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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만하면 떠도는 가짜 뉴스 가운데 장기적출 괴담이라는 게 있다. 파티에서 잘 생긴 남자(또는 예쁜 여자)를 만나서 호텔 방에 따라갔는데 술 한 잔 마시다 정신을 잃고 깨어나서 보니 얼음이 가득 담긴 욕조에 누워있더라는 이야기. 욕조 근처에 붉은 글씨로 메모가 붙어 있어서 보니 “119로 연락해라, 아니면 너는 죽는다”라고 적혀 있다. 알고 보니 잠든 사이에 옆구리를 가르고 콩팥을 떼어간 다음 얼음 욕조에 담궈 둔 것이다.

조직행동론의 권위자, 칩 히스와 댄 히스 형제가 쓴 [스틱! 1초 만에 착 달라붙는 메시지, 그 안에 숨은 6가지 법칙]이란 책 첫 부분에 나오는 이야기다. “가장 성공한 도시 괴담”으로 꼽히는 이 이야기는 한국 언론에도 여러 차례 진짜 기사로 등장한 적 있다. 이 이야기는 수백 가지의 다른 버전이 있는데 세 가지 포인트는 동일하다. 첫째, 약을 탄 술, 둘째, 얼음으로 가득 찬 욕조, 그리고 콩팥 적출이다.

이 책에서는 성공하는 이야기의 여섯 가지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1. 첫째, Simple(간단하게),
  2. 둘째, unexpected(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3. 셋째, concrete(구체적으로),
  4. 넷째, credible(믿을 만하게),
  5. 다섯째, emotional(감정에 호소해서),
  6. 여섯째, stories(이야기)로 풀어내라는 것이다.

장기적출 괴담은 SUCCESs의 여섯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최고의 낚시질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이야기는 굉장히 강렬하면서도 기억하기 쉽다. 이런 이야기 들어봤어? 친구들과 정수기 앞에서 가볍게 이야기를 건네기에도 좋다. 매력적인 이성과의 원 나잇 스탠드가 만든 예측 불허의 끔찍한 결말, 어딘가 실제로 있을 법한 일이면서도 끝없이 공포를 자극하는, 그야말로 ‘딱 달라붙는(move to stick)’ 이야기다. 우리가 열광하는 이야기들, 실제로 세상을 뒤흔드는 이야기들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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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달라붙는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SBS가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을 보도한 지난 1월15일 이후 한 달 가까이 손혜원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가 1만5,000건 이상 쏟아져 나왔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런 종류의 기사는 기사 가치와 별개로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고, 이슈의 흐름을 뒤바꿔 놓을 때도 많다. 같은 기간 동안 재판 청탁 의혹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같은 당 서영교 의원의 기사는 3,000건이 조금 넘는 정도에 그쳤다.

SBS는 손 의원이 목포 대의동 일대에 문화재 거리가 지정되기 전에 친척과 측근을 내세워 인근의 부동산을 대거 매입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국회의원만 알고 있는 공개되지 않은 정보를 이용했을 가능성과 국정감사에서의 문제의 발언, 차명으로 부동산을 거래한 정황, 그리고 인근 부동산 가격이 네 배 가까이 뛰어올랐다는 코멘트 등 ‘섹시한’ 기사가 계속 쏟아졌고, 다른 언론의 후속 보도도 잇따랐다.

물론 손 의원이 오해 받을 만한 행동을 한 것은 사실이고, 이익 충돌 논란이 결코 가볍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SBS 보도에는 손 의원이 조카에게 부동산 매입 자금을 증여하면서 증여세를 모두 납부했다는 사실이 빠져 있었다. SBS는 문제의 건물 9채가 다 쓰러져가는 낡은 건물이라는 사실도 언급하지 않았다. 네 배나 올랐다는 코멘트를 인용하면서도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지 않았다.

2019년 1월 15일 자 SBS 메인뉴스 보도화면 중에서
2019년 1월 15일 자 SBS 메인뉴스 보도화면 중에서

만약 SBS가 이런 맥락을 충실하게 보도했다면 기사의 파장이 지금처럼 크지 않았을 수도 있다. SBS 보도가 던지는 메시지는 집권 여당의 실세 의원이 개발 호재를 미리 알고 주변 사람들을 동원해 차명으로 부동산을 매입하고 국정감사 등에서 이 지역에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부동산 가격이 뛰어올라 큰 이익을 봤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분노를 끌어올리는 탐사 보도 기사였다.

