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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UN 사무총장(이하 ‘반기문’)은 대선에 나설 것인가.

반기문이 화두다. 언론의 추측성 기사가 난무하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해석 대상이다. 그 와중에 “반기문의 대선 출마는 UN 결의안 위반”이라는 ‘단독 보도’가 있었고, 이에 대한 타 언론사의 팩트체크가 있었으며, 이 논란을 해석하는 전문가의 논평이 있었다. 우선 하나씩 살펴보자.

반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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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레시안 – “반기문, 대선 출마는 UN 결의안 위반”

프레시안은 2016년 임기를 만료하는 반기문 UN 사무총장의 대선 출마는 1946년 UN이 1946년 결의안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단독’ 기사를 냈다.

프레시안 결의안 오보

기사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1946년 1월 24일 제1차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결의안 ‘유엔 사무총장 지명에 관한 약정서[footnote]Terms of appointment of the Secretary-General, 결의안 번호 A/RES/11(I)[/footnote]’에 따르면, 사무총장은 여러 나라들의 비밀을 취득할 수 있는 직위이기 때문에 최소한 퇴임 직후에는 회원국의 어떤 정부 직위도 맡아서는 안 된다고 돼 있다. 이는 각 회원국과, 사무총장 본인 모두에게 의무 조항(should)으로 규정돼 있다.

결의안의 해당 부분은 다음과 같다. (☞원문 보기)

4-(b)항. 사무총장은 여러 정부로부터 비밀스런 상담역을 하기 때문에, 모든 회원국은 그에게, 적어도 퇴임 직후에는, 그의 비밀 정보가 다른 회원국을 당황시킬 수 있는 어떠한 정부 직위도 제안해서는 안 되며, 사무총장 자신으로서도 이런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을 삼가야 한다.

(Because a Secretary-General is a confident of many governments, it is desirable that no Member should offer him, at any rate immediately on retirement, any governmental position in which his confidential information might be a source of embarrassment to other Members, and on his part a Secretary-General should refrain from accepting any such position.)

프레시안,  [단독] 반기문, 대선 출마하면 UN총회 결의안 위반 (2016. 5. 23.)  중에서

프레시안 기사의 내용은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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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JTBC – 논란의 여지 있지만, 법적 구속력 없다 

JTBC 뉴스는 ‘팩트체크’ 코너를 통해 반기문의 대선 출마가 UN 결의안에 위반하는지를 검토한다.

JTBC뉴스 반기문

UN 결의안의 자구 해석에 관한 세부 논점을 제외하고,  그 법적 성질을 중심으로 JTBC뉴스의 해당 보도를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1. “결의안에 법적인 구속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거죠. 일단은”(손석희)
  2. “이 법적 구속력에 대해서 (…) 권고라고만 보기 힘들다는 학문적 해석도 있기는 했지만, (…) 사문화된 규정이라는 반박도 많았습니다.” (김필규)
  3. “도덕적 비난을 받을 것이다” 법적인 문제는 아니지만… 그런 얘기인데 좌우지간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얘기군요. (손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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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상헌, “프레시안 보도는 오보” 

프레시안의 보도가 맞는 걸까, 아니면 JTBC의 보도가 맞는 걸까. 다시 정리하면 이 두 보도는 다음 질문에 관해 서로 다른 결론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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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질문 – 반기문의 대선 출마는 UN 결의안 위반인가.

A. 프레시안: 위반이다.

B. JTBC뉴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도덕적) 논란의 여지는 있다(= 위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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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 박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프레시안의 해당 기사에 관해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역시 발췌 인용한다.

