하달 구조라서 가령, 불매운동 등으로 대다수 파리바게뜨 매장에 동시에 매출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을 때 점주가 공동으로 본사에 문제 해결 방안을 요구할 수 있는 그런 구조가 없다.

SPC의 잘못된 경영 철학, 경영 시스템으로 인해서 산재가 일어나고, 그런 잘못 때문에 파리바게뜨 매장 매출이 불매운동으로 줄어들더라도 그 경제적 책임을 점주가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구조를 만들어 놨다. 그런데 그런 구조적인 문제는 이야기하지 않고, 불매운동으로 점주를 괴롭히는 것처럼, 또 어떤 경우에는 아르바이트하는 학생들만 괴롭다는 식으로 이야기되는 거지. 그게 기업의 논리, 보수지의 논리다.

그 논리를 깨야 하는데, 깨는 방식은 뭐냐면, ‘점주가 본사에 문제 재발을 막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도록 직접 이야기할 수 있는 내부 구조를 만들어라. 그런 의견을 전달하고, 문제 재발을 방지할 시스템을 만들면 우리는 불매운동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하고, 만약에 그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점주에겐 미안하지만, 우리는 파리바게뜨에서 빵 안 먹겠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쉽지 않다. 점주도 불편해져야 하고, 고객인 소비자도 불편해져야 하니까. 그게 돼야 변화가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아직 그럴 단계는 전혀 아니다. 오히려 비겁한 변명과 핑계를 대기도 한다. 점주가 힘드니까 나는 불매운동 그만하고, 가서 사먹을게! 그게 정말 점주 걱정 때문일까. 대부분은 핑계다.

쿠팡 화재… 책임에서 안전하게 ‘벗어난’ 미국인 김범석


쿠팡 물류창고 화재(2021. 6. 17.)를 기억하는가. 화재 사고 당일 쿠팡 김범석(쿠팡 창업자)는 국내법인 등기이사에서 사임했다. 물론 쿠팡 측은 그 일은 사고 전부터 준비 중인 일이었다면서 “등기가 완료돼 공개된 시점에 공교롭게 화재가 발생한 것”이라고 밝혔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졌다는 건데…

그게 현 법제의 형사적 처벌적 접근 때문에 생긴 일이다. ‘누가’ 책임자냐는 것, 그게 법적 쟁점이 되니까. 사람이 죽은 거는 죽은 거고, 죽었을 때 누가 책임자냐, 이것만 따지니까. 책임자가 CEO든, ‘오너’든 ‘그 사람을 처벌하면 경영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거야’라는 게 중대재해법의 논리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거꾸로 만약 일이 터지면, 어떻게 형사처벌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체계나 논리를 만드느냐가 포커스다.

이른바 ‘검은 머리 외국인’ 김범석(쿠팡 공동창업자)은 미국 국적자다. 쿠팡을 한국기업으로 착각하는 수가 많은데, 쿠팡은 일본기업(소프드뱅크 비전 펀드)가 최대주주인 미국 기업이다. 그리고 김범석은 한국 쿠팡 법인에는 어떤 공식 직위도 가지고 있지 않다. 김범석은 미국법인인 쿠팡Inc(쿠팡의 모회사) 이사회의장 겸 CEO다. 이런 묘수(꼼수?)로 인해 김범석은 공정위 ‘재벌 총수’ 지정에서도 빠졌다. 사진은 쿠팡뉴스룸 제공.

쿠팡 화재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물류창고 화재 때문이 아니라도 김범석은 이미 중대재해법 국회 통과 직전인 2020년 12월 대표이사에서 사임했고, 결국 6개월만에 쿠팡과 관련한 모든 한국 법인의 공식 지위에서 사임함으로써 중대재해법의 책임 범위에서 ‘벗어났다’.

이렇게 되니까 실질적인 오너가 누구냐, 이게 탈법이냐 위법이냐 그런 법리적인 논쟁 대상이 되는 거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그 법리적 논쟁이 어떻게 해결되든지 그런 논쟁이 물류창고 화재를 방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문제의 함정은, 계속 강조하지만, 쿠팡 물류창고 화재와 같은 일이 있다하더라도 기업의 경제적 손실이나 타격이 미미하다는 거다. 그러니까 기업이 안 움직인다.

안전과 생명은 ‘돈’보다 우선한다… 거꾸로 말하면?


노동과 관련한 유럽연합 법률을 보면,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은 어떤 경제적 이해관계에 우선한다는 규정이 맨 먼저 나온다. 경제적인 이해를 앞세워서 과로노동 문제, 산해문제를 보려는 유인, 경향은 유럽에도 있으니까. 여차하면 그런 게 튀어나온다. 그걸 원천봉쇄하기 위해서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에 관해서는 돈이 1억 원이 들든 1조 원이 들든 아예 이야기를 꺼내지 말라는 거다. 이제 생명과 안전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다는 게 모든 법의 기본 원리다. 거꾸로 말하면, 중대재해가 생겼을 때 기업은 어떠한 경제적 손실도 감당해야 한다는 게 기본원칙이 되어야 한다.

그 경제적 손실이 유의미할 정도로 커야 기업도 경영 방식을 바꾼다. 안전과 생명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한다. 안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정도로 경제적 손실을 줘야 그제서야 기업이 자발적으로 한다. 즉 법률이 강제하되, 자율적으로 작동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법 적용 유예


중대재해법은 여러 측면에서 진일보한 면이 많지만, 가장 아쉬운 건 중소기업(50인 미만)이 빠진 거다. 그래서 이 법은 반쪽짜리 법도 아니다. 왜냐하면 산재사고는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에서 생기는 거고, 그건 양적으로도 그렇지만, 질적으로는 더욱 더 그렇기 때문이다. 심각한 산재 비중은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 훨씬 더 높다.

현재 중대재해법의 기본 논리는 재해가 발생하면 잘못한 기업 책임자에게 형사 책임을 지게 한다(A). 그러면 기업 책임자에게 형사책임을 부담지우지 않기 위해 산업안전에 관한 전반적인 경영 변화가 있을 것이다(B). 이런 건데, A와 B가 뚝 떨어져 있어요.

기업은 형사처벌 문제, 그 법리 문제만 똑 떼어서 생각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전달 체계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50인 미만 법 적용 유예)이 법 적용 대상에서 빠져 있는 문제다.

유예를 다시 유예한다… 단계적 도입 좋아하는 한국


지금 당정(윤석열+국민의힘)은 그것마저도 다시 유예하겠다는 한다. 2013~2022년 산재사망자 수는 1만9850명이고, 그 중 50인 미만 사업자 사망자수 1만2045명으로 비중은 60.7%이다.