SBS가 의도적으로 사실 관계를 누락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많은 기자들이 빠지는 함정이 기사의 ‘야마’를 위해 사실을 가감하거나 경중을 가르는 것이다. ‘야마’는 산(山)을 뜻하는 일본 말, ‘야마(やま)’에서 유래한 언론계 속어다. 주제 또는 핵심 등의 말로 바꿔 쓸 수도 있겠지만 흔히 ‘야마를 잡는다’고 하면 단순히 주제를 부각시키는 정도를 넘어 핵심을 강조하고 기자의 관점을 강하게 드러내는 기사 쓰기 방식을 말한다. (부득이하게 속어를 쓰는 걸 양해해 주길 바란다. 바꿔야 할 문화지만 이 글에서는 더 정확한 표현을 찾지 못하겠다.)

‘야마’가 강한 글은 잘 읽힌다. SBS 보도는 “손혜원이 차명으로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강력한 ‘야마’가 있었기 때문에 폭발적인 화제가 됐던 것이다. 차명 거래로 보기 어렵다거나 투기인지 아닌지 논란이 된다거나 애초에 부동산 투기보다는 이익 충돌을 야마로 잡았다면 재미없는 기사가 됐을 것이고,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말이냐는 정도의 반응과 함께 쉽게 사그라들었을 수도 있다. 기자들이 ‘야마’의 함정에 빠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강력한 이야기는 강력한 ‘야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SBS는 스스로 자신이 잡은 ‘야마’에 경도돼 반론을 듣는 데 소홀했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종종 뉴스가 뉴스가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SBS는 손 의원의 투기 의혹이 논란이 되자 투기 의혹이 아니라 이익 충돌을 문제 삼은 것이라고 물러섰지만, 언론이 기사에 대한 해명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이미 실패한 것이다. 강력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강력한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강력한 ‘야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손혜원 기사가 수천 건씩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오히려 더욱 강력한 이야기는 SBS의 보도가 적절했는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손혜원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사라지고 있는 이슈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도 있다. ‘선한 의도’였다는 손 의원의 해명과 달리 애초에 의도는 중요한 게 아니고, 법적 처벌과 별개로 손 의원의 행동이 지탄 받을 행동이었다는 사실을 조목조목 짚는 기사도 필요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언론사 데스크라고 생각해 보자. SBS 보도 이후 쏟아진 1만5,000여 건의 기사는 이미 터진 이슈를 추격할 뿐 아무런 새로운 사실도 관점도 담지 못하는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뉴스가 뉴스를 만들고 뉴스가 이슈를 키우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우리가 보고 듣는 뉴스의 상당 부분이 이렇게 만들어지고 키워지면서 급기야 꼬리가 몸통을 뒤흔드는 지경에 이른다.

미디어 산업 전반에 걸쳐 콘텐츠 패키지가 해체된 지 오래지만 대부분 언론사가 여전히 패키지 방식의 생산 시스템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명 인사가 법정에 출석할 때 구름처럼 기자들이 모여들고 포토 라인을 가리지 말라며 아우성을 치는 것도 익숙한 장면이지만, 결국 경쟁력 없는 컨베이어 벨트에 중복해서 과잉 투자를 하고 있는 답답한 현실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신문 폐지 뉴스

이런 시스템에서 만들어진 콘텐츠는 유통 기한이 매우 짧거나 대부분은 만들자마자 버려진다. 거의 똑같은 수백 건의 기사, 내일이면 아무도 찾지 않을 그저그런 일과성 기사에 열정 넘치고 사명감 넘치는 기자들을 몰아넣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약간씩 다르고 중요한 논조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 많은 독자들이 그런 차이를 의식하지 않으며 그런 차이를 찾기 위해 콘텐츠를 패키지 단위로 구매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여러 언론사 전략 담당자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거나 컨설팅을 할 때가 많다. 2013년부터 구독 매출이 광고 매출을 뛰어넘은 뉴욕타임즈의 사례나 디지털 전환을 서두르고 있는 워싱턴포스트 등의 사례를 소개하는 것은 쉽다. 쿼츠나 디인포메이션, 악시오스 같은 해외 사례들, 닷페이스나 더파크, 디에디트 같은 눈부신 스타트업 사례들을 늘어놓는 것도 쉽다. 그러나 그때마다 돌아오는 질문은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다.

