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2015년이었습니다.

H씨는 주식회사 케이이씨(이하 KEC) 소속 노동자였습니다. H씨는 당시 노사분쟁 사건으로 대구지방검찰청 김천지청으로부터 DNA 감식 시료 채취 요구서를 받았습니다. H씨를 비롯하여 이때 채취 대상이 된 KEC 노동 조합원은 48명이었습니다.

이들 다수는 평조합원으로서 직장폐쇄의 철회를 요구하며 공장 점거 농성만을 벌였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DNA법’)이 정한 대상범죄에 해당한다고 하여 강압적으로 DNA가 채취되었습니다.

KEC 노동자는 이런 DNA 채취가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2016년 헌법소원을 청구하였습니다(2016헌마344 사건). 지난 2018년 8월 30일, 헌법재판소는 H씨와 KEC 노동자들의 헌법소원에 관하여 헌법불합치를 결정하였습니다. DNA 감식 시료 채취 영장 발부 과정에서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지 아니하고 불복절차를 두지 아니한 DNA법 제8조는 침해의 최소성 원칙과 과잉금지원칙에 위반하여 위헌이라는 취지였습니다.

현행 DNA법은 그 대상범죄의 폭이 너무 망라적이고, 죽을 때까지 그 정보를 보관하는 등의 문제로 비판받는다.
현행 DNA법은 그 대상범죄의 폭이 너무 망라적이고, 죽을 때까지 그 정보를 보관하는 등의 문제로 비판받는다.

[toggle style=”closed” title=”2016헌마344 헌법불합치 결정요지 “]

“이 사건 영장절차 조항은 이와 같이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디엔에이감식시료 채취 과정에서 중립적인 법관이 구체적 판단을 거쳐 발부한 영장에 의하도록 함으로써 법관의 사법적 통제가 가능하도록 한 것이므로, 그 목적의 정당성 및 수단의 적합성은 인정된다.

디엔에이감식시료채취영장 발부 여부는 채취대상자에게 자신의 디엔에이감식시료가 강제로 채취당하고 그 정보가 영구히 보관ㆍ관리됨으로써 자신의 신체의 자유,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의 기본권이 제한될 것인지 여부가 결정되는 중대한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영장절차 조항은 채취대상자에게 디엔에이감식시료채취영장 발부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진술할 수 있는 기회를 절차적으로 보장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발부 후 그 영장 발부에 대하여 불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거나 채취행위의 위법성 확인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구제절차마저 마련하고 있지 않다. 위와 같은 입법상의 불비가 있는 이 사건 영장절차 조항은 채취대상자인 청구인들의 재판청구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므로,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반된다.

이 사건 영장절차 조항에 따라 발부된 영장에 의하여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를 확보할 수 있고, 이로써 장래 범죄수사 및 범죄예방 등에 기여하는 공익적 측면이 있으나, 이 사건 영장절차 조항의 불완전ㆍ불충분한 입법으로 인하여 채취대상자의 재판청구권이 형해화되고 채취대상자가 범죄수사 및 범죄예방의 객체로만 취급받게 된다는 점에서, 양자 사이에 법익의 균형성이 인정된다고 볼 수도 없다.

따라서 이 사건 영장절차 조항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청구인들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

입법자가 이 사건 영장절차 조항의 입법상 불비를 개선함에 있어서, 채취대상자의 의견 진술절차를 마련하는 데에 그칠 것인지, 영장 발부에 대한 불복절차도 마련할 것인지, 나아가 채취행위에 대한 위법성 확인 청구절차까지 마련할 것인지, 이들 절차를 구체적으로 어떠한 내용과 방법으로 만들 것인지 등에 관하여는 이를 입법자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위와 같은 입법상의 불비는 개선입법을 함으로써 제거될 수 있음에도, 이 사건 영장절차 조항에 대하여 단순위헌결정을 하여 그 효력을 즉시 상실시킨다면, 디엔에이감식시료 채취를 허용할 법률적 근거가 사라지는 심각한 법적 공백 상태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사건 영장절차 조항에 대하여 단순위헌결정을 하는 대신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하되, 입법자의 개선입법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 적용을 명하기로 한다.”