유예기간으로 2년을 줬지만, 여전히 아직도 준비가 안 됐기 때문에 더 준비해야 한다는 얘긴데… 정말 노동법에 관한 해묵은 패턴이다. 가령, 노동시간도 처음에는 대기업, 그 다음은 중소기업, 그 다음은 소기업, 이런 식으로 점차 하자는 논리는 틀리지 않다. 각자 준비 능력이 다르니까. 노동 관련 제도에서 지난 30~40년째 계속 그렇게 ‘단계적 적용’ 원칙을 고수해왔다.

사실 일본도 그렇게 한다. 그런데 유독 단계적 적용을 좋아하는 나라가 한국다. 우리나라와 일본을 빼고, 다른 나라는 그렇게 안 한다. 왜 그럴까?

외국 선진국이 단계적 도입 안 하는 이유


외국은 우리처럼 단계적 도입 방식으로 제도를 운영하지 안는다. 노동법의 존재 이유 때문이다. 노동법은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 그런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 기준을 만드는 거니까. 노동법은 노동자에게 특별한 혜택을 주거나 그 권한이나 권리를 다른 계층보다 더 두텁게 보장하자는 게 아니다. 그 최소한을 마련하자는 거다.

그 최소한을 마련하는데 유예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다, 사실은.

그런데 한국은 하도 단계적으로 적용하다보니까 마치 노동법이 노동자 권익의 중간 이상 혹은 최대치를 설정하는 법처럼 ‘착각’하는 현상이 생겼다. 외국은 취약 계층에 적용될 법이라 유예기간 같은 부가 조건을 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외국은 유예 기간을 걸기보다는 지원 정책이 들어간다.

예를 들어 사회보장 기여금을 줄인다든지, 세제 혜택을 준다든지 하는 식으로 접근한다. 법률 자체 적용을 유예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간혹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처럼 이렇게 일관되게 유예기간을 적용하는 나라는 별로 없다.

‘습관’이 된 유예… 보수 진보가 없다


지금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유예 조항을 다시 유예하자는 당정의 주장을 그렇게 놀라워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학자나 정치인은 특히 ‘그럴 줄 알았다’고 할 거고, 야당 입장에서도 특별하게 놀랄 일은 아닐 거다. 물론 50인 미만 유예가 끝나기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몹시 실망스러운 일이겠지만.

돈(임금)에 관한 것도 아니고, 현장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죽음’에 관한 문제인데, 이런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이제 자꾸 유예하는 패턴, 습관이 반복된다. 아직 명확한 결론이 난 상황은 아니지만. 법률 제정과 법률 적용에서의 유예 방식이 습관화하는 문제는 한국 노동시장 분절화를 더 가속화한 측면이 있다.

노동시장 분절화를 가속화하다


노동시간이든 노동의 대가(임금)이든 항상 기업 크기별로 중소기업은 관련 제도 적용을 일정한 시간 유예했기 때문에, 중소기업은 노동시간이 길어지고, 임금도 중소기업은 더 낮아지고… 그런 경향이 가속했다.

위험의 외주화, 위험의 양극화도 법률이 그걸 조장하는 측면이 있다. 대기업 입장에서도 좀 위험한 일이 있으면 법 적용이 유예되는 중소기업에 하청기업에 떠넘기면 되니까. 법률이 부정적인 경제적 유인 체계를 만들어 낸 셈이다.

중대재해처리법, 외국엔 없고 우리만 있는 ‘슬픈 사연’


외국은 어떨까. 외국에는 우리나라의 중대재해처리법 같은 건 없다. 외국, 평균적인 선진국은 경제가 성장하면서 중대재해가 꾸준히 줄었다. 법률적 개입, 단체협상 등을 통한 노동자의 개입, 사회적인 개입을 통해 산재는 사회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의제가 되었기 때문에 중대산업재해를 꾸준히 줄여왔다. 그래서 현재는 오히려 산업재해가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외국 선진국에서 쿠팡이나 파리바게뜨 같은 사건이 터지면 우선은 법이 작동하고, 사회적 불매운동도 대단하다. 지난 번에도 이야기했지만, 경제 성장과 산업재해는 서로 반비례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예외다. 아웃라이너. 그렇게 답이 없으니까, 안되니까 이런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법률적인 수단을 동원한 거로 봐야 한다.

이런 맥락을 모른 채 혹은 외면한 채 중대대재처벌법 같이 외국에도 없는 걸 왜 우리만 하려고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외국은 이미 잘하고 있어서, 우리가 너무 예외적이라서 특단의 법률적 조치가 필요했던 거다. 더는 외국에 중대재해법이 있네 없네, 이런 걸로 싸울 필요 없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도 특수한 분단 상황이다. 그런 특수성 때문에 이런 저런 법을 만든다고 하고, 폐지하지 못한다고도 하고 그래왔다. 그렇게 악용되는 국가보안법 같은 경우도 있고. 그런 관점으로 보면, 우리나라에서 남북 관계보다 더 특수하고, 예외적인 상황은 산재다. 외국 선진국과 비교하면 산재, 노동 문제만 우리나라는 그 경제 규모에 맞지 않게 동떨어진 경향성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국민소득과 산재사망률은 반비례 경향이 있지만, 한국만은 예외다. 이상헌 제공.

아무도 모르는 중대시민재해


끝으로 중대재해처벌법에는 중대기업재해와 더불어 중대시민재해라는 게 있다. 이태원 참사나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전형적인 중대시민재해에 해당한다.

하지만 제도를 잘 사용하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지금은 별도의 법체계를 만들기 위해 시민안전기본법이라는 게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논의가 워낙 부족하고, 시민재해로 인한 인명 피해도 너무 커서 별도로 진행될 가능성이 클 것 같다.

10.29 이태원 참사 장소에 마련된 기억 공간. 2023년 10월 28일. 위키미디어 공용. *Youngjin CC BY-SA 3.0

인터뷰 전문

슬로우뉴스(민노) = 결국 고 김용균 원청기업과 원청 대표이사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졌습니다(대법원, 무죄 원심을 인용). 판결을 논평하신다면요(참고로, 법인과 법인대표 모두에 죄를 묻는 양벌 규정).

이상헌(국제노동기구 고용정책국장): 법원의 최종판결이니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동의하기 힘듭니다. 제가 경제학자라서 판결을 놓고 이야기하는 게 좀 그렇긴 한데, 원청 책임이 없다는 판결은… 법리적으로는 그럴 수 있겠죠. 하지만 구조적이고 실체적인 관점으로 보면 참 이해하기 힘든 법리 중심 판결이 아닌가 싶고요.

대법원 무죄 판결은 우리 법률 체계가 산업재해를 제한적으로 보는 그 관점을 상징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더욱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이 필요하겠구나 생각이 들죠. 그런 점에서 이번 판결은 좀 역설적인 느낌이 듭니다. 기존 법 체계로는 제대로 처리할 수 없으니까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은 새로운 법률 체계가 필요했던 건데요.