바뀌지 않는 데스크들과 낡은 콘텐츠 생산 방식

불편한 진실 하나는 변신에 성공한 언론사들이 혹독한 구조조정을 치렀다는 사실이다. 뉴욕타임스는 2008년 이후 여섯 차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2017년에는 100명 감축을 목표로 1,300명 가운데 87명에게 희망퇴직을 받았고, 23명을 해고했다. BBC 역시 2011년 말 1만9,767명에서 2016년 말 기준 1만8920명으로 847명을 줄였다. 보도본부 소속 8,100명 가운데 415명을 정리 해고하고, 디지털 뉴스 부분에 195명을 새로 채용했다.

에밀리오 가르시아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장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1,000번의 실패를 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동영상을 하고 싶지 않다면 우리에게서 배우라고 할 만큼 엄청난 실패를 했죠.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동영상이었어요. 이런 걸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아무도 공유하지 않았죠. 정말 끔찍했어요. 저도 공유하지 않았어요. 이 사람들을 내보내고, 새로운 그룹을 고용했고 지금은 훨씬 나은 동영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한국의 ‘레거시(유물)’ 미디어들이 당면한 딜레마사람을 자를 수도 없고 자른다고 해도 당장 새로운 사람을 뽑을 수 없다는 데 있다. 학교에서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어디 가르쳐 주는 학원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른 언론사에 잘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스카우트라도 해오겠지만, 모든 언론사가 고민하는 문제다. 결국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직접 노하우를 터득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

딜레마 과제 물음표 숙제 고민

나는 여러 언론사들에 이렇게 조언하곤 한다. “새로운 뭔가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낡고 경쟁력 없는 것들을 버리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만들자 마자 버려지는 기사, 경쟁력 없는 기사를 만들지 않는 것부터 혁신을 시작해야 합니다. 똑같은 100개의 기사 가운데 하나를 더 얹는 방식으로는 이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출입처 시스템을 깨야 합니다. 제작 현장을 바꾸지 않으면 생산물도 바뀌지 않습니다.”

이제 뉴스가 다음날 아침에 예쁘게 포장돼서 배달되는 시대가 아니다. 날 것의 사실이 먼저 터져 나오고, 뉴스에 살이 붙고 코멘트가 붙고 사실과 사실이 만나 의미가 부여되면서 그 과정을 모두가 공유하는 시대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다음날 아침 신문 지면을 통해 다시 확인하는 시대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언론이 여전히 종이신문 전성 시대의 생산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제는 잘 알려진 사실을 검증하는 기사, 진영 논리를 뒤집고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기사가 더 잘 읽히는 시대가 됐다. 뉴스가 넘쳐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진짜 뉴스에 대한 갈망이 커지고 있다. 언론사에 사실을 전달하는 기자는 많지만, 맥락을 짚고 뉴스의 이면을 파헤칠 수 있는 기자가 많지 않은 것은 지금 당장 발생하는 백만 가지의 사건을 좇느라 뉴스의 구조화와 메시지의 전달 방식을 고민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 언론의 가장 큰 문제는 데스크가 변할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편집국장이나 보도국장의 임기는 길어봐야 2년에서 3년인데, 지난 수십 년 동안 해왔던 방식을 포기하고 싶지 않거나 잘 모르는 영역에 발을 담그고 싶지 않는 것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2년만 더 가자고 생각하는 것이다. 국장이 바뀌지 않으니 부장들도 바뀔 의지가 없다. 한국에서는 아직 망하는 언론사가 없고 많이 꺾였다고는 하지만 광고 시장도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내가 편집국장이라면 다른 데 이미 난 기사와 다른 데 날 것 같은 기사를 쓰지 못하게 하는 데서부터 변화를 추동할 것이다. 여전히 사건 보도는 저널리즘의 기본이다. 언론의 사명은 권력을 감시·비판하고 민주주의의 확장을 위한 의제를 제안하고 토론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현장을 찾고 사실을 확인하고 검증하는 건 여전히 취재와 보도의 기본이지만, 이제는 10개 안팎의 신문·방송이 시장을 과점하던 시대가 아니다.

