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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의 죄: 사실적시 명예훼손과 공익성

일단 대리점을 운영하던 홍길동(가명)의 이야기를 한 번만 들어주세요.

“제 이름은 홍길동입니다. 저는 A제약회사(이하 ‘A’)와 상품공급계약을 체결하고 A로부터 제품을 공급받아 판매해 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A는 거래 대리점들과 충분한 상의 없이 제일제당에 그 제품의 판매권을 넘기고, 불공정한 약관을 들어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했습니다.

제가 이에 항의하면서 민원을 제기하자 A는 저를 회유하려고 하였으나 저는 이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를 제외한 다른 대리점들을 상대로 그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굴복시켰습니다. 그 후, A회사는 저에게 ‘괘씸죄’를 씌워 제가 담보로 제공한 재산에 강제경매를 신청했습니다.

A는 밀실정책의 대표 회사입니다. 인간의 최소한의 양심과 도덕성은 하수구에 처박아 넣은 지 오래입니다. 지켜야 할 법도 저버리면서까지 같이 살아가야 하는 공생의 법칙도 어기고 있습니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모습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습니다.”

홍길동은 위 내용의 글을 “국회의원과 언론사, 다른 제약회사 등 11곳의 홈페이지에 게재”했습니다. 위 홍길동의 이야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홍길동의 이야기가 “진실한 사실”이라는 점입니다. A에 대한 의견(비판, 비방)을 제외한 사실관계는 “진실한 사실”입니다. 확실하냐고요? 네, 위 내용 중 큰 따옴표(“”)로 표시된 내용은 모두 대법원 판결문1에서 직접 인용한 내용입니다(다만, 독자의 가독 편의를 위해 주어 등 일부 표현만 수정했습니다). 즉, 법원에서 확인한 “진실한 사실”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그 부당함을 알리고 해결하고 싶은 마음, 인지상정입니다. 그리고 권리죠.

억울한 일을 당하면 그 부당함을 알려 해결하고 싶은 마음, 인지상정입니다. 그리고 권리죠.

홍길동의 죄 

이제 여러분께 질문드립니다.

홍길동은 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저는 홍길동의 행위는 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홍길동은 A제약회사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미약한 개인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홍길동이 적은 이야기는 “진실한 사실”이었죠. 미약한 개인에 불과한 홍길동이지만, A제약회사의 요구나 회유에 응하지 않고, 자신이 겪은 부당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하지만 거대 제약회사와 싸우는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홍길동은 (우리 이웃들이 흔히 억울한 일을 당하면 그렇게 하듯) 자신이 경험한 일을 적어 “국회의원과 언론사, 다른 제약회사 등 11곳의 홈페이지에 게재”했습니다.

하지만 홍길동은 죄가 있습니다. 현행 명예훼손죄에 의한다면 홍길동은 유죄입니다. 홍길동의 이야기가 “진실한 사실”이라고 인정한 위 대법원의 이야기를 마저 들어보시죠.

“홍길동이 작성하여 게재한 글의 내용이 진실한 사실로서 A회사의 시정되어야 할 부분이 일부 포함되어 있기는 하나, A를 비방하는 취지가 그 내용의 주조를 이루고 있는 점, 위 사건과 관련되어 있는 자들뿐만 아니라 불특정 다수인들이 볼 수 있는 정치인이나 언론사 또는 위 A회사와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제약회사의 홈페이지에 게재한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홍길동이 위와 같은 내용의 글을 게재한 것이 형법 제310조 소정의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다.”(즉,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고, 홍길동은 유죄라는 취지)2

여러분이 홍길동이라면 어떠시겠습니까? 홍길동은 정말 ‘형법’으로 국가가 벌줘야 하는 죄인입니까? 범죄자입니까?

우리나라 형법에 의하면 그리고 대법원은 홍길동의 행위가 A제약회사의 명예를 훼손해 유죄라고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우리나라 형법에 의하면 그리고 대법원은 홍길동의 행위가 A제약회사의 명예를 훼손해 유죄라고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너무 많은 홍길동들 

이런 홍길동은 사실 너무 흔합니다.