고 김용균으로 인해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졌지만, 고 김용균에 관한 재판은 그 법의 적용을 받지 못했죠(참고로 이번 고 김용균 관련 재판에 적용된 법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아니라 사건 행위시 법인 산업안전보건법임. 편집자).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 중대재해처벌법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 대법원 판결은 중대재해처벌법을 소급 적용한 게 아니라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했고, 그런 점에서 한계가 더 자명하다는 취지일 뿐이죠.

왜냐하면 산업안전보건법은 이런 산재사고에서 기업 CEO 개인의 사건 인지 여부 등을 개인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어요. 사실 산재는 개인의 잘잘못이라기보다는 기업 경영이라는 구조적 측면이 훨씬 더 크게 작용하는데 말이죠. 구조적으로 보지 않고, 개인 개별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건을 마치 민사사건처럼 보고 있는 것 같아요. 경영 구조와 직접 관련이 있음에도 이런 구조에서 사건이 생겼을 때 경영자가 얼마나 책임져야 하는지 별로 고민하지 않아요. 그건 아마도 산업안전보건법 규정이 그런 구조적인 문제까지는 재판부가 고민할 필요가 없도록 했을 것 같긴 하지만요.

민노: 민사사건처럼 보고 있다고 지적하셨는데요. 형사적 성격을 강조해서 ‘처벌’을 염두에 두고 판단하면 좀 다를까요?

이상헌: 중대재해처벌법이 산재에 관한 경각심을 높인 점은 확실히 있습니다. 하지만 사안을 너무 사업주나 대표이사에 관한 형사처벌에 관한 문제로 접근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 형사처벌 대상에서 벗어나려는 법리적 다툼의 문제가 되어버렸죠. 사실은 기업 입장에서는 물론 예전보다는 상황이 어려워졌지만, 충분히 핸들링(관리)할 수 있는 수준인 것처럼 보여요.

민노: 기업이 충분히 핸들링할 만한 수준?

이상헌: 사업주 처벌 문제에 관한 법리적 다툼은 한국 기업이 지금까지 계속 해왔던 거예요. 소위 ‘오너’의 횡령이나 배임이든 세금이나 상속이든 계속해왔던 문제라서 충분히 ‘관리’할 수 있어요. 그래서 중대재해는 사업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행위, 경영의 구조와 관련해서 파악할 필요가 있는 거에요.

민노: 기업의 행위와 경영 구조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이상헌: 산업재해는 산업현장의 안전에 관한 문제잖아요. 현장을 안전하게 유지하려면, 안전교육을 시키야 하고, 신입사원에게는 더 신경 써주고, 관리감독자 권한도 높여주고, 그렇게 안전시스템을 계속 발전시켜가야죠. 결국 이 문제는 전체적인 경영 시스템의 문제인 거예요.

민노: 공감합니다. 경영 시스템의 문제죠.

이상헌: 기업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뭔가를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해서 돈 버는 엔터티(entity; 업무 유용한 정보를 저장 관리하기 위한 집합적인 것)를 구성하는 건데요. 경제적 인센티브 구조를 바꾸지를 않으면 사실 행위가 바뀌기는 힘들 거든요.

민노: 경제적 인센티브 구조를 바꿔야 한다! 맞는 말씀입니다.

이상헌: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경제적 인센티브 구조를 바꾸려는 관점이 부족한 것 같아요. 중대한 산재사고가 생겼다면, 가령 파리바게트(SPC) 경우에요. 일시적으로 공장을 중단할 수는 있지만, 그러고 나서 계속 일하거든요. 산업안전보건법에 이미 그런 규정이 있어요. 무조건 스톱하게 돼 있어요. 해당 사고가 난 공장만 작업을 중단시키는 거죠.

민노: 전체(기업의 경영시스템)가 문제인데 부분(사고난 공장)만 중단시키는 건 소용없다?

이상헌: 그렇죠. 기존 법이 기업에 가져올 경제적 타격은 별로 크지 않아요. 중대재해처벌법이 추가적으로 기업에 미칠 수 있는 경제적인 인센티브 효과도 그렇게 크지 않은 것 같아요. 가령 파리바게뜨만 해도 A공장 산재사망사고로 A공장이 일시적으로 폐쇄되거나 작업이 중단돼도, B C D E 공장이 같은 제품을 생산해서 공급하면 그만이니까요.

민노: 재해가 일어나도 파리바게뜨 서비스엔 큰 문제가 없다는 말씀이죠?

이상헌: 그렇죠. 파리바게뜨 경우엔 그 공장이 아니더라도 다른 공장을 가동해서 빵을 공급하면 되는 거니까요. 다양하고 거대한 시스템이죠. 부분적으로 문제가 생겨도 전체적인 공급망에는 큰 영향이 없으니까요.

민노: 그렇군요…

이상헌: 그러니까 유일한 방법은 불매운동 같은 거죠. 하지만 한국의 불매운동은 처음에는 불길처럼 솟았다가 조금 있으면 금방 수그러진다는 걸 기업들은 잘 알고 잘 기억하고 있어요. 그래서 대처가 쉽죠. 그리고 소비자 입장에서도 조금 어쩔 수 없는 게 있긴 해요.

민노: 소비자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다?

이상헌: 한국 서비스 시장이 워낙 독점적이다보니까, 가령 파리바게뜨 예를 자꾸 들게 되는데, 저도 최근 한국 방문했을 때 저도 모르고 파리바게뜨에 들어간 적 있어요 (웃음…). 잠깐 시간이 비워서 근처 있는 카페에서 잠깐 시간을 떼운다고 했는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들어가게 된 거죠. 2022년 10월 사건 일어나고 나서 앞으로 파리바게뜨는 절대 안 가겠다고 결심했는데도, 나도 모르게 앉아 있는 거에요. (허탈한 웃음)

민노: 맞습니다. 가장 흔한 빵가게(겸 카페)가 파리바게뜨죠. 제가 사는 작은 동네에만 4개가 있습니다.

이상헌: 그래서 이런 중대산업재해가 생겼을 때 기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방식이 뭘까 생각해보면, 결국 현재로선 불매운동밖에 없는 거죠. 이번에 한국에 갔더니 많은 시민들이 열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럼에도 당장 급하면 쿠팡 ‘새벽배송’ 같은 걸 쓰는 거죠.

민노: 그렇죠. 독과점 상황에서 불매운동은 소비자에게 불편을 감수하라고 해야 하는데, 그걸 또 강요하기가 쉽지 않죠…스스로 타협할 때도 있겠고, 또 모르는 사이에 쓰는 경우도 많고요.