이제 모든 국민을 위한 모든 뉴스를 다 만드는 시스템으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정부 부처마다 기자실에 수십에서 수백 명의 기자들이 몰려 앉아 보도자료를 다듬고 있는 장면은 암담하다. 당연히 보도자료도 처리해야 하고 브리핑도 들어야 한다. 그러나 똑같은 100개의 뉴스를 쏟아내는 이런 시스템에서 빠뜨리고 있는 뉴스가 무엇인지 돌아볼 필요도 있다.

한국에서의 ‘뉴스의 사막’은 어디인가

2017년 봄 ‘콜롬비아 저널리즘 리뷰’가 공개한 ‘뉴스의 사막 지도(desert of news)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지역 단위 일간신문이 하나도 없는 지역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 비즈니스의 붕괴와 디지털 전환의 후폭풍이지만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신문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고 일부 지역에서는 신문이 난립하고 있어서 문제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한국에서는 뉴스의 사막은 어디일까.

콜롬비아 저널리즘 리뷰에서 발표한 '미국의 뉴스 사막 지도' https://www.cjr.org/local_news/american-news-deserts-donuts-local.php
콜롬비아 저널리즘 리뷰(2017 봄), ‘뉴스 사막 지도’

한국에서는 모든 정부 부처와 모든 기업을 커버해야 광고가 나온다. 삼성전자를 출입해야 삼성전자 광고를 받을 수 있고, 현대자동차의 보도자료를 소화해야 광고 게재 리스트에 오른다. 홍보 담당자들을 만나서 밥을 먹고 술을 먹어야 관리 대상이 된다. 종이신문 가구 구독률이 10% 밑으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정부 부처 공보실과 기업 홍보실은 아침마다 신문 기사를 스크랩해서 임원들에게 보고를 올린다.

나는 언론사 전략 담당자들에게 “종합 일간지의 함정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모든 걸 다 다루는 것 같지만, 아무 것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딜레마. 성실하게 세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 같지만, 그렇게 만든 콘텐츠 패키지가 통째로 버림 받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제는 아무도 그렇게 뉴스를 읽지 않는다.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으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없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디지털 혁신은 예쁘장한 카드뉴스를 만들거나 눈길을 끄는 현란한 동영상을 만들라는 게 아니다. 변화의 흐름을 간과해서도 안 되지만 방향이 아닌 형식에 매몰되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독자들이 원하는 것은 이미 너무 많은 뉴스의 더미에 또 하나의 뉴스를 더하는 게 아니라 사실과 사실이 연결되는 방식, 실체적 진실을 구성하는 맥락이다. 디지털이라고 해서 뉴스와 메시지의 본질이 달라질 게 없다는 이야기다.

강력한 이야기를 위한 7가지 방법론

핵심은, 재미없고 지루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이야기들을 강력한 이야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우리의 이야기를 읽게 만들고, 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을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토론과 논쟁이 필요하다. 적당히 말랑말랑한 이야기를 찾아나서는 게 아니라 진짜 중요한 이야기를 발굴해야 한다는 게 디지털 혁신의 본질이다.

강력한 이야기를 위한 몇 가지 방법론을 정리해 본다.

첫째, 새로운 프레임을 제안하라. 남들 다 하는 이야기는 그들이 하게 내버려 두는 게 좋다. 한 발 물러나서 새로운 프레임을 발견해야 한다. 지난해 말 기획재정부 사무관을 지낸 신재민 씨가 문재인 정부가 의도적으로 국가 채무를 부풀리려 했다고 폭로했을 때 신 씨의 발언을 받아쓰면서 정부를 공격하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될 수 없다. 일개 사무관이 뭘 아느냐고 비아냥거리거나 폭로의 의도를 의심하는 것은 본질에서 벗어난다.

오히려 판을 바꿔서 과연 국가 채무란 게 적을수록 좋은 것인가, 소득주도 성장을 표방한 정부가 사실상 재정 긴축을 하고 있는 게 바람직한가 질문을 던지는 게 새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의 국내 총생산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39.8%로 미국(107.8%)이나 일본(236.5%)보다 훨씬 낮다. 한 걸음 더 들어가 왜 세입이 세출 보다 더 많은 상황이 지속되는지, 정부가 왜 재정 확장에 소극적인지 분석하는 것도 좋은 기사가 될 수 있다.