-헌법재판소 2018. 8. 30 자 2016헌마344ㆍ2017헌마630 결정 ‘판결요지’ 중에서

[/toggle]

위법 수집된 DNA, 하지만 삭제는 안 된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H씨는 대검찰청에 국가 데이터베이스에 수록된 본인의 DNA 신원 확인 정보를 삭제해달라는 민원을 제출했습니다. H씨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후에도 자신의 DNA 정보가 국가에 보관되어 수시로 범죄수사에 활용되는 데 대하여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H씨의 DNA 신원 확인 정보는 위헌적으로 채취되어 보관 중인 위법한 정보이므로 마땅히 삭제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대검찰청은 사망, 무죄, 면소 등 DNA법에서 정한 삭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해당 민원을 거부했습니다.

위법하게 수집돼 '헌법불합치' 결정받은 내 DNA를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는데 그 요청을 거부한 대검찰청
위법하게 수집돼 ‘헌법불합치’ 결정받은 내 DNA 정보를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는데 그 요청을 거부한 대검찰청

DNA는 지문 등 다른 신원확인정보나 의료정보 등 다른 민감정보와 비교하여도 고도로 민감한 개인정보로 간주됩니다. DNA는 단순 신원확인을 위한 정보뿐 아니라, 개인의 과거와 현재의 병력, 건강상태, 장래의 발병가능성까지 예측할 수 있는 정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자연적으로 변화하거나 인위적으로 변경할 수 없으며 특정 가계의 의학적 생물학적 정보를 함께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수년에 걸쳐 파업 노동자와 시민사회 활동가들은 물론 노점상 철거에 항의하는 노점상 활동가를 비롯, 학내 민주화투쟁을 이유로 대학생들에게도 지속적으로 DNA 채취를 요구해 왔습니다. 위법성의 정도를 판단하지 않고 재범의 위험성에 대한 고려 없이 무분별하게 이루어진 검찰의 DNA 감식 시료 채취 및 DNA 신원 확인 정보의 국가 데이터베이스 수록은 헌법재판소가 지적했듯이, DNA 채취 대상자를 범죄 수사나 범죄 예방의 객체로만 취급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것 입니다.

내 DNA의 주인은 누구인가? 

현행 DNA법 제13조에 따르면 당사자가 사망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형인 등이 재심에서 무죄, 면소, 공소기각 판결 또는 공소기각 결정이 확정된 경우 또는 구속피의자가 검사로부터 혐의 없음 등의 처분을 받거나, 법원의 무죄, 면소, 공소기각 등의 판결이 확정된 경우에 한하여 삭제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개별적인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일률적으로 DNA 신원 확인 정보를 사망 시점까지 저장하는 것은 최소 침해 및 법익 균형성의 원칙에 반하여 기본권을 침해합니다. 따라서 검찰이 삭제 신청을 거부한 처분의 근거로 삼고 있는 DNA법 제13조는 위헌·무효이고, 위헌·무효인 법률의 규정에 근거한 거부 처분은 위법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기본권 보장의 측면에서, H씨의 경우처럼 채취 요건을 구비하지 않았거나 절차 규정을 위반하여 DNA 신원 확인 정보가 보관된 경우 국가로서는 개인의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보완하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DNA 신원 확인 정보의 삭제가 필요하다면 그에 관한 규정을 두어서 이를 마땅히 허용해야 합니다.

DNA
DNA 수집은 2010년 ‘디엔에이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DNA법)이 발효되면서 시작됐다.

 

이제 소송이다!

이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전국금속노동조합 KEC지회, 진보네트워크센터는 6월 11일 H씨에 관한 대검찰청의 ‘DNA신원확인정보 삭제신청에 대한 거부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노동조합 파업 농성과 관련하여 DNA가 채취된 원고 H씨는 이번 행정소송에서 위헌법률심판제청도 신청할 예정입니다.

이번 소송은 민주사회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의 공익변론기금의 지원을 받아 공익소송으로 진행됩니다.

내 DNA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이제 법원이 답할 차례입니다.

법원 재판 판결 정의 검찰

 

 

[divide style=”2″]

[box type=”note”]

이 글의 필자는 진보네트워크 정책활동가 ‘미루’ 님입니다. (편집자)

[/box]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