이상헌: 그러니까 기업이 가지는 자신감이 그런 것도 있는 거죠. 워낙 독과점 구조니까요. 소비자 입장에서도 불매운동으로 버틸 수 있는 여지(선택권)가 그렇게 많은 것 같지 않고요. 예를 들어 쿠팡 같은 경우를 생각해보세요.

민노: 쿠팡이요?

이상헌: 많은 분들이 쿠팡노동자 사망사건을 안타까워하고 공감해요. 하지만 이번 한번만 쿠팡 쓰자, 이러면서 계속 자신과 타협하거든요. 불매운동이 중요한 방안이긴 한데 한국 같은 독과점적 시장 구조 아래서 소비자 불매운동도 사실 쉽지는 않아요. 그래서 처음엔 우리나라 소비자에게 조금 섭섭하고 아쉬운 게 있었는데요. 조금 더 생각해보니까 좀 구조적인 측면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민노: 불매운동과 관련해서는 얼마전 한국에서 북토크하셨을 때요. 소비재 기업의 경우에는 불매운동이 꽤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불매운동이라는 게 소비자가 자신이 편한 한도에서 취사선택하는 정도가 아니라 불매운동에 참여하는 소비자 자신도 굉장한 현실적인 불편을 감수하는 실존적인 결단에 가까운 것이라는 말씀을 주셨는데요. 그때 제가 좀 스스로 부끄럽기도 하고, 굉장히 공감하기도 했습니다.

이상헌: 그 이야기는 유효하고, 저는 여전히 그걸 믿는데요. 통상적인 불편함의 강도라는 게 있잖아요. 한국 소비자가 느끼는 불편함의 정도는 외국, 여기 유럽이나 미국 소비자가 느끼는 강도보다는 크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한국은 서비스 시장이 너무 독과점화돼 있어요. 예를 들어 유럽, 스위스에서 파리바게뜨 같은 일이 생기잖아요? 그러면 그런 프렌차이즈 가지 않고, 그냥 동네 빵집 가면 되고, 집에서 만들어 먹으면 되고 그런 식으로 해요. 이것저것 다양한 선택지가 있어요. 한국에도 (프렌차이즈 아닌) 동네 빵집이 있긴 하지만, 워낙에 프렌차이즈, 그 중에서도 파리바게뜨 같은 독과점이 많죠.

민노: 엄청 많죠…;;;

이상헌: 기본적으로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많고, 피하려고 해도 피하기 쉽지 않을 정도예요. 제가 불매운동은 소비자 스스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 불편함은 유럽이나 미국 소비자가 상상하는 것 이상일 거라는 거죠. 그런 면에서 한국에서 불매운동이 쉽지 않은 건 이해하는 측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중대재해는 사회적으로 너무 중요한 문제라서 심각하게 공유해야 해요. 그러니까 중대재해 상황에 대해서는 안타까워하고 분노하면서 본인의 안락한 소비 생활을 계속 유지하는 건 불가능해요. 양립할 수 없어요. 선택해야 하는 거죠.

민노: 저 같은 경우에는 어떤 기업의 경우에는 불매운동을 실천하지만 또 어느 기업의 경우에는 타협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상헌: 안락한 소비생활을 유지하면서 산업안전을 동시에 바랄 수는 없어요. 불편을 감수하지 않으면 이런 문제를 사실상 해결할 방법이 없는 거죠. 사실 법률적 개입 방식도 마찬가지예요. 법률이 제대로 개입하면 소비자는 불편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어떤 사건에 관해 법률이 개입해서 기업이 제대로 처벌받으면, 예전처럼 싸고 신속하게 서비스를 누릴 수 없게 되는 거죠. 가령 오픈마켓의 새벽배송이 노동자의 안전과 결부된다면, 예전보다 배달이 늦어질 거고, 가격도 올라갈 가능성도 있고요. 그걸 감수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야 사회가 더 안전해지는 거죠.

민노: 그런데 결국 불매운동이라는 게 개개인의 사회적인 각성 내지는 개인의 결단에 의존한다면, 결과적으로는 사회적으로 힘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합니다. 좀 모래알 같다고 할까요.

이상헌: 아니요. 제가 말씀드린 건 개인의 각성이 아니라 조직적인 불매운동을 말한 거에요. 개인이 불매하는 걸 불매’운동’이라고 하지는 않잖아요. 불매운동이라는 건 사회적인 운동인 거죠.

민노: 아, 느슨하지만, 함께하는 운동!

이상헌: 그렇죠.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행동하지만, 그런 개인의 자발성이 사회적인 흐름이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운동인 거죠. 개인의 결심이나 행동을 촉진해주고, 매개해주는 단체나 그룹은 있을 수 있죠. 온라인 플랫폼일 수도 있고요. 여하튼 어떤 경우든 간에 불매운동은 자발적일 수밖에 없어요.

민노: 자발적일 수밖에 없다?

이상헌: 왜냐하면 수십만 명, 수백만 명이 움직이는 운동이기 때문에 수직적인 조직 방식으로는 불가능해요.

민노: 아, 그렇군요.

이상헌: 제 생각에 한국은 할 수 있어요. 왜냐면 한국은 사회운동 경험이 풍부하잖아요. (= 그렇죠) 그런데 소비재 분야에서 이런 게 유독 안 되는 이유는 다시 돌아가면, 본인이 감당해야 할 불편함의 강도가 있기 때문에… 이게 촛불 들고 가서 다시 집에 돌아오면 되는 거랑은 좀 다르잖아요. 촛불은 시간을 내야 하긴 하지만, 자신의 일상에 주는 영향은 크지 않죠. 하지만 소비재 기업은 다르죠. 일상과 직결되니까요. 생활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거든요.

민노: 맞습니다. 생활의 불편을 감수하지 않으면 실천하기 어려운 게 많죠.

이상헌: 이건 본인 생활 방식을 바꾸는 문제와도 관련이 있어요. 예를 들면, 밤 10시가 넘으면 치킨 배달을 시키지 않겠다든지 자기 자신과의 약속. 그런데 정말 오랜만에 친한 친구가 놀러왔다고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워낙 으샤으샤 하는 분위기라서, 친구가 해외 축구보면서 치킨 먹고 싶다고 하면 ‘내가 지금 산업안전을 위한 실천운동을 하고 있으니까 오늘은 먹지 말자’고 말하기가 좀 그렇잖아요.

민노: 저 같은 경우는 제가 사는 곳이 아주 오래된 엘리베이터 없는 5층 아파트인데요. 특히 무거운 물건들은 택배로 가급적 시키지 말자, 무거운 건 내가 직접 사자… 이런 다짐을 하고 있기는 합니다.