작품과 외부 세계의 경계로써 화가의 고유한 영토를 획정하는 프레임. 마찬가지로 언론사도 자신의 철학과 욕망을 다양한 프레임을 통해 기사에 투영한다.
작품과 외부 세계의 경계로써 화가의 고유한 영토를 획정하는 프레임. 마찬가지로 언론사도 자신의 철학과 욕망을 다양한 프레임을 통해 기사에 투영한다.

둘째, 지식의 저주를 극복하라. 지식의 저주(curse of knowledge)는 내가 알고 있는 걸 남들도 알고 있을 거라는 착각에서 비롯한다. 기자들은 물론이고 많은 전문가들이 그들만의 논리와 문법으로 독자들을 무시하고 필요한 설명을 건너 뛴다. 오늘의 뉴스는 어제의 뉴스의 연장선 위에 있고 이틀 전 뉴스와 한 달 전 뉴스가 연결되는데 기자들은 독자들이 그 모든 기사를 알고 있는 것처럼 기사를 쏟아낸다.

4조5,000억 원에 이르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회계 사건은 뭔가 엄청난 사건인 것 같긴 한데 너무나도 복잡해서 도대체 기자들도 제대로 이해하고 기사를 쓰는 건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단순히 알기 쉽게 풀어쓰라는 게 아니라 단 몇 줄로 사건의 핵심을 정확히 짚고 사건의 흐름을 따라 잡을 수 있는 타임라인을 추가하고 찬성과 반대, 비판하는 입장과 옹호하는 입장을 비교하고 사건의 흐름과 의미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기사는 찾아볼 수 없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회계"로 구글에서 기사 검색한 모습 ('19년 3월 18일 기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회계”로 구글에서 기사 검색한 모습 (’19년 3월 18일 기준)

셋째, 이야기의 약점을 먼저 드러내라. SBS의 손혜원 보도는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보면 투기라고 보기 어렵다”고 전제한 뒤 “그래도 이익이 충돌하는 행동을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들어갔다면 더 완벽한 기사가 됐을 것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는 자회사의 미래 가치를 부풀린 것이라 실제로 매출을 부풀리고 손실을 누락한 대우조선해양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사실을 지적한다고 하더라도 사건의 무게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핵심은 약점을 감춘다고 해서 이야기가 강력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예상되는 반론을 반격한 뒤 본론으로 들어갈 때 좀 더 강력한 이야기가 된다. 기업의 투자 부진을 이야기하려면 사내 유보금이 현금처럼 쌓아두는 돈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들어가야 한다. 돈을 쌓아두고 노동자들만 착취한다는 식의 우리들끼리 공감하고 우리들끼리 보는 반쪽짜리 이야기로는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한다.

진영을 넘어 적을 공략해야 이긴다

넷째, 진영 논리를 벗어나라. 메시지를 만드는 사람은 옳다고 믿는 가치에 매몰될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노동 현장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득권 논리가 격차 해소를 가로막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노노 갈등을 부추기는 것도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하는 것도 옳지 않지만, 우리 편은 언제나 옳다는 논리는 위험천만하다.

이를 테면 최저임금 논란을 다루면서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자들이 엄청난 부담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빠뜨리는 것은 논의의 진전을 가로막는다. 실제로 최저임금을 올릴수록 최저임금을 못 받는 노동자들도 늘어난다는 불편한 진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이라도 기꺼이 감수할 수밖에 없는 취약한 계층이 있고 최저임금을 강력하게 단속한다고 하더라도 자영업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한다.

다섯째, 현상이 아니라 본질을, 사건이 아니라 구조를 파고 들어라.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 마틴 배런 보스턴글로브 편집국장은 기자들이 추기경이 개입한 사실부터 터뜨리자고 말하니까 이렇게 답변한다. “조직에 초점을 맞춰요. 사제 개개인 말고. 관행과 방침에 대해. 교회가 체계를 조작해서 고소를 면했다는 증거를 가져와요. 바로 그 사제들을 다시 교구로 보내고 또 보냈다는 증거와 그리고 체계적으로 위에서 지시했다는 증거도.”