이상헌

  • “오보입니다. 해당 구절에 대한 오역 내지는 오해이고, 백번 양보해서 이 구절은 대통령과 같은 선출직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 “당시에는 사무총장이 국가원수 자리에 출마해서 선출된다는 생각조차 없었고, 전후 냉전의 고착 기미가 보이면서 사무총장이 특정 회원국의 고위직으로 임명되어 민감한 정부를 이용하여 다른 국가를 위해할 가능성을 경계한 듯합니다. 당시 소련과 미국 간에 사무총장 임명과 관련된 샅바 싸움이 대단했습니다. 해당 규정은 그 이후 거의 이용되지 않은 듯합니다. 사문화된 것이라 봐야하지 않을까요.”
  • “제가 ‘대형’이라고 붙인 이유는, 유엔 결의안 위반 여부를 신문이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 “4(b)가 어정쩡한 ‘권고’ 내지는 ‘참고’조항이 되어 버린 이유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짐작건대, 이 조항은 정치적 불가성과 처벌의 불가능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대통령직을 포함한 선출권은 불가침한 시민권인데, 이를 “결의안”을 통해 제한하는 것이 일단 국제법상 용이하지 않았을 터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제한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위반’시 처벌할 방법이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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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 – “선출권은 불가침한 시민권” 

판단컨대, 나는 프레시안의 보도를 오보로 판단한다. 프레시안 보도는 당파적 지향(=새누리당 차기 대선후보로 언급되는 반기문 총장에 대한 비판적 선입견)으로 인해 해당 결의안에 대한 문리적(표면적) 해석에만 집착한 나머지, 일부 오역[footnote]문리적인 해석상 오류를 예시하면, 프레시안 기사는 “it is desirable that~”(~하는 게 바람직하다)” 즉, 권고적 의미를 담은 구문을 “~해야 한다”는 의무적 조항으로 해석한다.[/footnote]하고, 전체적으로 시대에 부합하는 해석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본다.

오래된 책들

JTBC뉴스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식으로 다소 모호한 톤으로 처리하는 쟁점에 관해 이상헌 박사는 비교적 상세하게 각 쟁점을 지적한다. 결의안이 만들어진 시대적 상황을 설명하는 부분도 의미 있지만, 특히 가장 의미 있는 지적은  “정치적 불가성과 처불의 불가능(성)”을 언급한 부분이라고 판단한다. 중요한 지적이므로 다시 인용한다.

대통령직을 포함한 선출권은 불가침한 시민권인데, 이를 “결의안”을 통해 제한하는 것이 일단 국제법상 용이하지 않았을 터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제한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위반’시 처벌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상헌 박사)

70년 전에 UN 최초로 만들어진 결의안은 그 역사적인 의의가 분명하다. 하지만 그 결의안이 태어난 시대 상황,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양대 강국의 권력 역학 속에서 자국의 이익을 조율하려 했던 회원국의 이해, 이 모두를 적극적으로 고려해 ‘지금/여기’에서 다시 해석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단순히 7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게 문제일 순 없다. 그 시대의 성원들이 만들어낸 합의는 여전히 우리에게 귀한 전통이나 원칙으로 자리할 수 있다. 다만, 어떤 규범도 당대의 시공간이라는 한계 속에서 태어나므로, 그것을 ‘그때/거기’가 아니라 ‘지금/여기’에 적용하려면 그 시간과 공간의 간극을 메울 해석의 방법론이 필요하다. 그리고 질문이 필요하다. 그 질문은, 이상헌 박사가 간명하게 지적한 취지처럼, 다음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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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UN 결의안은 대한민국이라는 민주주의 공화국의 대통령 후보 ‘자격’을 결정할 수 있는 강제력 있는 규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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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이 ‘사문화’된 조항이라고 해석하는 결의안의 문제 조항[footnote]UN사무총장 지명에 관한 약정서 4(b)[/footnote])에 관한 세부적인 오역이나 해석상 쟁점보다 우리는 먼저 독립한 공화국의 주권자로서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이상헌 박사는 이렇게 답한다:

대통령직을 포함한 선출권은 불가침한 시민권이다.”

1987년 6월 26일 서울역 주변에서 경찰과 대치 중인 학생과 시민들. (출처: 보도사진연감)
1987년 6월 26일 서울역 주변에서 경찰과 대치 중인 학생과 시민들. (출처: 보도사진연감)

반기문이 대선이 출마할지 말지, 그리고 그가 대통령 후보로서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논의할 시간이 있다. 그리고 그 논의를 엄밀하고, 혹독하게 진행해야 할 의무가 언론은 물론이고, 시민에게 있다.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 “불가침한 시민권”을 70년 전 UN 결의안을 ‘핑계’삼아 포기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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