이상헌: 그런데 그러다가도 좀 급한 일이 있고, 본인이 좀 몸이 안 좋고 이러면 또 어쩔 수 없이(?) 시키게 되잖아요. (웃음) (= 맞아요…;;; ) 그런데 그렇게 한두 번 하게 되면 우리도 사람인지라 그런 좋은 취지가 있지만, 또 어떤 불가피하다고 느끼는 상황 때문에 그 실천을 미루고, 핑계를 대고, 스스로 이제 용서도 하게 되고… (웃음) 이런 건 어쩔 수 없어요.

민노: 박사님의 책 중에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는 제목의 책이 있잖아요. 그 책 제목이 저는 개인적으로 좀 밋밋하지 않나 생각했었는데, 다른 책 북콘서트에서 불매운동에 관한 박사님 말씀 듣고 나서는 이 책 제목이 뭔가 떠올려진다고 할까요? 그런 게 있었거든요.

이상헌: 그 책 제목 때문에 욕도 많이 먹었어요. 왜냐면 산업재해는 구조적인 건데, 노동을 공부한다는 사람이 엄혹하고 산적한 노동 문제를 개인의 책임 같은 결심 같은 주관적인 걸로 풀려고 하느냐고. 저도 구조적인 문제를 등한시하는 건 아니고요. (웃음) 당연히 그런 구조적인 문제에 관한 관심도 기울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힘을 만들어내는 일을 좀 해야 하는데, 노동문제는 말씀드린 것처럼 대부분 다 소비자가 있는 문제이고, 이 노동 문제를 풀기 어려워진 이유가 기업들이 항상 소비자 핑계를 대요.

민노: 소비자 핑계요?

이상헌: 소비자의 만족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런 시스템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망사고가 난 건 유감이지만, 우리에게는 수천만 명의 고객이 있고, 그들을 위해선 이 시스템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니까 기업들은 항상 소비자가 핑계예요. 기업이 그렇게 나오면, 소비자는 ‘우리는 우리가 걱정할 테니 기업은 당신들 일이나 제대로 하시오’ 이렇게 나와야 이야기가 되는데, 한국은 소비자 논리가 나오면 그냥 게임 끝이에요. 저 책 제목은 그런 걸 조금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는 취지였죠.

민노: 그런 취지셨군요.

이상헌: 노동자가 소비자잖아요. 소비자가 노동자고. (= 그렇죠) 그런데 우리는 이 두 개가 마치 분리된 것처럼, 그리고 가령 설문조사를 하잖아요? 그러면 마치 그 둘이 분리된 것처럼 답변하는 경우가 많아요. 노동자 입장으로 물었을 때와 소비자 입장으로 물었을 때, 같은 사람이면서도 답변이 달라요. 똑같은 질문인데, 앞에 나오는 질문을 ‘필터링 퀘스천’이라고 하잖아요. 뒤에 나오는 질문이 진짜 질문이고요. 그런데 그 첫 질문에서 답변하는 사람 입장이나 포지션을 노동자로 가져가느냐, 소비자로 가져가느냐에 따라서 뒤에 나오는 진짜 질문에 대해 같은 사람이 답변을 하는데도 답이 다르게 나오는 거죠.

민노: 우리나라는 특히 그런 역할에 따른 이중성이 심각한 것 같습니다.

이상헌: 많은 이들이 소비자이면서 노동자인데, 그 둘 소비자와 노동자를 분리하는 건 사실 시장경제의 논리이기도 한데요. 한국은 확실히 좀 심한 편이죠. 구조적인 문제, 정치적인 문제도 계속 고민하고 우리가 싸워야 할 문제이긴 한데요. 이런 문제도 조금 더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민노: 불매운동과 관련해서도, 저 개인적으로도 아직 명확하게 스스로 해답이 되지 않은 게, 가령 SPC 사망 사건 같은 일이 터지면, 어느 정도 시점이 지나서 보수 경제지들이 특히나 점주는 무슨 죄냐, 점주는 우리 이웃인데, 왜 이중삼중으로 고통받아야 하나, 이런 논리를 가져오곤 하는데요.

이상헌: 그게 한국 기업과 한국 언론은 그런 문제에서는 정말 전문가들이에요. 소비자 편익 문제, 수출 경쟁력 문제, 그러다가 맨 마지막에 보면 결국 일자리 없어진다, 이런 거예요. 이런 논리의 특징이 뭐냐면, 결국 문제의 장본인인 기업은 쏙 빠져요. SPC 같은 거대 프렌차이즈 기업의 대표적인 논리가 ‘왜 점주를 괴롭히냐’는 거예요, 불매운동하면. 이렇게 교묘하게 자기는 쏙 빠지요. 그렇게 빠진 뒤에 점주와 소비자 간 진흙탕 싸움처럼 판을 만들 거든요. 그런 논리에 좀 체계적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그게 참 잘 안 돼요.

민노: 네, 참 쉽지 않은 문제죠.

이상헌: 불매운동에 대해 점주 스스로, ‘변화가 없으면 전체 파리바게뜨 매출 타격이 심각할 것 같다! 그러니 파리바게트 본사는 신속하게 대책을 마련해라. 그래야 우리가 먹고 살 수 있다!!’ 이런 논리는 가능하잖아요? (= 그렇죠) 그런데 한국의 프렌차이즈 구조는 점주들이 본사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에요.

민노: 왜죠?

이상헌: 아래의 불만을 위로 전달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에요. 굉장히 수직적인 상명하달 구조로 돼 있어요. 그래서 문제 핵심은 모든 파리바게뜨 매장에 동시에 문제가 생겼을 때, 가령 SPC 공장, SPL 공장에서 심각한 중대 산업재해 사고가 생겨서 불매운동 같은 게 일어나면, 점주가 공동으로 본사에 해결 방안을 요구할 수 있는 그런 구조가 없어요.

민노: 아… 조직의 구조, 시스템이 그렇게 구성됐다는 거군요.

이상헌: 그러니까 SPC의 잘못된 경영 철학, 경영 시스템으로 인해서 산재가 일어나고, 그런 잘못 때문에 파리바게뜨 매장 매출이 불매운동으로 줄어들더라도 그 경제적 책임을 점주가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구조를 만들어 놓은 거예요. 그런데 그런 구조적인 문제는 이야기하지 않고, 불매운동으로 점주를 괴롭히는 것처럼, 또 어떤 경우에는 아르바이트하는 학생들만 괴롭다는 식으로 나오거든요.

민노: 그렇다면 그런 구조적인 문제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이상헌: 그 논리를 깨야 하는데, 깨는 방식은 뭐냐면, ‘점주가 본사에 문제 재발을 막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도록 직접 이야기할 수 있는 내부 구조를 만들어라. 그런 의견을 전달하고, 문제 재발을 방지할 시스템을 만들면 우리는 불매운동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하고, 만약에 그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점주에겐 미안하지만, 우리는 파리바게뜨에서 빵 안 먹겠다’는 움직임이 있어야죠.