  • 단체교섭에 성실히 임하지 않는 업주를 고발하는 피켓시위를 한 노동자3
  • 건물주의 갑질을 고발하는 글을 쓴 세입자4
  • 국립대 교수의 연구실 제자 성추행 사건을 고발한 한 여성단체5

이들, 또 다른 홍길동들은 명예훼손죄에 관해 유죄를 판결받았습니다. 대법원에 가서야 무죄로 판단된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은 불문가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마지막으로 질문하고 싶습니다.

여러분께서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위 사례들에서 설명한 ‘홍길동’이 처한 상황을, 그런 일은 없어야 겠습니다만, 여러분께서 겪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홍길동처럼 싸우시겠습니까?
홍길동처럼 부당함을 외치시겠습니까? 
아니면, 그냥 ‘약자의 지혜는 침묵’이라 자위하면서 입을 다무시겠습니까? 

현행 형사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냥 조용히 가만히 있으라 가르칩니다.

현행 형사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냥 조용히 가만히 있으라 가르칩니다.

현행 제도는 침묵하라고 웅변합니다. 부당함에 대해서도 침묵이 금이라고 가르칩니다. 현행 제도는 미약한 약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진실한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누군가를 비판하고 비방하는 행위가 위법하지 않으려면 “오로지 공공의 이익 관한 때”일 것을 요구합니다.

이 제도는, 이 형법의 규정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응 공익성이 인정될 수 있는 표현행위도 명예훼손죄로 처벌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는 사전에 크게 경직,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오픈넷 손지원 변호사).

사실적시 명예훼손 범위 좁히자  

사단법인 오픈넷은 어제(2019. 3. 12.) 진실한 사실의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 행위의 경우 ‘부수적으로라도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형법 일부개정법률안(김병기의원 대표발의, 의안번호: 188898)과 정보통신망법 일부개정법률안(김병기의원 대표발의, 의안번호: 18899)에 대한 찬성의견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를 다음과 같이 개정한다.

제70조에 제4항을 다음과 같이 신설한다.

④ 제1항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부수적으로라도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

“본래 ‘공공의 이익’이란 개념은 추상적이고 불명확하여 형사처벌 여부나 표현의 허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기준으로 삼기 부적절하고, 현행법과 판례에 따르면 ‘오로지’ 또는 ‘주요한’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판단되어야 죄가 성립되지 않는데, 이와 같이 행위자의 주관적 의도와 그 비중을 판단하는 것은 더욱 추상적인 작업”이라는 것이 오픈넷 손지원 변호사의 설명입니다.

오픈넷 손지원 변호사

오픈넷 손지원 변호사

더불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진실한 사실의 발설을 막음으로써 보호하고자 하는 개인의 명예는 진정한 명예라기보다 결국 진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허명’ 혹은 ‘위선’으로서 보호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아 이러한 허명을 보호하기 위해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사람을 형사처벌하는 것은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하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명예훼손죄는 폐지 추세이며, 특히 유엔 자유권 규약 위원회(2015)6와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2011)7도 대한민국 정부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를 정식으로 권고한 바 있다”고 손 변호사는 말합니다.

손 변호사의 지적에 동의합니다. 본 개정안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위헌성을 감소시키고, 표현의 자유를 더욱 보호하는 내용으로 바람직한 개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본 개정안이 도입되면 표현행위자의 입증 부담이 완화되고, 공공의 이익과의 관련성을 인정받기만 하면 동기의 비중을 따짐이 없이 형사처벌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어, 공익과 관련된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사람의 표현의 자유가 더 넓게 보장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 문헌:


  1. 대법원 2004. 5. 28., 선고, 2004도1497 판결

  2. 대법원 2004. 5. 28., 선고, 2004도1497 판결

  3. 대법원, 2004. 10. 15. 선고 2004도3912 판결

  4. 서울중앙지방법원, 2018. 10. 22. 선고 2018고정1820 판결

  5. 대법원, 2005. 4. 29. 선고 2003도2137 판결. 이 사례는 원심(2심)에서는 유죄판단을 받고, 상고심(대법원)에서야 무죄로 판단된 경우.

  6. Human Rights Committee, “Concluding observations on the fourth periodic report of the Republic of Korea”, Adopted by the Committee at its 115th session (19 October?6 November 2015)

  7. Frank La Rue (2011), “Report of the Special Rapporteur on the promotion and protection of the right to freedom of opinion and expression, Mission to the Republic of Korea”(A/HRC/17/27/Add.2), UN Human Rights Council, 21 March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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