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부모 됨은 인생이 완벽하지 않음을 가르쳐 주는 학교”

-마이클 샌델

새벽. 한 페이스북 친구의 갓난아이가 입원해 있다는 말에 위로 글을 쓰며, 아이가 신생아 집중치료실과 소아암 병동에서 보낸 1년 2개월을 떠올렸다. 이어서 아이를 ‘온전히 받아들인’ 순간을 떠올렸다.

태어난 아이에게 암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처음엔 부인하고 부정했다. 믿기지 않았다. 그러던 아이를 처음 받아들이게 된 건, 신생아집중치료실에 있던 아이를 의사에게 사정하여 처음 안았을 때였다.

2.7kg 아이가 마치 270톤 정도의 무게로 다가왔다.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비로소 이 아이가 내 아이이며, 그저 이 상태 그대로 받아들여야 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불완전하지만 그 자체로 완전한 삶 

그때 느낀 그 무게는 이후로 계속 내 몸에 남아 있다. 암과 힘겹게 투쟁하고 이겨내는 아이를 보며, 아이에게 주어진 몫의 삶을 주도적으로 잘 살아 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 그 옆에서 “불완전하지만, 그 자체만으로 완전한” 한 삶을 받아들이고 돕는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알았다. 나도 아이의 원초적인 투쟁의 모습을 배워 나갔다. 기쁘게 삶의 무게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방법을 조금씩 배웠다.

지하철과 버스, 건물에서 겪는 휠체어 이동의 어려움을 알리려고 휠체어를 탄 지민이 이야기를 연재했던 것도, 휠체어 여행 책을 낸 김건호 씨와 함께 ‘장애가 무의미하게 되는 사회를 위한’ 무의(muui)에 참여한 것도, 장애가 장애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상을 조금이나마 넓혀 가는 것이라는 목적을 위해서였다.

이 삶은 완벽하지 않다. 여전히 대개 엘리베이터가 없는 작은 건물에는 아이를 안고 올라가야 하고, 다리가 후들거려 주저앉지 않게 조심해야 하고, 그나마 안을 수 있는 체력이 있는 걸 고마워하고, 아이의 병원비와 치료비를 평생 걱정해야 할 것이며, 적절한 치료 공간과 환경을 찾기 위해 이사와 이민을 끊임없이 고민할 것이다.

변화를 만들고 확산하고 

나의 삶도, 지민이를 위한 여정도 완벽할 리 없다. 그 여정은 완전하지 않기에 노정은 종종 수정됐었다. 상일동역은 4년 동안 줄기차게 얘기해도 엘리베이터를 놔주지 않았다. 그래서 문제를 좀 더 확대해서 지하철 환승역에 대한 스토리를 연재하고 모금했다.

지하철에 스티커를 붙여 휠체어 경로를 표기하고자 했지만, 불법이라고 했다. 휠체어용 지하철 앱을 만들고 싶었지만, 실내 거점을 표기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다. 지하철 환승 경로를 표기한 앱이 이미 있었지만, 보기도 불편했고 업데이트가 되지 않고 있었다.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 와중에 도시철도공사 분을 만나게 됐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 표지판이 바뀌었다.

2, 4, 5호선이 교차하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지하 5층. 5호선에서 4호선으로 이어지는 엘리베이터 안내문. (왼쪽은 올해 4월, 오른쪽은 8월 모습) 예전에는 5호→4호선 환승경로만 표시돼 있었는데, 이제 5호→4호선→2호선까지 모두 표기하고 있다.
2, 4, 5호선이 교차하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지하 5층. 5호선에서 4호선으로 이어지는 엘리베이터 안내문. (왼쪽은 올해 4월, 오른쪽은 8월 모습)
예전에는 5호→4호선 환승경로만 표시돼 있었는데, 이제 5호→4호선→2호선까지 모두 표기하고 있다.

이어 뜻있는 교수님과 학생들이 가장 환승이 어려운 역의 환승 컨텐츠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실행 중이다. 작년 크라우드펀딩을 하며 아이와 환승하기 너무 어려웠던 왕십리역에도 학생들이 휠체어를 타고 다시 가봤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휠체어가 보기 좋은 바닥 표지판이 생겼다.

조그마한 변화를 만들고, 확산하고, 그리고 결국 지민이가 자랐을 때는 건호 씨처럼 ‘유쾌하게 휠체어 여행’할 수 있는 마음가짐과 환경을 조금이나마 만들어가고 싶다. 그 노정은 또 장애물을 만나면 수정될 것이지만, 목표 방향은 같다.

‘부모가 된다는 것’의 의미 

마이클 샌델의 책인 [완벽에 대한 반론](The Case against Perfection)은 ‘선택하지 않은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해 논한다.[footnote]마이클 샌델의 책 리뷰 내용은 Jason Kang 님의 페이스북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footnote]

“부모 노릇이 배움의 경험이자 도덕적 발전의 기회가 되게 하는 방법 중 하나는 부모로서 아이를 원하는 대로 선택하지 못한다는 점을 배워 나가는 것이다.” (마이클 샌델)

“One of the ways in which parenting is a learning experience and an opportunity for moral growth is that we learn as parents that we don’t choose the kind of child that we have.”

지민이가 태어난 후 나의 삶은 아마 이 태도를 배워 나가는 과정이었으리라. 지민이가 태어났을 때 ‘이런 경우 포기하기도 한다’고 얘기한 의사가 두 명 있었다. 포기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 과정은 지난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 아이는 불완전하지만, 그 자체만으로 완전하다.

[divide style=”2″]

2006년 2월의 일기

어제, 태어난 지 25일째 된 너를 품에 처음 안아봤지.
엄마가 들어갔을 때 울고 있었던 너.
엄마가 왔단 걸 알기라도 한 듯 인큐베이터를 두드리는 엄마와
까만 눈을 잠시 맞추고는 다시 울기 시작했지.
너무 울어서인지 목이 쉬어 버리고 울음소리도 연약해진 너.
인큐베이터를 껴안고 엉엉 울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분유병을 갖다 줄 간호사를 찾아 두리번거렸어.
옆에 곤히 잠든 미숙아와 그 엄마가 어찌나 부러웠던지.
울지도 않고 보채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고,
조금만 더 인큐베이터에 있으면 ,
그 옆에 있던 아기가 며칠 전에 퇴원한 것처럼
그 아기도 엄마의 품으로 갈 수 있으니까.

지민이
지민이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간호사가 설사로 짓무른 네 엉덩이에 새 기저귀를 대주고,
속싸개로 조심스럽게 온몸을 감싼 너를 엄마한테 안겨줬지.

엄마랑 눈을 맞추며 가냘프게 젖병을 빠는 너의 몸을,
2.7kg밖에 안 되는 네 몸무게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엄마는 후회했단다.
널 포기하라고 한 의사들의 말을 흘려보내지 못한 것을.

IF

이렇게 살려고 우유를 열심히 먹는데.
포기할 수는 없지. 암 그렇고말고.
너의 작은 척추 속에 가득 차 있는,
배에 아령처럼 들어 차 있는,
나쁜 세포들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것은 너인데,
엄마는 마음의 괴로움도 참지를 못했구나.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아가야.

IF

[box type=”note”]

필자 평범엄마(홍윤희) 님은 카카오 ‘스토리펀딩’에 [휠체어 여행도 유쾌할 수 있어]를 연재 중입니다. (편집자)

바로 가기: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8431

[/box]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