민노: 쉽지 않네요.

이상헌: 그러니까, 점주도 불편해져야 하고, 고객인 소비자도 불편해져야 하잖아요. 그게 돼야지 변화가 있을 텐데, 우리는 아직 그럴 단계는 전혀 아니고요. … 정말 아주 나쁘게 말씀드리면, 한국에선 어떤 논리까지 있으냐면요. 점주가 너무 힘드니까 나는 불매운동 그만하고, 가서 사먹을게, 이렇게 하거든요. 점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자기가 불편해지기 싫어서 내세우는 논리 잖아요. 핑계죠. 그런 식으로 핑계를 대는 거예요. 그래서 실질적인 문제에 접근하기 많이 힘들죠.

민노: 생각나는 게요. 쿠팡 물류창고에서 화재가 크게 났을 때요. 쿠팡의 실질적인 ‘오너’라는 사람이 가장 먼저 한 일이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책임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등기이사에서 자신을 제외시키는 일이었는데요. 그런 무책임한 행태에 관해 논평해주신다면요.

이상헌: 그게 아까 말씀드린 형사법적 접근, 처벌적 접근 때문에 생긴 일이에요. 지금은 ‘누가’ 책임자냐는 거잖아요. 책임자냐 아니냐, 이게 지금 운명을 가르고, 법적 다툼의 쟁점이 되는 거예요. 사람이 죽은 거는 죽은 거고, 죽었을 때 누가 책임자냐, 이것만 따져요. 그러니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최종 책임자가 경영전문가인 CEO가 됐든, 사장이 됐든, 최대주주가 됐든 간에 ‘그 사람을 처벌하면 경영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거야’라는 게 중대재해처벌법의 논리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거꾸로 만약 일이 터지면, 어떻게 형사처벌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체계나 논리를 만드느냐가 포커스예요.

민노: 참…

이상헌: 쿠팡 물류센터 화재 사건은 상징적이죠. 이제 안 거예요. 터지는 순간에 자기만 빠져나가면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걸 아는 거죠. 이렇게 되니까 실질적인 오너가 누구냐, 이게 탈법이냐 위법이냐 그런 법리적인 논쟁 대상이 되는 거예요. 그 법리적 논쟁이 어떻게 해결되든지 간에 그런 법리적 논쟁이 물류창고 화재를 방지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민노: 그렇죠.

이상헌: 그러니까 이 문제의 함정은, 계속 강조하지만, 물류창고 화재와 같은 일이 있다하더라도 기업의 경제적 손실이나 타격이 미미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기업은 안 움직이죠.

민노: 박사님 말씀은, 기업에 좀 경제적 타격이 가도록 중대재해처벌법이 작동해야 중대재해를 제대로 막을 수 있을 거다라고 정리하면 될까요?

이상헌: 네네. 과로노동과 관련한 유럽연합의 법률을 보면요.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은 어떤 경제적 이해관계에 우선한다는 규정이 맨 먼저 나와요. 모든 노동관련 법률 앞에 맨 먼저 그게 나와요. 왜냐하면 경제적인 이해를 앞세워서 과로노동 문제, 산해문제를 보려는 유인, 경향이 강해요. 유럽에도 있어요, 그런 게. 여차하면 튀어나오는 거예요, 그런 경제논리가. 그래서 그런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미망, 탐욕을 아예 원천봉쇄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거기에 못을 박아놨어요.

민노: 아주 마음에 드네요.

이상헌: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는 돈이 1억 원이 들든 1조 원이 들든 아예 이야기를 꺼내지 말라는 거죠. 생명과 안전에 관한 건 돈으로 계산할 수 없다는 게 모든 법의 기본 원리잖아요. 인간이 살아갈 권리라는 건 헌법으로 보장돼 있는 가장 원천적인 권리라서 그 권리를 다투는 상황에서는 어떤 다른 걸 따져서는 안 된다라는 거죠. 거꾸로 말하면요. 중대재해가 생겼을 때 기업은 어떠한 경제적 손실도 감당해야 한다는 게 기본원칙이 돼야 한다는 거죠.

민노: 기업이 휘청거릴 만큼?

이상헌: 경제적 손실 규모가 꽤 유의미할 정도로 규모가 커서 기업 측에서도 우리가 기업 경영 방식을 바꿔야 하겠구나, 돈이 좀 들더라도 노동자들에게 안전교육을 철저하게 해야겠구나, 안전작업도구가 좀 비쌀 수는 있어도 돈이 더 들더라도 마련해야겠구나… 그런 선택을 하게 하는 정도는 되어야겠죠.

민노: 네, 그렇겠네요.

이상헌: 그런데 그걸 안하는 이유는 뭐냐면, 비용 때문이잖아요. 귀찮고, 돈 들고, 그러니까 결국 귀찮고, 돈 드는 일은 사람이든 기업이든 피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그런 일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죠. 안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정도의 경제적 손실을 줘야 기업이 그걸 자발적으로 하겠죠. 법률이 강제하되, 기업이 그 법률의 규정을 염두에 두고 자발적으로 자율적으로 작동할 정도가 돼야죠.

민노: 끝으로, 저도 최근에야 알았는데요. 중대재해처벌법상에 중대기업재해와 더불어 중대시민재해라는 게 있던데요. 이태원 참사나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전형적인 시민재해인데….

이상헌: 아무도 몰라요. 아니 아는 사람 별로 없어요. 잘 사용하고 있지도 못하고요. 그래서 지금 시민안전기본법이라는 게 국회에서 논의 중이에요. 별도의 법체계를 만들려고 하고 있어서 중대재해법 안에 있는 ‘시민재해’는 어떻게 될지 좀 더 두고봐얄 것 같지만, 아마도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클 것 같아요.

민노: 그렇군요.

이상헌: 중대재해법 속 시민재해 규정을 어떻게 다뤄야지 하는 논의가 워낙 없기도 하고, 다른 쪽에서 다른 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면 좋겠다고 해서 지금 시민 청원이 하나 들어간 게 있기도 하고요. 아마도 그쪽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많아요. 시민재해로 인한 인명 피해가 너무 크잖아요. 가령 이태원 참사를 떠올려봐도 그렇고요. 그래서 중대재해법 안에서 처리하기는 사안 자체가 너무 커서 별도로 진행될 가능성이 클 것 같아요.