구조를 들여다보면 좀 더 큰 그림을 읽을 수 있다. 국민연금이 대한항공의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느냐 마느냐의 논쟁에서 핵심은 그 주체가 박근혜 정부냐 문재인 정부냐와 무관하다. 관치라는 비판을 불식시키고 정권이 바뀐 뒤에도 흔들리지 않으려면 애초에 정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되 동시에 시장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도록 공적인 지배구조를 확립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가게 된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사건이 아니라 구조를.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현상이 아니라 본질을, 사건이 아니라 구조를.

여섯째, 사람들의 이야기, 관계와 힘의 작동 방식에 집중하라.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다. 2010년 3월 김우룡 당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월간 신동아와 인터뷰에서 “김재철 MBC 사장이 큰집에 불려가 조인트를 맞고 깨진 뒤 좌파를 대청소했다”고 털어놓았다. 언론 장악의 첨병으로 불렸던 사람이 언론 장악 시스템을 실토한 것이다. 날 것의 인터뷰는 부정할 수 없는 힘을 갖는다.

인터뷰는 섭외가 절반이다. 11년 동안 1만3,000여 명을 인터뷰했다는 CBS ‘김현정의 뉴스 쇼’의 김현정 앵커는 김영란 전 대법관을 인터뷰하기 위해 석 달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안부 전화를 했다고 한다. 인터뷰를 극구 거부하던 김 전 대법관은 어느 순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고, 석 달 동안 귀찮게 했던 CBS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 어떤 정리된 기사보다 잘 정리된 질문과 가감 없는 답변이 전체 맥락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다.

날 것의 인터뷰는 강력하다.
날 것의 인터뷰는 강력하다.

일곱째, 다른 그림과 다른 메시지를 읽어내라. 2013년 9월6일 조선일보는 1면 기사로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 아들 숨겼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혼외 아들이든 딸이든 불법은 아니고 그게 국민들의 알 권리와 무슨 관계인지 의문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조선일보가 이 기사를 내보내는 맥락이다. 국가정보원의 여론 조작과 남북 정상 회담 대화록 유출, 통합진보당 내란 음모 사건, 원세훈 전 국정원 원장의 기소는 모두 하나로 연결된 사건이다.

기사는 조선일보에서 터뜨렸지만, 뒷조사는 청와대 행정관이 지시했다. 본인이 아니면 뗄 수 없는 가족관계 증명서를 누군가가 들춰봤는데 청와대는 개인적 일탈이라면서 이 행정관을 직위해제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은 이명박 정부의 일이었지만, 국가 권력을 동원해 수사를 방해하고 여론을 조작하고 진실을 은폐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련의 범죄는 박근혜 정부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우리가 만들려는 건 장기적출 괴담과 다르지만, 히스 형제가 제안한 것과 기본 로직은 비슷하다. 뻔히 다 아는 이야기를 피하고, 상식과 편견을 깨뜨리되, 넘쳐나는 이야기들 사이에 묻혀 있는 진짜 진실을 끌어내고 우리 모두가 마음에 안고 있는 선의의 욕망에 호소하는 것이다. 과장하거나 임의로 가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되 핵심을 짚고 본질에 접근하는 것, 그것이 강력한 이야기의 구조이자 조건이다.

언론 보도를 중심으로 이야기했지만, 모든 이야기가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철저하게 다르게 접근하고 뒤집어 생각할 것을 제안한다. 프레임을 바꾸고 숨겨진 맥락을 읽어내는 힘이 필요하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좌절할 건 없다. 수많은 언론사와 기자들도 그게 안 돼서 독자들을 잃고 ‘기레기’로 전락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새로운 이야기를 찾고 다르게 이야기하는 방식을 터득한다면 강력한 메시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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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의 미디어 전략 강좌 

  1. 메시지를 바꿔야 세상이 바뀐다
  2. 강력한 스토리텔링을 만드는 7가지 원칙
  3. 저널리즘 씽킹: 기자들처럼 생각하고 기자들처럼 써보자
  4. 솔루션 저널리즘, 질문으로 시작하자

이 글은 월간 인물과사상에 “이정환의 미디어 전략 강좌”라는 제목으로 연재하고 있는 글로 슬로우뉴스 원칙에 따라 편집한 것입니다. 이 글은 2019년 3월호에 실렸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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