민노: 한편,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한지 2년쯤 됐는데요(21년 1월 27일부터 시행). 여전히 중대재해처벌법 하면 떠오르는 상징적인 사건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중대재해는 꾸준히 일어났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중대기업재해는 물론이고 중대시민재해(이태원 참사, 오송지하차도 참사 등)까지…

이상헌: 아무래도 형사처벌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까요. 형사 사건은 다툼의 여지도 많고, 1심과 2심 상고심까지 절차도 길고요. (= 입증 요구 수준도 민사와 비교하면 훨씬 높고요.) 그렇죠. 큰 이정표가 될만한 사건, 판결이 지금까지 아예 한번도 나오지 않았고, 혹 나온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좀 더 걸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맞는 말씀이에요.

민노: 박사님 말씀을 들어보니, 아직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긴 하네요.

이상헌: 그리고 대기업은 법적 다툼을 하는 데는 전문가잖아요. 지난 반세기 넘게 그런 법률적인 리스크만 공부해온 부서가 있고, 그런 법률 전문 인력이 있어서 대기업은 중대재해처벌법을 법리적인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을 공산도 있어요.

민노: 그리고 기업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께도 ‘아, 이런 중대재해가 일어나면 정말 큰 책임을 지는구나’ 하는 상징적인 사건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죠… 그래야 더 신경쓰고 조심할 텐데요.

이상헌: 여기저기서 조사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듣지만, 강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상징적인 사건은 아직은 없고요. 가끔씩 큰 사건이 일어나면 장관이나 대통령이 한마디씩 나와서 세게 이야기하는 그런 건 있죠. 그런 정치적 메시지는 얼핏 나오는 것 같기도 한데, 그 정치적 메시지와도 지금 중대재해처벌법이 작동하는 방식이나 지금까지 내놓은 결과물과는 상당한 격차가 있는 거죠.

민노: 중대재해법의 체계적인 구조나 처벌 수위 등은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이상헌: 전보다는 여러 측면에서 진일보한 면이 많지만, 가장 아쉬운 건 중소기업(50인 미만)이 빠진 거예요. 그래서 이 법은 반쪽짜리 법도 아니에요. 지금 한국 산재사고는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에서 생기는 거고, 그건 양적으로 그렇지만, 질적으로도 심각한 산재 비중은 중소기업이 훨씬 더 높아요.

민노: 그렇죠.

이상헌: 현재 중대재해법의 기본 논리는요.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잘못한 기업 책임자에게 형사 책임을 지게 한다(A). 그러면 기업 책임자에게 형사책임을 부담지우지 않기 위해 산업안전에 관한 전반적인 경영 변화가 있을 것이다(B). 이런 건데요. 지금은 A와 B가 뚝 떨어져 있어요.

민노: A와 B가 뚝 떨어져있다?

기업은 형사처벌 문제, 그 법리적 문제만 똑 떼어 가져가서 생각하는 거죠. 그걸 통해서 어떤 체계적인 변화를 만들겠다, 노동자가 안전한 시스템을 새롭게 만들겠다는 생각을 안 해요. 그러니까 법이 기업에 주려던 메시지나 규범의 전달 체계랄까, 그런게 적용되고 있지 않는 게 현재 상황이고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 중에 하나가 이 전달 체계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50인 미만 법 적용 유예)에 빠져 있어요.

민노: 지금 당정(윤석열+국민의힘)은 그것마저도 다시 유예하겠다는 건데요. 지금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산재 사망자 비중이 60%를 넘는다고 알고 있습니다(2013~2022년 산재사망자 수 1만9850명, 50인 미만 사업자 사망자수 1만2045명, 비중은 60.7%).

이상헌: 네, 치명적인 산재사고는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에서 더 많이 일어납니다. 중소기업 적용을 이미 2년 유예하면서 준비 기간을 주자고 했는데, 그걸 또 유예하자는 거잖아요. 기본적으로는 당연히 반대하는데, 논리상으로는 이해가 되요. 2년 줬지만, 여전히 아직도 준비가 안 됐기 때문에 더 준비해야 한다는 얘긴데, 맞아요. 그런데 이건 정말 노동법에 관한 해묵은 패턴이기도 하죠.

민노: 노동법에 관한 패턴이요?

이상헌: 노동법에 관해선 반복되는 패턴이에요. 예를 들어서 노동시간도 있잖아요. 처음에는 대기업 중심으로, 그 다음은 중소기업, 그 다음은 소기업, 이런 식으로 점차 하자는 논리는 맞죠. 준비 능력이 다르니까요. 노동 관련 제도에서는 지난 30~40년째 계속 그렇게 ‘단계적 적용’ 원칙을 고수해왔어요.

민노: 생각해보니 항상 그랬던 것 같기는 합니다.

이상헌: 그런데 일본도 그렇게 해요. 그렇게 하는데, 단계적 적용을 유난히 좋아하는 나라가 한국이에요. 다른 나라는 그렇게 안 하거든요.

민노: 다른 나라는 ‘단계적 적용’ 방식을 채택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이상헌: 노동법의 존재 이유 때문이에요(여기서 노동법은 광의의 노동관련법을 지칭함. 편집자). 노동법은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 그런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 기준을 만드는 거잖아요. 노동법은 노동자에게 특별한 혜택을 주거나 그 권한이나 권리를 다른 계층보다 더 두텁게 보장하자는 게 아니에요. 최소한을 그 최소한을 마련하자는 거죠. 그러니까 그 최소한을 마련하는데 유예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사실은.

민노: 아! 그렇네요!!

이상헌: 그런데 한국에서 노동법은 하도 단계적으로 적용하다보니까 마치 노동법이 노동자 권익의 중간 이상 혹은 최대치를 설정하는 법처럼 ‘착각’하는 현상이 생겼어요. 조금 이상하게 돼버린 거죠. 그러니까 외국에서는 노동법 만들 때 항상 취약 계층에 적용될 법이기 때문에 유예기간와 같은 부가적인 조건을 거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민노: 외국에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준비 역량은 차이가 있을 텐데요.

이상헌: 그래서 외국은 유예 기간 같은 조건을 걸기보다는 중소기업이 어려울 것 같으면 지원 정책이 들어가요. 예를 들어서 금전적인 어려움이 있을 것 같으면 사회보장 기여금을 줄인다든지, 세제 혜택을 준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접근하죠. 법률 자체의 적용을 유예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간혹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처럼 이렇게 노동 관련 법률이 나올 때마다 이렇게 일관되게 유예기간을 적용하는 나라는 많지는 않아요.

민노: “일관되게”라고 하셨는데요. 소위 진보정권과 보수정권이 차이가 없었다는 말씀인가요?

이상헌: 그렇죠. 진보 정부도 노동시간 단축한다고 푸시하면서, 처음에는 유예 조항이 당연히 없죠. 그러다가 국회 논의 과정에서 반대가 있으니까 법을 통과시키긴 해야겠고, 일단 통과시키고 유예 조항 적용하자는 식으로 후퇴하는 건데요. 가령 주 40시간 노동 같은 경우도 대기업은 일단 40시간을 원칙으로 하고, 추가 노동은 야근 같은 걸 하면서 돈으로 해결하면 되니까 사실 크게 부담이 될 정도는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제도를 연착륙시키기 위해 자꾸 그렇게 했고, 그게 약간 습관이 된 것 같아요.

민노: 습관이 된 것 같다?

이상헌: 이제 법률에 유예 조항을 넣어서 2년 뒤에 없앤다고 하면 ‘그게 될까?’ 사람들도 기업도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유예 조항을 다시 유예하자는 용산과 국민의힘 주장을 그렇게 놀라워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노동법 공부하는 학자나 정치하는 사람들은 특히나 ‘그럴 줄 알았다’고 할 거고, 야당 입장에서도 특별하게 놀랄 일은 아니겠죠. 물론 50인 미만 유예가 끝나기를 기대했던 분들께는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기다리셨을 텐데, 또 이런 상황이 오니까 굉장히 실망하시겠죠.

민노: 아까 말씀처럼 노동법은 최소한인데요. 정말 중요한 최소한인데….

이상헌: 그렇죠. 노동시장을 늘리고 줄이고, 임금을 높이고 그런 문제도 아니고 현장 노동자의 ‘삶과 죽음’에 관한 문제인데, 이런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이제 자꾸 유예하는 패턴, 습관이 반복되면 실망스럽죠.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은 특히 많은 분들께서 이야기했던 거고, 여야를 떠나서 의견을 모았던 이슈고, 최근에는 대통령이나 장관도 정치적 메시지로는 그 방향성을 분명히 했던 상황이라서, 저도 개인적으로 아주 아쉬워하고 있어요. 물론 아직 명확한 결론이 난 상황은 아니지만요.

민노: 유예 조항조차 다시 유예되는 이 상환, 그런 팬턴이나 습관은 정치적 타협과 조율의 묘라고 봐야 할까요. 아니면 힘의 논리에 따른 개혁의 후퇴로 봐야 할까요. 물론 개별 케이스마다 좀 다르겠지만, 어떤 속성이 더 지배적이라고 보시나요?

이상헌: 두 가지 속성이 다 있는 것 같아요. 힘의 역학 관계가 쉽지 않으니까 타협을 하는 거고, 국회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제가 걱정하는 건,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는데, 습관화됐다고 해야 할까요? 법률 제정과 법률 적용에서의 유예 방식습관화는 한국 노동시장 분절화를 더 가속화한 측면이 있어요.

민노: 법률의 습관적 유예 방식이 노동시장 분절화를 가속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요.

이상헌: 항상 기업 크기별로 중소기업은 유예 적용돼왔기 때문에, 중소기업은 노동시간이 길어지고, 임금도 중소기업은 더 낮아지고… 그런 경향을 가속했다는 거죠. 그리고 위험의 외주화 현상, 양극화도 법률이 그걸 조장하는 측면이 있어요. 대기업 입장에서도 좀 위험한 일이 있으면 노동법 적용이 유예되는 중소기업에 하청기업에 떠넘기면 되니까요. 법률이 부정적인 경제적 유인 체계를 만들어내는 거죠.

민노: 우리나라 제도와 그 적용 과정을 설명해주셨는데요. 외국은 어떤가요? 중대재해처리법 같은 게 보편적인 법제로 존재하는 나라들이 있나요?

이상헌: 중대재해처리법, 이런 법 외국에는 없어요.

민노: 아, 그런가요. 의외네요.

이상헌: 외국, 평균적인 선진국은 경제가 성장하면서 중대재해가 꾸준히 줄었어요. 법률적 개입, 단체협상 등을 통한 노동자의 개입, 사회적인 개입을 통해 산재 문제가 사회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의제가 돼서 중대산업재해를 꾸준히 줄여왔죠. 그래서 현재는 오히려 산업재해가 중요한 사회적 의제가 아니에요.

민노: 아, 그런 맥락에서 외국의 선진국은 산업재해가 현재는 큰 사회적 이슈가 아니군요. 우리나라 쿠팡이나 SPC 같은 일이 터지면 어떻게 되나요?

이상헌: 그런 일이 생기면, 기존 법률 체제가 작동하죠. 그래서 사업자 처벌, 형사적 처벌과 더불어 경제적 처벌까지 다 하게 돼 있어요. 그리고 그런 일이 생기면 사회적 불매운동도 대단하죠.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다는가 하는 일이 생기면 당장 사회적인 압력이 들어가고, 동시에 법률적인 제재가 작동하죠.

민노: 그렇군요.

이상헌: 그런데 지난번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경제 성장과 산재는 서로 반비례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만 그런 경향에서 예외에요. 아웃라이너죠. 그렇게 답이 없으니까, 안되니까 이런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법률적인 수단을 동원하게 된 거죠.

민노: 외국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없는 건 우리와는 사정이 정반대네요.

이상헌: 그러니까요. 그래서 중대대재처벌법 외국에는 없는 걸 왜 우리만 하려고 하느냐고 말하는 분도 있는데요. 거꾸로죠. 한국 상황이 외국 선진국 상황돠는 너무 다르고, 너무 예외적이라서 특단의 법률적 조치가 필요했던 거고요. 그래서 외국에 법이 있네 없네, 이런 걸로 싸울 필요도 없어요.

민노: 질문 자체가 잘못된 거였네요. 외국 선진국은 기본적으로 기존 시스템을 통해서 산재를 줄이고, 중대재해가 생기면 사회적인 압력은 물론이고 기존 법제를 통해서도 충분히 제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건데, 우리는 경제 규모에 비해 산재를 제대로 줄이지 못해서 오히려 이런 특별한 법이 필요했던 셈이니 오히려 그런 상황을 안타까워하고 부끄러워해야 하는 거였네요. 그런 상황에서 외국 중대재해처벌법 안 하니까 우리도 하지 말자라는 논리는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무지하고 엉뚱한 주장인 셈이네요.

이상헌: 말이 안 되는 거죠. 가령 우리는 전 세계에서도 특수한 분단 상황이잖아요. 그런 특수성 때문에 이런 저런 법을 만든다고 하고, 폐지하지 못한다고 하고 그러잖아요. 물론 그렇게 악용되는 국가보안법 같은 경우도 있지만요. 그런데 그런 관점으로 보면, 우리나라에서 남북 관계보다 더 특수하고, 예외적인 상황은 산재인 거죠. 외국 선진국과 비교하면 산재, 노동 문제만 우리나라는 그 경제 규모에 맞지 않게 동떨어진 경향성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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